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나 중•고등학교 시절 우리는 시험을 보고 나면 저마다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 없다. "며칠 동안 밤새우고 공부했는데도 또 시험을 잡쳤어. 나는 공부할 머리가 못 되는가 봐." "우리 반 반장과 부반장은 머리가 엄청 좋은가 봐. 저 아이들은 어제 늦게까지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했잖아? 그런데도 오늘 다 일찍 다 쓰고 미리 나가는 것을 보면 특별히 머리 좋은 애들은 따로 있는 곤이 분명해." 이런 이야기들은 흔히 있는 것이다. 요새 광고를 보면 어떤 생선을 먹으면 그 생선 안에 머리를 좋게 하는 성분이 있으니, 그것을 많이 먹으라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심호흡하며 눈을 감고 몇 분간 명상에 잠기면 머리가 좋아진다고 한다. 어떤 때는 영어나 국어를 잘하는 머리가 따로 있고, 또 수학이나 과학을 잘하는 머리가 따로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국어나 영어를 잘하는 학생들 가운데 과학이나 수학은 잘하지만, 영어나 국어를 잘 못하는 학생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도대체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분명히 습관과 훈련 때문에 생긴 결과이다. 말하자면 공부에서 편식하는 습관이 몸에 배었기 때문에 그러한 결과가 나타난다.
음식 먹는 습관을 보면 편식의 원인을 잘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김치를 전혀 먹지 못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 돼지고기나 닭고기를 아예 보지도 않으려고 한다. 그런 것을 먹고 체한 경험이 무의식 안에 남아 있거나 또 두드러기 난 경험이 잠재적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그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경험이 잠재적으로 남아 있으므로 그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음식을 골라 먹는 편식이 건강에 좋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공부에서 편식 역시 좋은 학습효과를 가져다주지 못한다. "바보와 천재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이다"라는 말이 있다. 근대까지만 해도 괴테나 쇼펜하우어 같은 사람들이 "천재론"을 주장하였다, 또 어떤 사람들은 천재와 영웅이 역사를 꾸민, 기둥이고 일반인은 그 장식품에 불과하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서 "천재론"은 더 이상 지지받지 못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대부분 사회적 환경과 개인의 의지 때문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컨대 모차르트가 우리나라의 전라도 어느 시골에서 태어났더라면 과연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가 될 수 있었겠는가를 생각해 보자. 또 괴테가 아프리카의 우간다 어느 마을에서 태어났더라면 '문호' 괴테가 되었겠는가를 생각해 보자.
선천적으로 뇌에 이상이 있거나, 외적 사고(교통사고 등) 로 인해서 뇌세포가 손상되어 치료되지 않았거나 만성으로 물이나 알코올중독에 걸려 뇌세포 자체만 놓고 볼 때 누구의 머리가 좋다고 단정하는 것은 편견에 불과하다. 백인들은 흔히 지구상의 여러 인종 가운데서 백인의 아이큐(I.Q:지능지수 또는 지능의 성질)가 제일 높고 황인종의 아이큐는 그다음이며 흑인의 아이큐가 가장 낮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지금 각 방면에서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백인이며 인류의 문명이나 문화를 앞장서서 이끌어 온 것이 백인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생긴 생각이다. 그러나 과연 백인의 아이큐가 황인종이나 흑인의 아이큐보다 원래부터 언제나 높은 것은 사실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분명히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의 어느 심리학자는 이러한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 실제로 실험에 착수하였다. 그는 우선 미국의 대도시에서 같이 교육받은 백인과 흑인의 아이큐를 실험하였다. 그 결과 백인의 아이큐가 실험하였다. 그러나 다음으로 그는 빈민가에서 자란 백인 아이의 아이큐와 여유가 있는 가문에서 자라고 정상으로 교육받은 흑인 아이의 아이큐를 실험하였는데 그 결과, 흑인 아이의 아이큐가 백인 아이의 아이큐보다 월등히 높았다. 미국의 이 심리학자는 백인이나 흑인의 아이큐가, 태어날 때부터 인종의 피부 색깔에 따라서 결정될 수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실험을 계속하였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보통 수준 교육을 받은 백인의 아이큐와 미국의 도시에서 보통 수준의 교육을 받은 흑인의 아이큐를 조사하고 비교하였다. 이때도 흑인의 아이큐가 높았다. 이 심리학자의 관찰과 실험이 말하여 주는 것은 무엇인가? 공부하는 데는 어떤 무엇보다도 습관과 의지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이 심리학자의 실험에서 입증된 셈이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라는 우리 속담이 있다. 어려서부터 얼마나 제 일에 몰두하고 집중할 수 있는 습관을 지니는가가 중요하다. 더 나아가서, 가치 있는 일을 스스로 과감히 결단하고 끈질기게 밀고 나가는 의지 역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습관과 의지와 환경이 천재나 영웅을 만드는 것이고 천재나 영웅이 태어날 때부터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한 술에 배부르랴?" "시작이 반이다." 중지하면 가지 않는 것보다 못하다"와 같은 우리 속담들은 의지가 얼마나 중요하며 또한 의지 때문에 길들여지는 습관이 얼마나 의미심장한지 잘 말하여 준다. "천재는 노력이 99퍼센트이다고 재주는 1퍼센트이다"라는 말도 있다. 우리는 바보 온달의 야기를 다 알고 있다. 평강공주가 온갖 인내력을 발휘하여 바보 온달을 가르치고 훈련시킨 결과, 온달은 더 이상 바보가 아니고 늠름하고 씩씩한 장군이 될 수 있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좌절과 실패가 우리 앞에 가로놓여 있다. 좌절과 실패를 극복하고 그것들을 잘 소화 시키면 어느덧 성공의 문턱에 서 있는 자신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머리는 다 똑같다.
우리는 공부를 더 이상 영·수·국의 좁은 테두리 안에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단지 입시 공부일 뿐이다. 학습의 영역은 무한하다. 우리는 우리들의 삶을, 그리고 세계를 공부하며 일생을 살아간다. 입시 공부란 넓은 의미의 공부 가운데 지극히 작은 한 부분일 뿐이다. 우리는 우선 '홀로서기'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또 미움과 원한을 극복하고 서로 사랑하고 도와주기를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불의를 추방하고 불평등을 몰아내며 정의와 평등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나와 너 그리고 인류를 사랑하며 궁극적으로는 우주의 원리를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입시 공부가 공부의 모든 것이 아니다. 삶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배움이며 공부이다. 우리가 정상이면 우리들의 머리는 다 똑같다. 누구보다 더 진지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고유한 삶을 이끌어 나가는 가가 가장 중요한 삶의 자세이다. 그러한 자세야말로 진지하고 성실하게 삶을 배우는 사람의 자세이다. 머리가 나쁘다고 한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러한 사람 머리를 탓하기 이전에 자신의 습관이 얼마나 약한지 그리고 자신의 습관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지 철저히 반성할 필요가 있다. 그가 냉철하게 스스로 반성할 때 비로 그는 "머리는 다 똑같다"라는 진실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