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길목, 2016년 충청남도 아산에는 즐거움이 몰려온다.
'전국 체전'이 열린 충남 아산 '이순신 종합 운동장.
「제97회 전국 체육대회」가 나를 낳아 준 고향(충남 아산시 선장면 가산
리, 일명:단쟁이마을)‘이순신 종합 운동장’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지난 구랍(2015.12.29) 환갑을 맞아 53년 만에 내 탯줄을 묻은 고향 땅을
다녀 온 일이 있다.
그래,
그 고향길 이야기를〈내 고향 단쟁이〉란 제목으로 원고지 15매에 연필로
꾹꾹 눌러 써서, 부천시 바둑협회, 인천 미추홀 바둑카페, 서울 아마 바둑
사랑회 바둑카페 등에 올린 바 있는데, 아산(충남)의 유명한 맹주상 詩人
이 추천하여 순천향 대학교 ‘아산학 연구소’ 에서 발행하는 교양지〈아산
시대〉에 싣게 되었다.
그간,
시인과는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와 쪽지로만 안부를 몇 번 주고받다
가 때 마침, ‘제97회 전국체육대회’가 고향 땅 충남 아산에서 열리는 것과
때를 같이 하여 만나기로 한 것이다.
‘전국 체육대회’는 충남 아산 이순신 종합 운동장이 주경기장으로, 15개
시. 군 일원에서 분산 개최되고 있는데, ‘바둑 종목’ 은 ‘예산 생활체육관’
에서 10월8일(토) 1시30분에 시작 되어 다음 날(10월9일)에 마치는 것으로
일정이 짜여졌다.
하여,
첫째 날 개막식 바둑경기를 참관하고 예산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온양온천
역으로 옮겨가게 되었던 것이다.
오후 6시가 조금 넘었을까.
장항선 무궁화호에서 내려 설레는 마음으로 온양온천역 개찰구를 빠져
나오는데 반가운 맹주상 詩人의 얼굴이 보인다.
‘내 고향 단쟁이’ 수필을,〈아산 시대〉에 추천해 준 그 시인이다.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역 뒤편 계단으로 내려갔을 때, 거기 타고 온 자전
거에는〈아산시대〉십 몇 권의 교양지가 걸려 있었다.
6월에 발간 된 ‘아산 시대’를 아산학 연구소에서 우편 택배로 보내 주기
는 했었는데, 친인척과 지인에게 나눠 주다보니 부족하다 했더니 시인이
나를 위해 더 구해 나온 것이었다.
그 고마움이 하늘에 닿을까, 그 감사함이 땅에 스며들까.
여덟 살 때 까지 살았던 나의 아산 땅에, 그리운 고향만큼 사무치는 詩人
한분이 더 생긴 셈이다.
배려심과 갸륵한 마음에 감화되어 옆을 보니〈강촌⟩이란 그의 詩가 눈에
띈다.
강촌
여울 맹주상
버들개지 피어난 골짜기마다
아기 가재 눈을 뜨고
종달새는 남풍을 밀고
몸부림치며 떨궈논 애절한 눈
녹아들면
강촌은 또 한번 깨어나리
조용히 깨어나리
보리새순 다칠까봐
조용히
조용히
같은 고향 맹주상 시인과 함께.
시비 앞에서 그 시인과 기념사진 한 장 남겼다.
시인이 자전거에 실어 갖고 온 그 교양지가 무거우니 우선 오늘 밤 하루
신세질 숙박소로 가서 맡겨두고 나오는데, 온양온천역 광장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전국 체육대회가 아산에서 열리는데 기념하여 문화체전이 한참 진행 중
이었는데, 유명 댄스 가수가 열광적으로 무대를 휘젓는 모양새에 관중
들은 이미 분위기가 많이 달아올라 있었다.
‘함께 해U
페스티벌’ 이라는 캐치프레이즈는 길거리마다 나부끼고.
저 속의 영어 유(U)자는 필시, 충청도 사투리 ‘함께 해유’를 패러디 한
것일진데 아이디어가 참신하다.
시인이 나를 데려간 횟집에는 벌써 사모님이 자리해 기다리고 있었다.
모처럼 몇 십 년 지기 친구를 만난 양,62년 8살 때 부모님 손에 이끌려
부랴부랴 고향을 떠난 이야기에서부터 입지전적으로 험난했던 세상살이
에 버텨 오게 된 작년에서야 겨우, 53년 만에 고향 땅을 밟게 된 연유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며 소주잔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제서야 마음이 후련해지는 게, 높낮이를 가리지 않고 고향 사람이
라는 하나만으로 포근히 감싸주는 시인 부부와 함께여서 일게다.
회와 매운탕으로 후한 대접을 받고 시인부부와 헤여진 후, 아까부터
여태까지 끝날 줄 모르는 온양온천역 문화축제를 한참이나 구경한 다음,
그 뒷길 여인숙 방으로 들어왔다.
전국체전과 문화체전이 동시에 열리는 바람에 모텔과 여관, 등은 벌써
부터 예약으로 동이 나버려, 하룻밤 신세쯤이야 어떨까 싶어 그 허름한
여인숙 방을 찾아든 것이다.
여름에 썼던 선풍기 한 대는 아직 치우지도 않아 더 비좁아 보이고,
칙칙 거리며 나오지도 않는 흑백 텔레비전은 닫히지도 않는 문짝 위에
뭔 일로 얹어 있으며, 꾀죄죄한 침대와 이불, 그 위에 달력과 커튼,
왼쪽 벽 위에는 8개 정도의 대못이 적나라하게 박힌 꼴이 거기다 옷과
모자를 걸어 놓으라.
샤워욕실은 있을 리 만무고, 바깥 구석에 화장실 하나와 소변기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그 옆에, 큰 대야에 자투리 비누가 몇 개 있는 걸로
보아 간단하게 눈곱이나 떼고 떠나라는 식이 아닌지.
영락없이 70~80년대 모습을 닮은 여인숙은, 품위 유지에 민감하거나
체면 가리는 사람들에겐 겸연쩍어 묵어가기 어렵겠지만, 고향 땅에서의
그 하룻밤은 아무래도 좋았다.
온기도 없는 칙칙한 침대에 누워 있을지라도, 나 태어난 곳에서 ‘전국
체전’이 열리게 된 것 만도 고마운 일 아니냐.
더군다나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바둑’이 그렇게도 그리던 고향에서
원년으로 기록되게 된 것은 너무 감사한 일 아닌가.
그리고,
오늘 낮에 전국체전 ‘바둑 경기장’에서 또 하나의 내 고향 사람을
만났다. 충청남도 바둑대표를 이끌고 온 김수기 감독인데, 충남 아산시
영인면이 고향이라 했다.
경북 바둑대표 박성균 감독, 필자, 충남 바둑대표 김수기 감독.
서울에서 바둑학원을 십 수 년 운영한 그는, 김신영 여류 프로의 아버지
이기도 하다.
자식 키워 보려고 전국 어딘들 안간데 없던 시절에 바둑현장에서 수없이
만났던 그가, 이제는 낳아준 아산으로 돌아와 봉사하고 있으니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
시간은 새벽 1시.
고향에서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짐을 꾸려 여인숙 방을 빠져 나와 어젯밤 광란의 도가
니였던 그 온양온천역 광장을 가로 질러 건너 편 골목식당으로 갔다.
오전 일찍 문을 여는 식당은 여기밖에 없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하필이면
내가 좋아하는 우렁 된장찌개가 나오기 때문이다.
크지 않은 식당인데 ‘전국체전’에 나갈 선수. 임원 식사인 듯,이미 반찬으로
차려져 있었다.
80쯤 되어 보이는 할머니 두 분이 웬일로 이른 아침에 식사하는가 싶은 그
옆 테이블이 하나 비어 있어, 그리로 자리 잡았다.
“일찍 어디 가유”
그건 내가 물어보고 싶은 말이었다.
“신정호 돌아보고 전국체전이 열리는 이순신 종합운동장 가려고 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연꽃은 다 졌지 유, 아마”
그건 맞는 말이었다. 연꽃은 뙤약볕 여름에 피어오르니까.
이순신 종합운동장 스탠드에 도착했을 때, 무슨 종목인가는 모르지만
본부석에서 시상식이 열리고 있었다.
이순신!
知己知彼, 百戰不殆 지기지피, 백전불태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만,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1594.9.3 갑오년)’
고 했던가.
구국의 선봉에 선 전략전술가라고 교과서에서 배운 최고의 장군이 오늘
도 서울 한복판 광화문 대로변에서 늠름하게 서있다.
그 위대한 장군이 청년시절 외가인 아산(현충사)에서 성장한 세계적인
명장이고 보면, 나 아산 사람으로 자부심을 아주 조금 가져도 되지는
않는지.
남자 400m 예선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자 400m 예선도 이어졌다.
저 곡선을 달려 돌아 나오는 선수 머리 위로 성화가 드높은 가을
하늘을 수놓고 있다.
그때,
핸드폰 문자가 반갑게 날아들었다.
어제 바둑경기장에서 일요신문 유경춘 기자가 큰 딸 (바둑 광주 페어 대
표), 큰 사위 (바둑 전남 주무)와 함께 좋은 카메라로 찍어준 사진이었다.
현장 취재라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도 불구하고, 거기다 사소한
기념사진까지 챙겨 보내주시니 그 소중함 오래 기억하리니.
큰 사위 (전남 바둑대표 주무), 나, 큰 딸(광주 페어바둑 대표)
아! 내 고향 아산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