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6. 11;00
하늘이 시퍼렇게 멍들었다.
짙은 푸른색으로 찬란히 빛나는 하늘을 보며
현기증이 났다.
저게 뭐지?
하늘에서 낙하산을 탄 특전사 용사들이 내려온다.
어느 정도 높이에서 점프했을까,
떨릴까, 긴장될까, 무서울까, 아니면 희열을 느낄까.
목덜미를 파고드는 바람이 제법 차다.
용사들의 낙하산이 바람의 힘에 의해 빙글빙글
돌기도 하는데 무사히 랜딩(landing)을 할까.
시야에서 낙하산이 사라졌다.
여기서 볼 수는 없지만 미사리 랜딩 목표지에 안전
하게 착지하였겠지.
하늘빛 참 맑고 곱다.
옛 선조들은 저런 하늘을 '쪽빛 하늘'이라 했다.
쪽빛은 남색(藍色)으로 짙은 푸른빛을 말한다.
< 풍수원 성당의 쪽빛 하늘 >
무지개의 일곱 가지 색깔을 표현할 때
'보남파초노주빨'이라 배웠고, 이렇듯 남색은
당당하게 무지개에 포함된 색깔이기도 하다.
맑은 하늘이나 깊은 바닷물색을 '파랗다'고 한다.
또한 맑은 하늘빛이나 풀빛과 같은 색을 '푸르다'
라고 표현했다.
여기에다 쪽빛은 짙은 푸른빛 즉 남색(藍色)을
표현하니 비슷한 색 가지고도 이렇게 구분을
하는 우리말의 풍부한 어감에 새삼 감탄을 한다.
그렇다면 쪽빛은 어떻게 만들까,
작년 봄 사무실 베란다에 있는 직사각형 플라스틱
화분에다가 토마토, 고추, 가지, 상추, 들깨를
심었다.
가을에 뿌리까지 다 뽑아버리고 금년엔 아무것도
심지 않았는데, 어느 날 바람에 날아온 씨앗이
발아하여 '쪽'이 자라기 시작했고 바로 옆에는
안토시아닌이 풍부한 '까마중'도 자란다.
< 까마중 >
잡초로 불리는 푸른 식물이 축 쳐져있다가도
물만 주면 금세 생동감 넘친다.
삭막한 회색 공간에서 주인행세를 하며 왕성한
번식력을 자랑하는 이 녀석들의 모습은 정제된
화초보다 더 보기 좋다는 생각이 든다.
8층에는 빗물 아니면 수분 섭취가 힘들기에 지난
봄부터 이 녀석들에게 직접 물을 주며 지금까지
기르며 느끼는 감정이다.
우리나라에서 개여뀌와 비슷한 '쪽'과 까마중에게
물을 주며 기르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을까.
요즘엔 화학염료가 워낙 발달해 천연염료를
쓰지 않지만 예전엔 이 '쪽'이야말로 짙은 푸른색
즉 남색(藍色)을 만드는 대표적인 재료였다.
어느 시인이 '자주 봐야 사랑스럽고 자세히
보면 예쁘다'라는 표현을 했는데
요즘 나는 쪽과 사랑에 빠져 매일 물을 주는 거다.
분홍색꽃이 개여뀌보다 빼곡하게 달린 '쪽' 덕분에
'푸른색 염료는 쪽에서 얻었지만 쪽보다 푸르다'는
뜻의 <청출어람(靑出於籃) 청어람(靑於籃)>이라는
고사성어도 생겼다.
즉 스승에게 배운 제자의 학문이나 실력이 스승을
능가함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다.
쪽은 짙은 푸른색, 치자는 노란색,
홍화(잇꽃)는 붉은색 물을 들이는 대표적인
천연염료인데, 우리 선조들은 자연의 식물과
곤충에서 지혜롭게 염료를 얻었다.
이밖에
빨간색을 내는 식물로는 꼭두서니, 산수유 열매,
생강나무, 자작나무, 봉선화, 장미, 양귀비꽃,
모란 등이 있고,
보라색- 지치, 동백꽃, 포도, 튤립, 제비꽃, 라일락,
파란색- 닭의장풀, 붓꽃, 수레국화, 블루베리,
초록색- 단풍나무, 옻나무, 쐐기풀, 쑥, 졸참나무,
노란색- 민들레, 울금, 치자, 황토, 담뱃잎,
갈색---- 석류, 계피, 감, 도토리, 호두,
검은색- 옻나무, 떡갈나무, 고로쇠나무, 밤에서
얻었으며,
회색은 물푸레나무에서 천연염료를 얻었다.
옛날 육군 훈련소에서 지급받은 전투복은 여러
가지 유기 화합물과 유황을 혼합한 유화염료
(硫化染料)를 써 한 번만 빨아도 누렇게 변했다.
나중에 일계장 피복으로 지급받은 전투복은
밧드염료를 써서 물이 빠지지 않아 외출이나
휴가 때 입었을 정도로 아꼈던 기억이 난다.
쪽이나 까마중은 서리가 내려 풀이 죽을 때까지는
나에게 소중한 푸른 생명이기에 오늘도 물조리개로
물을 듬뿍 뿌려주고 사무실을 나섰다.
2024. 11. 6.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