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4일 월요일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
<네 친구를 부르지 말고,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을 초대하여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2-14 그때에 예수님께서 당신을 초대한 바리사이들의 한 지도자에게 12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13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14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인간의 마음속에 숨겨진 행복과 성공의 비결
옛날에 현자들은 인간들이 지혜를 남용하기 때문에 행복과 성공의 비결을 빼앗아 숨기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디에 숨길 것이냐의 문제를 서로 의논하기 위해 지도자들은 모든 현자들을 소집하였습니다. 회의가 시작되자 한 현자가 말을 시작하였습니다. “인간의 행복과 성공을 땅 속에 매장합시다.” 그러자 지도자들은 반대하며 바다 속에다 감추자는 현자도 있었고, 높은 산꼭대기에 감추자는 현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자의 지도자들은 모두 인간이 꾀가 약아서 잘 찾을 것이라고 반대하고는 아주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러다가 한 현자가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 인간의 마음속에 숨깁시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그곳이면 찾을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도자는 그 의견에 적극적인 찬성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현자들은 인간의 행복과 성공의 비결을 인간의 마음에 감추게 되었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것을 우리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얄팍한 꾀와 자만심으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고 그 속에 숨겨진 하느님을 발견하지 못하고 엉뚱한 데에서 하느님을 찾으며 결국은 높은 자리를 찾고 다른 사람위에 군림하려는 자리만 찾다 보니 가장 가까운 자신의 마음에는 언제나 등한히 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천천히 살펴보면 얼마나 오염되었는지 정말 소름이 끼칠 지경입니다. 특히 겸손을 가장한 교만과, 겸양을 가장한 오만과, 부귀영화를 청빈에 숨기려고 하는 얄팍한 심성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리고는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작은 꾀가 많아져서 혼탁한 세속에 살면서 '수청무대어'(水淸無大魚)라는 말로 자신을 변호하기도 하지요. 이는 <물이 지극히 맑으면 큰 고기가 없다.>라는 뜻으로 <사람이 너무 많이 살피면 사람들이 따르지 않는다.>라는 말입니다.
인간관계에서는 적당히 흐리고 어둑한 구석이 있어야 한다는 공자의 말씀이지요. 그러니까 세상의 부정부패에 적당히 안주하고 살려하고, 그런 속에서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대충 넘어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속은 아주 흐리고 더 깊은 속은 아주 탁하고 음침한 것이 우리들 삶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자는 높아진다.’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진정한 크리스천의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생각하게 합니다.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는 말은 정말로 대인(大人)은 아무런 구애를 받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대하지요. 마치 예수님처럼 그리고 성인처럼, 세상의 모든 명분과 체면은 아무런 소용이 없지요. 그분들은 진실로, 하느님의 뜻과 말씀에 따라서 아주 자유롭게 사셨습니다. 모든 체면과 허례허식과, 자신의 생명까지도 초월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의 삶은 문이 필요 없지만 우리는 지금도 대화의 담벼락을 높이 치고, 마음의 문을 잠그고, 체면과 위선의 빗장을 튼튼히 하고, 격식과 율법의 자물쇠를 굳게 채우고 이에 부족해서 자기 방어와 타인의 방어를 위한 경비를 세우고, 감시의 눈초리를 치켜뜨고 밤을 새우는 개를 키우며 나눌 줄 모릅니다.
요즘 겸손한 자세로 사는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실감합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고 싶은 사람들이 교만할 때 우리는 얼마나 큰 비애를 느끼는지 모른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분수를 잃어버리고 우월감으로 다른 사람들을 내려다 볼 때 우리도 같이 어두워집니다.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가을에서 겨울로 줄달음을 합니다. 하늘이 높고 맑게 보이면 나는 아주 작은 존재로 광활한 하늘을 볼 때마다 미소한 존재라는 것을 느낍니다. 그런데 가을에는 말이 왜 살이 찔까요. 말은 전쟁터에 나가면 모두 비쩍 마르게 됩니다. 그런데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기에 거두어들일 때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적국이지만 가을에 전쟁을 일으키는 바보는 없으니 전쟁 없는 평화 시기에 말은 살이 찔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계절에는 더욱 겸손하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조용히 관조 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자신이 잘한 것은 숨겨두고 못한 것은 차례로 꺼내서 맑은 물에 훌훌 씻어서 다시 넣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교만하고 오만한 마음을 그렇게 씻을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