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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앙인의 삶은 세상과 많이 달라야합니다.(삼상3:1-14)
2024, 9/15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삼상3:1-14절 말씀으로“신앙인의 삶은 세상과 많이 달라야합니다.”이런 제목으로 말씀 전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충만하길 원합니다.
이번 주가 추석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일찍 객지생활을 시작해 추석과 설에는 고향으로 내려갔기 때문에 명절하면 나훈아씨의 ‘고향역’이란 노래와 함께 고향까지 11시간 걸려 가는 완행열차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명절이라 해도 별 감응이 없는데, 평소에도 항상 명절처럼 잘 먹고, 통신과 교통이 발달해 2시간이면 부산까지 가고, 필요하면 언제 어디든지 갈 수 있으며, 영상통화까지도 가능하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닌가 싶습니다.
암튼 이번 추석명절이 행복하고 건강하고 안전한 한가위 되시기 바랍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는지요? 우리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3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믿음의 선배는 초 신자를 도와야합니다.(8-9절)
둘째로, 형제의 잘못을 비판보다 교훈으로 삼아야합니다.(12-14절)
셋째로, 어려운 일을 만나면 신앙인답게 담대해야합니다.(12-14절)
그러면 본문 말씀을 따라가면서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세상 사람들과 왜 달라야하며 어떻게 달라야하는지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 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믿음의 선배는 초 신자를 도와야합니다.(8-9절)
본문 8-9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세 번째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일어나 엘리에게로 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있나이다 하니 엘리가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 엘리가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하니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 아멘.
사무엘이 어린 나이에 성전으로 보내져 성소에서 하나님을 섬겼는데, 어느 날 하나님이 밤에 잠을 자고 있던 사무엘을 부르셨지만 사무엘은 하나님이 부르신다고는 생각도 못하고 엘리에게로 달려갑니다.
그러기를 세 번째, 엘리가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 줄 알고 사무엘에게 또 다시 부르면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하라고 알려줍니다.
하여 사무엘은 하나님이 네 번째로 부르자 이번에는 침착하게 그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좀 아쉬운 것은 처음 부르셨을 때 바로 알려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세 번째에야 겨우 깨닫고 사무엘에게 조언해줍니다.
이것은 당시 엘리가 영적으로 얼마나 침체해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단면인데, 그래도 좀 늦었지만 그나마 이런 조언해줄 수가 있어서 다행입니다.
그나마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영적으로 많이 쇠퇴했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알고 있었고, 또 엘리가 40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겸 대제사장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하여 체험적인 지식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엘리에 비해 사무엘은 아직까지 하나님에 대해 체험적인 신(神)지식이 없었습니다.
오늘날 교회 용어로 말하면 사무엘은 초 신자입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에 대해 열심도 있고, 성소에서 먹고 자면서 봉사도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하나님에 대해, 신앙에 대해 모든 것이 낯설고 배워가야 하는 초 신자인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의 부르셔도 사람의 음성으로 듣고 우왕좌왕 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런 상태의 사무엘에게 새로운 신앙의 눈을 뜨게 해준 사람이 바로 먼저 된 자, 하나님을 먼저 안 엘리제사장이었습니다. 만약 그의 도움이 없었다면 사무엘은 더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을 것이고, 즉각적인 순종이 어려웠을 겁니다.
그래서 교회에는 처음 예수 믿는 초 신자나 믿음이 약한 교인에게는 먼저 된 신앙인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여러분!!! 초 신자들은 교회생활,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모든 것이 낯섭니다. 그래서 어떻게 예배를 드리고, 기도는 어떻게 하며, 공동체생활은 또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스럽고 우왕좌왕하게 되는데, 여러분들이 처음 교회 나왔을 때를 생각해보면 금방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기존신자들이 그걸 도와주어야합니다.
저도 초등학교 때 친구 손에 이끌려 처음 교회를 나갔을 때 헌금시간에 헌금바구니를 돌리길래 얼른 종이에다 뭘 써서 넣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전도자가 전도해온 분을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우선 돕는 것이 맞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옆에서 돕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을까요? 물론 교회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돕겠지만 그래도 전도자가 초기에는 전도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제가 운전면허를 따고 아직 운전해보지 않은 생초보라고 말했는데도 차 주인이 차key를 주면서 남촌동에서 동인천까지 무얼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그때 얼마나 긴장했던지 어떻게 동인천까지 갔다 왔는지 통 기억이 안 납니다. 그때 누가 옆에서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도로사정을 예측해 가며 길을 알려줬다면 훨씬 수월하게 갔다 오지 않았을까요?
어쨌든 뭐든지 먼저 된 자는 후배에게 본이 되고 도움이 되어야합니다.
살후3:9절에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보여 우리를 본받게 하려함이니라."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도바울이 2차 전도를 떠날 때 1차 때 복음을 전했던 곳을 거쳐 갔는데, 이렇게 1차 전도지를 찾았던 것은 그곳에 세워진 교회의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지, 교회가 잘 성장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만큼 사도바울은 전도도 열심이었지만 초신자와 신앙이 연약한 자들을 온전히 세우는데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신앙인으로서 바울과 같은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함께 신앙생활 하는 교우는 남이 아니라 함께 끌어주고 밀어주면서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형제이자 천국에도 함께 가서 영원토록 관계를 지속해가야 할 동지입니다.
이런 이유로 공동체 안에서 초 신자나 기존신자는 신앙적인 것만 아니라 인생전체에도 관심을 갖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어야합니다.
여러분!!! 한 영혼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백번을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는 일인데,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주님께 인도되어온 한 영혼을 성숙한 신앙인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런 노력이 없다면 아무리 많은 영혼을 인도해도 좋은 결실을 맺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내 신앙에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초 신자나 신앙이 어린 사람에게도 관심을 갖고 힘써 돕는 멋진 신앙의 선배가
되셔야합니다.
교회에서 직분이 높아지는 것은 이런 일을 잘 한다는 뜻이고, 또 잘 하라고 높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 신자나 신앙이 연약한 자들을 돕고 섬기는 여러분 되셔서 하나님께 인정받고 복 받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형제의 잘못을 비판보다 교훈으로 삼아야합니다.(12-14절)
본문 12-14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하셨더라." 아멘.
본 절 말씀은 엘리가문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예고인데, 이 예고는 이미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를 찾아가서 2:27-36절을 말씀을 통해서 자세하게 말씀하신 것이라 사무엘에게 딱히 별 새로울 것이 없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사무엘을 네 번씩 부르시며 친히 찾아오셔서 사무엘에게 다시 말씀하셨는데, 왜 그러셨을까요? 사실 사무엘과 이 사건은 아무 상관도 없고, 또 하나님의 사자가 당사자인 엘리를 찾아가 이미 알리셨기 때문에 사무엘이 다시 들을 이유도 없는데 왜 굳이 사무엘에게 했느냐는 겁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그건 바로 사무엘을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무슨 소리냐면 하나님은 엘리가문의 범죄로 그들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똑똑히 보게 하여 나중에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사무엘에게 타산지석으로 삼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장차 엘리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을 이끌어갈 때 엘리와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말라는 경고를 한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에이 목사님 그 위대한 사무엘이 설마 엘리의 두 아들처럼 망나니짓을 하겠습니까?’할지 모르지만 그렇게까지는 아니어도 변질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믿습니까? 저는 저를 못 믿습니다.
또 우리속담에‘욕하면서 배운다.’는 말이 있는데, 다른 사람의 잘못된 행동을 보면 비분강개(悲憤慷慨)하지만 그렇다고 나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까요?
차를 운전할 때 다른 차의 비신사적 운전을 보면 막 욕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거의 100% 똑같이 운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사무엘도 엘리 밑에서 그 가문의 그릇된 행실을 보면서 나는 저러지 말아야겠다고 했을 테지만 그러나 천하의 사무엘도 연약한 인간인지라 엘리가문의 잘못을 되풀이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엘리가문의 잘못과 그 결과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경계하도록 하기 위해 사무엘에게 경고로 엘리가문의 앞날을 미리 알려주신 겁니다. 너는 그러지 말라는 시그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볼 때 그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그와 같은 죄를 범하지 않도록 경계해야합니다.
여러분!!! 거룩한 성경에 왜 인간의 범죄를 그렇게도 많이 기록했을까요? 그것은 오늘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엘리가문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알려주신 것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즉 우리로 하여금 그런 죄와 징계를 보면서 타산지석으로 삼아 동일한 죄를 짓지 말라는 겁니다.‘누구도 그랬는데 뭐 잘만 살더라.’이러면서 같은 죄를 짓지 마시라는 것입니다.
사실 교회 안에 목사님, 장로님이 저래도 되나? 하면서도 정작 자신도 그런 일을 당하면‘에이 목사님도 장로님도 그랬는데 하면서 같은 죄를 짓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이런 풍토가 교회를 타락시키고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주범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과거 이스라엘백성들이 그릇 행하여 멸망을 자초한일들을 소개하면서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고전10:11)
또 예수님도 바리새인들의 잘못을 지적할 때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마23:3)
여러분!!! 목회자라해서, 중직자라해서 항상 바르게 사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신실한 성도라도 잘못을 하고 허물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잘못을 따라 배우거나, 자기의 잘못을 그것에 빗대어 합리화시켜서도 안 됩니다.
가능하면 그 허물은 감춰주고, 그 잘못된 것에서 교훈을 삼아 같은 죄를 짓지 않도록 노력하시면 됩니다. 그게 건강한 신앙입니다. 그런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셋째로, 어려운 일을 만나면 신앙인답게 담대해야합니다.(12-14절)
본문 12-14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하셨더라." 아멘.
여러분!!! 이미 말씀드린 대로 엘리가문의 처참한 몰락은 이스라엘사람들에게 놀랍고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놀랄 사람은 사무엘일 겁니다. 왜냐면 엘리가문의 몰락으로 이스라엘의 사사와 선지자와 사실상의 제사장 직분을 물려받을 사람은 사무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얼리가문의 비극을 알려준 것은 너는 그러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라고 말씀 드렸는데, 이것 외에도 그가 이스라엘을 이끌어갈 지도자가 되었을 때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하게 하라는 의미에서 알려주신 것입니다. 왜냐면 지도자가 직무를 감당할 때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마음을 감하게 하고 담대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종을 선택할 때마다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다. 그러니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하게 하라는 말씀을 항상 하셨습니다. 그만큼 세상을 살아갈 때나 주의 일을 할 때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다는 것이고, 그럴 때 위축되지 않고 낙심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강하고 담대한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실제 우리도 힘들고 실패하고 낙심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럴 때마다 정말 필요한 것은 좌절하지 않는 용기와 다시 시작하겠다는 자신감 담대함일 겁니다.
사도바울도 복음을 전할 때 반대하는 유대인과 토착민들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과 아픔을 겪었습니까? 그런데 그걸 헤져나가는 주된 요인이 바로 주를 힘입어 더욱 담대히 말하는 것이었다고 사도행전 14:2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우리 또한 세상을 살아갈 때 또 신앙생활을 할 때 마음이 무너져 내리거나 큰 충격을 받을 때가 있지만 우리는 어떤 일을 만나도 결코 무너지거나 포기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의 가는 길을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재앙이 올 때 의인과 악인의 차이점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악인에게 재앙이 오면 꺼꾸러지지만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난다고 하셨습니다.(잠24:16)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난관 앞에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것이 의인이요 믿음의 사람입니다.
모세의 죽음으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를 찾아오신 하나님이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하시니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수1:9) 사41:10절에서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살다보면 실패도 하고, 힘들어서 낙심에 빠져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는데, 우리 곁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내가 하나님을 붙잡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붙잡고 계신다는 것을 아셔야합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예기치 못한 시련이 오고 문제가 발생해도 마음을 강하게 하고, 마음에 확신과 평안을 잃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능력의 오른손으로 나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시련은 있어도 결코 실패는 없습니다.
이걸 기억하고 어떤 경우에도 희망 잃지 말고 담대하게 세상을 이기고 나가는 여러분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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