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줄창 내리고 있다.
이런 날 서화실 지필묵은 습기에 화창함을 잃고
마르지 않아 그림도 그리기 어렵고 글씨도 빛을 잃는다
달달한 믹스커피에 직접 갈아 만든 계피를 넣어
한 잔 마시고 오랜만에 글을 쓰는 느낌이
살아있음의 생생한 평온을 가져다 준다
퇴직이후 맞는 여름은
내 생애 처음 맞는 여름처럼 특별하고
내 관상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꽃들이 가슴을 함빡 세상을 향해 열어젖혀
맘껏 내보이다가 제풀에 지쳐 또는 빛에 지쳐
해도 지기전에 스스로 고개를 먼저
수그려드는 빛 따가운 여름...
우리집 베란다의 꽃들은
이렇게 비가 줄창내려도 창가를 향하고 있다
꽃이 피면 꽃가루 알레르기로
안경안의 눈이 괴로운 계절이 지나가고
만개한 꽃들, 그리고 지는 꽃들과 대화를 나누는
이순의 나이가 되었지만
소풍길 아이들처럼 푸른 하늘같은 웃음은
퇴직하기 이전보다 더 자주 웃으니
내 입은 관세음의 미소인 초생달처럼
점점 스마일로 변하고 있다.
퇴직우울증이 있다는데 그것이 무언지 아직
나는 경험하지 못하고 있으니 좋은 현상이 아닐까 싶다.
근로자의 날...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석가 탄신의 날에 이어 스승의 날, 노인의 날, 현충일을 다 지나고
7월이 되니 제헌절 말고 딱히 기념할 만한 날이 없다
퇴직전에 이즈음 시기에는
휴가를 언제할 것인지 하는
휴가계획서를 작성하는 즈음이었는데
백수아닌 자유로운 백조가 되어 보니
여자혼자 여행하기 계획을 하고 있다.
최근에 나는 큰 상을 받았는데 상금이 좀 붙어 있어
서화실 식구들과 딸자식들에게 밥을 사주었다
그리고 도움을 받은 주변의 선생님에게도
약간의 인사를 하였는데
이것이 적당하였는지 아니었는지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도 없고
그냥 내 마음과 형편이 허용하는 한에서 했다
나는 현재 누군가의 선생이고 스승이다.
그리고 이순이 넘은 내게도
선생이 있고 스승이 있다
나이가 나보다 어려도 내가 모르는 것을
먼저 공부하거나 또는 먼저 경험한 사람들..
내가 모르는 삶을 살아나는 사람들은
모두 선생이다. 합죽선을 주문받아 부칠때에도
나는 함자 옆에 선생님이라고 붙여서 보낸다.
선생과 스승은 확연히 틀리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주변에 선생님들은 참 많지만
스스로의 모든것를 불살라 빛처럼 삶이 승화한 사람...
스스로의 모든것을 얼음처럼 녹여
상대를 감동시키는 겸손이 된 사람...
그런 아름다운 얼굴의 스승은 귀한 것 같고
내 마음에 아름다운 얼굴로 오래 남는 사람은
주변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내 삶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풀 한포기까지 나에게 신선한 깨달음을 주는 선생이라 할지라도
스승이라 부를 수는 없으며
학창시절의 아무리 고마운 선생님도 은사로 지칭될 수는 있어도
스승이라 표현 하기에는 좀 그렇다.
내가 실제로 만나지 못했지만
그 향기들을 영혼으로 느낄 수 있는........
정말로 마음에 아름다운 스승이라고
여길 수 있는 분들이 몇몇 있다
그 중의 한 사람은 장기려 박사이다.
평생을 가난한 이웃을 위해 인술을 베풀어 왔다는
그 분을 내가 마음에 아름다운 스승으로 삼는것은
남을 위해 헌신하면서 평생을 살으셨기 때문이 아니다.
그 분이 자신의 마음 안에 소중한 것을
목숨을 다해 평생을 지켰기때문이다.
그 마음에 소중한 것은 바로 진실하고 영원한 사랑이었다.
막사이사이 상을 받기도 한 그 분은
보통사람의 행복을 누리지 못했다.
왜냐하면 젊은 나이에 둘째 아들만 데리고 월남하여
그 이후로 줄곧 가족들과 떨어져 살았기 때문이다.
그 분이 말년에 말씀하길
<지난 45년동안 내가 불쌍한 환자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신앙의 힘도 컸으나 내 가족에 대한 간절한 사랑때문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불쌍한 이웃을 돕는 만큼 북에 두고 온 아내와 아이들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으리라고 나는 믿었습니다.>
주위에서 재혼하라고 숱하게 권유했지만
<우리의 사랑은 영원하며
육체의 없어짐과 관계없이 존재한다>
고 말씀하시며 이광수의 소설 <사랑>의 남 주인공 안빈의 모델로도......
사랑은 누구나 시작 하기는 쉬워도
그 사랑을 지켜가는 것은 누구나 못한다.
더구나 평생의 삶을 다하여 고통을 뚫고 한 길을 가기란.....
자신안의 많은 것들을 얼음처럼 녹여야 되기에 뼈가 저려야 하고
자신없이 지쳐가는 내면을 잘 추스려 열정을 불살라야 한다는 것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정말 알수 없는 형극의 길이니까......
성당에 나가는 나는 존경하는 신부님들도 많고
또 좋아하는 옛 스님도 많지만
마음에 아름다운 스승으로 삼아 본을 받을 수 있고 힘이 되는 분은
바로 <사랑의 힘>으로 <영혼의 길>을 걸어간 장기려 박사이다.
또 다른 한분은 다산 정약용이다.
나는 중 고딩때 이분에 대해 배울때는
이 분이 한자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저술을 남긴 대실학자라고 배워서
학교공부에 한창 정나미가 떨어지던 차라
관심을 별로 두지 않았다.
아마도 선생이 어김없이 했을
다산초당에 관한 재미난 에피소드나
긴박한 역사실화를 제가 들을 수 있었다면
아마 붓을 잡지 않고 순수학문을 택했을지도 모르겠다.
사춘기 나이에 총각영어선생이 좋아보이면 영어를 잘하게 되는 것처럼......
다산을 내가 마음에 스승으로 삼는 것도 장기려박사님처럼
온 몸과 영혼으로 스스로의 밖에서 다가온 고통과
스스로의 안에서 일어나는 참혹한 절망감과 싸운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꺼지지 않은 밑바닥 민중을 위한 희망의 씨를
지금도 세상에 뿌려주기 있기 때문에............
지금도 내 책상에는 조그마한 다산선생의
유배지의 일기가 항상 놓여있다.
추사 김정희는 당쟁의 희생으로 유배에 처해졌기에
뼈대있고 격조있는 예술인으로 내 마음에 새겨져 있지만
다산은 평범한 사람을 위한 좋은 세상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의 소신을 관리들에겐 목민심서란 책을 짓고 평범한 서민들에겐
시를 지어 읊어 나누었던 그 청정함이 미움받아 유배되었기에....
스스로 고난의 삶을 선택하여 새로운 세상을 열어나간 스승이 된 것이다.
십여년 전 어느 날.........
작품의 소재거리를 찾아
우리 선비들의 문집을 뒤적거리다가 우연히 다산의 높은 학문이 아닌
유배지에서의 삶을 포함한 파란만장한 생애를 접했을때 마음이 찡했다.
왜냐하면 생사고락의 이치를 이십세에 달통하여
별처럼 그냥 막연하게 쳐다보이던 대학자가
유배지에서 네 살 배기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비참하고 서럽고 애통한 아버지로서의 정을 절절히 토하고
참혹한 외로움의 극한환경에 처해있으면서도
자기보다 더 외로운 처지의 흑산도의 유배된 사람을 생각하는
너무도 인간적이었고 정이 많은 평범한 사람의 하나였으니까....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어둠에 처해졌지만 백절불굴의 의지로
스스로가 빛이 되어 후세의 우리들이 좋은 사고를 할 수 있게 한 사람.
우리들이 예상하지 못한 곤란한 환경에서 방향감각을 상실할때
이런 아름다운 스승들로 해서 바른 방향을 잡거나
인생의 물꼬를 변화시키기도 할 것이다.
멀리 눈을 돌리지 않아도
우리 땅에 스승이라 서슴없이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다.
아마도 내가 잘 모르는 스승들을 찾아보면 많이 있을 것이다.
지금의 별로 깊지 않은 어둠과 절망스럽지 않은 상황도
때론 버거워 하는 정신적 춘궁기 같은 나의 나이때
참혹한 절망감과
잠과 밥을 잊을 정도로 외로움에 처해졌으면서도
언제나 영혼을 사랑과 신념에 몰두했던 두 사람이
내 마음에 언제나 아름다운 얼굴의 스승이다
훌륭한 스승들.........
선택과목인 문자학을 공부하기전엔 훌륭함이란
남보다 출중하고 뛰어난 선각을 말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훌륭은
홀홀히 스스로를 잘 버티어 이겨낸 것을 의미한다.
내 마음에 아름다운 스승은 그 분들이겠지만
정말로 진실한 내 마음의 스승은
바로 내 스스로 일 것이다.
내가 산산히 태워 승화시켜야 할
내 안의 숨은 에너지와
아낌없이 뼈 아프게 녹여 삶과 동화시켜야 할
나도 모르게 완고한 굳은 아집의 껍질들...
평생을 다하여 얼만큼 불태우고 녹여서
새깃털 처럼 가볍게 날아갈 수 있을까.........
어쩌면 비가 줄창 내리는 월요일 오전..
이번 주 홀로 여행을 계획하는
나의 삶도 나도 모를 그 무언가를 녹여서
가볍게 날아갈 깃털을
하나하나 준비하는 과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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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선물하고 싶다고 청하는 분이 있어
그 분이 희망하는대로
자네 집에 술익기 시작하면... 한시도 쓰고
요즘 한창 피는 능소화도 해보았다
작은 솜씨로 누군가 즐거움을
느끼는 일을 하는 것도
나이를 잊게 해준다.
첫댓글 사랑하기는 쉬워도
지켜가기는 어렵다ㅡ란
말이 와 닿습니다ㆍ
사랑한다! 는
고백도
맹세도
한 적없었으니 지킬 것도 없었던
만남
그리고 결혼
의기투합해서 잘 살아왔다
싶어요
아직도
내겐 돼지 거세하는 일보다
어려운 ㅡ사랑한단 ㅡ그 말 ㅎㅎ
거리 두기 때문에
자연보다
사람이 더 그리운 시절이
되어버린 것같아요 ㆍ
늘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보약이에요
아직 선생님이라 불러지는
늘 평화님 디게 부러운 것 있죠ㆍ
스승에 대한 글 잘 읽었습니다ㆍ
사랑한다는 말을 남발하고
사랑하고 싶다는 염원도 너무 가득차게 하고
사랑에 관한 작품도
전시회하고도 남을 만큼 하고..
사랑을 담아 사랑하자
미루지 않고 사랑하자는
손수건도 만들어 나누고..
그래도 아직도 까마득한게
사랑이네요
어쩌면 이미 사랑이
내 안에 와 있는데 밖에서만 찾았는지 몰라요
그래서 내 안의 사랑이
혼자 외로워했는지도...
내 안의 사랑과
즐겁게 랑데뷰하며
행복한 노후가 되리라 마음먹어요
하여님도 나도
즐겁게 살아가기란
마음보약 듬뿍 먹고
더욱 행복하기예요 ^^
글 잘 읽었습니다.
글에서 오는 느낌으로
퇴직을 한 것과
한가함과 무료함이 없이
서예를 연마한 것으로 근래에 상을 받았다는 것,
그 다음은 스승으로 삼을 수 있는 분,
장기려 박사와
초당 정약용을 스승으로 삼으신다니
늘평화님의 생활과
정신적인 면을 잘 표현 하셨네요.
제가 첨 늘평화님에게서 느낀 모습
그대로입니다.
열정과 지속성 있는 님의 모습에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상황은 잘 모르지만,
한 번 뵙고 싶은 분이어요.ㅎ
한창 근무할때 심신 고단할때
콩꽃님의 수필방을
한번 씩 들르면
마음에 보약 한 모금~
산소 열 모금
얻는 느낌이었고
퇴직하면 한번 오프모임도
가봐야지 했는데 퇴직하니 이젠
방장소임 내려 놓으셨더군요~^^
최근 상을 받은것은 맞지만
서예로 받은것은 아니구요
다른걸로~~^^
인연과 마음이 있으면
시간의 바퀴따라 언제든
좋은 분들은
뵈올 기회가 오리라
믿는답니다
고맙습니다
평온한 하루 되시길요~~^^♡
언급하신 두 분다 워낙 잘 알려지신 존경할 만한 삶의 지침이 되시는
분들인데, 가까운 시기를 살다가신 장기려 박사님이 제 마음에는
더 와닿더군요. 전혀 개인적인 교류는 없었지만 그 분 살아생전에
한 걸음이라도 더 가까이 가지못했음을 아쉬워 할 정도로,
훌륭했던 그의 삶에 비하면 저야 한갗 미물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