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580) 육화된 마음 - ① 사람들 사이에 있는 섬/ 철학박사 강신주
육화된 마음
네이버블로그/ [시] 정현종 섬, 섬의 의미
① 사람들 사이에 있는 섬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 〈섬〉
정현종(鄭玄宗, 1939~ )의 많은 시 가운데 〈섬〉이란 시만큼 사람들의 입에 회자된 작품은 없을 겁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간결한 압축미를 자랑하는 것이 시라지만, 짧아도 너무 짧은 시입니다.
〈섬〉이란 제목이 상징하는 것처럼 우리가 ‘섬’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해석을 달리할 수 있습니다.
길을 가다가 우연히 전혀 모르는 어떤 사람을 만났다고 해보죠.
그런데 다시 헤어지면 어디에서 다시 만날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 정도로 그 사람은 무척 매혹적이었습니다.
말을 건네고 싶은 것도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겠지요.
나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너무나 알고 싶습니다.
이런 감정을 우리가 시로 적어본다면 이렇게 표현되겠지요.
“나와 그는 모두 섬과 같다. 나는 그라는 섬으로 가고 싶다”라고 말이지요.
하지만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정현종의 속내는 복잡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고 노래합니다.
또 타자에게 곧바로 건너가기보다는 자신과 타자 사이에 존재하는 섬으로 건너가고 싶다고 말했지요.
그렇다면 시인에게도 사람들은 서로 단절되어 있는 존재로 이해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단절을 만들지만 동시에 그러한 단절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 곧 ‘섬’이지요.
시인에게 인간은 고립과 단절의 존재이지만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려고 발버둥치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타자에게로 건너갈 수 있을까요?
그래서 우리는 심각한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에 성급히 답하기보다 인간의 고립성,
혹은 유한성이란 문제를 좀 더 숙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립성 문제를 더욱 철저히 숙고할 수 있을 때,
타자와의 연결이라는 우리 소망의 가능성과 한계 역시 분명하게 드러날 수 있을 테니까요.
이 점에서 모리스 메를로 퐁티(Maurice Merieau-Ponty, 1908~1961)라는 철학자가
우리의 고뇌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그는 인간의 정신 혹은 의식이 육체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를 역설했던 철학자로 유명합니다.
육체가 가진 제한성을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인간의 고립이 어디에서 유래하는지를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메를로 퐁티는 육체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의식에 대해 깊이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그에게 육체란 수동적으로 작동하는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능동적인 활동성을 가진 것이었다는 점입니다.
바로 이 점과 관련해서 메를로 퐁티는 육체와 관련된 의식을 숙고하고자 했던 겁니다.
그는 이와 같은 ‘육화된 의식’을 ‘비반성적인 의식’이라고 부르면서
그것의 작용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 성명하고자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반성적인 의식을 모두 부정하거나 그것을 간과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가 주목한 것은 ‘반성적 의식’도 ‘비반성적 의식’,
즉 ‘육화된 의식’이 없다면 전혀 작동할 수 없다는 점이었어요.
<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강신주, 도서출판 동녘, 2019.)’에서 옮겨 적음. (2024. 10.18.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580) 육화된 마음 - ① 사람들 사이에 있는 섬/ 철학박사 강신주|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