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逆) 남파랑길(일곱 번째 - 1)
(여수시∼광양시, 2023년 9월 23일-24일)
瓦也 정유순
오늘의 출발지는 여수시 소호동 소호동동다리 입구다. 여수시(麗水市)는 원래 순천군의 일개 면에 불과했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의 수탈기지로 전라선 종착역이 되고, 시설이 구축되면서 도시화의 출발을 하게 되면서, 1931년에 읍 승격, 1949년에 시로 승격하여 현재에 이른다. 한려수도(閑麗水道)는 한산도에서 여수에 이르는 남해안 연안수로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여수지역의 아름다운 바다풍경을 빼놓고서는 성립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여수는 충무공의 유적지 등과 연계되어 <한려수도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여수시 지도>
소호동은 여수시의 법정동으로 일제강점기 때 소제리(蘇堤里)와 항호리(項湖里)가 통합되면서 소호리(蘇湖里)가 되었다. 여수시 서남쪽 가막만 해안가에 위치하며, 소지개·목섬·소제·항호(項湖)·송소(松所) 등의 자연마을과 고개인 소제고개, 무인도인 가덕도(加德島)가 있다. 항호마을은 1700년 전주이씨 이형인(李亨寅)이, 소제마을은 1720년 김해김씨 김정중(金挺重)이, 송소마을은 1850년 영월엄씨 엄신(嚴紳)이 입향조(入鄕祖)다.
<소호동 전경>
그리고 1988년 여수국가산업단지 건설에 따른 택지조성사업으로 대기업의 사택단지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변모했다. <2012여수세계박람회>가 개최됨에 따라 대규모 리조트와 호텔 등 숙박시설이 들어섰다. 또 여수지역의 관광기반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2016년 <소호동동다리>를 만들어 아름다운 여수밤바다를 선보이고 있다. 2022년 8월에는 도심권 교통해소를 위해 웅천~소호를 연결하는 선소대교를 개통하였다.
<소호동 앞 바다>
소호동동(蘇湖動動)다리는 소호동에 있는 산책로로, 고려 공민왕 원년에 소호동동다리 인근지역인 장생포에 왜구가 침입하자 장군 유탁(柳濯)이 왜구를 물리치려고 출전하니 왜구들이 놀라서 퇴각하였다. 이때 군사들이 기뻐하며 부른 노래가 ‘동동’이었다. 이 내용은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등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다리는 2016년 7월에 준공하였는데, 데크길로 길이 742m, 폭은 3.5m로 어린이놀이터 1개소와 각종 편의시설을 갖추었다.
<소호동동다리>
소호동동다리를 지나면 여수시 시전동이다. 시전동(枾田洞)은 시목(枾木)·기전(基前)·선소(船所)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선소마을은 고려 때부터 조선소가 있었으며, 특히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만들었던 <여천 선소유적(사적 제392호)>이 있다. 1396년(태조 5)부터 순천부 여수현에, 1897년 여수군 쌍봉면에, 1949년과 1986년에는 여천군(시)에 소속되었다가 1998년 4월 여수·여천시(군)이 통합될 때 여수시 시전동이 되었다. 시전동이라 감나무에 대한 기록이 나올 줄 알았는데 보이지 않는다.
<여수시 시전동>
여수시 소호동과 웅천동을 연결한 선소대교(船所大橋)는 이순신 장군의 장검과 순항하는 요트의 형상을 모티프로 하였다. 총 길이 1,154m의 왕복 4차선 도로이며, 비대칭 곡선 주탑 사장교는 220m, 진입 도로는 604m에 이른다. 또 다리 양쪽 측면과 65m의 주탑, 26개 케이블에 경관 조명을 설치하여 ‘물과 빛의 낭만 밤바다’를 주제로 파노라마식으로 연출한다고 한다. 총 사업비는 710억 원이 소요되었다.
<선소대교>
웅천동(熊川洞)은 ‘곰칭이’ 또는 ‘곰쳉이’라고 하였으며, 고음천(古音川)이라는 한자로 표기하기도 했다. 이는 한자 표기로 하면서 ‘곰’은 웅(雄)자로, ‘쳉이’는 소리 나는 대로 천(川)으로 표기하였다.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이 어머니를 모신 집이 웅천동 송현마을에 있으며, 당시에 공을 세운 다섯 충신을 모신 오충사가 있다. 신시가지로 지정되어 택지지구 조성을 진행하였으며 2022년 기준 여수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동이다.
<웅천동 해변>
망마산(望馬山) 아래로는 GS칼텍스재단이 여수 시민과 지역 사회 발전을 위하여 조성한 여수문화예술공원인 ‘예울마당’이 있다. ‘예울마루’란 문화 예술의 너울[파도]이 가득 넘치고 전통 가옥의 마루처럼 편안하게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예울마루는 약 70만㎡ 규모의 대지에 조성된 지상 7층 건물의 복합 아트센터다. 총 3개의 전시 공간으로 나누어져 서로 다른 전시회를 동시에 개최할 수 있다고 한다.
<예울마루>
예술의 섬 장도는 섬이 길게 놓여 있다 하여 진섬[장도]이라고도 부르는데, 장도에는 입주 예술가들의 편의를 돕는 창작스튜디오와 장도전시관, 다단식 정원인 다도해정원,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야외 공간인 잔디광장, 전망대 등으로 구성되었다. 예술의 섬, 장도가 개관하면서 GS칼텍스 예울마루 조성사업을 완료하였다. 그리고 2021년 5월, 망마산(望馬山)전망대 공사를 마무리하면서 여수 지역 사회공헌 예울마루 프로젝트 사업을 완료하였다.
<예술술의 섬 장도>
장도는 330m 길이의 진섬다리를 통해 걸어 들어갈 수 있다. 이 섬은 1930년 초 정채민 씨 일가가 입도하면서 장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이 작은 섬에서 농사짓고 갯것 잡아 자식을 키우며 80여년의 세월이 지났다. 이제 예술의 섬으로 새 단장을 해서 그런지 들어가는 입구부터 곳곳에 예술 작품이 많다. 한 바퀴 돌고 나오니 ‘지붕 없는 미술관’을 산책한 기분이다. 장도를 나온 발걸음은 바쁘게 향일암으로 이동한다.
<최병수 작가의 "열솟대">
버스주차장에 도착하여 약 1.7㎞를 걸으면 향일암 입구다. 향일암(向日庵)은 여수시 돌산읍 율림리 금오산에 있는 사찰로 전라남도 문화재자료(1984년 2월)로 지정되었다. 자라목에 해당하는 입구에서부터 향일암까지는 가파른 오르막과 계단으로 이어진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본사 화엄사의 말사(末寺)로 금오산(金鰲山)이 바다와 맞닿은 가파른 언덕에 있다.
<향일암 안내도>
올라가는 가파른 언덕 길옆으로는 갓김치를 비롯한 먹을거리를 파는 가계들이 줄을 잇는다. 돌산갓김치는 돌산도에서 나는 갓으로 담근 김치로 톡 쏘는 매운맛과 섬유질이 적어 부드러우며 독특한 향을 가지고 있어서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돌산 갓과 파에 고춧가루, 마늘, 생강, 멸치액젓과 생새우를 함께 갈아 만든 양념을 섞어 버무린 김치다. 갓 특유의 맛과 젓갈의 잘 삭은 맛이 입맛을 돋워준다. 가을에 담가 먹는 갓김치를 더 알아준다.
<향일암 입구>
金鰲山向日庵(금오산향일암)이라는 편액이 걸린 일주문을 지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계단 중앙으로 ‘눈 가리고 귀 막고 입 가린’ 동자승이 앉아 있다. 이는 ‘남의 흉허물은 보지도 말고, 나쁜 소리는 듣지도 말며, 남을 헐뜯거나 해가 되는 이야기는 하지도 말라’는 묵언(黙言)의 가르침이다. 옛날에 시집살이를 할 때 친정어머니는 딸에게 장님으로 3년, 귀머거리로 3년, 벙어리로 3년을 살면 나중에 좋아질 것이라고 가르쳤던 말씀이 새삼 떠오른다.
<눈 가리고, 귀 막고, 입 가리고>
더 계단을 더 올라가 등용문을 지나 해탈문격인 좁은 바위틈을 지나면 대웅전이다. 향일암은 전국 4대 관음 기도처 중의 한 곳으로 644년(백제 의자왕 4년)에 신라의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원통암이라 불렀다. 고려 광종 9년(958)에 윤필거사가 금오암으로, 조선 숙종 41년 (1715년)에 인묵대사가 향일암이라 개칭했다. 이 곳은 원통보전, 삼성각, 관음전, 용왕전, 종각, 해수관음상을 복원·신축하였으며, 2009년 12월 화재로 소실된 대웅전(원통보전), 종무소(영구암), 종각을 2012년 5월 복원하였다.
<해탈문 입구>
<향일암 대웅보전>
대웅전 왼쪽 옆으로 다시 좁은 석문을 통과하면 해수관음보살이 있고, 향일암에서 원효가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창건하였다는 관음전이 원통암 자리에 있다. 관음보살은 봉오리 상태의 연꽃 또는 감로병을 들고 있다. 연꽃은 중생이 본래 갖춘 불성(佛性)을 상징하고, 감로병의 감로수는 불사(不死)를 뜻한다. 또, 관음의 머리에 쓴 보관(寶冠)에는 아미타불이 새겨져 있다. 관음(觀音)은 아미타불을 스승으로 삼고 항상 모신다고 하였으므로 이를 조형화한 것이다.
<관음전 입구>
<해수관음보살>
서둘러 향일암을 둘러보고 삼성각 앞으로 내려와 금오봉으로 올라가 본다. 가파른 계단이 쉬운 길은 아니었으나, 짬짬이 숨을 고르며 정상에 올라서니 세상이 내 발아래 있는 것 같다. 산에 오르면서 주변의 바위들을 틈틈이 살펴보니 바위마다 격자형 자라무늬가 그려져 있다. 그래서 이 산의 이름이 자라 오(鰲)자를 써서 금오산(金鰲山)이다. 남쪽으로 뻗은 자라목에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데, 자라머리 정상에는 군부대가 위치하여 민간인들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어 갈등을 빚고 있는 것 같았다.
<금오봉 정상 아래 바위>
<자라문양>
<자라 머리 지형>
https://blog.naver.com/waya555/223233207879
첫댓글 등제감사합니다.
벙어리3년.귀머거리3년. 장님으로3년
어릴때많이듣던 새색시충고이다.
허나지금은많이달라졌다.여인천하인것같다.
...15박장춘...
그럼요.
지금은 어림 없지요.
여자들의 세상이 되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