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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생명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백대영
예수님의 고별 설교는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1)
첫 번째 고별 설교는 13장 31절부터 14장 31절까지입니다.2)
두 번째 고별 설교는 15~16장입니다.3)
첫 번째 고별 설교는 인자가 영화롭게 되는 말씀으로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떠나가는 곳에는 제자들이 따를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14장은 ‘예수님의 떠나심과 성령님의 보내심’에 대한 것입니다.4)
본문 14장 15~31절은 “또 다른 돕는 존재”에 관한 예수님 말씀으로,5) 성령님에 관한 말씀입니다.
1. 아버지 하나님께서 다른 보혜사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요한복음 14장 15~17절에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들을 지키리라. 그리고 내가 그 아버지를 요청하고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니 그가 너희와 함께 그 영원 안으로 있기 위해서라. 그 진리의 그 영(the Spirit)을, 그 세상은 받을 수 있지 아니하니, 그것이 그를 지켜보지도 아니하고 그것이 알지도 아니하는 것 때문이라, 너희는 그를 아니 너희의 곁에 머무르고 너희 안에 계실 것임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보혜사”라는 말은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입니다. 우리 한글 성경에는 “보혜사(保惠師)”라는 어려운 말로 번역되었습니다. 영어의 “paraclete” [pǽrəklìːt]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파라클레토스는 영어 성경들에 여러 가지로 번역되는데, “조력자”, “원조자(援助者)”, “보조자”(Helper)라고 번역되고 있습니다. “고문”, “상담역”, “변호사”, “지도원”(Counselor)이라고도 번역되었으며 “위로(慰勞)하는 자”, “위안하는 자”(Comforter)라고도 번역되었습니다. “파라클레토스”(Paraclete)로 음역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파라클레토스는 “~의 곁에”라는 의미의 “파라”와 “부름을 받은”이라는 뜻의 “클레토스”가 연결되어 나온 말이며, “~의 곁에 부름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위로하다(comfort)”라는 동사(파라칼레오)와 관련되는데 처음에 ‘남을 돕기 위해 부름을 받은’이라는 수동적 뜻을 가진 말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5~26절은 ‘성령님을 보내신다는 약속’입니다.6)
15~24절은 예수님의 높아지심 이후의 성령님을 주심을 묘사합니다. 예수님과 아버지께서는 성령님을 통하여 신자 안에 계실 것입니다.7)
예수님의 약속은 사실 일시적 부활 출현으로 충족되기 어려운 것이며, 자신의 현존을 성령님으로 대체하실 사실을 가리킬 가능성이 큽니다.8)
14장 15절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하는 것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사랑하면 그의 계명을 지킵니다(요 14:15). 예수님의 계명들을 지키면서 사는 것이 그를 사랑하는 증거인 것입니다.
15~17절은 ‘다른 보혜사의 오심’에 관한 내용입니다.9)
예수님의 계명들을 지키는지로 예수님의 제자인지 알 수 있습니다.10) 예수님께서는 순종으로 그에 대한 사랑을 보일 것을 요구하십니다.11) 사람이 예수님을 사랑하면 예수님의 계명들을 지킬 것입니다(요 14:15).
사람들이 개를 사랑하는 것처럼 사람들을 사랑하면 좋을 것입니다.12) 현실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개보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것에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보다는 자기 개를 더 사랑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은 예수님의 계명들을 지키는 일로 이어집니다.13)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요청하시겠고 다른 보혜사를 그들에게 주시리니 그가 그들과 함께 영원히 계시기 위해서입니다(요 14:16).
“보혜사”는 법정에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부름을 받은 자입니다.14) “보혜사”라는 번역이 어려워 공동번역은 이것을 “협조자”로 번역합니다. 영어 성경에 “조력자”(Helper), “변호사”(Counselor)로 번역되었습니다.
헬라어에서 이것은 법정에서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을 의미합니다.15) 예수님께서 보혜사의 역할을 그의 지상 사역 기간 수행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보혜사가 그 일을 수행하게 성부께 요청하십니다.16)
예수님께서는 “다른 돕는 조력자”를 요청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을 주심은 예수님께서 떠나시는 것이 주는 중요한 유익입니다.17) 예수님께서 떠나가셔야 성령님을 주실 것입니다.
성령님을 주심은 예수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 가능한 일입니다.18)
성령은 사람이 붙잡고 사용할 수 있는 신적(神的)인 능력이 아닙니다. 성령을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그 자신이 성령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자는 자기가 우월한 크리스천의 등급에 속한다고 여기며 교만할 것입니다.19) 성령은 사람이 하나님께 받음으로 임의대로 사용할 수 있는 힘이 아니라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인격(Person)이시며, 삼위의 한 위격(位格)이십니다.20)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이시나,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셋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삼위(三位)로 계시지만, 일체(一體), 즉 한 분이십니다.21)
성령님께서는 인격이지 단지 하나의 영적인 능력이 아닌 것입니다.22)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인식하여야만 하는 일은 중요한데 이러할 때 성령님의 일을 인식하고 성령님을 의뢰하겠기 때문입니다.23)
진리의 그 영(the Spirit of truth)을 세상은 받을 수 있지 아니하나니 그것이 그를 지켜보지도 아니하고 그것이 알지도 아니하는 것 때문이며, 우리는 그를 아니, 그는 곁에 머무르시고 우리 안에 계십니다(요 14:17).
지금까지 성령님이 누구신가에 대해 살폈고 이제 그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이신 성령님께서는 무엇을 하십니까?
성령님께서는 크리스천의 성화에 있어서 가장 능동적으로 일하시거나 성경에 영감(inspiration)을 불어넣으시고 사람들에게 은사를 주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진리 안으로 인도하시며,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십니다.24)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을, 성령님께서는 성자를 영화롭게 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성경을 기록하는 자들을 실수하지 못하게 감동하심으로써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25)
성령님께서는 크리스천들을 이끄셔서 예수 크리스트를 섬기게 하시고 그리하여 그러한 섬김을 통해서 예수 크리스트를 영화롭게 하십니다.26)
악마는 거짓말쟁이인데 악마는 세상을 거짓투성이로 변화시켰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에 악마가 뿌려 놓은 거짓들로 가득합니다. 반대로 예수님께서는 “진리”이십니다.
그가 “진리의 영(Spirit)”이신 것은 그가 진리를 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진리이신 예수님을 증언하는 “진리의 영(Spirit)”이신 것입니다.27)
보혜사 예수님께서는 “그 길과 그 진리와 그 생명”이 되시고(요 14:6), 다른 보혜사께서는 “진리의 그 영(the Spirit)”이 되십니다(요 14:17).
거짓된 세상은 본성상 성령님을 받거나 지켜보거나 알지 못합니다.28)
2. 고아로 버려두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8~20절에 “내가 너희를 고아로 버리지 아니하리라. 아직 조금 세상은 이제는 나를 지켜보지 아니하나 너희는 나를 지켜보니 내가 살고 너희도 살 것이기(will live also) 때문이라(Because). 저 날 안에 내가 나의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너희가 알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여전히 그들이 버림받은 것으로 느끼고 있었을 것입니다.29)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아로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요 14:18). 그는 그들을 향하여 오실 것입니다(will come to you).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다시 그의 제자들에게 오실 것입니다.30)
아직 조금 세상은 이제 그를 지켜보지 아니하나 그들은 그를 지켜보니 그가 사시고 그들 또한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요 14:19).
저 날에 그가 그 아버지 안에, 그들이 그 안에, 그가 그들 안에 있음을 그들이 알 것입니다(요 14:20).
3.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나의 계명들을 가지고 지켜야 나를 사랑하나,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나의 아버지께 사랑함을 받고 나도 그를 사랑하겠고 내가 그에게 나 자신을 나타낼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구약시대부터 강조되었습니다(출 20:6). 신명기는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하는 것을 반복하여 강조합니다(신 6:5). “모든 너의 마음과 영혼과 세력 안에 야훼를 사랑하라”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기에 요구하십니다(신 10:12).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곧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을 뜻합니다(신 11:1). “나의 계명을 지켜야 나를 사랑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4:21).
예수님의 계명들은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요 13:34~35). 우리가 사랑을 서로에 가지면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인 것이 알려집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그의 계명들을 지킬 것입니다(요 14:15). 그의 계명들을 가지고 지켜야 그를 사랑하는 것입니다(요 14:21).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이와 같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에는 지정의(知情意) 모두인 전인이 요구됩니다. 사랑은 감정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계명을 지키는 의지까지 포함합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의 계명을 인지해야 합니다.
순종과 사랑 간의 연결 관계를 너무나 명시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므로, 여기에 언급된 사랑은 오직 예수님의 참된 제자들에게만 해당합니다.31)
유다가 예수님께 말하였기를 “주여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하지 아니하시는 것은 왜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요 14:22).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면 그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해야 마땅합니다.32) 이것이 유다의 생각이기에 유다는 예수님께 그 말씀의 뜻을 물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3~24절에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고 나의 아버지께서는 그 사람을 사랑하실 것이고, 그를 향하여 우리가 오겠으며 우리가 거처를 그와 함께 만들리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의 말들을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가 듣는 바의 그 말은 나의 것이 아닌 나를 보내신 그 아버지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금의 많은 종교는 창조주와 모종의 친밀한 교제를 추구했습니다.33)
그는 자신을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나타내지 아니하시는데 이러한 세상 속에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사랑하여야만 합니다. 누군가가 예수님을 사랑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지킬 것입니다(요 14:23).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을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입니다(요 14:24).34) 그는 자기 뜻을 말씀하지 않으셨고 아버지 말씀을 대신 말씀하셨습니다.
4. 그 성령님께서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5~26절에 “이것을 내가 너희에게 이야기하였으나. 그 보혜사, 그 성별된 그 영(the Holy Spirit)이 모든 것을 가르칠 것이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그가 너희를 생각나게 하실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보혜사, 그 성별된 영(the Holy Spirit)이 모두 가르쳐 주실 것이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을 그가 생각나게 만드실 것입니다(요 14:26).
예수님께서는 16절에 쓰신 “보혜사(保惠師)”라는 말을 다시 쓰셨는데, “보혜사”라는 한자어는 “지키고 은혜를 베푸는 스승”이라는 의미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성별된 영(靈)”이신 까닭에, 줄여서 “성령”이라고 합니다.
그 아버지께서는 그 성령님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보내실 것입니다. 즉 성령님께서는 예수님의 대리자로 오십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이름으로 오지 아니하신 것과 같습니다.35)
악마는 거짓말쟁이입니다. 악령은 거짓말이 무기인 자라는 것입니다. 악령하고 성령은 비슷한 현상으로 나타나기에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령은 특징이 불로 나타나는데, 진짜 불이 있고 가짜 불이 있습니다. 은사주의자들이 성령을 말하는데 그 불이 진짜 불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악령은 거짓말쟁이인 까닭에 자기를 빛의 천사로 가장합니다. 그래서 악령인지 정말로 성령인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진리를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진리와 상관없이 능력만 강조하는 자들은 가짜 불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먼저 자신이 속고 남도 속이는 것입니다.
1) 송영목, “요한복음 14장의 거주지의 성격”, 『신학논단』 제79집 (2015): 227.
2) D. A. Carson, 『요한복음』, PNTC 주석, 박문재 옮김 (서울: 솔로몬, 2017), 882.
3) 송영목, “요한복음 14장의 거주지의 성격”, 『신학논단』 제79집: 227.
4) Andreas J. Köstenberger, 『BECNT 요한복음』, BECNT 성경주석, 신지철·전광규 옮김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7), 546.
5) Köstenberger, 『BECNT 요한복음』, 546.
6) Gerhard Maier, 『요한복음』, 마이어 주석 시리즈, 송다니엘 역 (서울: 토브북스, 2021), 638.
7) Köstenberger, 『BECNT 요한복음』, 562.
8) Andreas J. Köstenberger·Scott R. Swain,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전광규 옮김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6), 129.
9) G. R. Beasley-Murray, 『요한복음』, WBC 성경주석 36, 이덕신 역 (서울: 솔로몬, 2001), 504.
10) Maier, 『요한복음』, 마이어 주석, 639.
11) Köstenberger, 『BECNT 요한복음』, 562.
12) James Boice, 『요한복음 강해 Ⅳ』, 서문강 옮김 (파주: 쉴만한 물가, 2017), 213.
13) Beasley-Murray, 『요한복음』, WBC 성경주석, 504.
14) Beasley-Murray, 『요한복음』, WBC 성경주석, 505.
15) Carson, 『요한복음』, PNTC 주석, 925.
16) Beasley-Murray, 『요한복음』, WBC 성경주석, 506.
17) Köstenberger, 『BECNT 요한복음』, 563.
18) Köstenberger·Swain,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130.
19) Boice, 『요한복음 강해 Ⅳ』, 220.
20) Boice, 『요한복음 강해 Ⅳ』, 221.
21) Boice, 『요한복음 강해 Ⅳ』, 222.
22) Boice, 『요한복음 강해 Ⅳ』, 224.
23) Boice, 『요한복음 강해 Ⅳ』, 227.
24) Boice, 『요한복음 강해 Ⅳ』, 230.
25) Boice, 『요한복음 강해 Ⅳ』, 232.
26) Boice, 『요한복음 강해 Ⅳ』, 238.
27) Carson, 『요한복음』, PNTC 주석, 927.
28) Beasley-Murray, 『요한복음』, WBC 성경주석, 507.
29) Carson, 『요한복음』, PNTC 주석, 928.
30) Carson, 『요한복음』, PNTC 주석, 930.
31) Carson, 『요한복음』, PNTC 주석, 932.
32) Carson, 『요한복음』, PNTC 주석, 934.
33) Carson, 『요한복음』, PNTC 주석, 935.
34) Carson, 『요한복음』, PNTC 주석, 936.
35) Beasley-Murray, 『요한복음』, WBC 성경주석, 5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