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 설교 내용 요약
제 목 : 성경적 실천의 현장과 클레로스(262) – 사도들의 실천과 클레로스(241) – 야고보서 강해(3)
야고보서 강해(3) – 야고보서 3장
인간의 말과 행동은 어떤 사고 회로와 마음을 가졌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1-13)
야고보는 수신자들에게 그대들은 선생인 우리가 더욱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고 많이들 선생이 되려 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다. 여기서 선생(디다스칼로스)은 교사이며 양육하는 자이지 지도자가 아니다.
선생이 아닌 자들은 문제가 있어도 자기 문제로 끝난다. 그러나 진리를 가르치는 자는 자기에게서 진리를 전달받는 자들과 함께 수령에 빠질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막중한 일에 준비가 덜 된 사람은 욕심을 내지 말라는 의미이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만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하고 있으며 나머지 사람들은 자기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한 것은 그들이 각자 자신의 변화와 성장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을 인도할 위치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하는 포지션에 가려고 열심히 회개와 간구하고 있는 자들인 것이다. 이런 자들은 회개와 간구에 집중해야 할 사람들이니 교사가 되려고 욕심을 내지 말라는 것이며 그런 욕심을 경계하라는 의미로 한 말이다.
그러면서 야고보는 우리 모두는 많은 일의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 이기 때문이며, 만약 어떤 사람이 말의 잘못이 없다면 그는 온전하여 그 온몸 또한 능히 제어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의인 야고보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심오한 자아 성찰이며 자기 고백이며 주제 파악이다.
사람들의 말과 행동은 판단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 판단은 어떤 사고 회로와 어떤 마음을 가졌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인간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인간의 말과 행동을 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리스도의 말과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야고보는 말 조심해야 한다거나 언행이 일치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인간이 하는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이 하는 말과 행동은 “나 대단하지?”, “내 말 들어” 처럼 다른 사람을 이용하거나 증오하거나 무시하는 말과 행동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떤 사고를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의 혀도 몸에 작은 부분이지만 작은 불씨 하나가 큰 숲을 송두리째 채워 태워버리듯이 혀 또한 마치 불과 같아서 온 세상을 불의한 곳으로 만들며 온몸을 더럽히고 인생의 수뢰바퀴를 불태우고 마침내 지옥불로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남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 이야기라는 것이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혀 문제가 아니라 마음과 사고 회로의 문제이다.
혀는 사람이 능히 길들일 수가 없으며 혀는 다루기 힘든 사악한 것이요 치명적인 도구로 가득 차 있는데, 사람의 마음과 사고 회로가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혀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사람들을 저주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대들은 지혜의 온유함에서 나오는 말과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는 데까지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변화되어야 하고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의 열매는 경쟁심이나 투쟁심이 아니라 평화 안에 있는 사람이 평화롭게 하는 씨를 뿌려서 하나가 되는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14-18)
그러나 만약 그대들의 마음 속에 날카로운 경쟁심과 투쟁심이 있거든 그대들은 우쭐거리거나 진리를 거슬러 속이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다.
경쟁심과 투쟁심은 인간의 삶의 원동력이다. 인간은 자기를 보호하고 자기를 세워야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밟아야 내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은 다 남이고 나만 주인공이니까 나오는 것들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이용의 대상이거나 증오의 대상일 뿐이다. 야고보는 이런 정상적인 인간의 삶을 문제 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성소 안에 머물러 계셨던 것이다. 그런데 메시아께서 십자가의 길을 여시고 성령께서 택하신 자들을 그리스도와 함께 그 십자가의 길을 통과하게 하셔서 비로소 하나님과 직접 만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우리를 만나셔도 우리를 죽이시지 않게 우리가 변화되는 길이 열렸다는 것이다.)
이런 지혜는 세상 사람들의 지혜이며 땅에 속한 것으로서 천성적이고 악마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세상적인 사고는 자랑하고 우쭐대는 것인데 이런 모습이 정상이라고 스스로 속지 말라는 것이다.
경쟁심과 투쟁심은 모든 문제를 일으킨다. 나만 주인공이기 때문에 나오는 것으로 그 결과는 소요와 모든 더러운 일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진보 신학자들은 이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이고 온 인류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설정하고 있다.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았고 야고보서 3장 9절에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심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느냐? 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야고보는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았으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고 호불호 판단을 하게 되어서 서로 타자가 된 자들이 되어버렸다.(타락) 그래서 에덴 동산에서 추방되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회개와 간구의 기회가 열려 있는 것이며, 우리는 어떤 사람이 선택을 받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기 원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는 의미에서 야고보가 한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지혜, 그리스도의 사고는 순결하고 평화로운 관계를 만드는 지혜이며 너그럽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한 것이고, 모호함이나 거짓이 없다는 것이다. 선명하게 하나님의 지혜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확인하라는 것이며, 세상이 주입해 준 가치관에 스스로 속지 말라는 것이다. 즉 이 세상 지혜가 작동하느냐 하나님의 지혜가 작동하느냐의 차이인 것이다.
그러면서 의의 열매는 평화 안에 있는 사람이 평화롭게 하는 씨를 뿌려서 의로운 관계, 즉 하나가 되는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야고보는 말씀하고 있다.
즉 야고보는 다른 사람을 남으로 인식하느냐, 인간의 측은지심에서 나온 행동이 아닌 우리와 하나 되는 것을 고려해서 나온 행동이냐를 면도칼처럼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그대의 사고와 마음이 옛 마음이냐 새 마음이냐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2.공지사항
다음 주 기도는 이소영 자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