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에 들어가는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의 시
<해변의 묘지>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폴발레리의 해변의 묘지가 어떻게 탄생되었는지를 알게하는 이 글을 읽으며
미국이 있는 북아메리카 대륙 동쪽에는
사르가소해(Sargasso Sea)라고 불리는 바다가 있다.
대서양 한 귀퉁이에 독특한 모양을 띠는 바다이다.
지도를 보면 달걀처럼 타원형을 그리는 바다이다.
이 바다는 다른 지역보다 해수면이 1미터 정도 높다.
왜냐하면 적도 지방에서는 바람이 바닷물을 위로 보내고, 적도보다 위도가 높은 중위도 지방에서는 바람이 바닷물을 아래로 밀어내기 때문에 사르가소해에 물이 쌓이는 것이다.
이쪽에서 밀려온 바다와 저쪽에서 밀려온 바다가 서로 만나다 보니 바닷물의 높이가 높아진 것이다.
물만 쌓이는 게 아니라 적도 지방에서 밀려온 해조류와 중위도 지방에서 밀려온 해조류도 이곳에 쌓인다.
그래서 이곳은 거대한 해조류 서식지가 된다.
해조류가 바다를 덮어버린 것이다.
대기의 흐름도 이곳에서는 멈춰버린다.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한 적막만이 흐른다.
말로만 듣던 무풍지대이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은 석탄이나 석유 등 연료를 사용하여 배를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전으로 올라가면 순전히 노를 젓는 사공들의 힘이나 바닷바람의 힘을 이용해서 배를 움직였다.
대항해시대였던 15세기에서 18세기까지의 배들도 바람의 힘을 이용해서 먼바다로 나갔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콜럼버스도 혼쭐을 당했던 바다가 있다.
바로 사르가소 바다이다.
이 바다를 처음 만났을 때는 육지가 가까이 있는 줄 알았다.
바다 위를 떠다니는 해조류들이 워낙 많아서 마치 육지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눈을 속인 것이 고작 해조류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콜럼버스 일행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곧바로 자신들이 타고 있는 배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배가 움직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돛을 높이 팽팽하게 펼치려고 했지만 축 늘어져 버렸다.
바람이 안 불어서 그랬다.
바람이 안 불면 바다는 고요하다.
찰랑거리는 파도도 없다.
그러면 배가 흔들리는 일도 없고 배를 쥐어 잡고 우웩 하면서 멀미하는 일도 없다.
평안할 것 같다.
하지만 바람이 안 불면 바다는 고요하지만 배는 불안하다.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은 더욱 불안한다.
배가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배는 바다에 뜨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다를 가로질러 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배가 움직이지 않으면 존재 의미가 사라진 것이다.
존재 의미가 사라지면 불안해진다.
사르가소의 바다에 갇힌 배들의 운명이다.
바람이 불지 않는 무풍지대에는 물고기도 모이지 않는다.
물이 떨어지면 목말라 죽고 식량이 떨어지면 굶주려 죽게 된다.
그 유명한 항해자 콜럼버스도 사르가소의 바다에서 3주 동안 헤매다 겨우 살아 나왔다고 한다.
스페인어로 ‘해조류(sargazo)’라고 하는 사르가소의 바다는 바다의 사막과 같은 죽음의 바다이다.
바람이 안 부는 게 좋은 줄 알았다.
소풍 가기 전날 하늘을 바라보면서 제발 바람이 불지 말게 해 달라고 빌었다.
화창한 날씨가 연일 이어지기를 바랐다.
그러나 내 인생에 바람이 안 불었던 날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바람에 맞서서 싸워보려고 했지만 나는 바람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바람이 부는 대로 휘청거렸다.
취한 사람처럼 몸과 마음이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곤 했다.
어지러운 세상이었다.
날마다 멀미가 일어나는 세상이었다.
그게 다 바람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 몹쓸 바람만 없으면 만사가 평안할 것 같았다.
바람이 그치는 날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내가 살아 있으니까 바람이 나를 건드리는 것이다.
바람이 불어와야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도 그 사실을 잘 알았나 보다.
그의 시 <해변의 묘지>가 떠오른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