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부대 행정보급관을 맡고 있으면서 강하훈련 시 안전통제 임무도 수행하는 김임수(오른쪽) 원사가 강하훈련에 나서는 후배의 장비 안전점검을 해주고 있다.
철저한 자기관리로 20~30대 후배들 못지않은 몸매와 근력을 소유한 김임수 원사가 외줄 오르기를 하고 있다.
김임수 원사의 전투복 왼쪽 가슴에 부착된 ‘1000회 이상 강하’를 상징하는 황금색 ‘금성월계휘장’.
[신(新)병영의 달인] ‘고공강하 최다 기록 현역’ 육군특수전사령부 천마부대 김임수 원사
이원준 기사입력 2021. 07. 07 17:04 최종수정 2021. 07. 07 17:16
28년 군 생활 동안 4080회... 거침없이 하늘을 난다
신(新)병영의 달인 <5> ‘고공강하 최다 기록 현역’
육군특수전사령부 천마부대 김임수 원사
자신의 기록 자신이 깬다
고공 교육 4개월 만에 마치고
국군의 날 시범요원 25년간 활약
매년 열리는 경연대회 45회 입상
자신과의 싸움 이겨라
강하 최고의 비결 ‘안전 챙기기’
수십년간 매일 빠짐없이 체력 단련
한계라 생각될 때 강도 더 높여
결혼식도 고공강하하며…
부대 보탬 되고자 인성지도사 자격 취득
후배 훈련할 땐 앞장서 장비 안전점검
특전사 아내… 아들도 군인의 길
28년의 군 생활 동안 총 4080회 강하로 현역 장병 최다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고공강하의 달인’ 김임수 원사가 풍향지시기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김 원사는 국군의 날 행사 고공강하 시범요원으로도 25년간 활약했으며, 매해 열리는 고공강하 경연대회에서도 45회 입상했다.
우리 군을 대표하는 능력자를 소개하는 ‘신(新)병영의 달인’ 오늘의 주인공은 김임수(48) 육군원사다. 김 원사는 28년의 군 생활 동안 강하만 총 4080회 실시한 ‘고공강하의 달인’이다. 전군을 통틀어 현역 장병 가운데 최다 기록이다. 그는 현재 고공강하 전담 부대가 아닌 육군특수전사령부(특전사) 천마부대에서 행정보급관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매년 10여 차례 강하훈련을 하며 기량을 유지 중이다. 2019년에는 육군특수전사령관배 고공강하 경연대회에 부대 대표로 참가해 개인 부문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왼쪽 가슴에 단 황금색 ‘금성월계휘장’이 유난히 돋보이는 김 원사를 국방일보가 만났다.
글=이원준/사진=조용학 기자
입대 4개월 만에 고공 교육 수료… 매일 훈련
김 원사는 1993년 육군 부사관(모병 24기)으로 입대했다. 학력고사로 대학에 진학하던 시절, 대입에 실패한 뒤 방황하다 ‘이럴 거면 군대에 먼저 다녀오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끝에 내린 선택이었다. 남들과 똑같은 군 생활을 하는 대신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특전사를 지원했고, 고공강하 전담팀에 배치됐다. 입대 4개월 만에 고공 교육을 모두 수료했다. 낙하산 하나에 의지한 채 창공에 몸을 날리는 일상이 반복됐다.
그는 처음에는 장기복무를 희망하지 않았지만, 부대에서 인정받으며 자연스럽게 군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한다. 반복되는 훈련에 몸은 힘들었지만 푸른 하늘을 뚫고 강하할 때면 스트레스도 훌훌 날아갔다. 무거운 강하 장비는 어느새 몸에 꼭 맞는 옷처럼 느껴졌다.
“매일 고공훈련을 하고, 시범과 시합이 일상이었습니다. 입대 후 1995년까지 훈련받고 이후 본격적으로 시범과 시합, 대회를 준비했습니다.”
김 원사는 강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1997년 미국 고공연수를 시작으로 총 7번의 해외연수를 받았다. 세계군인체육대회를 비롯한 국제대회에 수차례 참가했고, 국군의 날 행사에서는 고공강하 시범요원으로 25년간 활약했다. 수상 이력도 화려하다. 매해 열리는 고공강하 경연대회에 꾸준히 참가한 결과 정밀강하(개인·팀), 상호활동강하 등에서 45차례나 입상했다.
“안전이 최우선… 창공은 실수 용납 안 해”
김 원사의 전투복 왼쪽 가슴에는 ‘1000회 이상 강하’를 상징하는 금성월계휘장이 부착돼 있다. 그 위의 단계는 없다. 그는 4000번 넘게 강하하는 동안 크게 다친 적이 없다고 한다. 매번 강하할 때마다 안전에 최우선을 뒀기 때문이다. 그의 강하 비결은 안전을 챙기는 것, 그리고 절대 자만하지 않는 것이다.
“창공은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한 번의 실수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말 철저하게 기본에 충실하고 안전에 최우선을 두며 훈련한 것이 가장 큰 강하 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강하까지 다치지 않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는 언제라도 고공강하에 나설 수 있도록 강철 같은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 매일 오전 5시10분경 출근해 영내에서 7㎞를 달린다. 일과 전후에는 스쿼트, 데드리프트, 턱걸이 등으로 체력을 단련한다. 아침은 과일이나 장모님이 싸주신 도시락으로 해결한다.
“고공강하는 정신적으로 강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그래서 운동할 때면 한계라고 생각되는 지점에서 더 강도를 높입니다. 가령 뜀걸음을 하다가 마지막 바퀴에는 페이스를 최대치까지 올려서 달립니다.”
그래서인지 김 원사의 몸은 40대 후반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군살 없는 근육질이다. 철저한 자기관리로 웬만한 20~30대 특전사 대원보다 몸이 더 좋아 보일 정도였다.
후배와 함께하는 최고의 특전용사
김 원사는 지난 2016년 천마부대로 전입 온 이후 민군작전관, 의무평가관 등의 보직을 맡아왔다. 현재는 부대 행정보급관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김 원사의 목표 중 하나는 전우들에게 자신의 강하 기술과 군 생활 노하우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는 후배들이 강하훈련에 나설 때면 나서서 장비 안전점검을 해준다. 훈련 중에는 안전통제를 하며 격려의 말도 잊지 않고 전한다. 부대에 보탬이 되고자 김 원사는 지난 2018년 인성지도사 2급 자격을 취득하기도 했다.
부대원에게 김 원사는 군인 중의 군인, 최고의 특전용사다. 또한 맡은 임무에 최선을 다하며 부대에 활기를 불어넣는 존재다.
천마부대 이상규 상사는 “대한민국 모든 군인 가운데 고공강하에서 톱클래스로 인정받는 최고의 전투요원”이라고 김 원사를 칭하며 “항상 바른 언행과 자기계발을 게을리하지 않고, 힘들고 어려운 일에 솔선수범하며 부대원의 사기를 증진해 인화 단결된 부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신다”고 했다.
김범규 상사는 “김 원사님의 직책은 행정보급관이지만, 철저한 자기관리로 전투능력을 유지하는 특전용사”라며 “무엇보다 모든 부대원을 아우를 수 있는 인성과 인자하고 포근한 이미지로 후배가 다가가기 쉬운 선배”라고 말했다.
1999년 김임수·박철순 원사 부부의 고공강하 결혼식. 국방일보 DB
결혼 23년 차 특전사 부부… “집에선 엄마”
김 원사의 아내는 같은 부대에서 급양관리관 임무를 수행 중인 박철순(47) 원사다. 박 원사는 매 끼니 200여 명이 이용하는 병영식당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1995년 강하훈련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강하, 행군, 해상훈련 등을 함께 하면서 자연스럽게 연인으로 발전해 결혼에 골인했다. 특히 부부는 1999년 국군 최초로 고공강하 결혼식 도중 키스하는 사진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김 원사는 “체력도 강하고, 당차고, 시원시원한 성격에 매력을 느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아내 박 원사는 남편 못지않은 고공강하 베테랑이다. 그의 강하 기록은 990여 회로, 두 사람의 기록을 더하면 5000회를 훌쩍 뛰어넘는다. 올해로 결혼 23년 차인 부부는 하사부터 원사 계급까지 줄곧 함께 근무해오고 있다. 부부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2019년 육군특수전사령관배 고공강하 경연대회에서 김 원사가 개인 부문 1위, 팀 부문에서 부부가 함께 2위를 차지한 것이다.
김 원사는 가정에서 ‘아내 같은 남편’이다. 박 원사는 남편에 대해 “통상 가정에서는 엄마들이 잔소리한다고 하는데, 우리 집에서는 아빠(김 원사)가 모든 일을 꼼꼼히 다 챙기는 편이라 애들한테도 엄마들이 하는 잔소리를 한다”며 “엄청 꼼꼼한 스타일이고, 어떻게 보면 집안에서 남편과 아내 역할이 바뀐 모습”이라고 말했다.
가정에서 남편의 모습을 설명할 때는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고공강하와 관련해서는 진중한 대답이 나왔다. 박 원사는 “고공강하 훈련을 하든, 시범·시합을 하든 남편이 옆에 있는 것 자체가 정말 든든하다”며 “급양관리관 보직을 맡고 있어 강하를 자주 못하지만, 강하 1000회 기록을 달성해 남편과 함께 금성월계휘장을 달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아들도 군인의 길… “항상 안전 바라”
김 원사 부부는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두 사람 모두 군 복무를 하느라 아이들이 어렸을 땐 장인·장모님이 주로 키워주셨다고 한다. 평일에는 임무를 수행하고, 주말이 되면 아이들을 보러 먼 거리를 달려 처가로 향했다.
아들 김태균(22) 씨는 원광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다. 군인인 부모님을 따라 학생군사교육단(ROTC)에 지원·선발됐다. 현재는 학군사관후보생으로 훈련받고 있다.
김씨는 “제가 후보생이 된 배경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영향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군인으로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나도 커서 멋있는 군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며 “부모님과 같은 길을 걷는 선택에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아들에게 아버지 김 원사는 ‘자랑’이자 ‘존경심’의 대상이었다. 김씨는 “4000회가 넘는 아버지의 강하 횟수는 제게 자랑이었다. 아들이자 후보생으로서 최고의 베테랑인 아버지에게 존경심을 갖고 있다”며 “하지만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사고 때문에 걱정이 많다. 아버지를 믿고 항상 안전을 바라는 것, 그리고 아버지를 응원하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전했다.
이원준 기자 < wonjun44@dema.mil.kr >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출처 국방일보 (dema.mil.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