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교사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다
송재혁
전교조 대변인
mahler21@hanmail.net
1992년 교단에 서고 1994년 전교조에 가입했다. 그러다 2016년, 박근혜 정권의 전교조 법외노조화 탄압으로 해고됐다. 2015년부터 전교조 대변인을 맡고 있다.
작년 11월 3일 ‘학생의날’, 강원 복원여자고등학교 정문에 붙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라는 제목의 대자보는 마지막에 이렇게 일갈한다. “저희는 ‘馬(말)’는 없지만, ‘말’할 권리는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소수의 기득권층이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가 앞으로 물려받을 민주주의를 더럽히지 말아 주세요.” 우리 교육은 청소년을 시민으로 대하지 않으며 늘 가르치고 교화해야 할 대상으로 삼아 왔다. 이러한 타성에 경종을 울리는 청소년들의 행동에 나는 만감이 교차했다. 교육이란 무엇이며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어디까지인가?
‘땡전뉴스’를 들으며 1980년대에 중·고·대학교를 다녔던 나는 ‘386세대’라고 불리곤 하는 진보 성향의 연령층에 속한다. 하지만 우리의 정치의식을 학교교육의 성과로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촛불을 든 청소년들의 행동에 대해 일부에서는 ‘전교조 교육’의 결과라며 개탄하지만, 정작 교사들은 인간이 얼마나 자율적인 존재인지를 새삼 깨닫고 있는지 모른다. 박근혜 정권은 과거를 조작해 미래를 지배하고자 역사 교과서에 손을 댔지만 다 부질없는 짓일 것이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전국적으로 외면당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의도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도 예산 낭비다. 사회의 일원으로서 ‘한 점 부끄럼 없는’ 청소년들의 대자보는 그야말로 ‘변증법적 청출어람’의 표상이다.
교사에게는 없는 ‘말’할 권리
“저희는 ‘馬’는 없지만, ‘말’할 권리는 있습니다!” 그런데 교사들에게는 말도 없고 말할 권리도 없으니 이를 어쩌랴! 교사가 교과서에 대해 집단으로 의견을 표현해도 처벌받는 무지막지한 사회다. 교사들은 2015년 역사 교과서 국정화 강행을 정치 권력의 교육 침탈로 보고 두 차례 시국 선언을 했다. 그해 10월 29일 “박근혜 정권은 제2 유신 역사 쿠데타를 멈춰라!” 선언에는 전국 3,976개교 21,758명의 교원이, 12월 16일 “역사 교과서 국정화 철회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2차 교사 시국 선언”에는 전국 3,544개교 16,360명의 교원이 참여했다. 가히 한국 교육사에 길이 남을 일이라 할 만하다. 정부가 처벌하겠다고 사전에 으름장을 놓은 상황에서도 전교조 조합원과 비조합원을 가리지 않고 전국의 교사들이 대규모로 선언에 참여했다.
하지만 정부의 태도는 요지부동이다. 국정 교과서를 포기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시국 선언 교사들에 대한 보복에 끝까지 미련을 두고 있다. 선언을 주도한 전교조 지도부를 고발하여 경찰 조사를 진행했고 선언 참여 교사들을 모조리 징계하라고 교육감들을 압박했다. 진보 교육감들이 징계권을 행사하지 않자 교육부는 시국 선언자들을 중심으로 만든 ‘교육계 블랙리스트’를 적용했다. 2016년 2월, 8월 퇴임 교원 훈·포장과 2015년 스승의날 포상 대상, 그리고 2017년 2월 퇴임 교원 훈·포장 대상에서 선언 참여 교사들을 배제했다. 정부 의견에 한 번이라도 반대했다면 평생 교육 업적을 통째로 부정해야 한다는 태도다. 전교조는 국가인권위원회에 교육부의 이러한 행위에 대해 진정했고, 인권위는 지난 2월 7일 교육부의 포상 배제 행위를 평등권 침해 차별 행위로 판단해 시정을 권고했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교육계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시인하지 않고 있다.
해외 언론들은 교과서 문제에 대해 의견을 표명했다는 이유만으로도 교사들이 탄압받는 한국 현실에 대해 큰 관심을 가졌다. 교사들은 개인 수준이건 집단 수준이건 정치적 견해 표현과 정치 활동이 일체 제한되고 있다. 교사들의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권리를 억누른 탄압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2010년 무렵에는 민주노동당에 후원금을 냈던 교사들에 대해 대대적인 수사와 재판이 있었다. 반면 한나라당을 후원한 교원들에 대한 조치는 없었다. 2016년 8월 26일 법원은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책임을 촉구한 2014년의 ‘교사 선언’이 “공익에 반하여 직무 전념 의무를 해태하는 집단 행위”라며 32명의 교사에게 100만 원에서 400만 원까지 벌금형을 선고했다. 1심 법원의 판단에 따라 징계도 시도되었다. 세월호 참사의 최대 희생자는 학생과 교사였다. 교사들이 느낀 분노와 슬픔, 그리고 진상 규명을 통해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려는 의지는 누구보다도 각별했다. 하지만 정부는 세월호 참사 관련 선언조차 불법으로 몰아갔던 것이다.
2009년 있었던 두 차례의 시국 선언에 대해서도 즉각 중징계가 내려졌다. ‘6월 민주 항쟁의 소중한 가치가 더 이상 짓밟혀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6월 선언과 ‘교사가 가진 유일한 힘은 양심’이라는 7월의 ‘민주주의 수호 교사 선언’으로 많은 교사들이 해임·정직 등 중징계를 받았고 사법 처리 되었다.
교사들은 소통누리망(SNS) 사용도 자유롭지 않다. 2016년 4월 13일 20대 총선 당시 SNS에 정치적인 표현을 했다는 이유로 수많은 교사들이 사법 처리 선상에 올라 있다. 페이스북에서 남의 글에 ‘좋아요’ 한두 번 누른 것이 전부인 교사들조차 대거 포함되었다. 보수 단체가 교사 개개인의 명단과 증거 자료를 첨부해 기자 회견과 고발을 한 데 따라 수사가 진행된 정황으로 보건대, 공안 기관과 보수 단체의 합작과 기획에 의한 탄압으로 보인다.
지방교육자치의 핵심인 교육감 선거에서도 교사들은 철저히 배제된다. 교수들과 달리 피선거권조차 부여되지 않으며 일체의 선거 관여가 금지되고 있다. 2009년, 검찰과 법원은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 해석을 받아 합법적으로 진행한 일들을 불법으로 몰아 서울 교사 7명에게 공무담임권을 박탈하는 중형을 내려 해직당하게 했다. 유·초·중·고 교육을 관장하는 교육감을 선출하는데 유·초·중·고 교육의 전문가인 교사들이 철저하게 배제되는 황당한 현실은 한국 사회가 교사들을 어떤 존재로 규정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다.
‘교육의 중립성’이라는 미신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교사들과 전교조에 대한 탄압에는 청와대와 국정원이 개입되어 있다.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고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일지가 공개되었는데 청와대가 ‘전교조 죽이기’를 위해 얼마나 집요하고 촘촘하게 공작을 벌였는지가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안종범과 우병우의 업무 일지까지 공개된다면 더 많은 증거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와 공안 기관의 공작 정치도 문제지만 원천적으로는 교사와 공무원의 정치 참여를 제한하는 악법들이 문제다. 관련 법들은 정치적 권리를 규제하고 있을 뿐 아니라 노동자로서 권리 역시 심대하게 침해한다. 교원노조법의 독소 조항이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드는 데 악용되어, 교사들은 정치 기본권과 노동 기본권이 통째로 박탈당한 상태에 놓여 있다. 전교조는 20대 국회에서 교사들의 노동 기본권과 정치 기본권을 온전하게 보장하는 법안의 처리를 요구하고 있지만 답보 상태에 있으며 사회적인 관심도 높지 않는 편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교육의 중립성’이라는 미신이 존재한다. 헌법이 말하는 ‘교육의 중립성’은 정치 권력이 교육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주문이지만, 엉뚱하게도 지금껏 교사 개개인의 정치적 권리를 제한하는 근거로 악용되어 왔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사태에서 보듯이 정치 권력의 교육 개입은 버젓이 저질러지고 있는 반면, 교사들은 교과서에 대해서조차 발언할 자유를 침해당하고 있다. 이런 모순된 현실을 청산하려면 악법들을 개혁해야 한다.
교사들이 정치 활동을 하면 학생들이 정치적으로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한국 교육 체제에서 특정 종교 강요 행위는 금지되지만 교사들이 종교를 갖는 것은 자연스럽다. 교사의 공무상의 영역과 사적인 영역은 엄연히 구분되기 때문이다. 교사가 시민으로서 정당에 가입하고 정치 활동을 하는 것과 교실에서 정치적인 주제를 다루는 교육 활동을 하는 것은 별개의 영역에 있다.
권력이 교사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이유는 교육을 시종으로 부려 이 사회를 지배하려는 욕망 때문이다. 교육에 대한 부당한 외압에 맞서는 힘이 교단으로부터 나오려면, 교사가 진실을 가르치는 ‘자유인’으로 바로 설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누리지 못하는 권리를 남에게 온전히 가르칠 수는 없는 법이다. 교사들이 시민이자 노동자로서 권리를 온전히 누리게 될 때 민주시민교육 또한 온전하게 수행될 수 있고, 민주주의 또한 발전할 수 있다. 교사의 기본권 문제는 교육의 기본 문제이다. 교사와 학생의 정치적 권리 확보는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의 중요한 관건이다.
첫댓글 37호 원고 중 비교적 짧고 시의성 있는 것 하나를 먼저 올려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