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第二章 용유진, 청주부(淸州府)에 가다
1.
용유진의 이번 표행은 이례적인 것이었다. 동전 두 닢으로 청부를 맡은 것
도 처음이고, 표물이 유례없이 가벼운 것도 그랬다. 그러나 가장 이례적인
것은 표물을 받을 수취인이 어디 있는지를 모른다는 점이었다. 표물을 전달
하기 위해서는 먼저 받을 사람부터 찾아야 할 형편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럴 때 쓰는 몇 가지 요령을 알고 있었다. 없어진 물건을 찾
기 위해서는 먼저 그 물건이 마지막으로 있던 자리에서부터 출발하는 법이
다. 그가 수취인을 찾기 위해 가장 먼저 간 곳이 거기, 청주성이었다.
호화객잔(豪華客棧)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여전히 왕대인(王大人)이
주인이었다. 그리고 그가 용유진을 대하는 태도도 그대로였다. 아니, 오히
려 몇 년 전 처음 그가 표국을 창업한다고 찾아왔을 때보다 더 그를 멸시하
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에게는 용유진이 과거의 그때
보다 나아진 곳이 없다고 보였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더욱 못해졌다고 생각
하고 있었다. 젊은 녀석이 무언가 의욕적으로 사업을 벌일 생각은 않고 현
재에 안주하여 쓸데없는, 즉 돈 안되는 일만 하고 다닌다고 생각했던 것이
다.
다행히 용유진은 오늘 호화객잔의 왕대인을 찾으러 온 것이 아니라 그 뒤쪽
주방으로 통하는 문 입구에 언제나 자리잡고 앉아있는 왕개(王介)를 만나러
왔다.
같은 왕씨라도 왕대인과 왕개는 얼마나 다른가를 생각하면 용유진은 언제나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의 다양함을 절감하곤 했다.
왕대인은 청주제일객잔의 주인이었지만 왕개는 앞에 놓인 밥그릇과 구걸할
때 짚고 다니는 지팡이, 쉴 때 깔고 앉는 거적이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다.
왕대인은 부드럽게 몸을 감는 비단옷을 걸치고 있었지만 왕개는 구멍 뚫린
누더기를 걸치고 앉아 부스럼을 긁으며 살았다. 왕대인은 원래 이 호화객잔
의 점소이(店小二)로 출발해서 가진 고생 끝에 돈을 벌어 자기가 주인이 된
입지전적(立志傳的) 인물로 세인의 존경을 받았다. 왕개는 그와는 다른 면
에서, 왕대인을 존경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부류의 존경을 받았다. 그야말로
어려서부터 고아로 자라 거지 중에서도 말석인 소화자(少化子)에서 출발해
서 중견 거지로, 마침내 개방(개방) 청주분타주(淸州分舵主)의 자리에까지
올라간 입지전적 무림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용유진은 왕개의 이빨 빠진 그릇에 동전 한 닢을 던져 넣었다. 처마 밑에
앉아 비를 그으며 꾸벅꾸벅 졸고있던 늙은 거지가 고개를 들었다.
“묻고싶은 것이 있는데.......”
“이 새끼가 거지 희롱하나? 요즘 동전 한 닢은 거지도 안 받아.”
누구에게도 하대를 당하며, 또 누구에게도 욕지거리를 뱉어내는 것은 왕개
나름의 공평함일 것이다. 용유진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게 이번 표행의 보수 절반이란 걸 알면 그렇게 무정하게 말하지는 않겠
지. 거지보다 가난한 표사의 돈을 긁어서 자네가 팔자를 고치겠단 말인가?
”
“임마, 늙은 과부는 팔자를 고칠 수 있어도 늙은 거지는 절대 못 고쳐. 왠
지 알아? 거지보다 나은 팔자는 하늘 아래 다시 없기 때문이야. 흐흐!”
스스로 묻고 대답하며 음충맞은 웃음까지 흘리고 난 왕개는 짐짓 표정을 굳
혔다.
“너 이 새끼도 참 성공하긴 힘든 종자로구나. 동전 두 닢 받고 다리 품을
팔면 목구멍에 처넣을 건 뭘로 마련한단 말이냐! 너 어디 돈 많은 과부라도
꼬불쳐두고 있느냐?”
“객쩍은 소리는 그만하고 이거나 알려주게. 작년 가뭄에 여기서 못 살겠다
고 대거 떠난 사람들 있지?”
“네놈도 알다시피 그게 한 둘이더냐?”
“그때 강남지방에는 구걸만 해도 먹고 살만하다고 소문이 나서 몰려 갔잖
은가. 다들 어디로 갔을까? 강남 어디에 특히 많이 몰리거나 하지 않았을까
?”
“강남이 어디 언년 엉덩짝 만하냐? 그 많은 놈들이 그 넓은 땅에 갔는데
그걸 어찌 알아.”
“그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일일이 알 필요도 없고, 어느 동네, 어느 골목
에 사는지까지 알 필요도 없네. 나는 여기 청주성 남문 밖 버들 거리에 살
던 정소삼(丁少三)이 어디 부근으로 갔을지 대충이라도 알면 되거든.”
왕개는 잠시 용유진을 바라보다가 욕을 뱉었다.
“도둑놈! 육시랄 놈! 한 여름에 폐병에 걸려 콜록거리다 뒤질 놈! 동전 한
닢 주고는 많이도 요구하네. 그게 거지한테 물을 얘기냐? 어디 점장이를 찾
아볼 일이지!”
“점장이보다야 자네가 낫지만......, 용한 점장이라도 있으면 소개해 주게
. 거기 가보게. 단! 동전 한 닢으로 되는 곳이라야 하네.”
왕개는 주섬주섬 일어났다. 그리고 욕 한 마디를 뱉고는 온다 간다 말도 없
이 어디로 가버렸다.
용유진은 왕개를 만난 짧은 시간동안 일 년동안 들을 욕을 다 먹은 기분으
로 미소를 흘렸다. 그는 지금부터 왕개가 꽁지 빠진 개처럼 이리저리 뛰어
다닐 것을 생각하면 그 정도 욕은 큰 대가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비는 더 굵어지지 않았지만 좀처럼 그치지도 않았다. 용유진은 비에 젖은
비룡의 모습을 보고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야 비에 젖어도 그만 안 젖어
도 그만이지만 애마는 내버려 둘 수가 없는 것이다.
그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왕개가 깔고 앉아있던 짚 자리를 보고 눈을
빛냈다.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예상대로 악취가 진동을 했다. 그보다 더
문제는 그의 날카로운 눈에 포착된 수백, 수천 마리의 벼룩과 이였다.
용유진은 주위를 슬쩍 둘러보고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다음 순간
그의 몸 주위로 금빛이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그 빛은 그의 손으로 모이고,
곧 눈부시게 확산되어 벌레로 우글거리는 짚자리를 감쌌다. 천하구대극품기
공(天下九大極品氣功) 중의 대력금황기(大力金皇氣)였다.
잠시 후, 용유진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살균소독 된 짚자리를 비룡의 등에
덮어줄 수 있었다. 그 이름도 쟁쟁한 천하구대극품기공 중 하나가 살균소독
에 쓰인 것을 무림인중 누가 안다면 거품을 물고 넘어갈 일이었지만 용유진
은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실생활에 소용이 닿지 않는다면 그깟 무
공은 배워서 무얼 할 것인가가 그의 생각이었다.
표사 일을 하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가끔 그가 표사가 되기 위해 무
공을 배웠던 것인지, 아니면 무공을 배웠기 때문에 표사가 된 것인지 생각
해본 적이 있었다. 물론 그의 경우는 전자의 이유가 거의 전부였지만 다른
많은 표사들은 후자의 이유로 표사가 되곤 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는데 갑자기 낯익은 얼굴 여럿이 나타났다. 왕개가 아
니었다. 호화객잔의 주인 왕대인, 산동옥미(山東玉米)의 주인 심대인(沈大
人)을 위시한 청주부의 여러 유지들이었다.
왕대인이 그를 의심스러운 눈길로 훑어보았다. 하지만 의심스러운 눈길은
원래 용유진이 가져야 할 일이었다. 아무리 자기 객잔이라지만 뒷문은 주방
으로 통하는 길, 여기 그가 올 일이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왕대인이 용유진 말고도 이쪽 저쪽을 훑어보더니 하는 수 없이 그에게 물었
다.
“자네, 여기서 뭐하는 건가? 여기서 이상한 일 없었나? 아까 이상한 빛이
나던데......?”
그게 문제였던 것이다. 금빛을 보고 쫓아온 사람들인 셈이었다. 용유진은
충분히 그 점을 고려하지 않은 자신의 실수를 자책하고, 어떻게 대답할까
고민에 빠졌다. 그것을 왕대인은 부정의 뜻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그래, 여기서 빛이 날 리가 없지. 그것도 금빛이라니......, 아무래도 착
각이었어. 보시오, 아무 것도 없잖소.”
빛이 보인다고 한 사람은 심대인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
며 이상하다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왕대인이 다시 한 마디 했다.
“괜히 내가 여기 금을 묻어뒀다고 놀리시다니......, 내가 묻을 곳이 없어
서 여기에 묻었겠소.”
주위의 유지들이 왁자하니 웃었다. 용유진은 그들이 나눈 농담을 대강 짐작
할 수 있었다. 부호들에게서 오갈 수 있는 그런 류의 농담, 가난한 자는 절
대로 생각하지 않는 그런 농담들일 것이다.
“다시 물어 보네만 자네 여기서 뭐하나?”
왕대인이 그를 추궁했다. 용유진은 잠시 생각하다가 짧게 대꾸했다.
“사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거지나 오는 데서 무슨 사람을 기다리나?”
“거지를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유지들이 다시 웃었다. 왕대인은 인상을 썼다.
“자네 선친과의 교분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네만......, 자네도 이젠 좀 정
신을 차릴 때가 되지 않았나. 쓸데 없이 빈민구제니 기민구휼(饑民救恤)이
니 하는 데만 쫓아다니고, 사업 확장할 생각은 않고 불량한 무리와 노닥거
리다니....... 선친 보기가 부끄럽지도 않나! 에잉......!”
왕대인이 한바탕 설교성 질책을 하고 돌아서자 심대인이 다가왔다.
“용 공자, 나도 자네가 좀 걱정돼서 말이네만......, 자금을 빌려줄테니
사업을 확장해 볼 생각은 없나? 표국도 성내로 옮기고, 표사도 좀 구하고..
...., 그래서 좀 번듯하게 표국을 하는 거야. 이자는 최저로 해줄테니 그
걱정은 말고.......”
용유진에 대한 청주성 유지들의 평판이 예전보다 오히려 못해졌다고 해도
단 한 사람은 거꾸로 보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심대인이었다.
그는 첫 표행의 물주였고, 그것은 음모가 섞인, 그래서 당연히 실패할 수밖
에 없는 표행이었는데 성공하고 돌아온 것이다. 그 내막을 밝힐 처지는 아
니었고, 다행히 용유진도 그를 추궁하지 않아서 내심 안도하고 있던 그였다
. 그 이후 용유진을 다르게 보는 것이 당연한 처지. 몇 번의 표행을 더 용
유진에게 맡겼었기 때문에 신뢰는 더욱 깊어가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온 제의일텐데 용유진은 간단하게, 그러나 기분 상하지는 않을 정
도로 정중하게 제의를 거절했다.
“아직 좀 더 배우고 나서.......”
이유를 그렇게 붙이긴 했지만 사실은 빚을 지기 싫어서라는 것이 그의 진짜
이유였다. 빚더미에 눌려 결국 죽음의 길로 들어섰던 아버지의 경우를 그는
아직 잊지 않고 있었다. 물론 언젠가는 표국도 확장해야 하고 표사도 구해
야 할 것이다.
그러나 빚을 지긴 싫었다. 합리적인 일이 아니라고 생각은 했지만 빚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그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 박혀서, 그로서도 어쩔 수 없
었다.
“그래? 하는 수 없군. 하지만 언제든 마음이 달라지면 연락하게나.”
심대인은 자신의 제안이 거부당할줄은 예상을 못 했던 모양, 약간 불편한
표정이 되어 자리를 떴다. 저만치에서 미쳤냐느니, 자리를 보고 투자를 해
야 한다느니 하는 유지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심대인에게 충고하는 것이
리라.
용유진은 빙긋이 웃었다. 생각해보면 과거의 그날과 지금은 얼마나 달라진
것이냐. 그땐 은자 백 냥을 구할 곳이 없었다. 그를 보고는 동전 한 푼 내
놓을 수가 없다고 한 사람이 아까의 심대인이었다.
무공은 초절정일지도, 십대고수의 하나로 꼽힐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표사
로서의 그는 아직 한참 하수였다. 표사의 등급은 신용으로 매겨지기 때문이
다. 그리고 그는 한사람의 신용을 얻음으로써 적어도 한 점은 딴 것이다.
단지 한 사람이고, 단지 한 점이지만 아무 것도 없는 것과는 천지차이였다.
“뭘 혼자 싱글거리고 있어, 썩을 놈!”
왕개가 돌아왔다. 푹 젖은 것으로 보아 빗속에서 적지 않은 시간동안 돌아
다닌 모양이었다.
“네가 찾는 그 시시껍절한 놈은 사천(四川)으로 갔을 거란다. 강남보다 사
천 곡창지대가 좋다고 떠난 무리들이 일부 있었는데, 그중에 그놈도 있었다
더라.”
“사천 어디라던가?”
“그걸 어떻게 알아! 사천 쪽으로 간다고 했으니 갔겠지. 정말 갔는지 어쨌
는지, 중간에 자빠져 죽진 않았는지 난 몰라. 그 다음은 네가 알아서 알아
봐!”
용유진은 정중하게 포권했다. ‘사천으로 갔다’ 이 한 마디를 알아내기 위
해 왕개는 휘하의 거지 떼를 다 풀었을 것이다. 누구의 비밀도 아니지만,
단지 한 빈민의 행방이라는 것은 그가 평범한 때문에 오히려 알아내기 쉽지
않은 정보인 것이다.
“수고 감사하네. 그럼 나는 이만.......”
비룡에 올라타고 떠나는 그의 뒤에서 왕개가 고함을 질렀다.
“구걸 해먹기 좋은 곳이 어딘지 아냐?”
“어딘가?”
“사람 많은 곳이라는 게 당연하잖아, 이 멍청한 자식아!”
왕개의 또 다른 가르침인 셈이었다. 용유진은 말 위에서 뒤를 돌아보며 다
시 한 번 포권했다.
“고맙네. 그리고 선물도.”
왕개가 잠시 어리둥절해서 그를 보았다.
“선물? 무슨 선물?”
용유진은 박차를 가했다. 비룡이 그의 마음을 아는지 질풍처럼 달려서 거리
로 사라졌다. 멀리서 왕개의 고함소리가 아련히 들려왔다.
“야, 이 새끼야......! 이 도둑놈아......! 거지 잠자리를 훔쳐가냐......
! 야, 이......!”
거리가 멀어지면서 그 뒤를 이은 욕설이 안 들리는 것은 다행이었다. 왕개
는 평생 닦은 욕설 실력을 최대치로 발휘하고 있을 것이 틀림 없었다.
첫댓글 즐독합니다,
감사합니다
즐독하였습니다
ㅈㄷㄱ~~~~~`````````
감사합니다
잘밨어요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잘보고 있습니다
잼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독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