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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마태복음 13장의 천국에 대한 여러 비유 중 일명 ‘알곡과 가라지 비유’라고 불리는 말씀입니다. 어느 밭을 경작하는 농부가 어느 날 밭에 나가보니 밭 한 가운데 곡식과 더불어 가라지가 자라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음속에 걱정이 생긴 농부는 주인에게 “주인님, 올해 농사는 풍년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걱정도 많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주인이 “뭐가 걱정이냐?”고 묻자 농부는 “결실이 많지만 그 사이에 가라지도 너무 많습니다”고 말하죠. 그러면서 이 가라지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주인에게 묻습니다. 주인은 “그냥 둬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농부는 “아니, 주인님, 그렇게 되면 곡식 수확량이 적어지지 않을까요? 지금 뽑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재차 물어봅니다. 그 때 주인은 동일하게 “가만히 지켜보거라”고 말하면서 “나중에 추수한 후에 알곡과 가라지를 나눠서 처리하면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가라지를 없애려다 자칫 곡식까지 망칠 수 있으니 추수 때 함께 처리하자”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이 말씀은 일종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특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비유의 의도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신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천국에 대해 ‘이미(already) 그러나 아직(yet)’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천국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 세상은 세상 사람들을 미혹하며 공중권세잡은 자로 인간에게 죄가 만연하도록 만드는 사탄마귀가 있기에 아직 완성되지 못하였음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천국의 불완전성과 그 해결책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비유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왜냐면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3장 36절부터 43절을 통해 처음 들려주셨던 비유의 의미를 다 해석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알곡과 가라지 비유’는 완성된 천국이 이 땅에 임하기 전 이 땅 가운데 진행되는 천국 농사, 천국 경작에 대한 비유입니다. 이 땅에서 천국의 농사를 진행하는 곳이 원초적 장소는 어디일까요? 바로 주님께서 이 땅에 세우신 천국 모형인 교회입니다. 오늘 본문을 말씀하시는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교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상황들을 비유하면서 천국을 준비하는 성도들의 모습에 대해 가르쳐 주십니다. 말씀을 통해 저와 여러분이 천국 준비하는 농사의 장소인 교회 안에서 저와 여러분이 자라날 때 우리가 알곡인지, 가라지인지 돌아보며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알곡으로 자라며, 알곡으로 열매맺는 성도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땅에 있는 교회가 무엇일까요? 첫째로 불완전한 천국입니다. 교회는 천국이 만들어져 가는 모습, 즉 아직은 미완성인 천국을 보여줍니다.
마태복음 13장 24~26절입니다.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이 세상 속, 모든 교회는 천국의 불완전성을 보여준다는 사실입니다. 천국이기는 하지만 완전하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불완전의 이유 중 하나가 교회 속에 있는 가라지 때문입니다. 이건 교회뿐 아니라 가정, 교회, 사회 모두 이 가라지로 인해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가라지’란 물체는 헬라어로 ‘지자니온’이라쓰는 것인데 한국어로는 ‘독보리’라는 학명을 가진 식물입니다. 밀과 색깔과 모양이 너무 비슷해서 구별하기가 힘이 듭니다. 이 식물은 열매가 생기지 않고 줄기와 잎만 가진 식물입니다. 밀밭에 이 ‘지자니온’이 나오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구별할 수 없습니다. 이 ‘지자니온’은 엄청난 양의 영향분을 끌어당겨 자라기 때문에 밀과 보리가 가져가야 할 영양분까지 다 빼앗아 갑니다. 밀밭이나 보리밭에 이런 가라지가 자라면 밀과 보리는 알갱이를 많이 생성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가라지는 농부들에게 골칫거리입니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뽑을 수 없습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밀이나 보리를 잘못 뽑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농부들은 가라지가 어느 정도 자라서 가라지인 것이 분명해질 때 뽑아내기도 하고 그렇게 많지 않으면 차라리 추수 때까지 그대로 두기도 합니다. 이 땅의 교회 혹은 성도의 모임 속에도 성장을 막는 가라지가 섞여 있을 수 있습니다. 이 땅의 교회와 성도들은 완벽한 상태가 아니기에 이 속에 좋지 못한 영향력을 끼치는 존재가 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자녀들 가운데 불신자와 악한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영향력을 끼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들은 본래 하나님이 뿌리시지 않은 씨앗이며 하나님의 밭에 합당하지 않은 종자입니다. 우리 개인의 신앙가치관과 우리 공동체의 신앙생활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의 교회속의 가치관에도 순수하지 않는 악한 것, 진실되지 못한 거짓된 것이 들어올 때 우리에게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밭에서 자라는 곡식들 사이에 가라지가 포함되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고린도후서 6장 14~16절입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해 교회속에 들어온 온갖 혼합사상을 책망했지만 그렇다고 이 혼합주의를 교회 스스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다시 이 따에 오시기 전 이 세상의 어떤 공동체, 어떤 인간도 완전한 존재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 전의 이 세상 교회가 순수해야 할 것 같지만 오히려 이 세상의 교회는 혼합 사상, 혼합 윤리, 혼합 가치관으로 교인을 미혹하고 성도를 혼란스럽게 만들 수도 있음을 오늘 본문 마태복음 13장에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국가나 사회는 말할 것도 없고 가정이나 교회도 불완전한 요소를 지니고 있기는 마찬가지인 것을 우리는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적 관점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까지 세상에는 죄악이 관영하고 마귀가 활동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 천국과 같은 완전한 곳을 찾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천국 비유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인이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렸으나 밤에 원수가 와서 가라지 씨를 다시 뿌렸습니다. 어느새 그 밭에는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게 되었습니다. 같은 밭에서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듯이 이 세상에는 어디에나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홍수로 온 세상을 심판하셨음에도 지금 이 시대 이 세상에는 여전히 선과 악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영적으로 사탄을 멸하시고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도록 십자가 복음으로 구원받은 백성을 허락하시며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공포하셨음에도 현재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존재하는 교회내에서도 여전히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함께 하시는 교회니까 교회는 완벽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 세상 교회가 완전하기를 기대하거나 교회에서 운영되어지는 행정과 조직, 시스템이 완벽할 것이라는 기대를 버려야 합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100% 모델 삼을만한 교회는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에 아시아의 일곱 교회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이 세상 모든 교회를 이 일곱교회로 구분하여 심판 때에 세상의 교회를 표현한 것입니다. 교회들은 칭찬과 책망을 받았습니다. 칭찬만 받은 교회도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칭찬만 받은 서머나교회나 빌라델비아교회는 결점이 없었을까요? 장점만 가진 교회였을까요? 장점이 컸을 뿐이지 단점이 하나도 없는 교회는 아닙니다. 이 세상 어느 교회도 주님 오실 그 날까지 장점만 가진 교회, 칭찬만 받는 교회는 있을 수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21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이 말씀은 우리가 흔히 복음을 받아들이는 성도들의 자세를 요청하는 본문으로 사용하지만 그 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한계시록 앞부분에서 사도 요한을 통해 주신 말씀으로 마지막 때에 보여주실 교회에 대해 평가하십니다. 교회에 대한 칭찬과 책망을 하신 이후에 마지막으로 일곱 번째 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한 칭찬과 책망을 기록하였고 그 라오디게아교회에 대한 마지막 평가로 이 요한계시록 3장 마지막 부분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읽은 이 요한계시록 3장 20,21절을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한 축복의 말씀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앞에 나온 일곱교회 전체에 대한 평가와 축복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결국 마지막까지도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 있는 이 교회에 믿음으로 이기는 자에게 우리 주님과 함께 주님 보좌에 함께 앉게 되는 영광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심령 속에, 우리 여러 공동체 속에, 또한 이 사회와 교회 속에 우리를 흔들어 놓는, 우리가 열매맺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가라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우리 자신과 우리 여러 모임을 돌아보며 또한 이 세상에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며 신앙의 열매를 맺는 것을 방해하는 가라지가 있는 지 잘 분별하며 불완전한 세상 속에서 완전한 천국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땅에 있는 교회가 무엇일까요? 둘째로 사탄은 어떻게든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마태복음 13장 27,28절입니다.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교회와 이 세상에 가라지가 생기는 것은 전적으로 마귀의 농간이라는 사실을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 어떤 교회, 어떤 교인들이 그 속에 가라지가 생기는 것을 원하겠습니까? 그런데 사탄마귀는 하나님 자녀들이 열매 맺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백성들이 참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가라지를 교회 속에, 신앙 속에 씨뿌려 놓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밭, 가라지, 추수라는 말의 정확한 의미를 우리는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본문을 뒷부분에서 해석해 주십니다.
마태복음 13장 37~39절을 보시겠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마귀가 교회 속에 가라지를 뿌리는 것을 막을 길이 없습니다. 사탄마귀는 부지중에 우리 사이에 가라지를 심어놓고 그 가라지를 통해 교회를 무너뜨리며 성도를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가라지를 심은 마귀의 목표는 교회는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덕(德)이 되고 은혜(恩惠)가 되는 방향이 있어도 사탄은 악이 되고 멸망이 되는 쪽을 택합니다. 그래서 가라지들은 교회가 두 쪽 나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끝까지 싸웁니다. 교회가 두 쪽나는 것이 오히려 정의롭다고까지 말합니다. 정말 참 신앙을 가진 성도라면 교회가 분열되고 성도가 상처입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어떻게든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되고 이해해 주고 용납해 주며 갈라지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어떻게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이 잘 마무리되기를 소망합니다. 하지만 가라지는 교회가 깨지든 말든, 신앙이 무너지든 말든 자기 이익을 위해 자기 욕심을 위해 끝까지 싸웁니다. 가라지에게는 자비도, 긍휼도, 용서도, 관용도 없습니다. 가라지는 ‘우리 주 예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실까?’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는 존재입니다. 가라지는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교회라면, 내가 대접받지 못하는 교회라면 이런 교회는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교회를 무너뜨립니다. 혹시 내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들거나 우리 주변에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것이 바로 가라지, 그것이 바로 가짜 신자, 그것이 바로 사탄마귀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원수인 사탄마귀는 우리 심령 혹은 우리 교회에 이런 악한 것을 심어놓았습니다.
마태복음 13장 25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가라지는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라 원수가 뿌린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우리와 함께 있지만 정상적이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사탄마귀가 한 짓입니다. 여기서 심각한 신학적 주제가 하나 나오는데 그것은 ‘악이 어디에서 왔을까?’라는 것입니다. 도대체 ‘악은 어디서 발생할까요?’ 하나님께서는 선도 아시고 악도 아시는 분이시기에 선을 통해 선을 행하시고 악을 통해 선을 행하실 수 있으십니다. 악한 것을 선으로 바꾸실 수 있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고 그러기에 어떤 경우에는 악을 사용하며 선한 결과를 얻으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근본적으로 ‘이 세상 모든 악은 사탄으로부터 왔다’고 보는 것이 옳은 생각일 것입니다. 사탄마귀는 인간을 유혹하고 미혹합니다. 유혹과 미혹은 비슷한 의미이지만 뉘앙스가 조금 다릅니다. ‘유혹’은 우리 육체를 흔들어 놓고 우리를 윤리적인 타락, 육체적 죄악으로 이끕니다. 반면 ‘미혹’은 우리 영혼을 찾아와 우리 가치관, 우리의 신앙을 흔들어 놓습니다. 이단 사이비에 빠지게 하고 하나님을 부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 마음 밭, 우리의 신앙에 가라지를 뿌리는 자는 바로 사탄마귀라고 했습니다. 또한 이 세상 우리의 터전에 가라지를 뿌린 자도 사탄마귀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신앙생활의 원천인 교회에 가라지를 뿌린 것도 사탄마귀입니다. 사탄마귀는 왜 그렇게 할까요?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는 마귀도 자신의 추종자를 만들고 자신의 열매를 거두고 싶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따르는 존재, 자신의 패거리를 만들어 사탄의 나라를 만들고 싶은 욕망입니다. 하나는 구원받는 천국백성, 천국의 열매를 방해하기 위해서입니다. 아직 추수 때가 되지 않은 밭은 여전히 사탄이 활동할 수 있는 무대라고 생각하고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라고 생각하며 심판의 날까지 알곡맺는 것을 방해하려는 것입니다. 어떻게든 하나님 백성들이 성장하지 못하게, 열매맺지 못하게, 천국가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입니다. 이단에 넘어가는 사람들중의 70~80%가 ‘성경 공부해보지 않을래’라는 말에 넘어가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성경공부’가 유혹이 되어 이단사이비가 된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단사이비에 넘어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경공부가 검증된 성경공부인지, 어떤 기관에서 진행하는 성경공부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그냥 성경공부면 다 좋은 것인 줄 알고 무작정 찾아갔다가 이단 사이비에 넘어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떤 경우는 ‘무료로 신학을 가르쳐준다’고 하니까 그것이 ‘기독교신학’인지 ‘이단사이비신학’인지도 모르고 ‘신학원’, ‘신학연구원’이라는 명칭만 보고 찾아갔다가 이단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탄마귀는 이렇게 속임수를 쓰며 가라지를 뿌리고 신앙을 무너뜨립니다. 분명 사탄은 ‘성경’이라는 말을 싫어하고 하나님을 공부하는 ‘신학’이라는 명칭을 싫어할텐데 어떻게 ‘성경공부’, ‘신학연구’ 라는 말을 써가며 성도를 미혹하는 것인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고린도후서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경고하는 성경구절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14,15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사탄도 빛나는 천사 모습으로 가장해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이단들이 기성교회에 들어와 성도들을 쓰러뜨립니다. 한국교회를 어지럽히는 골칫거리 이단사이비로 신천지집단이 있습니다. ‘신천지’는 다른 이단과 달리 교회안까지 들어와 교회를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통일교, 구원파, 여호와 증인 등 이단은 아예 가까이 하지 않으면 됩니다. 안 만나면 그만이에요. 그런데 신천지는 우리가 안 만나려고 하니까 아예 교회 안에 위장해서 들어와 활동합니다. 고정간첩을 교회로침투시키는 것입니다. 신천지는 기존 교회를 밭으로 보고 기존 신자를 신천지로 데려나가는 것을 ‘추수’라고 말합니다.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을 ‘추수꾼’이라고 표현하죠. 신천지 추수꾼이 10만 명 넘게 전국 교회에 들어와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2~300명 이상 모이는 규모있는 교회에는 신천지에서 교육받고 교회에 들어와 활동하는 사람이 서 너 명이상 꼭 있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어느 큰 교회에 이단에서 중책을 맡은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몰려가 등록했다고 합니다. 한동안 정말 열심히 교회 모임에 나오고 한동안 모든 교회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그렇게 신임을 얻어 조그마한 그룹의 책임자가 됩니다. 그러다가 전도주일이 되면 수 많은 사람들까지 전도해 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모두 신천지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죠. 이렇게 능력을 인정받으면 기존 신자들을 자기 그룹에 끼워놓고 큰 집단으로 만들어 갑니다. 교회에도 영향력을 끼칩니다. 그렇게 해놓고는 목사님, 장로님 등 중직자들을 이간질하고 교회를 무너뜨립니다. 영향력을 끼쳐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던 사람들을 데리고 신천지 교육받는 곳으로 데려가기도 합니다. 이런 신천지의 주장을 살펴보면 그들은 믿음의 최종 목적은 교주 이만희가 ‘재림주’이며 ‘이긴 자’, ‘보혜사 성령’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만희가 쓴 책에도 자신을 “보혜사 이만희”라고 기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별칭들을 모두 자신에게 갖다 붙여 놓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이만희를 믿고 참 하나님을 만난 사람 14만 4천 명이 되었을 때 이 세상은 새하늘과 새땅이 열린 신천지의 나라가 되고 신천지를 믿고 따르는 사람이 신천지 제사장이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을 보면서 ‘완전 이런 허무맹랑한 이단사이비를 누가 믿겠냐?’라고 생각하실 분이 계실는지 모르겠지만 실제적으로 사탄마귀는 이런 말도 안되는 사상에 미혹되어 넘어지는 가라지를 세상과 교회에 심어놓았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가라지가 교회안까지 들어와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신앙을 흔들어 놓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입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유다서 1장 18,19절입니다.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분열과 다툼을 일으키고 교회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가라지가 항상 우리 가운데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라지는 사탄마귀가 심어놓은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심령 속에, 우리 공동체 속에, 이 사회와 우리 가정 속에 가라지를 심어놓고 우리를 유혹하고 미혹하는 사탄마귀를 잘 분별하며 대적하며 승리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땅에 있는 교회가 무엇일까요? 마지막 셋째는 주님의 경영에 의지하며 우리 주님께서 해결하시는 것을 경험하여야 합니다.
마태복음 13장 29, 30절입니다.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며 우리 신앙을 흔들어 놓는 가라지를 ‘그대로 내버려두어라’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인간적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해결하시도록 맡기라”는 말씀입니다. 가라지를 뽑는다는 말은 인간이 심판을 한다는 말씀이죠.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이해할 때 인간적으로 심판을 하지도 말고, 교회에서 쫓아내려고 애쓰지도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냥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 맡겨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적인 해법입니다. 가라지를 쫓아내는 일은 교회 안에서 진짜와 가짜를 가려내는 작업입니다. 그것은 인간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오늘 본문의 농부는 가라지를 뽑아내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주인은 그냥 놔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로 괜히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아 버리는 것을 걱정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르고 참된 것은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고 보호되길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요한복음 6장 39,40절 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우리 구원은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증하시며 천국과 영생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우리를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습니다. 심판은 하나님 소관입니다. 내가 열을 내거나 분노할 필요가 없습니다. 밭에 가라지가 있다고 곡식까지 뽑아 버릴 어리석은 농부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속담에 ‘빈대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말 어리석은 일입니다. 주인의 관심은 알곡을 거두어 드리는 것입니다. 밭에 가라지가 있어도 알곡이 목적이기에 알곡을 추수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래서 추수 때가 되면 가라지를 먼저 거두어 불사르고 알곡은 모아서 곳간에 넣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에도 가라지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가라지같은 제자 한 명을 끝까지 솎아내지 않으셨습니다. 언제나 그와 함께 하셨고 십자가의 길까지 그냥 그대로 가셨습니다. 만약 가룟 유다를 미리 솎아냈다면 사역도 제대로 할 수 없었을 것이고 십자가의 사명도 완전하지 못했겠죠. 그래서 예수님은 끝까지 그냥 데리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가룟 유다가 그 안에 숨기고 있던 야망, 야욕을 다 드러내며 스스로 멸망의 길로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추수꾼이라고 불리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3장 39,40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이단집단인 신천지는 마지막 때가 되어 진정 거두어들일 결실을 위해 자신들이 ‘추수꾼’이 되어 곡식을 거두기 위해 교회에 들어가서 남아있는 알곡을 추수한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이런 신성모독이 어디 있을까요? 어디 이런 이상한 성경해석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 땅 어느 누구도 ‘추수꾼’이 될 수 없습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어느 누구도 이 추수꾼의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는 ‘추수꾼’이란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때에 심판이 임할 때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추수하실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 사명을 받은 천군천사와 우리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모두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 심판이 바로 추수입니다. 그러기에 이 땅에 살아가는 믿는 자, 구원받은 자는 추수사역자가 아닌 추수의 대상입니다. 우리는 결단코 추숫꾼이 될 수 없고 우리가 추수 때를 결정지을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13장 41~4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 행하실 추수의 때를 기다리며 우리가 주님께 우리 삶을 맡기며 온전한 교회, 온전한 신앙,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하며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을까 합니다.
어쩌면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하고 신앙 밖에 있을 때는 가라지였습니다. 이런 가라지를 알곡으로 만들어 추수 때에 추수꾼의 품에 안길 볏단으로 우리를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믿고 구원받아 의로운 존재가 되어 주님의 밭에서 곡식으로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주변에 가라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가라지이지만 끝까지 가라지로 자라서 심판 때에 불태워질지, 추수 때에 곡식으로 인정받게 될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멸망의 추수가 될지, 생명의 추수가 될지 그것을 결정지을 수 있으신 분은 우리 주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내가 볼 때 가라지인 것 같아 보여도 우리가 그들을 판단하거나 심판할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 소견으로 알곡과 가라지를 제대로 판가름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님께 맡겨야 합니다. 우리가 굳이 판단하고 심판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신성모독이 되고 하나님의 자리, 하나님의 역할을 우리가 가로채는 것이 될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 교회 속에 가라지처럼 보이는 어떤 존재, 가라지처럼 보이는 어떤 일들 때문에 걱정되고 답답하십니까? 어떻게든 처단하거나 뽑아 버리고 싶으십니까? 참으시기 바랍니다. 이 땅의 교회는 불완전하고 이 불완전으로 인해 사탄마귀가 심어놓은 가라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라지에 대한 처분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주님께서 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가라지는 인위적으로 제거불가능하며 인위적으로 제거하려다 공동체가 무너지고 신앙이 파괴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진짜와 가짜를 분명히 가려 내십니다. 주님께서 판단하시고 심판하십니다. 마지막 심판의 때에 가짜를 그냥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 주님께 맡기며 우리는 우리 스스로 내 속에 혹 유혹이나 미혹이 찾아오지 않는 지 살피면서 알곡으로 자라나는 참 신앙인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