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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의 주장
하나님께서 계속 일하시고 계신다는 구절: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요 9: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시 121:4)
유대인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치료하시는 것을 보고 큰 도전을 느끼고 예수님을 공격했다. 이들은 예수님이 그 다음 날에 고치셔도 되는데, 기다리지 않고 안식일에 고친 것을 문제 삼았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대응하셨다. 하나님이 안식일에 일하신다는 생각은 유대인에게는 생소하다. 하나님은 제7일에 창조를 마치시고 안식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이 말씀이 매우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유대인과 예수님 사이에 안식일 이해가 다르다는 것이다[4]. 그렇다면 안식의 개념은 무엇인가? 우선 안식일의 근원을 더듬어가자. 모세의 안식일 계명은 창조의 안식에 근원을 둔다.
요약: 안식일의 의미를 아는 것이 관건이다[5].
1.3. 안식일의 신학적 근거로서의 창조의 안식[6]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왜 안식일 계명을 주셨는가? 안식일 계명을 주신 취지는 무엇인가? 더 나아가서는 안식이란 무엇인가? 이것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창조기사로 가야 한다. 구약의 안식일 계명은 이 창조기사(창 2:1-3)를 근거로 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안식일 계명과 주일 성수 이해의 관건이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창 2:1-3)
• 창조 안식의 근거는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진 것이다. 창조는 하나님 뜻대로 다 이루어졌다.
• 안식의 의미: “안식하다”(히, tb;v')) à (솨밧) 중단하다, 끝내다, 쉬다.
• 하나님의 안식: 하나님의 안식은 6일간 일하시고 힘드셔서 쉬신다는 의미가 아니다. 창조를 끝내시고 본연의 안식으로 돌아가셨다는 의미이다[7]. 하나님은 본래 안식의 하나님이시다.
• 안식일은 영원하다: “창조의 안식일은 천지 창조가 마감된 후 피조물의 안식일이 되어서 영원히 지속된다[8]”. 안식일 다음은 없다. 하나님께서 1-6일간 일하시고 7일에 쉬시고 그 다음날에 또 일하시는 것이 아니다. 7일 다음에는 다른 날이 없다. 낙원에는 달력도, 7일 주기도 없다. 안식일 다음에는 또 안식일이 온다. 창조 이후의 안식일은 영원하다[9].
• 완벽한 피조물: 하나님의 창조는 더 이상 손을 볼 필요없이 완벽하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대로 이루어졌다. 인간도 완벽한 존재로 지어졌고 하나님이 인간을 보고 기뻐하셨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10]”(창 1:31). 하나님께서 인간을 매우 사랑하셨다!
• 하나님의 창조질서: 하나님은 인간과 피조물을 창조하신 후에 질서를 세우셨다:
따라서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가 앞으로 유지될 것이다[11]. 이 질서가 유지될 때에 인간은 비로소 안식을 가지며 행복해진다.
요약: 창조의 안식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서고,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어 계속되는 것이다.
참고: 하나님의 통치는 예수님이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와 같은 말이다(바실레이아 투 테우).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다시 인간을 통치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이루셨다 à 구약과 신약과 잘 연결된다! 안식이 하나님 나라,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과 연관됨.
1.4. 창조 안식일의 특징 (안식일의 특별한 의미)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창 2:3.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피조물을 보고 기뻐하셨다. 그다음에 두 가지 중요한 일을 하심으로써 안식일에 의미를 두셨다:
1) 축복하심:
하나님은 일곱째 날을 특별하게 하셔서 피조물 모두가 그 날의 축복에 참여하게 하셨다. 구약에서 축복의 의미는 능력과 번식력이다. 따라서 모든 피조물은 왕성한 번식력을 가진다. 인간은 특별히 힘과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 앞에서 존재의미를 가지고 기뻐하고 그들의 생명에 감사하며 생육하고 번성하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하나님 통치의 결과로부터 오는 이 축복은 영원히 지속한다. 하나님은 축복의 하나님[12]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자! 이것은 우리 믿음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2) 거룩하게 하심:
거룩(카도쉬)의 기본 의미는 “구별되다”이다.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신 것은 구별되어 하나님께 속한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후에 등장하게 될 안식일 계명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암시되어 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 속하므로, 안식일 계명을 범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성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낙원에서는 모든 날이 안식일이며,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하고 거룩하므로, 특별히 안식일과 거룩에 관한 계명이 필요 없다.
* 낙원의 삶의 특징은, 인간이 하나님의 큰 축복과 안식 속에서 거룩하게 사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에 대한 불변하는 하나님의 뜻이다.
1.5. 하나님의 안식과 인간의 안식
하나님께서 창조 사역을 마치시고 안식하셨다(“...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창 2:3). 이 안식은 하나님께서 피조물계가 자동으로 돌아가게 해놓고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시는 것(이신론)이 아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안식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인간에게 안식이 깨어지면 하나님의 안식도 깨어진다. 인간의 안식은 다음의 세 가지 의미가 있다:
1) 안식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친밀한 교제(화평 관계)를 의미한다. 창조 사역의 꽃은 인간의 창조이며, 하나님은 인간이 낙원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셨다[13] .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낙원을 지어주시고 그곳에 있는 아담을 찾아오셔서 교제를 나누셨다. à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안식이 깨어지면 이 교제도 깨어지고 하나님의 안식도 깨어지는 결과를 낳는다.
2) 안식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허물없는 교제를 의미한다(“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창 2:25). à 이웃 사랑.
3) 안식은 인간의 대행 통치를 의미한다[14].
à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피조물 사이에 샬롬이 실현되는 것이 안식을 누리는 것이고, 이것이 하나님 나라(통치)가 실현되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었으므로 피조물에게도 안식이 시작되었다. 아담의 일, 대행통치도 안식이다. 아담의 일은 자기를 위해서 하는 일(탐욕)과는 다르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일을 함으로써 마음이 평안하고 기쁘다. 인간은 하나님의 완전한 축복 가운데서 산다. 이것이 인간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이며, 이것은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다. 인간이 행복을 다른 곳에서 찾는 것이 문제이다.
[1] 본 논문은 장세훈 교수(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의 강의 내용을 많이 참조했다. 안식일에 관해서 필자가 들은 강의나 논문 중에서는 장 교수가 정리한 것이 가장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본고는 그 외에 많은 논문과 여러 서적들을 참고했다. 따라서 본고에는 필자의 독특한 생각이 개입되지 않았으며, 단지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필자 나름대로 정리한 것이다. 독특한 점이 있다면, 신구약의 여러 중요한 주제들을 안식일을 중심으로 엮은 것이다.
[2] 독일의 경우 인구의 약 30%가 신교로 등록되어 있다. 즉, 그들은 국가교회에 소속된 경우에는 종교 세를 납부하거나 독립교회에 소속된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십일조, 혹은 그에 상당하는 헌금을 낸다. 그러나 정기적으로 예배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3-5%밖에는 안 되며, 나머지 사람들은 대체로 정통적인 믿음이 아닌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다.
[3] 성경은 혹자가 생각하듯이 앞뒤가 꽉 막힌 책이 아니다. 단순한 도덕 교과서도 아니다.
[4] 예수님 당시 랍비들은 매우 강화된 안식일 계명을 지켰다. 바빌론 유수 이후에 율법을 잘 지키기 위해 특히 안식일 법을 강화시켰다. 바빌론 탈무드에 따르면, 할례와 함께 안식일 성수도 유대인의 표지로 삼았다. 이것은 하나님 율법을 아무리 철저히 지키고, 그 이상을 지킨다고 할지라도 율법의 정신을 모르고 한다면 하나님의 적이 될 수 있다는 아이러니요, 비극이며, 우리에게는 큰 경고이다.
[5] 이것은 구약의 모든 율법에도 해당한다. 율법의 근본 의미를 모르면 지킬 수 없다.
[6] 창조의 안식이라는 말은 신학적 용어로 굳어진 표현이다: Schoepfungssabbat.
[7] 창조의 안식은 하나님을 위한 안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 말은 하나님도 안식이 필요한 분이라는 뉘앙스를 주므로, 하나님이 본연의 안식으로 돌아가셨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8] Delitzsch, Genesis 72.
[9] 안식과 휴식한다는 말은 원래 관계가 없다. 쉬어야만 안식이 되는 것은,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이다. 모세오경은 타락한 인간에게 주시는 계명이므로,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쉬는 것이 중요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의 본질적인 의미를 말할 때에는 쉬는 것과 연결하면 안 된다.
[10] 안식의 회복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죄인이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뻐하시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11] 그러면 언제 안식이 깨어지는가? 인간이 범죄해서 하나님이 만드신 질서를 깨뜨렸을 때이다.
[12] 일반적으로 교인은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 무지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받으시려는 분이 아니라 주시는 분이며, 주시되 무한하게 주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신화의 신들처럼 인간의 섬김에 의존하는 분이 아니다. 내가 무엇을 바쳐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이방 신을 섬기는 것이다. 요: 10:10 „나는 그들이 생명과 넘침을 갖게 하려고 왔다“. 그러나 사람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물질이나 명예로 바꾸어버린 것은 비극 중의 비극이다.
[13] 믿음이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의미한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권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이다.
[14] 인간은 원래 통치자로 지음 받았다. 통치자의 임무는 피조물에 대해 하나님의 뜻을 펼치는 것이다. 아담이 동물에게 이름을 주는 것은 통치권의 실현이다. 타락한 인간은 피조물을 억누르고 착취한다. 그리고 환경과 물질의 지배를 받는다.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고 한다. 제일 나쁜 것이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다. 타락한 자의 특성의 또 한가지는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회복된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존재이므로 다른 사람의 인정이 필요 없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통치 대행자로서 자격을 상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