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무리하며 (1) 시련 가운데도 웃을 수 있는 건...
20년 전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감동과 기쁨이 다시 소환된 지난 주말 새벽이었습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 출전한 우리 대한민국이 카타르 월드컵 32강 H조 최종예선에서 축구의 강호 포르투갈을 2:1로 극적으로 누르고 당당히 월드컵 16강의 꿈을 실현했습니다.
객관적인 상황에서 절대 일어나기 힘든 기적적인 확률의 조합을 완성하며 자랑스러운 우리 대한민국 선수들이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한 것입니다.
선수들 스스로도 놀랐고 이를 지켜본 국민들은 감동의 눈물로 환호했고 세계의 언론은 각본 없는 이 드라마를 대서 특필했습니다.
대한민국 축구는 수많은 부정적인 시선을 잠재우고, 꺼져가던 16강의 불씨를 기적적으로 살려냄으로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를 흥분의 도가니로 만들며 열광시켰습니다.
멋진 기적의 역사를 쓴 우리 대표 선수들과 수고한 감독진들에게 뜨거운 갈채를 보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날라든 멋진 승전보를 통하여 삶의 귀한 깨달음 하나를 얻게 됩니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운명처럼 만나게 되는 시련과 고통은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극복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새롭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시련은 그것을 이겨낼 분명한 믿음과 뚜렷한 소망이 살아있는 한 반드시 이겨낼 수 있고 그 극복의 과정에서도 우리는 웃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주 오래된 TV 프로그램 중의 하나인 <개그콘서트>를 기억합니다.
어렵던 시절, 웃음을 통해 우리 국민들을 위로해 주던 따뜻한 이색 코미디 프로였습니다. 인상적인 웃음 코드를 선보인 수많은 개그 코너들 중에 <달인>이라는 코너에 특별히 관심이 많았습니다. 개그맨 김병만 씨가 매주 다양한 기술을 익혀 놀라움과 웃음을 선사하던 코너입니다. 오늘 이야기 관련해서 생각나는 하나가 있는데 바로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달인 편>입니다. 이 코너에 등장한 주인공은 자신이 전혀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달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통증을 유발하는 온갖 가해행위에 대하여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듯한 연기를 해내는 장면에서 오히려 웃음을 자아내게 합니다. 사실 그 가해 행위는 당연히 아프지만 겉으로 아프지 않은 것처럼 연기하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습니다. 그 때 그 아픔을 참고 시청자를 폭소하게 만들며 돈을 버는 장면을 보면서 이 세상에는 비록 아프지만 웃을 수 있는 고통도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금까지 오래도록 기억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지난 달 경북 봉화군의 아연 채굴 광산에서의 매몰사고를 뉴스를 통해 접했습니다.
221시간(9일) 동안 지하 190m 지점에 고립되었다가 극적으로 생환한 두 광부의 기적적인 이야기입니다. 이들이 9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지하 갱도에 고립되었다가 무사히 생환할 수 있었던 것은 매몰 당시 가지고 있었던 커피믹스가 비상 식량의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대한민국 커피믹스의 위력이 다시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했으며 해당 제품을 출시한 회사의 주식이 깜짝 폭등했다는 웃지 못할 뉴스를 접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매몰된 지하 갱도에서 커피믹스 30봉지를 매몰 초기 3일간에 걸쳐서 지하수에 타서 식사 대용으로 먹었다고 증언합니다. 또한 가지고 들어간 물 10리터가 떨어진 뒤에는 암벽 사이에서 떨어지는 물을 마시며 연명했다는 이야기도 전해 듣게 됩니다. 체온이 떨어지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베테랑이었던 작업반장은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비닐 등으로 천막을 만들고 모닥불도 피우며 그 긴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생존을 위한 이러한 노력도 중요했지만 이들이 죽음의 상황에서 극적으로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들에게는 확고한 살 소망이 뚜렷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극적인 구조 후에 인터뷰를 통하여 들었던 결정적인 이들의 생존 비밀은 190m 지하에서 들었던 발파 소리였다고 합니다. 동료들이 자신들을 구하려 온다는 확실한 믿음과 반드시 자신들이 구조될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구조될 것이라는 분명한 믿음과 소망이 이들이 처한 공포와 추위와 배고픔의 시련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힘의 원천이 된 것입니다.
1980년대, 저희 집안의 기둥이자 바람막이 역할을 하시던 부모님께서 일찍 하늘나라로 떠나시면서 비교적 젊은 나이에 찾아온 삶의 시련은 채 준비가 안된 저로서는 감내하기가 실로 어려웠습니다.
당시 제 일상의 삶은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 전환되면서 전쟁 같은 삶이 시작됩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20대와 30대를 지나며 뜻하지 않게 만나게 되는 불의의 사건들을 통해 세상을 비관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홀로 남은 누님과 살아가던 어느 날 거주하던 전세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 속에서 죽기 살기로 불을 진화하게 됩니다. 그 후 두 남매가 서로를 바라보고 다시 농담까지 나눌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저희가 살 소망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었다기 보다는 타고난 낙천적인 성품 탓이었습니다. 이후에도 지겹게 따라다녔던 머피의 법칙 같은 연속적인 사건 사고의 시련들이 끊임없이 삶을 힘들게 했지만 그 때마다 시련 가운데 의연하고 결코 웃음을 잃지 않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당시 하나님에 신앙이 없었던 저로서는 다행히 그런 시련을 극복하는 힘이 부모님으로 물려받은 시련 불감증 같은 낙천적 성격이라고 자부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게도 찾아오신 하나님의 존재를 제대로 만나게 되면서 제 삶을 고백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나를 인도하신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후 시련을 대하는 제 삶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이 모든 것은 나를 시련이라는 불구덩이 가운데에서 정금같이 단련시키시려는 주님의 온전하신 계획이고 축복이라는 믿음입니다. 이제는 감사함으로 그 시련을 마주하게 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12월을 맞이합니다.
지나온 한 해의 삶의 궤적 가운데 경험했던 수많은 아픔과 시련들을 돌아봅니다. 늘 그랬듯이 그 시련들은 작년처럼 올해에도 어김없이 일어났고 또 늘 그랬듯이 보란 듯이 이겨내고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수없이 닥치며 지나간 시련은 순간 힘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 아픔조차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세월 속에 사라지고 묻혔습니다.
만일 우리에게 닥치는 시련이 영원히 끝나지 않고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버거운 것이라면 아무도 그 시련을 능히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지옥과 같은 삶이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끝나기 때문에 우리 그 시련을 감내하며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련이 우리를 지으시고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묵상할 때 그 시련이 곧 축복임을 깨닫고 웃으며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비밀한 영적 원리입니다.
한 번 살다가는 인생길에서 우리는 반드시 이겨야 하는 수없이 많은 게임과 여러 가지 모양의 삶의 전쟁에 임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런 게임과 전쟁에 임하는 선수로서의 우리들의 바람직한 삶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영적 전쟁에서 그 답을 찾아보기로 합니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 16강 고지를 밟은 우리 태극전사들의 모습에서 우선 그 영적인 해답을 찾게 됩니다. 그것은 게임에 임하는 우리 선수들의 의연한 자세와 이길 수 있다는 믿음과 타오르는 자신감입니다.
게임에 임하는 우리 선수들이 이 게임은 분명히 이길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싸울 때 그 눈빛은 시작부터가 다릅니다. 마음 가짐은 두말 할 것도 없습니다.
이미 따 놓은 당상!
이미 이긴 게임을 치르는 선수들의 모습처럼 당당한 모습은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시험 준비를 완벽하게 한 학생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아니면 이미 출제 문제를 다 풀어 버린 수험생의 자세와도 같은...
바로 영적 전쟁을 하는 영적 군사들의 바람직한 모습입니다.
시련을 대하는 이러한 영적 원리를 성경은 성경 속 인물 속에서 분명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 속 인물 중에서 대표적인 인물로 축복의 사람, 욥의 고난 극복을 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던 축복받은 욥은 하나님의 계획된 고난이라는 시험을 받게 됩니다. 그 시련은 실로 인간으로 감당하기 힘든 실로 어마어마한 좌절과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자신이 믿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결국 그 시련을 당당히 이겨내고 정금 같은 모습으로 태어납니다.
이 밖에도 성경 속에서 평생을 하나님과 함께 동행한 요셉의 삶이 그러했고, 이스라엘 민족 지도자 모세의 삶의 여정이 그랬습니다. 어디 이뿐입니까? 온갖 시련을 시로 승화하여 노래하며 시련 가운데 하나님을 평생 찬양하며 살았던 다윗의 삶도 그랬습니다. 죽음 앞에서 의연했던 다니엘과 신약시대 최초의 기독교 순교자였던 스테판 집사의 시련을 대하는 삶의 태도가 그랬습니다.
죽음을 앞 둔 시련 속에서도 진정 웃을 수 있는 그 경이로운 비밀을 깨닫기 원합니다.
시련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특별한 축복입니다.
우리들이 걸어 왔던 길보다 더 치열하고 험난한 길을 걸어가야 하는 우리 자녀들이,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이 치열한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영적 진리와 그들이 만나게 될 시련 속에서 그들이 진정 웃으면서 그것들을 맞서서 극복해 나갈 수 비결을 영적 유산으로 남길 수 있다면 그것은 가장 귀한 자녀의 유산이 될 것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0장 13절
<코칭으로 아름다운 동행, 늘푸른언덕>
첫댓글 12월을 맞이하며
지난 한해를 돌아봅니다.
한해를 잘 정리하는 것은
새로운 한 해를
더 잘 준비하기 위함입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반성하는 마음과
설렘으로 새로움을 준비하는 마음이
아직도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시간입니다.
<늘푸른언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