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중국을 차이나(China)라고 부르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2,900년경 중국 역사상 처음 중국을 통일했다는 진(秦)나라의 진秦에서 유래한 것이다. 화하족(華夏族)은 진나라 이전의 중국인을 일컫는 말이다. 또한 중국인을 한족(漢族)이라고 한 것은 2,200년경 한漢고조 유방이 세운 한漢나라에서 유래한다. 당고조 이연과 당태종 이세민이 나라 이름을 당(唐)이라고 정한 것은 오랜세월 태평성대의 대명사로 알려진 고대 요堯임금이 다스린 당(唐)나라처럼 태평성대를 열겠다는 뜻으로 당唐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道典 4:16) 인류의 영원한 평화의 바탕, 해원(解寃)
이제 예로부터 쌓여 온 원(寃)을 풀어 그로부터 생긴 모든 불상사를 소멸하여야 영원한 화평을 이루리로다. 선천(先天,우주의 봄여름)에는 상극(相克)의 이치가 인간 사물을 맡았으므로 모든 인사(人事)가 도의(道義)에 어그러져서 원한이 맺히고 쌓여 삼계(三界,하늘,땅,인간)에 넘치매 마침내 살기(殺氣)가 터져 나와 세상에 모든 참혹한 재앙을 일으키느니라
道典 4:17) 이제 당요의 아들 단주의 해원(解寃)을 첫머리로 하고, 또 천하를 건지려는 큰 뜻을 품었으나 시세(時勢)가 이롭지 못하여 구족(九族)이 멸하는 참화를 당해 철천의 한(恨)을 머금고 의탁할 곳 없이 천고(千古)에 떠도는 모든 만고역신(萬古逆神)을 그 다음으로 하여 각기 원통함과 억울함을 풀고, 혹은 행위를 바로 살펴 곡해(曲解)를 바로잡으며, 혹은 의탁할 곳을 붙여 영원히 안정을 얻게 함이 곧 선경(仙境)을 건설하는 첫걸음이니라.
道典 4:28) 이 때는 해원시대(解寃時代)라. 사람도 이름나지 않은 사람이 기세를 얻고 땅도 이름 없는 땅이 기운을 얻느니라. 나는 동서양의 만고역신(萬古逆神)을 거느리느니라. 원래 역신(逆神)은 시대와 기회가 지은 바라. 역신逆神이 경천위지(經天緯地)의 재능으로 천하를 바로잡아 건지려는 큰 뜻을 품었으나, 시세가 이롭지 못하므로 그 회포(懷抱)를 이루지 못하고 멸족의 화(禍)를 당하여 천추에 원귀가 되어 떠돌거늘,
세상 사람들은 사리(事理)를 잘 알지 못하고 그들을 미워하여 ‘역적놈’이라 평하며 일상용어에 모든 죄악의 머리로 일컬으니 어찌 원통치 않겠느냐. 그러므로 이제 모든 역신逆神을 만물 가운데 시비(是非)가 없는 별자리(星宿)로 붙여 보내느니라. 하늘도 명천(明天)과 노천(老天)의 시비가 있고, 땅도 후박(厚薄)의 시비가 있고, 날도 수한(水旱)의 시비가 있고, 때도 한서(寒暑)의 시비가 있으나, 오직 성수(星宿)에는 그런 시비가 없느니라.
道典 5:53) 상제님께서 전주에 계실 때 천지대신문(天地大神門)을 열고 날마다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행하시며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제갈량의 전무후무한 재주라 함은 남병산(南屛山)에서 칠일칠야(七日七夜) 동안 동남풍을 빌어 적벽화전(赤壁火戰)에 성공함을 말함이 아니더냐.
천지대신문(天地大神門): 가을우주의 신도(神道)의 큰 문을 여신다는 뜻. 천지신명세계를 통일하고 그 동안 선천 봄여름 5만년 상극(相克)의 시간대를 달려온 천지의 변화질서를 우주의 가을 상생(相生)의 대도(大道)로 조화시켜 신도(神道)를 인사(人事)로 전환하는 9년 천지공사(天地公事, 1901년~1909년까지 9년 동안 이세상 돌아가는 프로그램, 시간표, 모사재천(謀事在天)를 하시고 1909년 39세로 돌아가셨다)를 행하셨다. 성사재인(成事在人)은 상제님의 인사(人事)의 대행자가 이룬다.
“제갈량의 전무후무한 재주라 함은 남병산(南屛山)에서 칠일칠야(七日七夜) 동안 동남풍을 빌어 적벽화전(赤壁火戰)에 성공함을 말함이 아니더냐. 이제 49일 동안 동남풍을 빌어 와야 하리라. 이 동남풍으로 밀려드는 서양의 기세를 물리쳐야 동양을 구할 수 있으리라.” 하시고,
성도 서너 명을 거느리고 남고산성(南固山城)으로 가시어 만경대(萬景臺)에서 49일 동남풍 공사를 행하시니라. 이 때 장대에 종이를 달아 세우시고 글을 써서 읽으신 뒤에 성도들로 하여금 그 자리에 서 있게 하시고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제갈량이 제단을 쌓고 7일 동안 밤낮으로 공을 들여 동남풍을 불렸다 하니 이는 우스운 일이니라. 공들이는 동안에 일이 그릇되면 어찌하겠느냐.” 하시니라. 이어 상제님께서 “너희들은 바람이 불거든 오라.” 하시고 남고사(南固寺)로 들어가시매, 과연 조금 후에 동남풍이 크게 부는지라 성도들이 들어가 아뢰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차길피흉(此吉彼凶)이로다.” 하시고 산성을 내려오시니라.
한 여인이 한을 품고 돌아가니
그 후 상제님께서 49일을 한 도수로 계속하여 동남풍을 불리실 때, 미처 기한이 다 차기도 전에 먼 곳에서 한 여인이 찾아와 자식의 병을 고쳐 주십사 애걸하거늘, 상제님께서 공사에 전심하고 계시므로 병욱이 상제님께 아뢰지 못하고 돌려보내니, 그 여인이 한을 품고 돌아가매 갑자기 동남풍이 그치는지라.
상제님께서 이 사실을 아시고 급히 그 여인에게 사람을 보내어 공사에 전심하심으로 인해 미처 대답지 못한 사실을 말하여 안심하게 하시고, 곧 자식의 병을 고쳐 주시니 즉시 바람이 다시 일어나거늘, “한 사람의 원한이 능히 천지 기운을 막는다.” 하시니라.
그 뒤로 과연 일러전쟁이 일어나더니 일본 군사가 승세를 타고 해륙전에서 연속하여 러시아를 물리치니라.
49일 동남풍 공사: 당시 해전의 주역이었던 일본군 아끼야마(秋山) 중장은 세 번이나 꿈에서 발틱 함대가 대한해협을 통과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하며, 해전 당일에는 상제님 공사대로 동남풍이 불어서 전략을 유리하게 전개하였다 한다. 상제님 공사 내용을 모르는 일본인들은 이 바람을 자기들의 민족신이 도와준 것으로 알고 가미가제(神風)라 부른다.
道典 9:215)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나 막 태어났을 때에는 세상일을 다 아느니라. 그러다가 곡기(穀氣)가 나서 죽도 먹고, 밥도 먹고 하면서 잊어버리는 것이니, 화(火)한 것을 입에 넣으면 세상 이치를 모르느니라.” 하시니라.
태교의 중요성을 가르치심
하루는 상제님께서 태교하는 법을 가르쳐 말씀하시기를 “아이가 복중에 있을 때는 반듯하게 앉고, 반듯한 것을 먹고, 마음도 반듯하게 먹어야 하느니라. 그래야 뱃속에 있는 자식이 산모의 조화로 바르게 크는 법이니, 큰자식을 보려거든 마음을 곧게 먹어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2:68) 천지를 뒤흔드는 낙태아의 원한
한 사람의 원한(寃恨)이 능히 천지기운을 막느니라. 뱃속 살인은 천인공노할 죄악이니라. 그 원한이 워낙 크므로 천지가 흔들리느니라. 예로부터 처녀나 과부의 사생아와 그 밖의 모든 불의아의 압사신(壓死神)과 질사신(窒死神)이 철천의 원을 맺어 탄환과 폭약으로 화하여 세상을 진멸케 하느니라.
道典 4:126) 먹장난하다 한 맺고 죽은 아이를 위로하심
하루는 경석에게 “검은 두루마기를 가져오라.” 하여 입으시고, 또 속옷을 벗으시고 긴 수건으로 허리를 매신 뒤에, 여러 성도들에게 물으시기를 “이리하면 일본 사람과 같으냐?” 하시니 모두 대답하기를 “같습니다.” 하니라. 이에 다시 벗으시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려서 서당에 다닐 때에 한 아이와 더불어 먹장난을 하였는데,
그 아이가 지고 울며 돌아가서는 다시 오지 않고 다른 서당에 다니다가 그 후에 병들어 죽었거늘, 그 신명이 그 일로 원한을 품었다가 이제 나에게 와서 해원시켜 주기를 원하므로 ‘어떻게 하면 해원이 되겠느냐?’ 물으니, 그 신명이 내가 일본옷을 싫어하는 줄 알고 ‘일본옷을 입으라.’ 하므로 내가 이제 그 신명을 위로함이로다.” 하시니라.
道典 8:32) 하루는 상제님께서 어느 마을을 지나시는데 한 집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거늘, 정작 제사 받는 신명은 마당을 겉돌고 다른 신명이 들어가 제사상을 받고 있는지라. 상제님께서 그 신명을 부르시어 “저 사람의 날인데 어찌 네가 먹느냐?” 하시니,
그가 답하기를 “저 사람이 살아생전에 저의 재산을 모두 탕진시킨 채 갚지 못하였는데, 죽어서도 그 은혜를 갚지 아니하니 오늘은 비록 자기 날이라고 하나 저의 것이나 진배없습니다.” 하니라. 후에 상제님께서 이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세상에 이치 없는 법은 없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9:143) 상제님께서 하루는 원평에서 천지대신명을 불러 모으시고 대공사를 행하실 때, 구석에 앉은 한 박복한 신명에게 이르시기를 “네 소원이 무엇인가 말해 보라.” 하시니, 그 신명이 아뢰기를 “자손을 둔 사람은 살아서도 대우를 잘 받고 죽어서도 대우를 잘 받아 왔는데, 자손이 없는 사람은 온갖 설움을 받아 왔으니 앞으로는 고루 낳아 이러한 일이 없도록 해 주옵소서.” 하거늘, 상제님께서 허락하시고 말씀하시기를 “앞으로는 중천신에게 복록을 맡겨 고루 나누어 주게 하리라.” 하시니라.
道典 9:213) 사람은 죽어서도 공부를 계속한다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죽는 것도 때가 있나니 그 도수를 넘겨도 못쓰는 것이요, 너무 일러도 못쓰는 것이니라.
나의 명으로 명부에서 데려오라고 해야 명부사자가 데려오는 것이니, 각기 닦은 공덕에 따라 방망이로 뒷덜미를 쳐서 끌고 오는 사람도 있고, 가마에 태워서 모셔 오는 사람도 있느니라.
또 하늘에 가면 그 사람의 조상 가운데에서도 웃어른이 있어서 철부지 아이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듯 새로 가르치나니, 사람은 죽어 신명(神明)이 되어서도 공부를 계속하느니라. 죽었다고 당장 무엇이 되는 것은 아니니라.” 하시니라.
소원하는 바를 이루려면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무엇이든지 소원하는 바를 이루려면 천지에만 빌어도 안 되나니, 먼저 조상에게 빌고 그 조상이 나에게 와서 빌어야 뜻을 이루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2:103) 상말에 ‘무척 잘산다.’ 이르나니 ‘척(隻)이 없어야 잘산다.’는 말이니라. 남에게 원억(寃抑)을 짓지 말라. 척이 되어 갚느니라. 또 남을 미워하지 말라. 그의 신명(神明)이 먼저 알고 척이 되어 갚느니라. 앞세상에는 서로의 마음속을 드나들어 그 속내를 알게 되나니, 남을 속이지 말고 척이 있으면 풀어 버리라. 부하고 귀하고 강권을 가진 자는 모두 척에 걸려 콩나물 뽑히듯 하리라.
道典 2:104) 척을 짓지 말라
대군(大軍)을 거느리고 적진을 쳐부수는 일이 영화롭고 장쾌하다 할지라도 인명을 잔멸케 하는 일이므로 악척(惡隻)이 되어 앞을 가로막느니라. 남이 힘들여 말할 때에는 설혹 그릇된 점이 있을지라도 일에 낭패만 없으면 반박하지 말라. 그도 또한 척이 되느니라. 이웃 사람이 정 붙여 주는 음식이 비록 맛이 없거나 먹고 병들지라도 사색(辭色)을 내지 말라. 오는 정이 꺾이어 이 또한 척이 되느니라. 어떤 사람을 대하든지 마음으로 반기어 잘 대우하면 그 사람은 모를지라도 신명은 알아서, 어디를 가든지 대우를 잘 받게 되느니라.
믿음은 선령신(조상신)의 음덕으로
선령신이 짱짱해야 나를 따르게 되나니 선령신을 잘 모시고 잘 대접하라. 선령신이 약하면 척신(隻神)을 벗어나지 못하여 도를 닦지 못하느니라. 선령의 음덕(蔭德)으로 나를 믿게 되나니, 음덕이 있는 자는 들어왔다가 나가려 하면 신명들이 등을 쳐 들이며 ‘이곳을 벗어나면 죽으리라.’ 이르고, 음덕이 없는 자는 설혹 들어왔을지라도 이마를 쳐 내치며 ‘이곳은 네가 못 있을 곳이라.’ 이르느니라.
道典 7:19) 자손에게 선령(조상)은 곧 하느님
만성 선령신(萬姓 先靈神)들이 모두 나에게 봉공(奉公)하여 덕을 쌓음으로써 자손을 타 내리고 살길을 얻게 되나니 너희에게는 선령(先靈)이 하느님이니라. 너희는 선령을 찾은 연후에 나를 찾으라. 선령을 찾기 전에 나를 찾으면 욕급선령(辱及先靈)이 되느니라. 사람들이 천지만 섬기면 살 줄 알지마는 먼저 저희 선령에게 잘 빌어야 하고,
또 그 선령이 나에게 빌어야 비로소 살게 되느니라. 이제 모든 선령신(조상신)들이 발동(發動)하여 그 선자선손(善子善孫)을 척신(隻神)의 손에서 건져 내어 새 운수의 길로 인도하려고 분주히 서두르나니, 너희는 선령신의 음덕(蔭德)을 중히 여기라. 선령신은 그 자손줄을 타고 다시 태어나느니라.
道典 3:188) 박공우가 상제님을 종유(從遊)하기 달포 전에 천원장(川原場)에서 예수교인과 다투다가 가슴에 큰돌을 맞아 가슴뼈가 상하여 한참 기절하였다가 일어난 적이 있는데, 이 때 수십 일 동안 치료를 받고 간신히 다니기는 하나 아직 가슴에 손을 대지 못할 만큼 크게 고통스러우므로 이를 상제님께 아뢰니, 말씀하시기를 “네가 이전에 어느 길가에서 남의 가슴을 쳐서 사경에 이르게 한 일이 있으니 그 일을 잘 생각하여 뉘우치라.
또 네가 몸이 나은 뒤에는 가해자를 찾아서 죽이려고 생각하나, 너 때문에 죽을 뻔하였던 자의 척(隻)이 그 예수교인에게 붙어서 갚은 것이니 오히려 그만하기가 다행이라. 네 마음을 잘 풀어 가해자를 은인과 같이 생각하라. 그러면 곧 낫게 되리라.”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세상의 모든 참사(慘事)가 척신(隻神)이 행하는 바이니라. 삼가 척을 짓지 말라. 만일 척을 지은 것이 있으면 낱낱이 풀고 화해를 구하라.” 하시니라.
참사[慘事]: 비참하고 끔찍한 일
道典 3:238) 김영학(金永學)이 경학의 인도로 와 뵙거늘 이레가 지나도록 아무 말씀도 아니하시니 영학이 크게 분해하는지라. 이에 공우와 원일이 이르기를 “성의를 다해 사사(師事)하기를 청하면 밝게 가르치실 것이라.” 하거늘, 영학이 그 말을 좇아 상제님께 사사하기를 청하매 상제님께서 허락하시더니, 갑자기 “이놈을 참수할복(斬首割腹)하리라.” 하시며 크게 꾸짖으시니라. 영학이 상제님의 우레와 같은 목소리에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분하기도 하여 문밖으로 나가거늘
상제님께서 영학을 불러 “나에게 사배를 하라.” 하시고 절을 받으신 뒤에 말씀하시기를 “너를 꾸짖은 것은 네 몸에 있는 두 척신을 물리치려 한 것이니 너는 불평히 생각지 말라.” 하시니라. 이에 영학이 “무슨 척신인지 깨닫지 못하겠습니다.”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네가 열여덟에 사람을 죽이고 금년에도 사람을 죽였나니 잘 생각하여 보라.” 하시니라. 영학이 생각해 보니 18세에 남원에서 전주 아전 김 모와 대화하다가 그의 무례한 말에 노하여 화로를 던져 머리를 다치게 하였더니 그로 인해 시름시름 앓다가 다음해 2월에 그가 죽었고,
금년 봄에는 장성 맥동(長城 麥洞)에 사는 외숙 김요선(金堯善)이 의병에게 약탈을 당한 고로, 영학이 장성 백양사(白羊寺)에 있는 의병 대장 김영백(金永伯)을 찾아가 그 비행을 꾸짖었더니 영백이 사과하고 범인을 검거하여 포살한 일이 있는지라. 비로소 황연히 깨닫고 아뢰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정히 그러하다.” 하시거늘, 영학이 마침내 전날의 과실을 뉘우치고 상제님의 크신 은혜에 감읍(感泣)하니라.
김영학(金永學, 1876~1945): 본관 광산(光山). 족보명 기선(箕善), 초명 영선(永善). 피노리의 아랫마을 먹살리에 살았다. 조선 독립을 위한 의병 활동에 참여했으며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창일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다.
장성 맥동(長城 麥洞): 전남 장성군 황룡면(黃龍面) 맥호리(麥湖里) 맥동. 맥동은 울산 김씨 집성촌이다.
김영백(金永伯, 1880∼1910): 본관 안동(安東). 전남 장성군 북이면 달성리 출신의 농민. 군대 해산 후 의병 약 1천 명을 모집하고 스스로 의병장이 되어 정읍 등 전라 지역에서 일본군을 공격하여 많은 전공을 세웠다.
道典 5:214) “지난 임진난리에 사명당이 일본에 가서 인피 삼백 장을 받아 오려 하였나니 그 때 일본 공주가 ‘나 먼저 벗기라.’ 하고 자결하였느니라. 그 죽은 혼령이 원귀가 되어 내가 죽은 뒤에 너희를 죽이려고 헌병을 이끌고 왔나니 내가 해원시켜 그 도수를 때우노라.” 하시니라.
그 때 일본 공주가 ‘나 먼저 벗기라.’ 하고 자결하였느니라. 자결하였느니라: 사명당이 1604년에 일본에 사신으로 건너가서 왜왕과 담판하여, 전란 때 잡혀간 3천여 명의 동포를 데리고 귀국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왜왕의 항복을 받고 매년 인피(人皮) 300장과 불알 서 말씩을 조공하도록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道典 5:214) 상제님 일꾼들에게 닥칠 큰 화액(禍厄)을 대속하심
이 때 순검들이 상제님의 옥체를 죽검으로 사정없이 후려치며 갖은 욕을 보이는데, 공신이 보니 상제님의 가슴이 갑자기 20세 처녀의 젖가슴처럼 부풀거늘 순검들도 놀라 매질을 멈추니라.
잠시 후 다시 혹독한 매질이 계속되매 상제님께서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고 안구가 튀어나온 채 혀를 물고 혼절하시거늘, 순검들이 비로소 상제님을 대들보에서 내려 구류간으로 옮기니라.
이어서 순검이 “집주인이 누구냐?” 하매 공신이 “내가 주인이다.” 하고 나서자 박 권임(權任)이 문공신에게 다가와 “이놈도 같은 놈이다.” 하며 구둣발로 앞가슴을 걷어차거늘, 공신이 마음 속으로 ‘나도 저렇게 맞으면 죽으리라.’ 생각하고 일부러 난간으로 떨어져 짐짓 기절한 체하니,
문 총순(總巡)이 박 권임을 꾸짖으며 말하기를 “죄의 유무를 결정하지도 못하였는데 어찌 그다지 혹독히 다루느냐.” 하고 공신에게 고채를 채워서 구류간에 넣어 여러 사람과 함께 가두니라. 이어 다른 사람도 낱낱이 신문하거늘 대답이 한결같지 못하여 혹은 ‘도를 배우기 위하여 따랐다.’ 하고 혹은 ‘속임을 당하여 따랐다.’ 하니 신문을 마친 뒤에 모두 옥에 가두니라.
일본 공주를 해원시키려 함이라
이 때 상제님의 옥체는 피가 낭자하게 흐르고 만신창이가 되시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라. 상제님께서 옷도 입지 못하시고 겨우 몸만 가리신 채 밤을 새우시거늘, 이튿날 성도들이 상제님의 옥체를 살피니 거짓말처럼 상처가 깨끗이 나아 있고, 용안은 화기(和氣)가 충만하여 평소와 같으시더라.
이 뒤에 상제님께서 공신에게 이르시기를 “이는 일본 공주를 해원시키려 함이니라.” 하시고, “지난 임진난리에 사명당이 일본에 가서 인피 삼백 장을 받아 오려 하였나니 그 때 일본 공주가 ‘나 먼저 벗기라.’ 하고 자결하였느니라. 그 죽은 혼령이 원귀가 되어 내가 죽은 뒤에 너희를 죽이려고 헌병을 이끌고 왔나니 내가 해원시켜 그 도수를 때웠노라.” 하시니라.
道典 5:205) 지난 갑오년에 동학 신도들이 여러 만 명 학살되어 모두 지극히 원통한 원귀(寃鬼)가 되어 우주간에 나붓거리는지라. 원래 동학은 보국안민(輔國安民)을 주창하였으나 때가 때인 만큼 안으로는 불량하고 겉으로만 꾸며대는 일이 되고 말았나니, 다만 후천 일을 부르짖었음에 지나지 못함이라. 마음으로 각기 왕후장상(王侯將相)을 바라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릇 죽은 자가 수만 명이니

그 신명들을 해원시켜 주지 않으면 후천에 역도(逆度)에 걸려 반역과 화란이 자주 일어나 정사(政事)를 못 하게 되리라. 그러므로 이제 그 신명들을 해원시키려고 원혼을 통솔할 자를 정하려는 중인데 경석이 십이제국을 말하니 이는 스스로 청함이라.
이제 경석에게 동학 역신 해원의 삼태육경(三台六卿) 도수를 붙이리라.” 하시고, “그 부친이 동학 접주로 그릇 죽었고 경석도 또한 동학 총대(總代)였으니 오늘부터는 동학 때 한 맺힌 신명들을 전부 경석에게 붙여 보내어 이 자리에서 왕후장상의 해원이 되게 하리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춘치자명(春雉自鳴)의 설화(說話)를 들어 보라. 배짱이 그만하면 능히 그 책임을 감당하리니 뒷날 두고 보라. 경석이 금전도 무수히 소비할 것이요, 사람을 모으는 것도 갑오년보다 훨씬 많게 될 것이니라. 경석에게 밥주걱을 맡겼나니 경석은 제왕(帝王)만큼 먹고 지내리라. 이렇게 풀어놓아야 후천에 아무 일도 없으리라.” 하시니라
왜 상제님께서는 동학혁명을 일으켰다 억울하게 죽은 신명들을 차경석 성도에게 붙여 해원케 하셨는가? 동학혁명의 종군자들이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을 노래하며 후천개벽을 학수고대한 바로 상제님의 무극대운을 부르짖은 일꾼들이기 때문이다. 이에 상제님께서 몸소 그들의 원한을 보천교 초기 증산도 도운 개척의 운로에 붙여 해소시키셨다.
道典 9:74) 부잣집의 척신 재앙
한 성도가 여쭈기를 “간혹 부호(富豪) 집에서 각별히 마음을 써서 진수성찬을 차려 놓고 모시면 세 술도 뜨지 않으시고 물리시니 무슨 까닭입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그 부호의 마음이나 힘들인 정성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부잣집에는 원귀(怨鬼)가 많아서 쌀 한 톨에까지 원귀가 붙어 있나니 먹을 수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부호 중에 천심(天心) 가진 자가 드무니라. 부잣집 창고에는 원귀가 가득하여 때가 되면 폭발하게 되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3:138) 무릇 부자들은 척(隻)이 많으니 그들을 다 구해 주려 하다가는 어느 겨를에 천지공사를 행하겠느냐. 부잣집 마루와 방과 곳간에는 살기와 재앙이 가득히 채워져 있느니라. 이놈들아, 부자 좋아하지들 말아라! 붓대 하나 까딱하면 다 죽는다.” 하시니라.
道典 2:136) “이 때는 해원시대라. 남녀의 분별을 틔워 각기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풀어 놓았으나, 이 뒤에는 건곤(乾坤)의 위차(位次)를 바로잡아 예법을 다시 세우리라.” 하시니라
道典 4:32) 난법(亂法)을 지은 후에 진법(眞法)을 내는 통치 정신
원래 인간 세상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면 분통이 터져서 큰 병을 이루나니, 그러므로 이제 모든 일을 풀어놓아 각기 자유 행동에 맡기어 먼저 난법을 지은 뒤에 진법을 내리니, 오직 모든 일에 마음을 바르게 하라. 거짓은 모든 죄의 근본이요 진실은 만복의 근원이니라.
운수는 좋건마는 목 넘기기 어렵다
이제 신명으로 하여금 사람에게 임감(臨監)하여 마음에 먹줄을 잡아 사정(邪正)을 감정케 하여 번갯불에 달리리니
마음을 바르게 못 하고 거짓을 행하는 자는 기운이 돌 때에 심장과 쓸개가 터지고 뼈마디가 튀어나리라. 운수는 좋건마는 목 넘기기가 어려우리라.
道典 6:133) 充者(충자)는 慾也(욕야)라 以惡充者(이선충자)도 成功(성공)하고 以善充者(이악충자)도 成功(성공)하니라. 채운다는 것은 욕심이라. 악으로 채우는 자도 성공(자기 충족)하고, 선으로 채우는 자도 성공(자기 충족)하느니라.
‘흉화개흉실(凶花開凶實)’이요, ‘길화개길실(吉花開吉實)’이니라
道典 2:24) 이 때는 해원시대(解寃時代)라. 이제 앞으로 모든 참혹한 일이 생겨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신명을 조화(調和)하여 만고의 원을 끄르고, 상생의 도로써 조화도장(造化道場)을 열어 만고에 없는 선경세계를 세우고자 하노라.
道典 2:44) 이 때는 생사판단의 가을개벽기
상제님께서 하루는 세간에 전해 오는 ‘백조일손(百祖一孫)’이라는 말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가을바람이 불면 낙엽이 지면서 열매를 맺는 법이니라. 그러므로 이 때는 생사판단(生死判斷)을 하는 때니라.” 하시니라. 한 성도가 여쭈기를 “‘다가오는 세상 난리는 신명의 조화임을 알지 못한다.’는 말이 있사온데 과연 그러합니까?” 하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천지개벽을 해도 신명 없이는 안 되나니, 신명이 들어야 무슨 일이든지 되느니라. 내 세상은 조화의 세계요, 신명과 인간이 하나 되는 세계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내 일은 인신합덕(人神合德)으로 되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7:38) 가을개벽의 대병겁 심판
한 성도가 “세상에 백조일손(百祖一孫)이라는 말이 있고, 또 병란(兵亂)도 아니고 기근(饑饉)도 아닌데 시체가 길에 쌓인다는 말이 있사오니 이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선천의 모든 악업(惡業)과 신명들의 원한과 보복이 천하의 병을 빚어내어 괴질이 되느니라.
봄과 여름에는 큰 병이 없다가 가을에 접어드는 환절기(換節期)가 되면 봄여름의 죄업에 대한 인과응보가 큰 병세(病勢)를 불러일으키느니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천지대운이 이제서야 큰 가을의 때를 맞이하였느니라. 천지의 만물 농사가 가을 운수를 맞이하여,
선천의 모든 악업이 추운(秋運) 아래에서 큰 병을 일으키고 천하의 큰 난리를 빚어내는 것이니, 큰 난리가 있은 뒤에 큰 병이 일어나서 전 세계를 휩쓸게 되면 피할 방도가 없고 어떤 약으로도 고칠 수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병겁이 휩쓸면 자리를 말아 치우는 줄초상을 치른다.”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병겁으로 사람을 솎아야 사(私)가 없다.” 하시니라.
道典 2:17) 우주의 봄여름, 선천은 상극(相克)의 운(運)
선천은 상극(相克)의 운(運)이라, 상극의 이치가 인간과 만물을 맡아 하늘과 땅에 전란(戰亂)이 그칠 새 없었나니, 그리하여 천하를 원한으로 가득 채우므로, 이제 이 상극의 운을 끝맺으려 하매 큰 화액(禍厄)이 함께 일어나서 인간 세상이 멸망당하게 되었느니라. 상극의 원한이 폭발하면 우주가 무너져 내리느니라.
이에 천지신명이 이를 근심하고 불쌍히 여겨 구원해 주고자 하였으되 아무 방책이 없으므로, 구천(九天)에 있는 나에게 호소하여 오매 내가 이를 차마 물리치지 못하고 이 세상에 내려오게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내가 큰 화를 작은 화로써 막아 다스리고 조화선경(造化仙境)을 열려 하노라.
道典 4:31) 만고원신(萬古寃神) 해원(解寃) 공사
상제님께서 이어 말씀하시기를 “요순시대에 단주가 세상을 다스렸다면 시골 구석구석까지 바른 다스림과 교화가 두루 미치고, 요복(要服)과 황복(荒服)의 구별이 없고 오랑캐의 이름도 없어지며, 만리가 지척같이 되어 천하가 한집안이 되었을 것이니 요와 순의 도는 오히려 좁은 것이니라. 단주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깊은 한을 품어 순舜이 창오에서 죽고 두 왕비가 소상강에 빠져 죽는 참상이 일어났나니,
이로부터 천하의 크고 작은 모든 원한이 쌓여서 마침내 큰 화를 빚어내어 세상을 진멸할 지경에 이르렀느니라. 그러므로 먼저 단주의 깊은 원한을 풀어 주어야 그 뒤로 쌓여 내려온 만고의 원한이 다 매듭 풀리듯 하느니라. 이제 단주를 자미원(紫微垣)에 위(位)케 하여 다가오는 선경세계에서 세운(世運)을 통할(統轄)하게 하느니라.” 하시니라.
이제 단주를 자미원(紫微垣)에 위(位)케 하여, 자미원(紫微垣): 동양에서는 북쪽 하늘을 중심으로 자미원(紫微垣), 태미원(太微垣), 천시원(天市垣)으로 구분하였다. 자미원은 옥황상제께서 거주하시는 자미성(북극성)과 그 궁궐인 자미궁을 지키는 장군과 신하 별들로 이루어져 있다. 자미원 아래로 하늘의 천지신명 정부종합청사 격인 태미원이 있고 그 옆에 일반 신명들이 사는 천시원이 있다.
요복(要服)과 황복(荒服): 중국 고대에 왕기(王畿: 왕이 있는 수도 주변의 땅)를 중심으로 다섯 구역으로 나누어 오복(五服)이라 했는데, 차례로 전복(甸服), 후복(侯服), 수복(綏服), 요복(要服), 황복(荒服)이다. 요복은 이(夷)족과 만(蠻)족이 살던 지역이고, 황복은 융(戎)족과 적(狄)족이 살던 지역이다.
道典 4:30) 요(堯)의 아들 단주가 불초(不肖)하였다.’는 말이 반만년이나 전해 내려오니 만고의 원한 가운데 단주의 원한이 가장 크니라.
‘단주의 원한: 삶의 진실이 왜곡되는 것이 원한의 가장 큰 뿌리가 된다는 말씀이다. 역사 왜곡을 바로잡는 문제의 중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道典 2:24) 이제 원한의 역사의 뿌리인 당요(唐堯)의 아들 단주(丹朱)가 품은 깊은 원(寃)을 끄르면, 그로부터 수천 년동안 쌓여 내려온 모든 원한의 마디와 고가 풀릴지라. 대저 당요가 그 아들 단주를 불초(不肖)하다 하여 천하를 맡기지 않고 그의 두 딸과 천하를 순(舜)에게 전하여 주니, 단주의 깊은 원을 그 누가 만분의 하나라도 풀어 주리오.
마침내 순이 창오(蒼梧)에서 죽고 두 왕비는 소상강(瀟湘江)에 빠져 죽었느니라. 그러므로 단주 해원을 첫머리로 하여 천지대세를 해원의 노정으로 나아가게 하노라. 이제 사람도 이름 없는 사람이 기세(氣勢)를 얻고, 땅도 이름 없는 땅에 길운(吉運)이 돌아오느니라.
道典 4:17) 무릇 머리를 들면 조리(條理)가 펴짐과 같이 천륜을 해(害)한 기록의 시초이자 원(寃)의 역사의 처음인 당요(唐堯)의 아들 단주(丹朱)의 깊은 원을 풀면 그 뒤로 수천 년 동안 쌓여 내려온 모든 원의 마디와 고가 풀리게 될지라. 대저 당요가 단주를 불초히 여겨 두 딸을 우순(虞舜)에게 보내고 천하를 전하니 단주가 깊은 원을 품은지라.
마침내 그 분울(憤鬱)한 기운의 충동으로 우순이 창오(蒼梧)에서 죽고 두 왕비가 소상강(瀟湘江)에 빠져 죽는 참혹한 일이 일어났나니 이로 말미암아 원의 뿌리가 깊이 박히게 되고 시대가 지남에 따라 모든 원이 덧붙어서 드디어 천지에 가득 차 세상을 폭파하기에 이르렀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단주 해원을 첫머리로 하고,
또 천하를 건지려는 큰 뜻을 품었으나 시세(時勢)가 이롭지 못하여 구족(九族)이 멸하는 참화를 당해 철천의 한(恨)을 머금고 의탁할 곳 없이 천고(千古)에 떠도는 모든 만고역신(萬古逆神)을 그 다음으로 하여, 각기 원통함과 억울함을 풀고, 혹은 행위를 바로 살펴 곡해를 바로잡으며, 혹은 의탁할 곳을 붙여 영원히 안정을 얻게 함이 곧 선경을 건설하는 첫걸음이니라.
천륜(天倫)을 해(害)한 기록의 시초이자, 천륜을 해한: 단주의 원한은 천륜이 파괴된 원한으로서 역사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는 의미에서 가장 큰 원한이다.
道典 4:28) 모든 역신을 별자리로 붙여 보내심
이 때는 해원시대라. 사람도 이름나지 않은 사람이 기세를 얻고 땅도 이름 없는 땅이 기운을 얻느니라. 나는 동서양의 만고역신(萬古逆神)을 거느리느니라. 원래 역신은 시대와 기회가 지은 바라. 역신이 경천위지(經天緯地)의 재능으로 천하를 바로잡아 건지려는 큰 뜻을 품었으나 시세가 이롭지 못하므로 그 회포(懷抱)를 이루지 못하고 멸족의 화(禍)를 당하여 천추에 원귀가 되어 떠돌거늘,
세상 사람들은 사리(事理)를 잘 알지 못하고 그들을 미워하여 ‘역적놈’이라 평하며 일상용어에 모든 죄악의 머리로 일컬으니 어찌 원통치 않겠느냐. 그러므로 이제 모든 역신을 만물 가운데 시비(是非)가 없는 별자리(星宿)로 붙여 보내느니라. 하늘도 명천(明天)과 노천(老天)의 시비가 있고, 땅도 후박(厚薄)의 시비가 있고, 날도 수한(水旱)의 시비가 있고, 때도 한서(寒暑)의 시비가 있으나 오직 성수(星宿)에는 그런 시비가 없느니라.
道典 5:6) 현하대세를 오선위기(五仙圍碁)의 기령(氣靈)으로 돌리나니, 두 신선은 판을 대하고 두 신선은 각기 훈수하고 한 신선은 주인이라. 주인은 어느 편도 훈수할 수 없어 수수방관하고 다만 손님 대접만 맡았나니, 연사(年事)에 큰 흠이 없어 손님 받는 예(禮)만 빠지지 아니하면 주인의 책임은 다한 것이니라.
바둑을 마치고 판이 헤치면 판과 바둑은 주인에게 돌아가리니, 옛날 한 고조(漢高祖)는 마상(馬上)에서 득천하(得天下)하였으나 우리는 좌상(坐上)에서 득천하하리라.” 하시니라.
현하대세를 오선위기(五仙圍碁)의 기령(氣靈)으로 돌리나니, 오선위기의 기령으로: 우주의 통치자요 주재자이신 상제님께서는 조선을 중심으로 4대 강국이 바둑 두는 형국으로 돌아가도록 세운(世運, 세상 운로)의 틀을 짜놓으셨다. 상제님께서는 오선위기의 전개 과정을 씨름판인 난장판에 비유하셨다. 난장판은 본래 ‘애기판-총각판-상씨름판’으로 전개된다.
道典 5:336) 내 도수는 바둑판과 같으니라
상제님 일행이 서울에 도착하니 때마침 큰 눈이 내려 걷기조차 쉽지 않더라. 상제님께서 덕수궁 대한문(大漢門)과 원구단(圓丘壇) 사이의 광장에 가시어 성도들 중 네 명을 뽑아 사방위로 둘러앉히시고 그 한가운데에 앉으시어 말씀하시기를 “이곳이 중앙 오십토(中央五十土) 바둑판이니라.” 하시니라.
이 때 상제님께서 공우에게 물으시기를 “공우야 쌀이 솥을 따르느냐, 솥이 쌀을 따르느냐?” 하시니 공우가 “쌀이 솥을 따르지요.” 하고 아뢰거늘, 말씀하시기를 “네 말이 옳도다. 쌀은 미국이고 솥은 조선이니 밥을 하려면 쌀이 솥으로 올 것 아니냐.” 하시고, “장차 일본이 나가고 서양이 들어온 연후에 지천태 운이 열리느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내 도수는 바둑판과 같으니라. 바둑판 흑백 잔치니라. 두 신선은 바둑을 두고 두 신선은 훈수를 하나니, 해가 저물면 판과 바둑은 주인에게 돌아가느니라.” 하시고, “난리가 나간다, 난리가 나간다. 난리가 나가고 병이 들어오리라.” 하시니라.
덕수궁 대한문(大漢門)과 원구단(圓丘壇) 사이의 광장에 가시어, 원구단(圓丘壇): 천자가 옥황상제께 천제를 지내는 천단(天壇)이다. 조선은 제후국을 자처했기 때문에 원구단이 없었으나 고종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선포하고 황제로 즉위하면서 원구단을 설치하였다.
쌀이 솥을…. 솥(鼎)은 왕권의 상징이자 주역 64괘 중 50번째 괘로 변혁의 상징이다. 여기서 쌀은 미국을 의미한다.
道典 5:415) 오선위기(五仙圍碁) 도수(度數)의 총결론
상제님께서 천지공사를 마치시고 말씀하시기를 “상씨름으로 종어간(終於艮)이니라. 전쟁으로 세상 끝을 맺나니 개벽시대에 어찌 전쟁이 없으리오.”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아무리 세상이 꽉 찼다 하더라도 북쪽에서 넘어와야 끝판이 난다. 난의 시작은 삼팔선에 있으나 큰 전쟁은 중국에서 일어나리니 중국은 세계의 오고 가는 발길에 채여 녹으리라.” 하시고, “장차 병란(兵亂)과 병란(病亂)이 동시에 터지느니라.
전쟁이 일어나면서 바로 병이 온다. 전쟁은 병이라야 막아 내느니라. 그 때는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어 이기고 지는 쪽 없이 멸망하리라. 그 때가 되면 천하대세가 너희들에게 돌아가리니 내 일이 일시에 이루어지느니라.” 하시니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매사에 주인 없는 공사가 있느냐. 각국에서 와서 오선위기 도수로 바둑을 두다가 갈 적에는 판과 바둑은 주인에게 도로 주고 가느니라.” 하시니라.
바둑의 기원은 “요堯임금이 바둑을 만들었고, 요임금의 아들 단주丹朱가 두었다”고 전국시대의 책으로 알려진『세본世本』「작편作篇」기록과『수신기(搜神記)』와 함께 위진 남북조(魏晉南北朝)시대 문장가이자 시인인 장화(張華, 232~300)의『박물지博物志)』에는 ‘요조위기단주선지堯造圍棋丹朱善之’(요임금이 바둑을 만들었고 단주가 바둑을 두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외에도 양나라 사람인 소역 (蕭繹.508-554)이 편찬한『금루자(金樓子)』라는 책에 요임금이 수양을 목적으로 맏아들 단주丹朱에게 바둑을 가르쳤다고 하였고, 바둑판은 문상文桑의 나무로 바둑알은 물소 뿔과 상아로 만들었다고 하였다.
또 원나라 때 편찬된 <현현기경(玄玄棋經)>에서도 “옛날 요임금이 바둑을 만들어 아들을 가르쳤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하튼 바둑을 최초로 둔 인물이 단주丹朱인 것만은 분명하다. 단주丹朱는 4300년 전 가장 이상적인 정치가로 꼽는 요순堯舜시대 때 인물이다. 요堯임금은 본래 동방 배달국 8세 안부련 환웅의 신하인 소전씨(少典氏)의 후예인 제곡고신(帝嚳高辛,BCE 2436~BCE 2367)의 아들이다. 요임금은 산의씨散宜氏의 딸 여황女皇을 아내로 맞아 맏아들 단주 외에 아홉 아들과 두 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을 두었다. 적장자인 주朱가 단연丹淵(지금의 단강丹江)이란 곳의 제후로 봉해져 단주丹朱라고 불렸다.
단주丹朱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서경 요전堯典에 나온다. 요임금 제위 70년이 되자 요堯임금이 자리를 물려 줄 후계자를 대신들에게 묻는다. 그러자 신하 방제放齊가 아뢰기를 “맏아들(胤子)인 주(단주)가 명석합니다(啓明)”라고 말했다. 당시 요堯의 조정에 있던 신하들은 요임금의 아들 단주가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경륜이 있는 계명啓明(사리가 밝다)한 인물임을 알고 있었기에 천거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후한 때 경학자 정현(鄭玄,127~200)은 “요 임금의 뒤를 잇는 자식은 이름이 단주이며 개명開明하였다”라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요임금은 단주를 천거한 방제放齊의 진언을 물리치면서 “단주는 말에 믿음이 없고, 또 싸움과 송사를 좋아하니 불가하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결국 홀아비였던 우순虞舜에게 두 딸을 시집보냈을 뿐만 아니라 제위(帝威)도 넘겨주었다는 이른바 요순 선양禪讓이다.
그러나 단주는 요堯임금과는 달리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개방적이고 사교적인 심법을 지닌 인물이었다. 늘 민중의 삶을 염려하였고, 동방 동이족과 서방 화이족이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려는 대동세계를 건설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아들 단주에게 대권을 넘길 뜻이 전혀 없던 요堯는 결국 말년에 우순虞舜에게 넘겨주게 된다.
그러고서 요堯임금은 단주에게 바둑판을 만들어주며 “너는 이 바둑을 두면서 먼저 마음을 닦으라”고 훈계하였다. 대동세계를 열려는 꿈과 야망이 모두 무너져버린 단주는 순舜을 향한 증오와 분노가 더욱 강하게 마음 깊숙히 새겨진 것이다. 분울한 나날을 보내던 단주는 드디어 반격의 실마리를 잡게 된다.
『산해경山海經』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남방의 동정호洞庭湖와 팽려호彭蠡湖 일대에는 구려九黎의 후예인 삼묘족三苗族이 있었다. 배달국 치우천황이 동방을 통일하고 중원에 입성하자 치우 천황에게 귀속함으로써 오늘날까지 묘족苗族은 반고씨, 태호복희씨, 치우천황 세 분을 조상으로 섬기며 제사를 지내오고 있다.
삼묘족은 동방족의 일원으로 치우천황의 명을 받들어 탁록대전에서 황제 헌원에 맞서 싸웠기 때문에 이후 서방족에게 미운털이 박혀 갖은 박해를 받아야 했다. 이들은 단주와 매우 가까운 사이였고, 요임금이 순舜에게 제위를 넘겨주자 이에 승복하지 못하고 삼묘의 왕이 단주와 연합하여 반기를 들었다.
당시 삼묘국 임금은 협화만방(協和萬邦)을 주장하는 요임금의 아들 단주를 흠모하여 그의 등극을 후원하였다. 그러나 요임금은 단주를 불초하게 여겨 순에게 섭정을 맡기고 장차 보위를 넘기려 하자 삼묘국 임금은 부당한 처사라며 강력히 비난하였다. 이에 요임금은(실질적으로는 순舜)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켜 친히 남방으로 출정하게 된다. 두 세력은 단수 포구에서 격돌하였고 단주와 삼묘의 연합군은 궤멸당했다. 이 싸움에서 삼묘三苗의 왕과 단주丹朱는 전사하였다고 한다. 살아남은 삼묘족의 백성들은 본래 왔던 삼위산三危山으로 유배 보내졌다는 것이다.
요순시대라 하면 일반적으로 성인의 도덕으로 나라를 다스린 태평성대라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道典 4편 30장] 요순에 얽힌 역사의 진실
세상에서 우순虞舜을 대효大孝라 일러 오나 순舜은 천하의 대불효니라. 그 부친 고수高叟의 악명이 반만년 동안이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하였으니 어찌 한스럽지 않으리오. 세상에서 요순지치(堯舜之治)를 일러 왔으나 9년 홍수는 곧 창생의 눈물로 일어났나니 요堯는 천하를 무력으로 쳐서 얻었고, 형벌刑罰은 순舜으로부터 나왔느니라. [道典 4편 30장]
道典 4편 31장) “요堯의 아들 단주가 불초不肖하였다.’는 말이 반만년이나 전해 내려오니 만고의 원한 가운데 단주의 원한이 가장 크니라. 정말로 단주가 불초하였다면 조정의 신하들이 단주를 계명啓明하다고 천거하였겠느냐. 만족蠻族과 이 족夷族의 오랑캐 칭호를 폐하자는 주장이 어찌 말이 많고 남과 다투기를 좋아하는 것이겠느냐?
상제님께서 이어 말씀하시기를 “요순시대에 단주가 세상을 다스렸다면 시골 구석구석까지 바른 다스림과 교화가 두루 미치고 요복要服과 황복荒服의 구별이 없고 오랑캐의 이름도 없어지며, 만리가 지척같이 되어 천하가 한집안이 되었을 것이니 요와 순의 도는 오히려 좁은 것이니라.
단주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깊은 한을 품어 순舜이 창오에서 죽고, 두 왕비가 소상강에 빠져 죽는 참상이 일어났나니 이로부터 천하의 크고 작은 모든 원한이 쌓여서 마침내 큰 화를 빚어내어 세상을 진멸할 지경에 이르렀느니라. 그러므로 먼저 단주의 깊은 원한을 풀어 주어야 그 뒤로 쌓여 내려온 만고의 원한이 다 매듭 풀리듯 하느니라. 이제 단주를 자미원紫微垣에 위位케 하여 다가오는 선경세계에서 세운世運을 통할統轄하게 하느니라.”(道典 4편 31장)
道典 2편 24장) 인류의 원한의 역사의 뿌리, 요임금의 아들 단주丹朱
이제 원한의 역사의 뿌리인 당요唐堯의 아들 단주丹朱가 품은 깊은 원寃을 끄르면 그로부터 수천 년 동안 쌓여 내려온 모든 원한의 마디와 고가 풀릴지라. 대저 당요가 그 아들 단주를 불초不肖하다 하여 천하를 맡기지 않고 그의 두 딸과 천하를 순舜에게 전하여 주니 단주의 깊은 원을 그 누가 만분의 하나라도 풀어 주리오.
마침내 순이 창오蒼梧에서 죽고 두 왕비는 소상강瀟湘江에 빠져 죽었느니라. 그러므로 단주 해원을 첫머리로 하여 천지대세를 해원解寃의 노정으로 나아가게 하노라. 이제 사람도 이름 없는 사람이 기세氣勢를 얻고, 땅도 이름 없는 땅에 길운吉運이 돌아오느니라. (道典 2편 24장 4절~10절)
머리위의 솟대 상투(上斗, 북두칠성), 북두칠성에 계신 하느님과 하나되어 살겠다는 의지의 상징
당唐나라 요임금 말기와 우虞나라 순임금 초기는 9년 대홍수가 일어났던 때로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질데로 피폐해진 시기였다. 그러나 유학자들은 요순시대가 태평성대였다고 사실을 왜곡하였고, 요임금의 아들 단주는 불초하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공자는 <상서(尙書)>를 편찬하면서 요와 순의 언행과 사적을 기록한 <요전堯典>편과 <순전舜典>편 중, 요전堯典편에서는 단주가 부정적으로 묘사됨으로써 후세인들은 그 내용을 금과옥조로 여기고 무비판적으로 이를 답습하고 확대 발전시켰던 것이다.
당나라 요임금에 관한 내용은 <순자>의 <정론正論>편과 한비자의 <설의說疑>, <죽서기년竹書紀年>, <사기정의史記正義>, <사통(史通> 등에 나온다. 당나라 요임금은 고조선(단군조선)의 초대 단군왕검과 동시대 인물이다. <삼국유사三國遺史> '고조선조'에 "위서(魏書)에 운(云) 내왕이천재(乃往二千載)에 유단군왕검(有檀君王儉)이 입도아사달(入都阿斯達)하시고 개국호조선(開國號朝鮮)하시니 여고동시(與高同時)니라.
<위서(魏書)>에 이르기를, 지난 2천 년 전에 단군왕검께서 도읍을 아사달에 정하시고 나라를 세워 이름을 조선朝鮮이라 하시니 요임금과 같은 시대라 하였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요임금의 성姓은 이기伊祁 혹은 기祁이고 이름은 방훈이다. 임금이 된 지摯는 방훈을 도陶(산둥성 하택현河澤縣)에 봉하고 다시 당唐(허베이성河北省 당현唐縣)에 봉했다. 그래서 요임금을 도당씨陶唐氏라고 한다. 정치세력이 미약한 형 대신에 꾸준히 세력을 키운 요堯는 복종치 않거나 반란을 일으킨 제후들을 정벌하였다. 그 과정에서 등극을 반대하는 제후와 정적을 숙청하고 무고한 백성들을 무참히 살육하여 천하를 피로 물들였다.
피비린내 나는 살상의 정벌전쟁을 통해 실권을 장악한 요堯는 형을 몰아내고 선위형식으로 제위에 올랐다. 이때는 지금으로부터 BCE 2357년이다. 요堯임금과 동시대인 BCE 2333년에 단군성조께서 배달국을 계승하여 고조선(단군조선)을 개국하였다.
당시 요임금은 자신의 조상이자 중국인들이 시조로 받드는 황제 헌원의 통치이념을 계승하려고 하였다. 즉, 화이華夷 세력을 중심으로 천하를 지배하려는 통치의식을 갖고 있었다.
이미 그 이전에 동방 배달에서 갈려나와 서방에 자리잡은 헌원이 스스로 천자(天子)라 자처하며, 동방의 배달국을 배척하다 탁록에서 치우천황蚩尤天皇에게 무릎을 꿇은 굴종의 역사가 있었다. 이를 잘 아는 요堯가 등장하자 중원은 다시 전란의 시기로 접어들었다. 주변의 이민족을 오랑캐라 무시하는 중화中華사상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요堯 자신이 제왕이라 칭하며 동방의 본조인 단군조선에서 이탈하려 하였다.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영토 분쟁을 일으켰다.
▶ 송미자세가 홍범구주편에는, 우禹가 치수를 맡으니 하늘(天)이 우에게 홍범구주등을 내리어 치수에 성공하게 되었다라고 적고 있다
箕子ㅣ 乃言曰 我聞호니 在昔鯀이 陻洪水하야 汨陳其五行한대 帝乃震怒하샤 不畀洪範九疇하시니 彛倫의 攸斁니라. 鯀則殛死ㅣ어늘 禹乃嗣興하신대 天乃錫禹洪範九疇하시니 彛倫의 攸叙ㅣ니라. 기자가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옛적에 곤(하나라 우임금의 아버지)이 홍수를 막으면서 五行을 어지러이 펼치니 帝가 진노하여 곤에게 홍범구주를 주지 않으시니 이륜이 무너졌다. 곤이 귀양가서 죽자 禹가 이어서 일어나시니 하늘이 우禹에게 홍범구주를 주시어 이륜이 펼쳐지게 되었느니라.
천하를 무력으로 차지한 요堯임금 시대는 여러 재앙들이 끊이지 않았고, 일찍이 유례가 없는 홍수를 겪게 된다. 9년 홍수는 요堯임금 시대를 지나 순舜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다.
순舜임금 시대에 치수治水 책임자는 우의 아버지 곤鯀이었다. 하지만 그는 치수에 실패하였고, 결국 우수羽水라는 지역으로 추방당한 뒤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이후 아버지 곤鯀을 이어 치수 사업을 담당했던 아들 우禹는 BCE 2267년 갑술년 동방 천자인 단군성조께서 파견한 부루扶婁태자의 오행치수법을 전수받아 치수에 성공한다. 그리하여 각 지역의 민심을 얻어 세력을 키운 뒤 아버지 곤鯀을 죽인 순舜의 제위를 빼앗아 하夏나라를 세우게 된다.
단주 원한의 역사 이면에는 이렇게 요堯순舜우禹 3대에 걸친 역사와 진실이 담겨 있다. 요순선양설과 9년 홍수, 그리고 소상반죽(瀟湘斑竹)에 얽힌 비극적 이야기를 관통해 보면 단주의 원한은 제위를 물려 받지 못한 개인 차원의 단순한 문제를 넘어서서 천하를 대동세계로 만들고자 한 원대한 이상 실현의 꿈이 좌절되며 발생한 울분과 원통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순舜임금과 우禹의 문답형식으로 된 서경(書經)의 익직益稷편에서는 단주에 대해 이렇게 폄하하고 있다.
“요임금의 아들 단주처럼 오만하고 게을러서는 안 됩니다. 그는 놀기만 좋아하고, 포악한 짓만을 일삼았습니다. 그래서 단주의 집안은 그의 대에서 끊기고 말았던 것입니다.” 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유학 경전인 맹자孟子 만장萬章편에도 ‘불초한 단주’라는 표현으로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단주에 대한 역사는 더욱 왜곡되어 왔다.
『태백일사太白逸史』「삼한관경본기」<번한세가>에서는 "단군왕검 때는 당요와 같은 때인데, 요의 덕이 갈수록 쇠하여 영토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천황(단군왕검)께서 우순(우虞나라 순임금)에게 명령하여 영토를 나누어 다스리게 하고 군사를 보내 주둔시키셨다. 요임금의 당唐나라와 순임금의 우虞나라는 모두 고조선(단군조선)의 제후국이었다. 태평성대의 대명사가 된 요순시대는 전쟁과 홍수가 그칠새 없었던 중국사에서 가장 혼란한 시기 중 하나이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평화적인 정권교체라고 알려진 소위 '요순선양설'의 실체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
초대 단군왕검 재위 50년째인 정사년(BCE 2284년)에 단군조선(고조선)에 큰 홍수가 발생하였다. 초대 단군왕검께서는 대홍수를 다스리시기 위해 마리산에 참성단을 쌓으시고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올렸다.
고려 공민왕 때 지금의 국무총리 자리에 있었던 행촌 이암(杏村 李灸,1297~1364)의『단군세기(檀君世紀)』에 "재위 50년 정사(丁巳)년에 홍수가 범람하여 백성이 편안히 살 수 없게 되었다.
단군왕검께서 풍백 팽우에게 명하여 물을 다스리게 하시고 높은 산과 큰 하천을 잘 정리하여 백성이 편안히 거처하게 하셨다. 우수주에 이 내용을 기록한 비가 남아 있다 "
“재위 51년 무오(BCE 2283)년에 왕검께서 운사 배달신에게 명하여 혈구에 삼랑성을 건설하게 하시고 마리산에 제천단을 쌓게 하시니 지금의 참성단이 곧 그것이다.” <단군세기(檀君世紀)>
요순 시절 9년 대홍수와 부루태자의 도산회의 소집
요임금 시절에 9년 홍수(실제는 BCE 2288년 ~ BCE 2267년)가 발생했다. 요임금은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적임자를 찾았고 곤(鯀)이라는 사람이 중책을 맡았다. 그러나 9년이 지나도 범람이 진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요는 곤鯀을 대신해 순舜을 등용했다.
요堯임금을 이어 즉위한 순임금은 책임을 물어 곤鯀을 귀향보내고 그 아들 우禹가 직책을 잇게 했다.
▶ <단군세기(檀君世紀)>에는 재위 67년 갑술(BCE 2267)년에 왕검께서 태자 부루를 보내어 우순이 보낸 사공과 도산에서 만나게 하셨다. 태자께서 오행치수지법을 전하시고 나라의 경계를 살펴 정사히니 유주 영주 두주가 우리 영토에 귀속되고 회수와 태산 지역의 제후들을 평정하여 분조를 두어 다스리실 때 우순을 시켜 그 일을 감독하게 하셨다. <단군세기(檀君世紀)>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 상>에는 9년 홍수가 일어나 그 재앙이 만민에게 미치므로 단군왕검께서 태자 부루를 보내어 우나라 순임금과 약속하게 하시고 도산 회의를 소집하셨다. 순임금이 사공 우를 보내어 우리의 오행치수법을 받아 치수에 성공하게 되었다. 이때 감우소를 낭야성에 설치하여 구려 분정에서 논의된 일을 결정하였다.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 상]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에는 태자부루는 도산에 이르러 일들을 주관하였으며, 번한을 통하여 우사공에게, "나는 북극 수정자이니라"하는 말로 시작하여 천부왕인(天符王印), 신침(神針), 황구종(皇矩宗)이라는 치수에 필요한 3가지 보물을 주면서, "천제자의 가르침에 어긋남이 없도록 하라" 하였고, 이에 우禹가 "천제자의 명을 게으름없이 행하겠다" 하면서 태자부루로부터 금간옥첩을 받으니 치수의 요결이다라고 구체적으로 적고 있다.
☞ 9년 홍수가 일어나 그 재앙이 만민에게 미치므로 단군왕검께서 태자 부루를 보내어 우나라 순임금과 약속하게 하시고 도산 회의를 소집하셨다.
순임금이 사공 우를 보내어 우리의 오행치수법을 받아 치수에 성공하게 되었다. 이때 감우소를 낭야성에 설치하여 구려 분정에서 논의된 일을 결정하였다.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 상]
☞ 태자가 도산에 도착하여 주장의 자격으로 회의를 주관하실때 번한왕을 통해 우사공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북극수의 정기를 타고한 아들이니라. 너희 임금이 나에게 홍수를 다스려 백성을 구해주기를 청원하니 삼신상제님께서 내가 가서 도와주는 것을 기뻐하시므로 왔노라"
천자국의 문자로 된 천부와 왕인을 보여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것을 차면 험한 곳을 다녀도 위험하지 않고 흉한 것을 만나도 피해가 없으리라. 또 신침 하나가 있으니 능히 물이 깊고 얕음을 측정할 수 있으며 그 쓰임이 무궁하니라. 또 황구종이란 보물은 모든 험한 물을 진압하여 오래도록 잔잔하게 할 것이니라. 이 세가지 보물을 너에게 주노니 천제자(단군왕검)의 거룩하신 말씀을 어기지 말아야 가히 큰 공덕을 이룰 수 있으리라"
우사공이 삼육구배하고 나아가 아뢰었다. "삼가 천제가의 어명을 잘 받들어 행할 것이요. 또 저희 우순께서 태평스런 정사를 펴시도록 잘 보필하여 삼신상제님께서 진실로 기뻐하시도록 지극한 뜻에 보답하겠사옵니다"
부루태자로부터 금간옥첩을 받으니 곧 오행치수의 요걸이었다. 태자께서 구려를 도산에 모아놓고 우순에게 명하여 조공바친 사례를 보고하게 하시니 오늘날 이른바 '우공'이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말한다.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 상]
중국 문헌의 왜곡
사공 우가 금간옥첩을 받아간 것과 관련된 기록은 [오월춘추]와 [역대신선통감], 그리고 [응제시주]와 [세종실록], [동국여지승람], [동사강목], [묵자] 등에서 확인된다.
중국이 중화주의 사관으로 쓴 [오월춘추]는 부루태자를 '창수사자'라 말하며 은인의 실체를 감추었고 또한 창수사자가 우의 꿈에 나타나 비법을 알려준 것으로 기록하여 우가 순전히 자신의 현몽으로 국난을 해결한 것으로 왜곡하였다.
▶ 禹乃東巡, 登衡嶽, 血白馬以祭, 不幸所求.... 因夢見赤繡衣男子, 自稱玄夷蒼水使者... 東顧謂禹曰 欲得我山神書者, 齋於黃帝巖嶽之下三月 ... 禹退又齋三月, 庚子登宛委山, 發金簡之書, 案金簡玉字, 得通水之理. 9년 홍수를 다스리던 우가 8년 동안이나 공을 이루지 못하고 매우 걱정하여 형산에 이르러 백말을 잡아 하늘에 제사하여 성공을 빌었다. 그랬더니 꿈에 붉은 옷을 입은 남자가 스스로 ‘현이의 창수사자’ 라 칭하면서 우에게 “신서가 있으니 재계하고 이를 내어 보라” 하므로 우가 그렇게 하여 금간의 신서를 얻어 오행통수의 이치를 알았다 (<오월춘추> 월왕무여외전)
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선상고사에서 <현이의 창수사자> 부분을 이렇게 풀었다.
현이(玄夷)는 당시 조선의 동 ·남 ·서 ·북 ·중 오부를 남 (藍) ·적(未) ·백 (白) ·현 (玄: 黑) ·황 (黃) 으로 별칭했는데, 북부가 곧 현부(玄部) 이니 중국인이 현부를 가리켜 현이(玄夷)라고 한 것이요, 창수(蒼水)는 곧 창수(擔水)이고, 주신(州愼) ·숙신(肅愼) ·직신(稷愼) 혹은 식신(息愼)으로 번역되었으니, 주신은 곧 조선을 가리킨 것이다.
옛 기록의 부루는 오월춘추(吳越春秋)의 창수사자이니, 이때 중국에 큰 홍수가 있었음은 여러가지 옛 역사가 다 같이 증명하는 바인데, 단군왕검이 그 수재를 구제해주려고 아들 부루를 창해사자(滄海使者)에게 명하여 도산에 가서 하우를 보고, 삼선오제교(三神五帝敎)의 일부분인 오행설(五行說: 水火金土木)을 전하고 치수의 방법을 가르쳐주었으므로 우(禹)는 왕이 되자 부루의 덕을 생각하여 삼신오제의 교의를 믿고 이를 중국에 전표(傳布)하였으며, 정전과 율도량형도 또한 중국의 창작이 아니라 단군조선(고조선)의 것을 모방한 것이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꿈에 창수사자를 만났다.’고 하였다.
중원 측의 기록인 <오월춘추>는 부루 태자를 ‘현이의 창수사자玄夷蒼水使者’ 라고 바꾸어서 말할 뿐 나머지는 <단군세기> 내용과 다른 데가 없다. 우가 현이의 창수사자에게 오행통수의 이치를 전해받아서 치수에 성공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꿈이라고 했지만 이정도의 변형 기록으로 남아있다는 것도 역사적 사실을 유추하는데 있어서는 다행한 일이다. 물론 중국 문헌에는 이보다 더 추상적인 내용으로 바꾸어놓은 기록이 많다.
▶ 송미자세가 홍범구주편에는, "우가 치수를 맡으니 하늘(天)이 우에게 홍범구주등을 내리어 치수에 성공하게 되었다 "라고 적고 있다.
▶ 서경(書經)에는 우(禹)가 치수를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늘이 홍범구주(洪範九疇)를 내려주어 이륜이 베풀어졌기 때문이라고 기록했다. [書經 第四篇周書 洪範第六] 天乃錫禹洪範九疇 彛倫攸敍 하늘(天)은 우에게 홍범구주를 내려 일정한 윤리가 베풀어 졌다.
<서경>‘홍범’ 에서는 “하늘이 우에게 홍범구주를 주셨다(天乃錫禹洪範九疇)” 라고 하여 부루 태자를 이번에는 ‘하늘(天)’로 바꿔 말하고 있다.
꿈 속 창수사자 이야기나 하늘로 표현한 것이나 모두 상국上國을 숨기려는 기도를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단군조선(고조선)을 ‘하늘’ 같은 나라라고 여긴 것은 좋으나 단군조선(고조선)이나 단군왕검,부루태자라고 명기되어있지 않고 숨긴 의도는 명확하다고 할 것이다.
국내 문헌의 왜곡 : 사건의 주객 전도
조선시대의 [응제시주]와 [세종실록지리지]는 ‘우가 도산에서 제후들과 회동할 때 태자 부루를 보내 조회하게 하였다’라고 하여 고조선이 오히려 중국의 속국이었던 것처럼 주객이 전도되게 기록하였다.
▶『응제시주應製詩註』단군은 비서갑(非西岬) 하백(河伯)의 딸을 맞아 아들을 낳아 부루(夫婁)라 하였다. 그가 곧 동부여의 왕이다. 우(禹)임금이 도산(途山)에서 제후를 모아 맹세를 할 때, 단군은 아들 부루를 보내어 조회하였다.
▶ 고려 말 안향(安珦)이 지은 시詩〈충선왕을 시종하여 연경에 가는 감회〉에도 부루가 도산에서 우 임금에게 옥 폐백을 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 갑술년(하우 18년) 아들 부루를 하에 보내 조회하게 했다.(이때 우가 제후들과 도산에서 회맹했는데 , 단군이 부루를 보내서 조회하게 했다 ) (홍만종,동국역대총목 단군조선)
▶ 9년 홍수를 당해서 팽오에게는 높은 산과 큰 강을 정하게 하고 우수에 이르러 백성들이 살 터전을 정했다. 단군은 수천년을 살다가 마쳤고 아들 부루가 섰는데 갑술년에 도산에서 하우씨와 회맹했다. 부루 이후에는 세계와 연보를 잃어서 전하지 않는다. (이종휘,수산집 동사본기)
단군왕검이 우(禹)에게 전한 홍범구주
우禹는 아버지 곤이 치수에 실패하여 순임금에게 처형당한후 그 뒤를 이어 나라의 치수사업을 맡아보던 사공 신분이었다. 우禹는 순을 대신하여 도산회의에 참석하여 고조선의 태자 부루에게서 오행치수법이 적힌 금간옥첩을 받았고 이 비법으로 홍수를 해결하고 인심을 얻어 나중에 하나라를 열게 되었다.
낭야성에 감우소 설치
9년 홍수가 일어나 그 재앙이 만민에게 미치므로 단군왕검께서 태자 부루를 보내어 우나라 순임금과 약속하게 하시고 도산 회의를 소집하셨다. 순임금이 사공 우를 보내어 우리의 오행치수법을 받아 치수에 성공하게 되었다. 이때 감우소를 낭야성에 설치하여 구려 분정에서 논의된 일을 결정하였다.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 상]
낭야산(琅邪山) 구글 지도 검색 : 지금도 낭야산,낭야구 등 낭야라는 지명이 그대로 남아 있다. 번한은 치두남이 세상을뜨자 아들 낭야가 즉위하였다. 이해 경인(BCE 2251)년 3월에 가한성을 개축하여 뜻밖의 사태에 대비하였다. 가한성은 일명 낭야성이라고 하는데 번한왕 낭야가 쌓아서 낭야성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
낭야성은 지금의 산동성 제성현 동남에 있다. 원명은 가한성. 번한의 2세 낭야왕이 개축하였다. 일찍이 오늘의 산동,안휘,강소,절강성 일대에 진출하여 살던 동이 조선족을 나누어 다스린 단군조선 분조의 수도였다 (최종 조선상고사 참조)
우임금 “나를 회계산에 묻어다오‘
우임금이 “내가 죽은 뒤에 나를 회계산에 묻어다오.”吾百世之後에 葬我會稽之山하라.(『오월춘추』「월왕무여외전越王無余外傳」)
하夏나라의 창업자는 바로 회계산에서 단군조선의 부루태자로부터 오행치수법이 적힌 금간옥첩을 받아 치수에 성공한 사공 우禹다. 9년 홍수를 해결한 덕에 인심을 얻어 夏나라를 연 우禹임금은 조선의 은혜를 잊지 못해 죽을 때 회계산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현재 우임금의 왕릉은 회계산에 있다.
『서경』「 우서虞書의 순전舜典」에 "東巡望秩 肆覲東后(동순망질 사근동후)"라는 기록이 있다.
“ 순임금이 동쪽 지역을 순수하여 태산泰山에 이르러 시柴 제사를 지내고, 산천을 바라보며 차례대로 제사한 뒤 마침내 동방의 천자를 찾아뵈었다”[東巡守至于岱宗, 柴, 望秩于山川, 肆覲東后].
여기서 동후東后는 결코 제후가 아니다. 그런데 중국 역사가들은 한결같이 동후를‘ 동방의 제후’[東方之諸侯也]라 해석해 왔다. 또한 요즈음 나오는『서경』번역서들도 모두 중국측 억지 해석을 그대로 추종하고 있다. 하지만『강희자전康熙字典』에서는 “后:君后. 我后. 夏后. 夏言后者. 白虎通云: 以揖讓受于君, 故稱后. 告于皇天后土.”라고 하였다. 여기서‘ 후后’ 자는 군주君主를 지칭하는 말이다. 제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또‘ 근覲’ 자는 ‘하현상下見上’, 즉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문안 드린다는 말이다.『 강희자전』은“ 천자가 즉위하면 제후들이 북면하여 천자께 알현하는 것을 일러 근覲이라 한다”[天子當依而立, 諸侯北面, 而見天子曰覲.]라고 하였으니,‘ 제후인 순舜임금이 그 종주국의 천자인 단군왕검을 알현하였다’는 것이‘ 사근동후(肆覲東后)’의 본뜻이다. “동방의 제후를 찾아뵙다”라고 한 중국측의 해석은 역사의 진실을 왜곡한 아전인수격의 억지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
『서경』의 "東巡望秩 肆覲東后(동순망질 사근동후) 이 구절이야말로 고대 한·중 관계사를 사실 그대로 극명하게 밝힌 매우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여기서『서경』본래의 뜻을 살려 원문을 해석하면,“ 순임금이 요임금에게서 왕위를 물려받은 뒤에 차례로 천신과 산천에 제사를 지내고 동방의 천자이신 단군왕검을 찾아뵈었다”[肆覲東后]가 된다.
상서순전(尙書舜典)에는 “순임금이 이해 이월에 동쪽을 순행하여 대종(태산)에 이르러 제사를 지내고 동후를 알현하고 철과 달을 맞추고 날짜를 바로 잡았으며 악률과 도량형을 일치시키고, 오례와 오옥 세 가지 비단, 두 가지 산 짐승, 한 가지 죽은 짐승 및 예물을 정리하였다. 다섯 가지 옥기는 예가 끝난 후 돌려 드렸다. (歲二月東巡守至于垈宗 柴望秩于山川 肆覲東后 協時月正日 同律度量衡 脩五禮五玉三帛二生一死贄 如五器卒乃復)”라는 기록이 있다.
肆覲東后, 協時月正日, 同律度量衡
동방의 군주를 알현하고 시(時)와 달을 맞추시고 날짜를 바로잡았고 음률과 도량형을 통일하였다.
표준으로서의 음률과 도량형은 천자만이 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부분은 동방의 단군을 알현하고 천자국인 단군조선과 날짜,음률,도향령을 맞추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순히 '사근동후'만을 보아서는 안된다. 이는 순임금 시절의 고대 중국은 단군조선과 서로 율도량형을 통일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은 순임금이 동방의 천자(동후)를 조근하였다는 기록이다. 이와 연관하여 2대 부루단군 시절인 BCE 2238년에 도량형통일이 이루어졌다는 문헌 기록이 단군세기에도 있다.
계묘 3년(B.C2238) 9월 조칙을 내려 백성들로 하여금 머리카락을 땋아서 머리를 덮게하고 푸른 옷을 입게 하였다. 도량형을 모두 관의 표준에 맞게 통일하고 삼베와 모시의 시장 가격을 어디서나 똑같게 하셨다. 백성들 서로 속이지 않으니 어디서나 두루 편안하였다. (단군세기)
『 태백일사太白逸史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에 보면, 태시(大始)에 상하사방(上下四方)이 지일광명의(只一光明矣)라. 이 우주 동서남북에는 한 광명뿐이었다. 이 대우주를 채우고 있는 광명의 실체가 神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神이 자기를 현상 우주에 드러낼 때는 반드시 3수(三數) 원리로 사물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온 우주도 하늘(天)과 땅(地)과 인간(人)으로 자기를 드러낸다. 극미의 원자 소립자 세계로부터 극대우주 자체까지 모든 사물은 3수(三數)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 몸도, 의식의 마음의 구조도, 3(三)의 구조를 가지고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고조선은 삼신문화(三神文化)를 국가 통치 제도로 뿌리내려, 나라를 삼한(三韓)으로 나누어 다스렸다. 곧 한반도를 마한馬韓, 압록강의 북쪽을 진한辰韓, 그리고 요하 서쪽, 지금의 산동성이 있는 쪽을 번한番韓이라 하였다. 이게 삼한관경제(三韓管境制)다. 삼한으로 나라의 국가 영토 경계를 나누어가지고 다스렸다는 것이다. 이 삼한의 삼경 균형이 무너지는 날 고조선이 문을 닫는다는 것이다. 이 삼한 체제는 22대 색불루(索弗婁, BCE 1285~ BCE 1238) 단군 때부터 서서히 동요가 일기 시작했다. 색불루 단군에 이르러 도읍지를 백악산 아사달(현재의 길림성 장춘)로 천도를 한다. 그리고 정국을 안정시키고자 8조금법을 제정하였다.
8조금법은 여덟가지 죄와 각 죄에 대한 처벌을 정한 삼성조(三聖祖,환인,환웅,단군) 시대의 최초의 성문법이다. 법규의 제정은 강력한 통치 체계를 갖춘 고대국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사회분위기와 경제질서가 그만큼 어수선해졌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동안 병권이 주어지지 않았던 부단군이 다시리던 번한(番韓)과 마한(莫韓)에 병권을 일부 나누어 줌으로써 삼한 체제의 동요가 서서히 일기 시작하였다. 이에 삼한관경(三韓觀境)의 체제는 무너지고 대신 두 분조의 독립된 병권이 인정되는 진조선, 번조선, 막조선의 삼조선 체제(分權管境)로 개편되었다.
그 후 43대 물리(BCE 1285~BCE 426) 단군의 재위 말기인 기원전 426년에 커다란 변화를 겪는다. 우화충이 반란을 일으켜 아사달이 점령되고 물리 단군이 피난길에 붕어하고 만다. 이 때 구물 장군이 군사를 일으켜 반란군을 토벌하고 44대(BCE 425~BCE 397) 단군으로 즉위한다. 그리고 국정을 쇄신하기 위해 이 때 국호를 대부여로 바꾸었는데, 이는 한양조선의 고종황제가 국운을 살리기 위해서, 최후의 탈출구로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바꾼 것과 상황이 매우 흡사하다. 국호를 조선에서 대부여로 개칭하고 백악산에서 장당경(요령성 개원)으로 천도하였다.
나라를 근본적으로 혁신해서 다시 살려보려고 몸부림쳤으나 이미 진조선(진한)의 중앙정부 권력은 크게 약화되고 번조선(번한)과 마조선(마한)의 목소리가 높아져 있었다. 중앙정부인 진조선의 권한이 축소되고, ‘좌우의 두 조선’이 형식적으로 진조선을 받드는 형국이 되자 장군들의 반역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고조선은 점점 망국의 길로 접어들었다. 삼조선이 각각 독립된 국가로 운영되면서 삼한관경 체제가 완전히 무너졌다.
그러다가 진조선의 47대 고열가(BCE 425~BCE 238) 단군에 이르러 나라의 정사(政事)가 혼란에 빠지자, 임금이 왕위에서 스스로 물러나버렸다. 그래서 오가五加가 연정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6년 동안 이어졌다. 그런데 고열가 단군이 물러나기 1년 전인 BCE 239년에, 해모수가 웅심산을 중심으로 북부여를 열었다.
우리 민족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어 나가느냐는 것을, 우리 한민족의 국운을 예고한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고조선 6대 달문 (BCE 2083~ BCE 2048) 단군 때의 신지(神誌) 발리(發理)이다. 이게 고려사 김위제전(金謂磾傳)에도 나오고, 조선왕조 때 이익의 성호사설(星湖僿說)에도 이 내용이 있다. 그는 대우주의 조화옹 삼신 상제를 예찬하고 한민족사의 뿌리 되는 역대 열성조의 성덕과 치적을 칭송하면서, 단군조의 앞날과 한민족의 국운에 관한 예언을 남겼다. 그것이『신지비사(神誌秘詞)이다. 여기서 그는 고조선(단군조선)은 삼신 상제의 섭리로 수도 셋을 두고 세 임금이 다스리는 삼경(三境)의 균형이 무너지는 때에 고조선이 패망을 당한다고 하였다.
삼신(三神)은 신의 3대 본성을 얘기하는 것이다. 바로 그 神이 3가지 창조의 손길로 만물을 낳고(造化神), 기르고(敎化神), 다스리는데(治化神) 그 삼신과 한 몸이 되는 길은 즉, 삼신 그 자체가 되는 길은 우리 한민족의 시원역사의 역사정신, 문화정신, 삶의 근본정신이 삼일심법(三一心法)에 있다. 바로 이 우주를 창조한 조물주가 역사를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대해서 대원일(大圓一)로 얘기했는데, 이 대(大)라는 것은 바로 살아있는 무형의 삼신(三神)이 자기를 우주에 드러낼 때는 그것이 곧 하늘과 땅과 인간으로 드러낸다는 것이다.
하늘도, 땅도, 인간도 그 바탕, 본질은 조화신, 교화신, 치화신의 3가지 신성(一)을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걸 천부경에서 수학적으로 천일天一, 지일地一, 인일人一로 정의를 하고 있다. 그래서 부삼신일체지도(夫三神一體之道)는, 즉 내 생명이, 나의 마음이, 온 우주의 존재의 근거인 대우주의 생명의 바탕인 조물주 삼신과 한몸이 되는 역사관의 도통의 비밀은 대원일(大圓一)의 정신에 있다. 대원일(大圓一)은 바로 하늘땅 인간은 본질이 한없이 크다. 무변광대하다는 것이다. 또 한없이 원만한 것이다. 포용하지 않는 바가 없다. 그리고 모든 것과 하나로 일체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삼대(三大), 삼원(三圓), 삼일(三一) 사상(大圓一)이다. 이것을 우리말로 음을 따가지고 커발환이다. 그래서 초대 배달 환웅천왕의 호칭이 커발환(居發桓, BCE 3897~ BCE 3804)이다. 커발환이라고 하는 뜻을 알면 우리 한민족의 신관, 우주관의 근본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