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널드 레이건은 이론적 깊이는 얕았지만 1970년대 중반부터 제3세계에서 미국이 보여준 '무대응'을 비판해온 주요 인물이었으며, 미국 개입주의의 가장 설득력 있는 대변자였다. 1976년 현직 대통령 제럴드 포드에 맞서 공화당 후보 지명 선거에 출마한 레이건은 데탕트 개념 자체에 공세를 퍼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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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이란 이슬람 혁명과의 대립으로 카터 행정부는 점차 쇠약해졌다. 이어서 대통령직을 넘겨받은 레이건은 여러 조유의 안보 위협을 다음과 같은 구호 아래 하나로 통합했다. "더 이상 우리 자신을 속이지 맙시다. 소련이야말로 오늘날 이 모든 불안정의 원인입니다. 소련이 도미노 게임에 관여하지 않았다면 우리 세계에 분쟁지대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레이건은 미국이 대변하는 모든 가치와 소련 외교 정책의 대전략이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군건히 믿었다. 레이건에게 소련은 '선의 제국'인 미국의 안티테제, 즉 '악의 제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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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 행정부의 급진 우파에게 키신저의 대외 정책 기조는 '몰가치적'이기 때문에 문제였다. 반면 카터의 대외 정책 기조는 "잘못된 가치관으로 인한 혼동"의 표본이었다. 급진 우파는 이전 두 행정부의 대외정책을 공격하고 냉전과 관련해 새로운 접근 방식을 도입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미국의 라틴아메리카 정책을 활용하고자 했다. 로버트 케이건 같은 국무부의 급진 우파는 라틴아메리카에서 반공 전쟁을 수행해 "소련에 대항하는 전략적 차원의 전쟁뿐 아니라 미국의 올바른 정신을 위한 국내 전쟁"에서 승리하고자 했다. 미국의 국제연합 대사 진 커크패트릭은 레이건 행정부 내 신보수주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카터 대통령이 미국의 이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다음과 같이 비난했다.
카터 행정부는 라틴 아메리카 정치 체제의 기본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기에 라틴 아메리카에서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과소평가했습니다. 또한 한 번 무너진 권위가 자체적으로 회복되는 능력을 과대평가했습니다. 카터 행정부는 혁명 세력이 유익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의 목표와 동기를 착각했고, 라틴아메리카 정부의 진짜 문제를 이해하지 못한 채 그들이 폭력적인 전복의 대상이 되도록 방기하고 말았습니다.
1983년 레이건은 1979년 좌익 정권이 지배하던 카리브해의 작은 공화국 그레나다의 혁명정권을 향한 공세를 감행했다. 그레나다 혁명 세력이 내부 파벌 투쟁으로 자멸하자, 레이건 행정부의 급진 우파는 1983년 10월 제3세계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마침내 왔다고 생각했다. 10월 25일 그레나다를 침공한 미군은 수일 내에 그레나다를 장악하고, 그레나다 주민 10만 명을 통제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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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중미 지역에 끼친 영향은 끔찍했다 니카라과에서 약 3만 명이 사망했다. 역사학자 윌리엄 레오그란데가 지적했듯 이 수치는 인구 대비로 환산했을 때 미국이 남북전쟁에서, 양차대전에서 그리고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에서 잃은 인구를 합산한 것보다 많았다. 니카라과에서 1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으며, 경제는 통제할 수 없는 인플레이션과 엄청난 실업으로 신음했다. 조그마한 국가인 엘살바도르에서 전쟁의 영향은 더욱 심각했다. 약 7만 명이 사망했다. 암살 부대가 지역 곳곳을 돌아다녔고 마을과 개인의 삶이 파괴되었다. 엘살바도르 내전은 최근의 라틴아메리카 역사상 가장 잔혹한 사건이었지만, 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미국의 노력(10억 달러 규모의 군사 원조와 그 3배 정도 규모의 경제 원조)은 미미한 성과만을 남겼을 뿐이다. 1990년에도 엘살바도르 인구의 90퍼센트 이상은 여전히 빈곤하게 살았다.
비록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미국에서도 이 전쟁의 결과는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미국 의회를 우회해 콘트라 반군을 지원하려던 레이건 행정부의 시도는 이란-콘트라 사건으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신보수주의 의제의 영향력은 대중 사이에서는 물론이거니와 백악관 내부에서도 타격을 입었다. 레이건 측 인사들이 (이란이 레바논 이슬람 세력으로 하여금 미국인 인질을 석방하도록 압력을 가해주길 바라면서) 이란의 이슬람주의 정권에 무기를 팔았다는 사실과 그 무기 판매 자금을 니카라과의 반혁명 세력을 지원하는 데 사용했다는 사실은 레이건 지지자조차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었다. 반전 운동과 의회의 반발로 인해 이란-콘트라 사건은 임기 말미에 레이건 행정부가 대외 개입 정책을 갑작스럽게 철회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그러나 레이건 행정부의 세계관은 여전히 견고했다. 요컨대 냉전은 선과 악의 대결이며, 미국은 그 싸움에서 천사들과 함께했다.
- 베스타(2020). 냉전의 지구사 - 미국과 소련 그리고 제3세계. 옥창준 옮김. 에코 리브르.
첫댓글 미국의 해악이 알게 모르게 크죠.. 남미의 반미정부가 들어 서게 만든 것은 아이러니 하지만 적대 세력인 중소가 아니라 미국 스스로 자초한 것이란 걸 생각 하면 얼마나 아이러니 한지...
원래 제국과 제국의 주변부라는 지정학적인 특성상 절대로 곱게 못지냅니다
제국을 이루려면은 주변부부터 눌러야하죠.프랑스가 동아프리카에 하는 짓만 보더라도 으으..
정작 소련의 명줄을 사실상 끊은건 지미 카터였죠 브레즈네프가 아프간에 국력을 낭비한 결과 이미 소련은 스탈린 시절의 소련이 아니였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