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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거령장(巨靈莊) 왕씨 가문의 시조는 왕대발(王大發)이라는 어부였다. 물론 왕대발에게도 아버지는 있었고, 그 아버지는 당연히 왕씨였겠지만 그건 중 요하지 않았다. 오늘의 거부(巨富) 왕씨 가문을 만든 사람은 그의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아니고 왕대발이었다. 그는 원래 멀리 해남도(海南島)가 바라다 보이는 남해 바닷가에 사는 어부 였고, 당시에는 대발(大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도 않았다. 잔잔히 철썩이는 파도, 무한정으로 많은 물고기들, 거기 쪽배를 띄워 그물 을 던지면 황금빛 비늘들이 햇볕을 받아 반짝이고...... 라는 식으로 어부 의 생활을 상상했다면 큰 오해다. 고기도 들어올 때와 나갈 때가 있고, 자 주 모이는 곳이 있다. 그걸 아는 것이 어부의 재능이지만 왕대발은 그 재능 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사실은 본인에게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시험해 볼 기회도 갖지 못했다. 그에게는 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배라는 것은 의외로 비싼 물건이라서 어지간히 돈이 많지 않으면 선주(船主 )가 될 수 없고, 선주가 한 번 되면 돈이 돈을 벌어다 주기 때문에 선주는 점점 더 부유해지고 그 선원들은 점점 더 가난해지기 마련이다. 왕대발처럼 물려받은 재산도 없고, 선주에게 아부하는 재주도 없는 사람은 바닷가 암초에 앉아 잔고기를 잡든지, 아니면 간혹 손이 아주 모자랄 경우 다른 선원들의 반밖에 안 되는 보수를 받고 배를 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 던 어느 날 거센 폭풍우가 바다를 떠돌다가 사라진 다음날 그는 횡재를 했 다. 폭풍우가 휩쓸고 간 다음날 해변을 돌아다니는 것은 왕대발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다. 사실은 이 어촌 마을 사람들의 중요한 일과이기도 했다. 그냥 재미로 하는 일이 아니라 생계를 위한 일이었다. 그런 날이면 먼바다에서 풍랑에 휩쓸려 난파된 배가 조류를 따라 그 바닷가로 흘러오기 때문이었다. 배가 통째로 흘러온다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었지만 적어도 그 배에서 흘러 나온 물건들은 확실히 있었다. 간단한 목재만 해도 값이 꽤 나갔기 때문에 고기 잡는 것보다 나았고, 어쩌다 값비싼 물건이라도 줍는 날이면 몇 달 먹 을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그날 아침 그는 횡재를 했다. 상자나 술통, 혹은 목재를 바라고 나갔던 자리에서 시체를 발견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뒤지지 않는 곳을 찾아 암초들 사이로 갔다가 발견한 남자 시체였다. 고기에게 뜯어 먹혀 손 하나와 양쪽 눈알이 없었지만 남은 한 손은 굳은 살 하나 없는 어린애 같은 손이었다. 그건 그가 귀한 신분임을 말해주는 증거 였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귀한 물건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 이기 때문에 중요했다. 과연 그의 옷은 물살과 고기이빨에 찢겨지긴 했지만 비단옷이었다. 비싸게 팔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벗기다가 왕대발은 더 귀중한 것을 발견하고 비단옷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사내의 몸에는 금목걸이가 있었고, 금귀 고리가 있었고, 금팔찌가 있었다. 남은 손에는 손가락이 세 개밖에 없었지 만 거기마다 반지가 하나씩 끼워져 있었다. 왕대발은 퉁퉁 불은 손가락들을 잘라 반지를 빼내면서 물고기에게 잃은 나머지 일곱 손가락들을 아쉬워했다 . 그날 밤 그는 마을을 떠났다. 횡재를 한 다음에는 잘 아는 이웃들을 두려워 해야 하는 법이라는 것을 그는 본능으로 알고 있었다. 그는 서른이 훨씬 넘 도록 장가도 못 갔고, 스물에 혼자 되어 여태껏 그를 키워준 어머니는 이미 늙어서 매우 가벼웠다. 그는 그릇도 이불도 내던지고 어머니만 업고서 고향 을 떠나, 그가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에 있는 도회(都會)에 정착했다. 그리 고 거기서 어부 왕씨가 아니라 상인 왕대발이 되었다. 어부의 재능은 있는지 없는지 시험해볼 기회도 없었지만 상인의 재능은 타 고났던 것이 틀림없었다. 그는 생선을 팔았는데 새로 정한 이름처럼 크게 발복(發福)하여 나날이 번창했다. 원래 그가 옮겨온 도회에서는 바다가 멀어 바닷고기를 먹어볼 기회가 없었 다. 그래서 보통은 자(煮)라고 해서 소금에 절인 생선을 먹곤 하는데, 그는 여기에 획기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살아있는 생선을 부호들의 요리상에 올리 게 해주었다. 생선운반에 조정에서 하는 역마(驛馬)를 응용한 것이었다. 바닷가에서 생선을 사서 물통에 담아 말에 싣고 달린다. 그러다가 말이 지 치면 바꿔 타고, 그 말도 지치면 다시 바꿔 타고 해서 하루만에 살아있는 생선을 가져오는 것인데, 당연히 엄청나게 많은 돈이 들었고, 그 돈은 고스 란히 생선의 가격에 반영이 되었다. 은자 열 냥이나 되는 고가의 생선을 누 가 먹겠나 했지만 곧 그 방식은 장안의 화제를 모았고, 없어서 못 파는 지 경에 이르렀다. 그때쯤 그는 돈으로 산 아내에게서 아들을 보았고, 그 이름을 소이(少二)라 고 지었다. 보통은 둘째 아들에게 붙여주는 이름이었지만 왕대발에게는 나 름의 뜻이 있었다. 그가 모은 재산과 행운을 그대로 이어받으라는 뜻으로 대발에 연결되게 지은 것이다. 그래서 그날 이후 왕씨가문에 하나의 전통이 생겼다. 왕소이의 아들은 왕소삼(王少三), 그 아들은 왕소사(王少四)가 되 었던 것이다. 이 왕소사의 대에 중요한 변화가 세 가지 있었다. 하나는 그들이 자리잡고 있던 도회에서 떠나 전 가문이 북경(北京)으로 이주했다는 것이고, 그 둘은 왕소사가 가문에 보기 드문 호인이라 왕대발 이후 처음으로 가문의 재산이 왕대발이 왕대발이 되기 전처럼 줄어들었다는 것이었다. 북경으로 옮긴 것 이 그 때문이었는데, 왕소사가 부자일 때는 그렇게 많았던 친구, 지인들이 그의 주머니가 가벼워지는 것과 때를 같이해서 줄어들더니 나중에는 내일 끼니 걱정을 하게되자 드디어 찾는 이가 하나도 없게 되었다. 나아가 그가 찾아가도 아는 척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왕소사는 그제야 존경을 많이 받으면 재산이 줄고, 존경을 받지 않으면 재 산이 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왕소사는 굳은 결심을 하고 북 경으로 떠났다. 거기서 그는 과거 은혜를 베푼 사람 중에 아직 그가 몰락한 것을 모르는 사람 하나를 잡아 돈을 빌리고, 그 돈을 밑천으로 삼아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그 줄을 바탕으로 관부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마지막 세 번째 변화가 그것이었다. 그들 왕씨가문은 장사 중에 제일 가는 장사는 관 부를 등에 업고 하는 장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왕소사의 좌절과 성공을 교훈으로 삼은 왕씨가문에 그 후에는 별다른 일이 없었다. 왕소오(王少五), 왕소륙(王少六), 왕소칠(王少七)은 크게 장사를 벌이면서 관부에는 인색하지 않게 돈을 바치고, 한편 가난한 자들에게는 매 우 인색하게 대하면서 점점 더 부를 늘려나갔다. 전설적인 거부 석숭(石崇)이 부럽지 않을 정도의 부를 모았을 때, 8대째의 주인이 태어났다. 그때 문제의 씨앗이 같이 생겼음을 사람들은 미처 깨닫지 못했다. 알았어도 별 도리가 없었을 테지만. 왕소팔(王少八)은 어렸을 때 한 번 학당(學堂)의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 악동들은 그의 이름자 중에서 소(少)자를 빼고 왕팔(王八) 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가끔은 소자를 앞에 붙여 소왕팔(少王八)이라고도 했다. 둘 다 입에 담기에도 추한 욕설이었다. 쉽게는 ‘자라새끼’라는 뜻 이지만 그보다는 ‘자기 어미와 붙어먹은 놈’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욕이기 때문이었다. 당연 왕소팔은 집에 울며 돌아와 그런 이름을 지어준 부모에게 원망을 돌렸 다. 그리고 죽도록 두들겨 맞았다. 초대 가주로부터 내려온 전통에 반기를 든 불효자식이 된 셈이라 정말로 죽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였다. 그 이후로 그는 남들이 뭐라고 하건 자신의 이름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일이 없었다 . 적어도 부모 앞에서는 다시 없었다. 그가 커서 가문의 주인이 되자 이번에는 그 수하들에게 약간의 고민이 생겼 다. 그 이전 주인에게는 왕칠야(王七爺)라고 부르면 되었지만 이번 주인에 게는 그런 식으로 호칭을 할 수 없었다. 왕팔야(王八爺)는 뒤에 존칭인 야( 爺)자를 붙임으로써 왕팔이나 소왕팔보다 오히려 더욱 비꼬는 냄새가 나기 때문에 심한 욕을 하는 셈이 되었다. 그 결과 거부 왕씨 가문의 당대주인인 왕소팔은 여태까지의 가주들과 다르게 그냥 왕대야(王大爺)라는 평범한 이 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 중원에서 왕대야라고 하면 누구든 그를 떠올리게 되었다. 수많 은 왕씨 아저씨들에게 붙는 호칭이 한 사람을 위한 것처럼 된 것이다. 그리 고 하나 더, 누구든 그 이름을 들으면 그 이름에 얽힌 사연을 생각하지 않 고는 못 배기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과거 청화표국(靑華?局)의 대표두(大?頭)였던 만리표(萬里飄) 해청(海淸)도 실소를 참기 위해 무진 애를 써야했다. 오늘 손님이 바로 그 왕대야의 명을 받고 온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손님은 그가 부지중에 흘린 실소를 알아보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해 청이 과거의 사건으로 치아가 모두 뽑혀버린 바람에 항상 웃는 모습인 것이 실소를 가려준 것이다. 그는 그때의 그 사건으로 양팔도 잘려나가 표사로서는 폐인이 되어 은퇴한 처지였다. 그런 그에게도 찾아오는 손님이 적지 않았는데, 그것은 그가 표 사로서는 일류에 속했었지만 지금 표행에 관한 조언자로서는 특급에 속하는 인물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손님들은 대개 표물 운송 건에 대한 자문을 구 하거나, 아니면 녹림도와 분쟁이 일어나 어려움을 겪는 표국의 주인들이었 다. 수완이 좋으면서도 신용있는, 공명정대한 인물이라는 그의 평은 녹림에 는 매우 효과가 있었다. 당연 그의 조언과 중재도 적지않은 힘을 가지고 있 었다. 하지만 오늘 온 손님은 그가 여태 맞아본 손님 중 가장 강대한 배경을 가진 인물이었다. “왕대야께서 이렇게 해대협(海大俠)을 찾아뵈오라 하신 뜻은......!” 그는 반복해 말했다. 자신이 찾아온 용건이 바로 문제의 왕대야가 지시한 일이라는 것을 드러냄으로써 성의 있게 답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해청도 왕대야가 보낸 인물, 왕대야에 관련된 사안이라면 허투루 대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왕대야가 한 번 손을 움직이면 엄청난 거금이 움직이 고, 거기서 흘러내린 부스러기만 모아도 보통의 표행에서 벌어들이는 돈보 다 더 클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왕대야의(해청은 다시 한 번 웃을 뻔했다) 일이라면 노부 신명을 바 쳐 수행해야겠지요. 그런데 이제 늙고 쓸모 없어진 폐인에게 바라시는 일이 있을지 모르겠소이다.” “해대협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또 누가 있어서 저희 일에 적절한 조언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저희 주인어른께서는 해대협의 지혜를 전적으로 기대 하시고 저를 보내신 것입니다.” 스스로를 대외제삼총관(對外第三總管) 하기룡(河起龍)이러고 소개했던 손님 은 꽤 젊어 보였지만 이런 일에 경험이 많은 것이 틀림 없었다. 그는 보수 에 관해 노골적으로 언급하지 않고도 후한 보수를 약속하고 있는 것이다. 해청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게 그토록 기대하신다니 송구스럽기 짝이 없소. 그런데 대체 어떤 일로 ......?” “사실은 이번에 왕대야께서는......!” 하기룡은 말을 끊고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중요한 이야기 를 더 중요하게 강조하기 위한 의식적 행동으로 볼 수도 있었지만 해청은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것같아 바짝 긴장했다. 하기룡의 눈빛과 자연스런 긴장감의 표시는 무언가 대단한 일이, 아마도 왕대야의 일이니 엄청난 거금 이 걸린 일이 그에게 드러나려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하고 있었다. “차제에 낙향(落鄕)하실 뜻을 가지고 계십니다.” 꽈광! 벼락이 때렸다. 해청은 방금 자기 머리통을 분명히 무언가가 때리고 지나갔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어지러울 리가 없을 것이다. 그는 마른 침을 삼키고 간신히 입을 벌려 물었다. “농담이시겠죠?” 하기룡이 손을 저었다. 불쾌한 빛은 떠올리지 않고 있었다. 누군들 이런 말 을 진담으로 들으랴. “제가 해대협께 무슨 농담을 하겠습니까. 이번에, 그러니까 정확하게 한 달 후에 거령장은 그 기반을 사천(四川)으로 옮길 계획입니다.” “그런 일이......!” 해청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고관(高官)이 낙향할 수는 있었다. 청백리를 가장하느라 비단 보료 두텁게 깐 사인교(四人轎) 아니면 대지도 않던 엉덩이를 털 빠진 나귀 등에 달랑 올려놓고, 식솔들은 찌그러진 가마에 실어 허정허정 돌아가지만, 그 얼마 뒤에는 바퀴 축이 부러지도록 바리바리 짐을 실은 수레들이 열을 지어 따르 는 낙향 모습을 한 두 번 본 것이 아니었다. 그가 직접 호송한 적도 있었다 . 부자가 이사하는 것도 본적이 있었다. 괴물처럼 우람한 황소 네 마리가 끄 는 초대형 우마차에 태산처럼 높이 쌓은 짐들이 무너질 듯 위태롭게 흔들리 는 모습이 백여 장에 걸쳐 이어지는 장관을 본 적도 있었다. 그래도 그게 고작 우마차 삼십 대였다. 그러나 왕대야의 짐은 적어도 그 열 배는 있어야 옮길 것이다. “북경의 수레란 수레는 다 동원해야겠군요. 적어도 삼 백 대는 있어야 할 테니.” “아니요.” 하기룡이 손바닥을 쫙 펴서 들이 밀었다. “오백 대?” “아뇨, 오십 대면 됩니다.” “그런......?” “왕대야께서는 가재도구니 옷가지에다 수석(壽石)이라고 정원석까지 캐서 가는 이사를 극도로 경멸하고 계십니다. 그거야 이사간 곳에서 다시 사면 되는 일이니까요.” “그럼 이번에는 이렇게 물어야 겠군요. 왜 오십 대 씩이나 필요하십니까? ” “금을 실어야 하니까요.” “금이라고요?” “예, 금! 왕대야께서는 이번에 가재들을 완전히 처분해서 전부 금으로 바 꿔 가지고 가실 작정이시고, 현재 거의 준비된 상태입니다. 수레 오십 대면 충분하지요.” 해청은 벌린 입을 다물려 노력해야 했다. 왕대야의 재산은 그의 상상 이상 이었던 것이다. 황소 네 마리가 끄는 수레라면 여행의 편의를 위해 여유있게 실어도 삼십 석(石)을 실을 수 있다. 1석이 4균(鈞)이고, 1균이 30근(斤), 1근이 16냥( 兩)이니 수레 한 대에 3600근, 황금 오만 칠천 육백 냥을 싣고 갈 수 있다 는 얘기. 그게 오십 대면 근 삼백만 냥에 육박하는 엄청난 황금이 된다. 은 자로 환산하면 시세에 따라 편차가 있긴 하지만 삼천만에서 사천 오백만 냥 사이일 것이다. 그가 들은 말로 조정이 연간 거두어 들이는 세비(歲費)가 은자 사백에서 오백만 냥밖에 안되니 중원 전 민중의 육칠년 치 세금을 대 신 내줄 수도 있다는 이야기. 전설의 거부 석숭이 세비 십 몇 년 분의 재산을 축적했다는 말은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설, 전설은 과장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왕대 야도 석숭에 못지않은 거부라 해야 했다. 더구나 왕대야의 재산은 그 정도 만이 아닐 것이라는 게 해청의 추측이었다. 지금 움직일 수 있는 금약만 그 정도지 천하에 흩어져있는 거령장 산하 지점들의 부를 더하면 그 금액은 상 상하기 힘들 정도로 불어난다는 결론이었다. 머리 속으로 계산하는 것만으 로도 눈이 돌아갈 숫자였다. 해청은 생각을 감추려 애써 중얼거렸다. “그럼 북경 인근의 수레만 동원하면 충분하겠군요.” 하기룡이 느긋하게 보고 있다가 갑자기 바싹 다가앉으며 말을 꺼내었다. “수레는 문제가 아닙니다. 수레 오십 대 정도는 저희가 내일이라도 당장 조달할 수 있습니다.” “어디서......? 아......, 그렇군요. 거령장에서 운영하는 곳들에서만 불 러도 그 정도는 문제 없겠군요.” 해청은 표시나지 않게 쓴 물을 삼켰다. 차행과 연결해주고 챙길 수 있었던 떡고물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것이다. “문제는 표국인데......!” “표국 문제는 걱정 않으셔도 될 것이오. 우리 청화표국이 요즘 몇 건의 일 을 맡고는 있지만 대개 자잘한 일들뿐이라 거의 모든 인원을 이쪽으로 돌릴 수 있을 것이니 말이오.” 하기룡은 무표정하게 해청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극히 건조한 목소리 로 말했다. “소생이 듣기로는 해대협께선 청화표국 출신이지만 그런 굴레에 얽매이지 않고 일하신다고 들었는데 사실이 아닙니까?” 해청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소매를 휘저었다. 양 팔이 제대로 달려있었다면 포권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낯빛을 가다듬고 말했다. “노부가 사욕이나 연줄 때문에 제게 유리한 말을 한다고 생각하셨다면 손 님은 돌아가시는 것이 좋겠소.” 하기룡이 마주 일어나 포권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소생은 다만 확인하고자 하였을 따름입니다. 확실 한 것도 일일이 말로 확인해야 안심하는 것 소생의 나쁜 버릇 중 하나지요. 혹시 심기를 거슬리게 했다면 용서해 주십시오.” 해청은 그제야 안식을 풀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하기룡이 자리에 다시 앉자 의아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물었다. “노부야말로 눈치가 없어 일일이 물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을 용서해 주 시기 바라오. 제게 찾아오신 것은 청화표국에 의뢰하고자 하신 의도가 아니 었소?” “소생은 단지 한 마디 여쭈어보고자 할 따름입니다. 당금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표국이 어디입니까?” “그런.......” 하기룡은 손을 저어 해청의 말문을 막고 계속 자기 말을 이었다. “물론 여기 북경에서는 청화표국이 최고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소생이 여쭙는 것은 천하제일입니다. 천하제일 거령장의 재산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천하제일의 표국이 어딜까 하는 것이지요.” 해청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무래도 떡고물은 그의 손에 가까이 오지도 않 을 모양이었다. 청화표국에 연결시켜주지 않고서야 무슨 이득이 그에게 있 을 것인가. 하지만 그것 때문에 아닌 대답을 하기에는 표사로서의 자존심이 너무 강했다. “손님은 잔인하시군요. 노부가 청화표국을 떠났으나 평생 거기서 밥을 벌 어먹고 있었다는 것을 아시면서 이런 질문을 하시다니.” 하기룡이 송구스럽다는 듯 짐짓 포권을 했다. “해대협의 탁견과 공명정대 하심을 믿지 않고서 어찌 감히 이런 질문을 던 지겠습니까. 소생이 알기로는 당금 천하에 표국이 모래알처럼 많다고는 해 도 최고의 표국은 단 하나라고 들었습니다. 낙양의.......” 해청이 뒷말을 이었다. “중원표국(中原?局)!” 하기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청이 다시 말했다. “삼 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오. 중원 전역에 지국을 설치하지 않은 곳이 없고, 거기 일하는 표사의 수만 물경 삼 천. 그러나 이 모든 위세도 그 총국주인 중원대협(中原大俠) 이장도(李長道) 한 사람의 이름값만 못하 지요. 십대 고수 중에 자리가 나면 반드시 이 사람이 그 자리를 채울 것이 라는 중평이 있을 정도니 말이오.” “표사로 그렇게까지 강한 사람은 여태 없었지요. 아, 실례했습니다.” 해청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맞는 말씀이오. 표사는 그 수로 보면 강호에서 녹림도 다음으로 수 가 많은 무력집단이지만 절정고수는 그리 많지 않지요. 중원대협같은 초절 정 고수는 여태 없었고.......”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원하기로는 십대고수들 중 한 둘이라도 초빙하고 싶지만 대개는 폐관 내지는 은거. 활동하시는 분들은 차 라리 이번 일을 몰랐으면 좋겠다 싶은 분들이고....... 그래서 해대협을 찾 아뵌 것입니다.” 과연 그랬다. 해청이 알기로도 일검쌍성삼신군(一劍雙聖三神君)은 은거했거 나, 알아도 도와주기에는 너무 지고한 신분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 머지 사이(四異)의 인물들 중에서 월인(月人) 공손조덕(公孫祖德)은 역시 은거, 나머지 세 명중 북신(北辰)은 몇 년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데,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죽었다는 소문이 있었고(모종의 사유로 해청은 그 소 문이 사실임을 알고 있었다), 나머지 둘은 차라리 이 번 일을 몰랐으면 좋 을 인물들이었다. 그들이 오히려 침을 흘릴 자들인 것이다. 해청은 다시 물었다. “노부가 무슨 도움이 되겠소. 아니, 겸양의 뜻이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 묻 는 것이오. 표국도 정해지고, 수레도 구했고, 그럼 노부가 도와드릴 일이 없지 않소?” 하기룡은 싱긋이 웃었다. 드디어 두 사람이 예의를 따지지 않고 실질적인 이야기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리고 막상 실질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일을 복잡하게 벌리면 틈이 많아진다. 되도록 간단 하게 처리하라는 것은 거령장과 왕대야의 신조였다. “도와주실 일이야 많지요. 해대협께서 안 도와주시면 아무 일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행차의 준비과정 전체를 해대협께서 맡아주시면 합니다. 중 원표국과 교섭하는 것, 수레들을 배정하는 것, 그리고 고수들을 초빙하는 것까지.” “고수들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초절정 고수를 열 명은 초빙하고, 그중 적어도 세 명은 중원 대협에 버금가는 고수라야 합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뻔 했다. 초절정 고수는 그 수가 극히 적기 때문에 초절정 고수인 것이다. 십대 고수를 제외한다면 초절정 고수가 열 명씩이나 더 있을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그들을 초빙한다는 것은...... . 그러나 해청은 안된다는 말을 하기 전에 세 번은 더 생각해보는 것을 미덕 으로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잠시 침묵하면서 머리를 굴려보고 적합한 사람 이 아주 없지는 않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일단 네 사람 정도를 생각할 수 있소. 하나는 어디 있는지 알고, 하나는 부르는 방법을 알고, 하나는 부르지 않아도 올 것이며, 마지막 하나는 운이 좋아야 부를 수 있소.” 이번에는 하기룡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겨우 다물 수 있게 된 다음에는 손 가락을 치켜세우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과연 해대협이시군요. 그 짧은 시간에 네 사람이나 생각해 내다니.” 그는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그런데 사실 제가 부탁하고도 별로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만......, 도대체 중원대협만한 고수가 어떻게 네 명이나 더 있다는 것입니 까? 게다가 어떻게 그들을 아셨습니까?” “세상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고수도 있고, 알려지기 원하지 않는 고수도 있다는 게 기억났을 뿐이오.” “그럼 그분들을 모셔오면 되겠군요. 도대체 누굽니까?” “우선 진장자(陳長子)가 있소.” “진장자? 진장자......, 진장자! 사천거부(四川巨富) 진장자 말입니까?” ‘장자’라는 단어는 부자에게 붙이는 호칭이지만 나이만 많으면, 그리고 대충 잘 살면 아부하는 뜻으로 이렇게 부르곤 한다. 하지만 왕대야라고 하 면 거령장의 왕소팔을 가리키듯 장자라는 호칭이 가장 어울리는 사람은 천 하에 단 한 명밖에 없다. 그게 사천거부 진장자, 진학(陳鶴)이라는 사람이 었다. 역대로 전해 내려오는 엄청난 재산, 황금 그릇에 황금 수저를 사용하지 않 으면 밥이 입으로 안 넘어간다는 사치스런 생활, 기십을 헤아리는 미첩(美 妾)들과 수백의 가신들. 그 속에서 사치 향락에 잠겨 헤어나오지 못하는 인 물이 진장자였다. 그 진장자가 초절정 고수라고 하는 것이다. “혹시 취미로 무공을 배우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 들어보셨소?” “그런......!” “진장자가 그런 사람이오. 혹시 돈이 주체할 수 없을만큼 많아서 무공비급 을 사서 모으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은 해보신 적 있소? 그게 진장자요. 어 떤 사람은 그 재능이 하늘에 닿아서 슬쩍 보기만 해도 배우고, 한 번 배운 건 잊지 않으며, 가르친 사람보다 오히려 잘 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대 해서는 혹시 생각해보신 적 있소? 그게 진장자요. 그는 정말 그쪽 방면으로 천부적인 소질을 가진 사람이오. 취미로 시작해서 놀아가며 했지만 그 발전 속도는 놀라운 것이었다고 하오.”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해청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약간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내 응사조법(鷹蛇爪法)에 약간 관심이 있었던 모양, 한 번 초대되어 시연 을 해본 적이 있소. 한 번 보고는 더 볼 가치가 없다고 돌아서기에 화를 냈 더니.......“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더 말 않아도 아시겠지요? 그는 한 번밖에 안 본 내 응사조법을 사용해서 날 던져 버렸소. 단 일초에!” “그건 정말 대단하군요. 그런데 그런 가공할 무공을 가졌는데 왜 소문이 안 났을까요?” “대개 가신들에게 배웠고, 간혹 돈으로 사서 배우기도 했다는데......, 쓸 데가 없으니 그냥 익히고만 놀았던 모양이오.” “과연......!” 하기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장자같은 부호가 직접 무공을 사용할 일이란 거의 없을 것이다. 그에게는 밥까지 떠먹여주는 하녀들이 있는 것이다. 문 득 하기룡은 중요한 문제가 생각났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그런데 그가 우리 일을 도와줄까요?” “보수만 많이 준다면 문제없을 거요” “보수요? 그가 이미 거부인데 보수 때문에 일을 한단 말입니까?” 해청은 쓴 미소를 지었다. “하총관은 혹시 이런 말을 들어본 적 있소? 부자도 가난해질 때가 있다는. ......” |
첫댓글 감사합니다
ㅈㄷㄱ~~~~~~````````
감사합니다
잘밨어요
즐독입니다
감사 합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잘보고 있습니다
잼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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