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932호
그래서, 내가 있습니다
박숙경
물고기가 자라납니다
팔거천은 어제보다 오늘 더 자랐습니다
어린 새가 나뭇가지를 건너다니며 지저귈 때마다
꽃은 피고 세상은 더 환해집니다
한 뼘씩 그늘을 넓혀가는 칠엽수를 안은 햇살을 사랑합니다
건듯 건듯 어깨를 지나는 바람을 사랑합니다
오후 볕을 핥는 열여덟 살 고양이를 사랑합니다
사랑이 범람이면 팬데믹을 건널 수 있을까요
안에서 바깥을 내다보는 간절함처럼
별빛을 당겨오는 일도 오래도록 간절해서
늘, 우리를 꿈꿉니다
기다림이란 말에 이미 익숙하지만
꽃 울고 새 피면 다시 주저앉고 싶어져서
더 그래서, 뜨거워지는 가슴으로
낯선 길엔 내가 있기도 가끔은 사라지기도 합니다
돌담에 기대어 가물거리는 산 너울을 보면 눈물이 나서
이화우梨花雨 흩날리는 돌배나무 그늘이 하 좋아서
오늘도 어느 골목길 모퉁이에 나는 있습니다
- 『오래 문밖에 세워둔 낮달에게』(달아실, 2024)
***
총선이 끝났습니다. 표심이 민심이라 했는데, 과연 정치하는 이들이 민심을 제대로 받들지는 의문입니다.
내일은 세월호 10주기인데, 참사 이후 우리 사회는 과연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갔을까요? 이 또한 의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조금씩 자라고 있는 중이라고 믿는 아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주에 나올 박숙경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오래 문밖에 세워둔 낮달에게』에서
한 편 띄웁니다.
- 그래서, 내가 있습니다
"물고기가 자랍니다" "팔거천은 어제보다 오늘 더 자랐습니다"
그래요. 우리는 우리 사회는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자랄 겁니다.
꽃이 필 때마다 세상이 조금 환해지듯이
나무가 한 뼘씩 자랄 때마다 그늘이 넓어지듯이
"사랑이 범람이면 패데믹을 건널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내가 있습니다"
라는
시인의 전언을 믿어보려고 합니다.
여전히 세상의 의문투성이고
여전히 세상은 반성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의 전언을 믿어보는 아침입니다.
2024. 4. 15.
달아실 문장수선소
문장수선공 박제영 올림
첫댓글 세상은 피카소 그림?
1997년 팽목항에 낚시 하러 갔던 인연
큰소리로 외쳐보고 싶은 말입니다
실천을 할수있는 용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