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보지 못해 나는 병들었다
헛헛한 꽃들이 마른버짐처럼 피어나는 한 철 송홧가루 날리는 독백의 산 그림자 속에서 나는 변절의 수상스런 기포를 끊임없이 뿜어 올리는 눈먼 쏘가리였다 청춘의 푸른 가시에 상처 입은 맨살 위로 축축한 안개에 불을 지르는 자학의 방화범, 얼른 잿더미로 화해버리지 못해 안달하곤 하던 번제의 부정한 제물이었다 솔잎흑파리에 침식당한 소나무숲을 가로질러 은. 백. 회색의 나무들을 기르는 긴 강이 비에 젖을 때 내 광활한 불의 나무숲도 그 중심으로 푸르게 젖어갔다 살아 있다면 흐르는 푸른색으로 보호받고 싶었다― 짙푸른 밤의 바다뱀 자리가 눈부신 햇살을 인 자작나무처럼 별들은 사원 목어의 빈 배를 두드리며 죽은 나무숲의 뿌리를 적시고는 곧, 지하의 수맥으로 흘러갔다 봄볕에 투사된 연녹색 이파리 위에서 봄볕보다 더 투명해져가던 카멜레온의 진정한 색은 무엇이었을까― 무성한 수풀이 가르마처럼 갈라지며 종다리 우짖는 창천의 하늘 아래로 한 마리 순결한 잎은 마지막 내려앉은 불은 삐라처럼 빛났다 엄청난 수압의 폭포를 뚫고 둥지를 키우는 물까마귀의 날개처럼 몰래 키워 온 내 어린 철쭉의 붉은 꽃잎도 폭설에 부러지는 예각의 솔가지로 눈멀어갔다 강의 상류로 흘러가는 일점 바람은 뛰어오르는 잉어의 아가미를 꿰어내고 봄내, 거기서 나는 죽어도 좋았다
[56억 7천만 년의 고독], 문학과지성사,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