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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돈 냄새가 나!" 반구대는 코를 하늘로 올리고, 콧구멍을 눈에 보이도록 벌름거리면서 그렇게 말했다. "엄청난 황금이 움직이려고 해. 숨막히게 강한 냄새로 보아 이건 정 말 엄청난 황금이야." "또 그러십니까, 형님!" 백구말이 투덜거렸다. "요 전날도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 믿고 털러 들어갔다가 그 수모를 당했는데.....!" 황구이가 옆에서 말을 거들었다. "그게 수모냐? 몰살이지. 우린 몰살된 거야. 겨우 다시 살아나긴 했 지만...., 지금 우리 몸이 몸이냐? 누더기지. 난 요즘 안 아픈 데가 없어. 천하의 천마불사신공(天魔不死神功)이라도 우리처럼 척하면 죽 고, 툭하면 죽고 그러면 견뎌내겠냐, 어디." "반구대는 뽀드득 소리가 나도록 이를 갈아붙였다. "이게 다 그 용가 놈 때문이야. 그때 천마령(天魔鈴)만 제대로 손에 넣었으면 우리가 지금 이 꼴은 아니었을 거다. 지금쯤 마교재건(魔敎再 建)의 영웅이자 천마대종사(天魔大宗師)로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는 데.... , 그놈이!" 백구말이 탄식을 했다. "죽지 않으면 단 줄 알았더니..., 아무리 안 죽으면 뭘 합니까, 무 공이 별론데....!" "우리 무공이 왜 별로야!" 반구대가 발끈 화를 냈다. 그러나 죽다가 살아난 처지라는 것을 생 각하고 다시 약간 의기소침해져서 덧붙였다. "만난 놈들이 하필 다 고수라서 그렇지." "형님, 그만 중주로 돌아갑시다." 여태 잠자코 있던 흑구삼이 말했다. "그래도 우리가 그쪽에선 꽤 날렸잖습니까. 거기 있을 땐 그래도 사 지는 멀쩡했는데, 이름 좀 날려보겠다고 천하를 떠돌다가 지금 이게 뭡 니까. 다 병신 됐잖아요." 반구대가 손을 쳐들어 흑구사을 향해 뻗었다. 그리고 검지손가락을 까닥거렸다. 흑구삼이 그 검은 얼굴에 잔뜩 싫은 표정을 하며 얼굴을 가져다 대었다. 반구대는 아야! 소리가 나오도록 강하게 흑구삼의 코를 비틀었다가 놓아주었다. "넌 평소엔 말도 없는 것이 어쩌다 한 마디만 하면 불평이고, 입만 벌리면 김 빠지는 소리만 하더군. 생각해봐라. 지금 우리가 병신 됐다 는 소문은 중주에도 파다해. 돌아간다고 누가 반겨줄 줄 알아? 평소에 원한 있던 놈들이 떼거지로 와서 밟으려고 들 거다. 그리고 넌 오기도 없냐? 이름을 날리려고 나왔으면 악명이라도 날려야 하고, 돈 벌어보 겠다고 나왔으면 벌어야 하는 거다. 이대로 그냥 돌아갈 순 없어. 난 죽어도 그렇게 못해!" "그럼 어떻게 하시겠다는 겁니까?" "내게도 생각이 있지." 반구대는 길 옆 바위에 앉더니 세 아우를 손짓해서 불렀다. 그리 고는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왜 이 길로 온 줄 아느냐?" 그의 눈이 백구말을 향해 있었기 때문에 그가 대꾸했다. "그냥 오다 보니 이 길 아니었습니까?" 반구대가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백구말의 창백한 얼굴이 일그러졌고, 곧 그의 코가 표정보다 더 일그러졌다가 펴졌다. 반구대는 흑구삼을 보 았다. 흑구삼이 눈만 깜박거리고 있다가 하는 수 없이 대꾸했다. "모르겠는데요." "알려고 노력이나 좀 해봐라!" 흑구삼의 코가 두 번째로 비틀어졌다. 황구이는 반구대와 눈을 마주 치지 않으려고 먼산을 보았다. 그러나 언제까지 피할 수는 없는 노릇, 그는 불안하게 눈을 굴렸다. 반구대가 계속 노려보자 하는 수 없이 입 을 벌렸다. "형님이 이쪽으로 오신 것은...." 그는 반구대의 눈치를 살피며 느릿느릿 대꾸했다. "경치가 좋아서... 가 아니고....." 그는 어색하게나마 웃으려고 노력했지만 반구대는 웃지 않았다. "이쪽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도 아니고......." 반구대가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황구이의 이미에서 땀이 흘러내 렸다. "이곳이...., 이곳이 도화령이기 때문에.....!" 반구대의 손이 멎었다. 황구이가 눈에 빛을 발하며 얼른 말을 맺 었다. "꽃구경을 오신 겁니다. 그 동안 쌓인 피로를 풀자는 의미에서!" 반구대가 번개처럼 손을 놀려 황구이의 코를 잡았다. "모르면 모른다고 해라!" 황구이의 몸이 코를 따라 한 바퀴 돌아서 길가에 풀섶으로 나뒹굴었 다. 그는 코를 부여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투덜댔다. "그냥 말해 주시면 될 것 가지고..." 그러다가 눈을 크게 떴다. 그가 떨어진 곳에 사람이 누워 있었던 것 이다. "이게 뭐야!" 풀섶의 사람은 그냥 누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피투성이가 되어 혼 절해 있었다. "형님, 여기서 누가 행인을 턴 모양인데요? 어! 저기도 있네? 저기 도!" 정신을 잃은 채 뒹굴고 있는 사람은 십여 명이나 되었다. 아무리 그 들이 얘기 중이었다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데 눈치를 못 챈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더 이상한 것은 이 사람들이 도적들에게 당해서 털리고 쓰러져 있는 사람들로 보기에는 너무 인상이 흉악하다는 것이 었다. 더구나 그들 곁에는 무기들도 떨어져 있지 않은가. 반구대가 손을 흔들었다. "어디 한 놈 깨워서 물어보자. 아무래도 이놈들이....!" 그의 짐작대로였다. 그가 찾고 있는 인물들, 그가 굳이 도화령으로 온 이유가 된 그 인물들, 바로 도화령의 녹림도들이었다. "표사 한 놈하고...., 노인 셋하고......, 수염 난 사내놈이.......!" 뺨을 여러 대 맞고야 정신을 차린 졸개 놈은 원래 눅신하게 얻어맞 은 데다가 방금 황구이에게 뺨까지 맞아서 입 안이 터진 모양, 발음도 정확하지 않게 띄엄띄엄 말했다. 반구대가 성질을 버럭냈다. "그 다섯 놈에게 열 놈이 얻어 터졌단 말이지?" "그게 아니고...." "그럼 또 있었단 얘기냐?" "그 중 수염난 놈 하나에게 .... , 몽둥이로..., 개 패듯이..., 아 니 개 맞듯이....!" "누군지는 모르고?" "금..., 금 그릇을 가진....놈이었는데....!" 반구대가 입을 벌렸다. 그의 아우들도 입을 모아 합창하듯 소리쳤다. "진 장자!" 반구대는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과연 놈이 여길 지나갔군. 잘됐다. 아니, 잘된 건 없지만.... 하여 간 여기서 이놈들을 만난 것도...." 한참 혼자 중얼대더니 그는 아우들을 보며 말했다. "잘됐다. 원래 이 길로 온 것은 여기 이놈들을 만나러 온 거였다. 아 니, 이놈들을 꿇리려고 온 거지. 우린 여기 도화령을 점령하는 거다." "뭐하게요?" "녹림산채를 점거해서 뭘 하겠나? 당연히 도적질을 하려는 거지." "녹림도가 된다는 말씀입니까?" "강도가 산적으로 변한들 뭐가 이상한가!" 반구대는 손을 쳐들어 계속되는 질문을 봉쇄한 다음 말했다. "우린 그 동안 우리끼리만 일을 벌여서 실패했었다. 내가 곰곰이 생 각해봤는데 결론은 이제 우리도 부하를 모아야 한다는 거다. 특히 이번 일을 하려면 사람을 모으는 것이 필수적이다." "어떤 일이요?" "당연히 왕소팔의 짐을 약탈하는 거지 뭐겠나!" 황구이, 흑구삼, 백구말의 입이 동시에 벌어졌다. "미쳤습니까?" 백구말이 설명했다. "왕소팔의 짐이라면 엄청난 표사들이 따라붙을 겁니다." 황구이가 보충했다. "진 장자도 그 중 하나라잖아요." 흑구삼이 결정타를 날렸다. "우린 진 장자 하나도 못 당합니다. 여기 애들도 그 하나에게 당했 다잖습니까." "누가 얘들만 데이고 한다고 했나! 계획을 다 듣고 떠들어라, 떠들 어도!" 반구대는 매우 기분 나쁜 표정으로 설명했다. 어차피 그들에게는 쉴 곳이 필요하다. 녹림말고 어디가 더 쉬기 좋 을 것인가. 여태까지는 고수들만 상대하느라 실패가 많았지만 중간 규 모의 녹림산채 정도면 그들 넷으로도 충분히 점거 가능하다. 그리고 그 걸 기반으로 손 좀 쓰는 애들을 모아서 세력을 규합, 거사를 준비하는 거다. 필요하면 다른 녹림채와 연합할 수도 있다. 다른 건 다 관두고 우리에게 산채가 생긴다는 걸 생각해 봐라. 심부름할 수하가 생기는 거다. 마지막 설명이 세 사람의 마음에 매우 흡족하게 받아들여졌다. 황구 이 이하 세 사람은 왕소팔의 표물 약탈 건에 대해서는 불안해하면서도 산채가 생긴다는 것에 대해서는 대단히 좋은 계획이라고 맞장구를 쳤 다. "심부름꾼은 꼭 있어야 해요. 그 동안 우리 막내가 고생 많이 했습 니다." 항구이가 백구말을 생각해 주는 것처럼 얘기했다. 하지만 속셈은 딴 데 있다는 것이 금방 드러났다. "전 심부름꾼보다는 계집종으로 해주세요." 계집종, 그 한 마디에 결론이 났다. 그들은 금방 생기가 돌아서 눈을 번뜩이며 졸개놈을 닦달했다. "앞장 서! 네놈 두목에게 가자!" "저, 저기 있는데요. 저기 제일 많이 맞아서 곤죽이 된......" 일은 매우 쉬워졌다. 중주사견은 도화령 녹림채의 무리들 중 일어날 수 있는 자는 일으켜 세우고, 못 일어나는 자들은 일어난 자에게 업게 해서 그들의 산채로 끌고 갔다. 산채라고 해야 서른 명 남짓 있는데, 그 중 다섯은 여자고, 또 다섯은 노인, 아니면 아이라 그들에게 대항할 만한 자는 십여 명밖에 없었고, 중주사견이라는 이름을 듣자 그나마 대 항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반구대는 산채에서 가장 그럴듯하게 지어진 통나무집 마루에 걸터앉 아 그 앞에 무릎 꿇은 도화령 녹림도들을 굽어보며 흐뭇한 미소를 흘 렸다. "오늘부터 내가 채주다. 알겠나!" 우렁찬 대답 소리가 나왔지만 그는 짐짓 꾸짓었다. "대답소리가 적다는 건 불만이 있다는 뜻인가?" 아까보다 배나 강한 대답이 나왔다. 반구대는 흐뭇한 표정을 애써 감추며 세 아우를 소개했다. "여기 세 아우들이 이, 삼, 사채주다 알겠나!" 죽음을 겁낸 우렁찬 대답. "그리고 오늘부터 여기는 도화채(挑花寨)가 아니다. 알겠나!" 이번에는 대답이 반쯤 나오다가 끊겼다. 황구이가 윽박질렀다. "이것들이 대답을 이 따위로밖에 못하나!" 그리곤 반구대에게 돌아서서 물었다. "이름을 뭘로 바꾸실 건데요?" "마교(魔敎)!" "예?" "천마교(天魔敎)와 십만마교(十萬魔敎), 이 둘 중에 어느 이름이 더 좋은지 너희들도 한번 생각해봐라." 백구말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농담이시죠?" "지금이 농담할 때냐?" "그러게 말입니다. 그러니 묻는 거죠. 그래도 농담이시죠?" "농담이 아니다. 난 여기에서부터 마교 재건운동의 첫 발을 디딜 작 정이다." 백구말은 울상을 지었다. 어떻게든 반구대를 말려야겠다는 결의가 얼굴에 가득했다. "좀 큰 다음에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지금 마교라고 간판 걸었다 간 인근의 백도(白道)무리에 관군(官軍)까지 벌떼처럼 일어나서 덤빌 텐 데요?" "그럴까?" "불을 보듯 뻔하죠." 반구대는 잠시 고민하더니 한숨을 지었다. "뜻은 있으나 능력이 모자라니 하는 수 없군. 이름 바꾸는 건 잠시 보류하고, 일단은 채주로 참기로 하지. 좋아, 채주로서의 첫 명령을 내 리겠다. 우리는 이제 크게 한 건 함에 있어서......"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오연히 사방을 쓸어보다가 한 곳에 시 선을 멈추었다. 도화채의 서른 명 식솔들과 세 아우가 그의 입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반구대는 단 하나, 도화채의 여인들만 보고 있었다. 그 중에도 한 여인에게 그의 시선은 고정되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입이 감탄으로 벌어졌다. "이 촌구석에 저런 미물(美物)이 있다니!" 갑자기 왜 그러나 해서 그이 시선을 따라가던 백구말의 시선도 같은 장소에서 멈추었다. 황구이, 흑구삼의 시선 역시 그랬다. 특히 평소에 도 여자를 밝히던 백구말의 경우는 보는 순가, 이미 침을 흘려대고 있 었다. 냉정히 말하자면 미인은 아니었다. 천하절색(天下絶色), 절세가인(絶 世佳人), 침어낙안(沈魚落雁)에 수월폐화(羞月閉花) 등등의 단어들이 어울리는 여인은 더욱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의 전신에서는 묘한 색감 (色感)이 흘렀다. 약간 비대해 보일 정도로 통통한 몸매를 꽉 끼는 옷으로 감싸고 있 어서 튀어나올 것처럼 도발적으로 보이는 것도 그랬고, 약간 사시(斜 視) 끼가 있은 듯 초점이 맞지 않는 눈가는 보는 사람의 머리조차 텅 비게 만들 정도의 백치미가 고여 있었다. 아담한 코 아래로 두꺼운 입 술, 그 아래로 둥근 턱까지 흐르는 곡선 또한 전통적인 미인의 조건과 는 한참 멀었지만 다른 방향으로 완벽한 곡선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넘치는 듯 모자라는 듯한 윤곽에서 자극적인 색기(色氣)가 강렬하게 발 산되고 있는 것이다. 백구말은 헐렁한 바지 앞자락이 벌써 팽팽하게 되어 있는 것을 발견 하고 스스로도 놀랐다. 옆을 보니 황구이와 흑구삼, 반구대도 마찬가지 였다. 강호를 떠돌며 미혼공(迷魂功), 혹은 색공(色功)을 익혔다는 요녀 (妖女)들을 상대할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평소에는 머리는 잘 돌아간다고 자부하 는 편이었지만 지금은 끓어오르는 욕망이 기름칠을 해서 더욱 잘 돌아 가는 것 같았다. 반구대가 저 여인을 독차지하려고 할 것은 분명하다. 그걸 막으려면 살인이라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도 그렇다시피 반 구대도 불사의 몸 아닌가. 공존을 모색해야 할 시기였다. 그는 반구대 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대형, 아니 대채주(大寨主)님! 대채주님이 먼저 맛을 보시죠. 그 다 음에 우리 아우들에게도 기회를 주시면...." 그는 말을 채 못다 잇고 나뒹굴었다. 반구대가 아우들에게는 일찍이 선보이지 않았던 강력한 일권을 그의 턱에 먹였던 것이다. "나랑 구멍동서를 하자고? 발칙한 놈!" 이미 구멍동서를 안 했던 것도 아니고, 그 정도 말을 듣고서 화를 낸 적도 없었으며, 더욱이 발칙한 운운의 단어는 써본 적도 없었던 반 구대였다. 하지만 이제 한 산채의 주인이 되면서 일차 변했고, 저 여인을 보면서 완전히 바뀌어져 버렸다. 그는 어제의 반구대가 아니었 던 것이다. "너!" 여인은 생긴 것처럼 멍청한지 자기를 부르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반 구대가 다시 손으로 지적하며 불러서야 그를 보았다. "저 말인가요?" 위엄을 잡고 호통치듯 불렀지만 여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반구대의 말투는 단번에 녹아서 흐물거렸다. "그래, 너 이 귀여운 것아, 네 이름이 무엇이냐?" 여인은 잠시 어물거리더니 짧게 대꾸했다. "옥련(玉輦)!" "옥련이라고? 옥으로 만든 손수레? 이름이 어째 그러냐?" 여인은 이번에도 짧게 대꾸했다. "아무나 다 타니까요." 반구대는 순간 인상을 썼다. 그리고 금방 풀었다. 여인은 보통내기 가 아니었던 것이다.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많이 굴러먹은 년이니 기교도 끝내줄 것이다. "옥으로 만든 수레는 아무나 타는 것이 아니지. 그런데 이 산채에서 네 위치는?" 옥련이 한 사내를 가리켰다. "저놈 아래." 옥련의 위. 말하자면 옥련을 요즘 타고 있던 사내는 반 곤죽이 된 도산호였다. 즉 옥련은 이 산채에서 채주 전용 수레였던 셈이다. 반구 대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넌 이제 내 거다. 불만 없겠지?" 옥련은 고개를 돌렸다. "마음대로 하세요!" 튕기는 듯한 그 모습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단지 반구대가 그녀에게 혹해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의 무관심한 태도는 또 그 것대로 색기가 흘렀다. "너는?" 반 곤죽이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의 입가에 무언가 이 상한 표정이 스쳤던 것을 반구대는 예리하게 느꼈다. 단지 그게 뭔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여자를 빼앗긴 사내가 당연히 보 이는 분노라고 생각했다. '분하기도 하겠지.' 누군들 저런 요물을 빼앗기고 분하지 않을 것이냐. 반구대는 넓게 이해하고 넘어갔다. 그리고 여인에게 손짓해서 가까이 오자 단숨에 허 리를 잡고 옆구리에 꼈다. "자, 이제 난 바쁘니 다들 가서 일 보도록! 얘기는 나중에 하자. 해 산!" 반구대는 그후 이틀 동안 매우 바빴다. 벗어놓은 옷을 입을 틈이 없 어서 식사도 침상에서 해결할 정도로 바빴다. 당연히 옥련도 함께 바빴 는데, 주고 움직이는 쪽이 반구대여서 그녀는 훨씬 덜 지쳐 있었다. 아 니, 둘 다 힘든 일을 같이 했어도 반구대보다는 그녀가 이 일에 더 재 능이 있었기 때문에 같은 열정을 가지로 일을 했어도 반구대 쪽이 훨 씬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틀째 저녁, 옥련이 다시 손을 뻗쳤을 때 반구대는 그 손을 밀어내고 돌아눕는 수치스런 짓을 하고야 말았다. "나 좀 쉬자, 쉬어. 이러다가 죽겠다." 하지만 옥련의 손을 쉬지 않았다. 환장할 일은 피죽처럼 노곤한 몸 이 그녀의 손에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반구대는 침상 반대편으로 기어가며 신음했다. "사람 살려, 나 좀 살려주라!" 그를 불쌍히 여겼는지 옥련의 손이 딱 멈추었다. 그리고 더 이상 집 적거리지도 않았다. 그게 오히려 불안해서 반구대는 돌아보았다. 옥련 은 침상 구석에 하얀 등과 엉덩이를 보이며 걸터앉아 있었다. 반구대의 마음속에 깊은 후회와 수치심이 몰려들었다. 여자 하나 만족시켜 주지 못하고 어찌 사내라 할 것인가. '내가 이러고도 대명 자자한 중주의 점박이냐. 부끄럽도다.' 옥련에게 손을 뻗쳐 위로하려고 하다가 그는 손을 멈추었다. 몸을 반쯤 일으키는 순간 현기증이 엄습해왔기 때문이었다. 공포감도 함께 였다. '이러다 정말 죽겠다!' 그는 작전을 바꾸어서 옥련에게 말했다. "우리 다른 식으로 놀아보는 건 어떻겠느냐?" 옥련이 돌아보지도 않고 낮게 물었다. "어떻게?" "그... 왜 너 혼자 하는 모습을 내가 구경하면서 논다거나...... 응, 너 혹시 춤은 못 추느냐? 네 춤을 한번 구경하고 싶구나. 갑자기." "춤은 못 춰요." 옥련은 딱 잘라 말했다. 반구대는 땀을 삐질삐질 흘르며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그럼 다른 건 뭐 없느냐? 네가 좋아하는 거. 그게 뭐든 맘대로 하 게 해주마! 하나만 빼고." "하고 싶어하던 게 있긴 있는데....." "뭔데? 말해봐라. 뭐든 허가하마. 하나만 빼고." 갑자기 옥련이 돌아섰다. 그녀의 눈에 분노의 빛이 일렁거렸다. 반 구대는 혹시 자신에게 향한 것이 아닐까 두려워했지만 곧 이어진 그녀 의 말을 듣고 크게 안심했다. "도산호, 그놈을 꿇려놓고 채찍으로 갈기고 싶어요." "그놈이 네게 뭔가 못된 짓을 한 모양이구나." 옥련은 짧게 이유를 댔다. "그놈은 악마예요." 반구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면 두들겨 주지 않을 수가 없지. 그런데 네가 때려서 어디 아 프기나 하려나? 내가 대신 해주면 좋겠지만.....!" 그는 말 실수를 했다는 듯 얼른 입을 막았다. 이 지친 몸으로 채찍 질까지...... 미친 놈. 다행히 옥련에게는 방법이 있었다. "다른 사람을 불러다가 시키면 되지요. 저는 그놈이 맞는 걸 보고만 있어도 좋아요." 채찍질이 되는 동안은 편히 쉴수 있고, 반구대 또한 그런 구경은 싫어하지 않는지라 일은 금세 진행되었다. 반 곤죽 상태에서 조금 회복 된 도산호가 묶여서 침상 앞에 꿇려졌다. 그리고 바짝 말랐지만 원래는 기골이 제법 튼튼햇을 것처럼 보이는 사내 하나가 채찍을 들고 섰다. 반구대와 옥련은 얇은 이불 하나로 몸을 가리고는 침상에 앉아 지시를 내렸다. "매우 쳐라! 만약 손에 사정을 봐준다면 너도 같이 칠 것이다." 사내는 그런 걱정은 말라는 듯 싱긋 웃더니 채찍을 손에 단단히 감았 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 내려치기 시작했다. 단번에 살점이 떨어져 나 가고, 방 안에는 도산호의 비명 소리가 가득 찼다. 반구대는 흥미롭다는 듯 구경하다가 옥련에게 물었다. "저놈, 매우 치라고 시키긴 했다만 정말 심하게 치네. 저놈 이름이 뭐냐?" 옥련은 채찍과 핏방울, 갈라지는 피부에 홀린 듯 눈을 떼지 않은 채 대충 대꾸했다. "당삼곤이요." "당삼곤이라....." 반구대는 모르는 이름, 그는 그 이름보다 도산호의 얼굴, 지금 그가 맞으면서 짓고 있는 표정에 더 관심을 가졌다. 고통에 일그러지고 비명 을 터뜨리면서도 문득문득 보이는 이상한 표정, 그것이 아무래도 그의 신경을 긁는 것이다. '분노겠지.' 한바탕 채찍질과 비명의 합주가 끝나고, 옥련은 비로소 만족한 듯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반구대도 겨우 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 방해 자가 찾아왔다. "대형, 아니 대채주님!" 백구말이었다. 그는 말을 반구대에게 하면서도 눈은 침상 한쪽에 쓰 러져 자는 옥련의 윤곽을 쫓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반구대는 화낼 기운 도 없어서 나른하게 물었다. "웬일니냐?" "애초의 목적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애초의 목적, 뭐?" "왕대야의 짐을 약탈한다는.... 저희야 뭐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 하고 있습니다만 그냥 넘어가는 건지 궁금해서요." 반구대가 벌떡 일어났다. 이불이 흘러내리고 그의 나신이 드러났다. "그걸 왜 그냥 넘어가! 당연히 추진해야지!" "어떻게 추진합니까? 계획이.....?" 반구대는 잠시 생각했다. 특별히 계획이랄 게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 다. 하지만 일단 뭐라도 하긴 해야 했다. 그래서 마교 재건은 몰라도 산채만이라도 크게 늘려야 했다. 그는 짧은 순간이지만 권력의 단맛을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권력의 속성은 확대를 지향하는 법이었다. "일단 졸개들을 풀어서 정상 영업을 하도록 해. 그리고 너희 셋 중 하나만 산채에 남아서 일을 총과하고, 나머지 둘은 밖에 내보내라." "내보내서 뭘 합니까?" "하나는 북경으로 가서 거령장을 감시하고 정보를 얻어오는 거다. 다른 하나는 은밀히 동도(同道)를 규합해!" 백구말이 어떨떨해서 물었다. "우리에게 동도들이 어딨습니까?" "녹림도 있잖아, 녹림도! 우리도 이제 녹림도 아니냐. 큰 건이 있으 니 같이 하자고 꼬셔보란 말이다." 백구말은 한숨을 내쉬었다. 산채 점거 이틀만에 그의 대형은 십 년 동안 녹림에서 구른 사람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는 돌아서서 나갔다. 죽어도 자신은 소위 그 '동도규합'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그의 이 작은 소망도 반구대의 한 마디로 무산되어 버렸다. "동도 규합은 네가 해라. 네가 언변이 좋잖니." |
첫댓글 잘밨어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ㅈㄷㄱ~~~~~````````
감사해요~^^
즐독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잘보고 있습니다
잼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독입니다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