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934호
등대집
함명춘
등대집 하나 짓고 싶다.
열 평도 커 반 뚝 떼어 버리고
일 층은 주방 이 층은 침실 삼 층은 작업실
밤마다 시의 등불을 켜 두고 싶다.
바닷가가 아니라 깊은 내륙,
시의 등불로 도시의 밤을 지켜 주는.
먹고사는 일에 파묻히고
배반과 시기에 눈이 멀어
나조차 잊어버릴 날 많은 내 마음속에도
등대집 하나 세우고 싶다. 그곳에서
아직 낱말조차 되지 못한 자음 모음의 별들을
새벽녘까지 품고 뒹굴다가
아름답고 의미 있는 것보다는
세상에서 가장 추하고 의미 없는 것들을 위해
온종을 빛을 뿜어 줄
햇볕 닮은 시를 낳고 싶다.
- 『종』(걷는사람, 2024)
***
어제 저녁에는 완전히 뻗어 잤는데, 아직 여독이 남은 모양입니다. 조금은 멍한 아침입니다.
지난 토요일 무박 2일로, 전북 고창 입정마을, 박영진 평론가가 촌장으로 있는 <책이 있는 풍경>을 다녀왔습니다.
김홍정 형의 신작 소설 『루도비코의 사람들』 북콘서트가 열린 까닭입니다.
그 외진(?) 곳까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북새통을 이룰 거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잘 짜여진 문학과 음악과 예술의 난장이었습니다.
작가와 독자들이 하나되어 펼치는 유쾌한 난장이었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듯합니다.
새벽에 운전하고 돌아오는 길에 너무 피곤해서
휴게소에서 잠시 들렀더랬습니다.
믹스 커피를 찐하게 내려 마시다가
마침 차 안에 있던 함명춘 시인의 신작 시집을 펼쳤습니다.
캄캄한 그 새벽에
텅빈 휴게소에서 졸린 눈으로 몇 장을 넘기다가
그의 시 「등대집」에 그만 눈이 맞았던 것인데요....
커피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함명춘 시인의 시 「등대집」 때문이었을까요.
피곤함도 잊고, 졸린 것도 잊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추하고 의미 없는 것들을 위한 것"
<책이 있는 풍경>에서 보았던 것을
함명춘 시인의 시집에서 또 보았으니 이것은 우연일까요 아니면 필연일까요.
세상의 저 많은 책들이
소설과 시와 산문으로 지어낸 저 문장의 집들이
알고 보면 <등대집>이 아닐까 싶습니다.
2024. 4. 29.
달아실 문장수선소
문장수선공 박제영 올림
첫댓글 10평을 반 뚝 잘라도 3층이면 딱 좋은 평수 같고요~ㅋ 바다가 아닌 산중에 햇빛을 낳는 등대집이라니~ 제 취향에도 딱입니다~ㅎㅎㅎ
등대집이 보이는 언덕에 오래 앉아 있다 갑니다
감사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추하고 의미 없는 것들을 위해 한 줌 햇볕을 준다면 그보다 좋은 시는 없을 것입니다.
한 줌 햇볕을 우리는 늘 바라고 기다리고 있습니다.ㅎ
박시인님, 이제 나이 생각하고 몸을 잘 돌보소서. 무박 2일은 너무 심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