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루소(Henri Rousseau, 1844-1910), 〈풋볼 선수들〉. 1908년,
가운데 선수는 루소 자신이 모델이다.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소장.
피카소가 사랑한 佛 화가, 앙리 루소는 전문적인 미술 교육 없이 세관원으로 일하다가 뒤늦게 화가가 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가난한 배관공의 자제로 태어났고, 학력도 고등학교 중퇴다.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어떠한 계기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지 명확하지 않으나, 30대 중반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색한 인체 비례, 환상과 사실의 색다른 조합, 원초적 세계 같은 이미지가 앙리 그림의 특징이다. 강렬한 색채는 훗날 현대 미술 작가에 영향을 미쳤고, 피카소는 앙리의 열렬 팬이었다.
앙리는 66세 되던 해 건강을 돌보지 않고 작업에 몰두한 탓에 몸이 쇠약해졌다. 다리에 난 상처가 덧났고, 감염은 순식간에 전신으로 퍼져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패혈증은 박테리아나 바이러스가 혈액 속으로 들어와 전신을 도는 상태를 말한다. 배현주 한양대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대개 감염 자체보다는 감염이 촉발한 면역반응이 잘 조절되지 못하여서 발생한다”며 “코로나19 감염증에서 보듯 부적절한 면역반응이 심한 폐렴을 일으키는 것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는 고령사회를 맞아 날로 늘어나는 패혈증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패혈증 살리기 캠페인’을 벌인다. 미국에서는 1년에 75만 명의 중증 패혈증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배현주 교수는 “패혈증은 나이가 많거나, 여러 이유로 면역이 저하된 사람들, 만성 폐질환자, 수술 후 환자 등에서 흔히 발생한다”며 “초기에는 발열 혹은 저체온증, 빈맥, 빈호흡 등 염증반응을 보이다가 저혈압으로 진행하면서 뇌, 심장, 신장, 폐 등 여러 장기 기능이 저하되는 공통 경로를 거친다”고 말했다.
감염 후 발열 빈맥 등이 있을 때 패혈증임을 빨리 인지하고, 조기에 수액 치료 등으로 혈압을 유지하면서 신체 장기 기능 저하를 줄이는 것이 생존율 향상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인생과 질병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열정과 조심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는 걸 ‘세관원 화가’ 앙리의 패혈증이 보여준다.
앙리 룻소(Henri Rousseau, 1844-1910)의 자화상
앙리 룻소(Henri Rousseau, 1844-1910) : 전위예술에 영향을 끼친 19~20세기의 프랑스 화가로, 주요 작품은 <잠자는 집시>와 <굶주린 사자>. 평범한 집안의 평범한 어린이였으며 군복무를 거쳐 하급공무원으로 출발, 파리 세관에서 일했다. 이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앵데팡당 전에 출품하면서 화가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화려한 색채로 세부를 꼼꼼하게 묘사한 덤불숲과 야생동물, 이국적인 인물을 주로 그렸다. 루소는 화가로서 공적인 명예를 갈구했지만, 그의 그림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말년에 들어서면서 비평가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앙리 룻소, ‘잠자는 집시(The Sleeping Gypsy)’, 1897년,
캔버스에 채색, 130×201cm, 뉴욕현대미술관 소장.
"아무리 사나운 육식동물일지라도
지쳐 잠든 먹이를 덮치는 것은 망설인다."
ㅡ앙리 루소(Henri Rousseau, 1844-1910)
런던 미술대 교수이자 화가 스티븐 파딩(Stephen Farthing) 등이 공저한 《1001 Paintings You Must See Before You Die》<죽기 전에 꼭 봐야 할 명화 1001>(2007)에 따르면-‘잠자는 집시(The Sleeping Gypsy)’는 섬세한 솜씨와 단순한 구성이 대단히 놀라운 작품이다. 아름답고 기념비적인 모습의 집시가 조용히 잠자는 동안 사자는 집시를 지키고 있다. 그림 전체가 섬뜩한 보름달 빛에 잠겨있다. 강렬할 정도로 초현실적이며 몽상적이지만, 또 묘하게 현실적이기도 하기 때문에 2가지 해석이 모두 가능하다."
루소는 <잠자는 집시>에 대해 스스로 이렇게 얘기했다. "만돌린을 연주하며 방랑하는 흑인 여인이 곁에 물항아리를 놓고 피로에 지쳐 잠들었다. 때마침 지나가던 사자가 그녀를 발견하고 그녀의 냄새를 맡아 보지만 잡아먹지 않았다. 집시 여인은 동양 의상을 걸쳤으며, 삭막한 사막에는 달빛이 시적인 효과를 내고 있다."
루소는 본 그림을 고향 '라발'시에 이백이나 삼백 프랑에 구입하라고 제안했지만, 시에서는 이 그림이 '너무 유치하다'는 이유로 거절했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그림이 천하제일이라고 굳게 믿었다. 현실성이 없는 공간 설정과 상황 묘사도 자신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림 전체에서 환상적이고 신비스러운 오라가 뿜어져 나온다. 구성도 지극히 단조롭다. 그 점이 그림의 명확성을 증폭시키는 이유이다. 여인이 입고 있는 빨강, 파랑, 노랑, 녹색, 주황색 의상과 피부 빛깔은 원시성을 연상시킨다.
여인과 만돌린은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으로 사자와 물병은 옆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복합 시점이다. 단순하고 평면적인 구성과 다시점, 이국적이고 원시적인 분위기. 피카소가 이 그림에 주목한 것은 당연했다. 현대미술의 출발점이 ‘있는 그대로의 재현’이라는 전통 미술 규범의 타파라는 점에서 루소의 그림은 피카소 등 입체파 화가들과 꿈·상상력, 몽환성을 추구한 초현실주의 화가들을 흥분시켰다.
‘잠자는 집시’라는 제목과 달리 여인은 지금 잠든 것이 아니라 자는 척하는 것 같다. 보일락 말락 가늘게 뜬 두 눈과 입술 사이로 보이는 치아의 흰색이 이를 증명한다. 더욱이 인기척이라고는 없는 사막 한복판에서 사자를 만났으니 어찌 한가롭게 잠을 청할 수 있을까. 사자의 행동도 이상하다. 금빛 눈은 살기와는 거리가 멀고 입을 꽉 다문 채 날카로운 이빨을 일부러 숨기고 있어 맹수의 위용이 온데간데없다.
집시 여인은 지금 사자와 평화로운 동거를 즐기고 있는 걸까? 하긴 떠도는 삶이 운명이고 머무는 곳이 집인 집시 여인에게 두려운 게 있을까?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을 무너뜨리는 설정이다. 루소의 그림은 우리가 당연시한 지식과 기법, 판단과 인식을 가차 없이 혁파했다. 인위적인 의도의 개입 없이 아주 자연스럽고 본인만의 날것 그대로 감각적이다. 프랑스 시인 장 콕토(1889~1963)는 ‘잠자는 집시’를 본 뒤 ‘본능적인 감각이 이끄는 대로 자유분방하게 그린 환상적인 그림’이라고 칭송했다. 루소가 위대한 까닭이다.
앙리 룻소, ‘열대 우림 속의 호랑이(Surprised!)’, 1891년,
Oil on Canvas, 130x162cm, National Gallery London UK.
정글 풍경화는 폭풍우가 내리치는 날, 호랑이는 번개 때문인지 먹잇감을 덮치기 위해선지 몸을 한껏 낮추며 앞으로 향하고 있다. 동그란 눈을 크게 뜬 맹수는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며 무엇을 쫓고 있는 걸까? 이 그림은 그에게 명성을 안겨준 20여 점의 정글 연작 중 첫 작품이다. 그림이 전시됐을 때, 아이 그림처럼 유치하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이국적인 주제와 독특한 화면 구성에 대한 찬사도 이어졌다. 그림 속 배경은 멕시코의 정글이다. 세밀하게 묘사된 열대식물들은 파리 식물원에서 본 것들이었다. 호랑이는 파리 만국박람회 때 전시된 박제 동물을 참조해 그렸다. 실제 풍경이 아닌 상상화인 것이다.
앙리 룻소, ‘굶주린 사자(The Hungry Lion)’, 1898-1905년,
Öl auf Leinwand, 200.0x301.0cm, Fondation Beyeler, Riehen
1905년에 그린 ‘굶주린 사자가 영양에 달려든다(Un lion affamé se précipite sur une antilope)’에서 루소의 붓끝은 그림의 표면을 세밀한 묘사로 채운다。표면은 광택이 나듯 매끄럽고 사물의 윤곽은 또렷하다. 풀밭에서 사자가 영양의 목덜미를 깊숙이 물었다.먹잇감을 움켜쥔 사자의 발톱이 날카롭다. 올빼미와 표범이 배경에 숨어서 사자의 사냥을 지켜본다. 왼쪽 나무 사이에 짐승 하나가 눈을 반짝인다. 그림은 열대지방의 바스락거림과 동물의 포효와 생명의 움직임을 상상하게 만든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조선일보 2024년 04월 18(목) 〈名作 속 醫學(김철중 영상의학과 전문의, 논설위원 겸임, 의학전문 기자·안상현 기자)〉, 인터넷 교보문고, Daum·Naver 지식백과/ 글과 사진: 이영일∙고앵자,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