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 시집『의자』(문학과지성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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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록 시인을 유명하게 만들어 준 대표작을 다시 읽습니다
많은 문인작가들이 고독한 인생을 피력했지만
이만큼 서로에게 위안이 되라는 시는 드물었습니다
주위 사람은 울타리도 사다리도 아니며 뙤리나 의자였다는 일깨움 때문입니다
사랑도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서 보폭을 맞추어 가는 일이듯이
식구끼리는 싸우지 말고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에 의자 몇 개 놓아눈 것이란 말
광복절 78주년을 맞아 꺼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