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이다.”
모든 성인의 날을 지내며 우리 전례의 첫째 독서는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이 성인들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렇지요.
성인들 가운데 환난을 겪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고,
이 세상 어떤 사람보다 많고 큰 고통을 겪은 이들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환난을 겪은 사람은 누구나 성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하느님 때문에 환난을 겪지 않은 사람도 성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능력이 없어서 가난한 사람의 가난이 거룩한 가난이라고 할 수 없듯이
어쩔 수 없어서 억지로 환난을 겪은 것도 성인의 환난이라고 할 수 없지 않을까요?
왜 이런 얘기를 제가 할까요?
그것은 저에 대한 반성 때문입니다.
저는 일생 큰 환난을 겪지 않은 사람이기도 하지만
환난을 조금 겪었다고 해도 하느님 때문에 또는 하느님을 위해서
환난을 별로 겪지 않은 일생이었으니 성인은커녕 성도도 아닐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행복 선언의 일부는 이렇습니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모든 성인의 날에 이 행복 선언을 듣는 것은
모든 성인은 다 이런 사람들이라는 뜻이지요.
여기서 성인답게 행복한 사람은
의로움 때문에 박해받은 사람이요.
하느님 때문에 모욕과 박해를 받은 사람입니다.
이래야 하는데 저는 하느님 때문에 환난이나 모욕이나 박해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저도 한때 성인이 되고 싶은 적이 있지만 그것은 저의 완성을 위한 것이었고
그런 뜻에서 그것들을 견디고 참아낸 적은 있지만 하느님 때문에
또 하느님을 위해 그것들을 감수하고 감당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말하자면 성인 욕심이었던 것이지 사랑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런 뜻에서는 이제 성인을 내려놨습니다.
성인은 욕심으로 될 수 없는 것이고 되어서도 아니 되겠지요.
그러니 하느님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환난을 받아들이지 못할지라도
나이 먹어 피할 수 없는 고통이 닥칠 때 그것을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봉헌할 수 있기를 이 모든 성인의 날에 바라고 비는 오늘 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