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재개발·재건축 시장은 어느 때보다 추웠다. 주택경기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는 데다, 서울시의 뉴타운 출구전략과 재건축 소형주택 비율 강화 등 사업 진행에 찬물을 끼얹는 악재가 계속 터져 나와서다.
정부가 부동산 거래 활성화를 위해 내놓은 조치 가운데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온기를 불어넣을 만한 카드도 있었다. ▶강남3구 투기지역 해제 ▶임대주택 건립 여부에 따른 재개발 용적률 법적상한까지 허용 ▶1대1 재건축 면적 증가 범위 확대 등이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시장이 회복세로 돌아서기는 커녕 하락세는 더욱 커졌다.
시장에 퍼져 있는 불안요소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내수시장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고, 유로존 경제 위기와 미국의 경제 악화가 맞물리면서 시장을 더욱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그 사이 경기회복 지연에 따른 실망감이 커지면서 투자 심리는 크게 위축됐다.
그러면서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인가 등 사업이 본격화된 재개발·재건축 사업장의 가격도 하락세로 돌아섰다.
지난 1월 말 서울시가 뉴타운·재개발 출구전략 발표 이후 사업 속도가 빠른 일부 사업장들은 몸값이 올라가는 등 반사이익을 봤었다.
하지만 현재는 급매물에 대한 매수문의 조차 없는 상황이다. 북아현뉴타운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북아현뉴타운에서도 사업이 가장 빠른 1-3구역 전용 84㎡형 입주권 값이 두달 새 5000만원이나 빠졌지만 문의조차 없다"고 말했다.
거래량도 눈에 띄게 줄고 있다. 국토해양부의 주택 매매거래량 자료에 따르면 서울 재건축시장 풍향계로 불리는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의 5월 현재 주택 거래량은 전월보다 3.9% 하락한 957건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서도 19.8%나 줄어든 수치다.
재개발 구역 해제·재건축 시기 조절 본격화
하반기 시장 전망도 어둡다. 전문가들은 상반기보다 하반기의 상황이 더 악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투자심리를 살려낼 호재가 없고 기존 주택시장 침체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여서다.
재개발의 경우 뉴타운·재개발 출구전략의 후속 조치인 구역 해제가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구역 해제가 시작되면 개인의 소형주택 건립과 주택 개·보수 등은 유리해지지만 매몰비용(그 동안 사업 진행에 사용됐던 자금) 문제가 남아 투자자나 실수요자를 끌어들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구역지정만 돼 있는 서울시내 뉴타운·재개발 초기사업장은 총 73곳으로 강동구 천호1~4구역, 광진구 구의1·2구역, 광진구 자양 1~3구역, 송파구 성내1~4구역, 은평구 수색2구역 등이다. 서울시의 출구전략에 따라 전수조사 이후 구역 지정이 취소될 수 있다.
재건축은 전세난 우려에 따라 사업이 본격화한 단지들마저 속도조절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는 고덕주공3·4단지와 개포시영, 개포주공 2·3단지, 가락시영 등은 단지규모가 커 사업 시기 조절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남수 신한은행 부동산팀장은 "사업이 취소되는 재개발 구역은 도시형생활주택 등을 지을 수 있어 투자가치가 높아질 수 있지만, 매몰비용 문제가 남아 있어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며 "재건축도 시기 조절에 들어가면 자금이 장기간 묶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조합설립 이후 비교적 사업 추진 속도가 빠르고 조합원들의 사업 추진 의지가 뚜렷해 내부 분쟁이나 갈등 요인이 적은 곳들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동대문구 답십리18구역, 서대문구 북아현2구역, 동대문구 이문동 이문1재정비촉진구역 등으로 모두 사업시행인가를 받아 놓은 상태다. 노원구 월계3구역, 서대문구 북아현1-3구역, 영등포구 신길7구역 등은 이주 및 철거가 진행 중이거나 마무리 단계에 있을 정도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아파트 재건축 가운데서도 서초구 잠원 대림, 신반포(한신1차), 강동구 고덕주공4단지 등이 하반기 이주를 추진하고 있다. 서초구 삼호1차, 강남구 경복아파트 등은 관리처분을 받은 상태다.
동대문구 이문동 K공인 관계자는 "사업속도가 빠른 곳도 요즘은 가격이 많이 떨어져 있어 오히려 좋은 물건을 싸게 구입할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재개발·재건축 투자 때 투자 시기와 지역을 잘 판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권순형 J&K부동산투자연구소장은 "사업 진행 단계와 속도는 물론 주민들의 사업 추진 의지를 충분히 고려해 확실히 사업승인을 받은 곳 위주로 접근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시세 차익보다는 실수요 입장에서 접근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