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사모'의 정체성 선언 ****
방문자 여러분 !
먼저 '전사모' 카페를 찾아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본 카페는, 2003년 전두환 전 대통령과는 조금의 연고도 없는, 20대의 순수한 청년에 의해서,
전두환 전 대통령님을 추억하고자 Open됐었습니다.
최근 좌파의 일개- 드라마,시사프로의 역반응으로 '카페'가 생긴것이 아님을 강조드립니다.
좌파정부,방송사가 정치적 목적으로, 5공의 잘잘못을 왜곡하는 현실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진실규명에 전사모는 최선을 다할것입니다.
오늘 저희는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25년간 밝혀진 사실에 입각, 제5공화국 탄생의 시대적 배경을 서술드리는바
님의 '선입견'을 배제하시고, 객관적 입장에서 잘잘못을 판단하시는 좋은 기회가 되시길 호소드립니다.
님께서 10.26 수사 책임자 이셨고, 10.26ㅡ12.12를 냉철히 몸소 수사하시는 기분으로, 아래 증거를 바라봐 주시길 빕니다.
평가는, 남의 일로 단순 비판할 때와, 막상 자신이 비판 주역 입장 일 때와는,확연히 다름을 경험학 적으로 모두가 알고 계십니다.
행여, 아래의 역사적 사실을 굳이 부인,왜곡하시는 방문자께서는, 저희도 강요할 수 없는 바, 본 카페에 시비를 걸어 분쟁을 야기치 마시고
귀하의 취향에 맞는 카페에서 웅지를 펼치시길 소원합니다.
*****제5공 탄생 탐구*****
자료정리: 독도, 박문수
(10 .26밤 시해)
이날 밤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이해 못하면, 5공을 부정적으로 보는게 당연할 것, 해서 님이
수사 책임자라고 여기시고 봐 주시길...
1979년 10월 26일,
박대통령이 삽교호 방조제 준공식을 마치고 귀경후,오후 4시에 차지철이 김재규에게 전화를 했다.
“오늘 저녁 6시, 각하께서 궁정동 안가에서 만찬을 하실 것이니 준비를 해주시오. 참석인원은 김계원 비서실장, 중앙정보부장 그리고 나요”
이 전화를 받은 김재규는 “바로 오늘”이라는 생각에 즉시 평소에 공을 들여온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란 예비 음모-
“정총장, 오늘 저녁 좀 만났으면 하오. 궁정동 안가 알지요. 6시30분까지 궁정동 본관으로 좀 와 주시오”.
궁정동에서 5시50분 김재규, 김계원 두 사람은 안가 정원에 앉았다. 김계원이 입을 열었다.
“차지철 그 사람 월권을 해서 야단이야, 야당 친구 몇 사람의 말만 듣고 각하에게 보고하여 각하를 강경하게 몰아가고 있단 말야”
기다렸다는 듯이 김재규가 호응했다.
“형님, 오늘 저녁 이놈을 해치우겠습니다. 뒷일은 형님이 책임져 주시오”
김계원이 고개를 끄덕여 이에 동의를 표시했다 (김재규 내란음모사건- 소송기록73-101면).
그렇지 않았다면 “여보, 당신 그게 무슨 소리요?” 하고 놀랐을 것이다. “차지철만 죽이고 대통령을 살려두면 당신과 나는 어떻게 되는 거요”
“뒷일이라는 게 뭐요?” 라고 정색하는게 당연한 순리일것1ㅡ시해 사전 인지ㅡ
오후 6시05분, 만찬이 시작됐다. 박대통령 양 옆에는 가수 심수봉과 모델 신재순이 앉아 있었고,
대통령: “오늘 삽교천 준공식 광경을 왜 KBS TV에 보도하지 않는가? 정보부장, 신민당 상황은 어떻소?“
김재규; “공화당 발표 때문에 다 틀렸습니다. 사표 내겠다고 한 친구들이 다 강경으로 돌아섰습니다.
아무래도 당분간 정대행 체제의 출범은 어렵겠습니다. 그리고 주류가 강해져서 다소 시끄럽겠습니다.”
차지철: “그까짓 새끼들 까불면 신민당이고 학생이고, 전차로 싹 깔아뭉게 버리겠습니다.”
6시35분, 정승화 육군총장이 안가 별채에 도착했다. 정승화는 전에도 몇 차례 김재규의 초청을 받은 바 있어 안가지역에 대해 익숙해 있었다
7시, 김재규는 정승화가 와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만찬장을 빠져나와 작은 정원을 사이에 두고 50m 떨어진 본관 1층 식당 문을 열었다.
정승화와 중앙정보부 2차장보 김정섭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정총장, 미안하오. 내가 안가의 각하와의 행사를 마치고 올터이니 두분이 식사를 하고 계시오.”
그리고 같은 건물 2층 직무실로 올라가. 책장 뒤에 은닉해 두었던 소형 권총을 하의 라이타 주머니 에 넣고 나왔다.
이때 박선호와 박흥주 대령이 뒤를 따랐다. “박 실장, 본관에 육군총장과 2차장보가 와 있다. 오늘 해치운다. 너희들은 경호원들을 처치해라”
이어서 주머니의 권총을 보여주며 결의를 확인시켜 주었다.
김재규: “준비되었는가?”
박선호: “완료됐습니다”
결행준비 완료! 연회장으로 와보니 꼴보기 싫은 차지철이 또 강경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신민당 놈들, 국회의원 그만하고 싶은놈 하나도 없습니다. 반정부적인 놈들이 언론을 타고 선동하는 것이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 자식들 신민당이고 뭐고 나오면 전차로 갈아뭉개겠습니다.”
이말에 이어, 김재규는 김계원을 향해 “각하를 똑바로 모십시오”하고 툭 친후, 이어서 차지철을 쏘아보며
“각하, 이 따위 버러지 같은 새끼를 데리고 정치를 하니 올바로 되겠습니까?” 라면서 차지철 팔둑을 향해 한발, 박대통령 가슴에 한발씩을 쏘았다.
한편 김계원은 김재규가 몸을 툭 치는것을 신호로 곧바로 문 밖 입구로 나와 사태가 진전되는 것을 감시하고 있었다.
박 대통령은 곧바로 얼굴을 식탁에 묻었고, 차지철은 대통령을 팽개친 채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김재규는 아직 살아있는 이들에게 재차 총을 쏘려했으나 장전이 되지않았다.반사적으로 뛰어나가 구관 건물을 향하자 마루에 박선호가 총을 들고
서 있었다. 김재규는 그 총을 빼앗아 다시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차지철이 문쪽으로 문갑을 밀고 나왔다. 이런 차지철에게 한발을 더 쏘았고,
이어서 힘 없이 엎드려 있던 박 대통령의 머리를 향해 한발 더 확인사살했다.
이를 신호로 궁정동 좁은 담 안에서는 40여발(권총 11발, 나머지 M-16)에 이르는 총성이 울렸고,
박 대통령과 그의 경호원 9명이 순식간에 몰살했다. 후에 경호원 박상범 만이 살아남았다.
이 콩을 볶는 듯한 총소리에, 한 나라의 대통령과 경호원들은 총 한발 발사해보지 못하고 그대로 살육됐다.
“나는 괜찮아”를 두번 말씀하시고, 박 대통령은 골치 아프고 복잡한 세상을 조용하고 품위있게 마감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치사한 행동이 바로 신뢰를 미끼로, 등 뒤에서 총을 쏘는 김재규 같은 패륜아일 것이다.
그러나, 양김씨 이후 좌파정권에선, 이런 김재규를 민주화 투사로 둔갑시키고 있는 형국이다.
(10 .26밤 진실) 여기서 부터, 님께서 수사책임자라고 생각하시고 수사해 보시길 바랍니다
7:40: 박정희 전임-차지철 살해를 시발로 살육사태 발생, 발견된 총알 40발(권총 11발, 나머지 M-16)
7:43: 김재규와 김계원: “나는 한다면 합니다. 보안유지 하십시오” “알았다”
7:50: 김재규는 정승화와 김정섭 박흥주 대통- 안가 정문 통과
7:55: 김계원은 시신 육군병원 서울지구에 인도, 군의관으로부터 사망 확인후, 청와대 에서 국무위원 비상소집
8:05: 김재규와 정승화 일행 유군본부 벙커도착
정승화는 단독으로 계엄병력 배치, 경호실과 수경사 장악, 시해현장 접근 방지 조치
8:20: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이동 중 전화로, 대통령께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지
8:40:김계원은 청와대 비서실에 도착한 최규하에게, 김재규가 범인이라는 사실 '보고'ㅡ주목 해야함.
김재규는 육본에 도착한 합참의장, 연합사부사령관, 각군총장에게 대통령 유고-계엄선포-3일간 비밀 유지를 강조
정승화는, 수경사 사령관 전성각을 불러 청와대 포위 지시, 경호실 차장 이재전에게 경비전화로 병력이동 금지 지시
ㅡ 정 총장의 수상한 '월권'ㅡ 경호실, 수경사의 지휘권은 경호실장 (대행)에게만 있음.
9:10:김재규는 김계원에 전화걸어 국무총리 모시고 육본으로 오라 지시
9:30:김계원은 최규하 총리등 장관 대동하여 육본 벙커에 도착, 최 총리- 시해범 체포지시 않았고(직무유기), 반란군들이 있는 육본행( 내란방조)
김재규는 국무총리 등에게 대통령 유고에 따른 전국 계엄선포 주장
10:25:김재규는 김계원을 데리고 정승화 방으로 가 계엄선포로 사태를 장악한 다음 간판을 "군사혁명 위위회“로 바꾸어야 하니 보안유지 다짐.
10:30: 비상 국무회의 개최하기 위해 국방부로 출발
11:30: 비상 국무회의 개최
1140: 김계원은, 김재규가 시해범 임을 노재현과 정승화 앞에서 폭로
노재현 국방은, 즉시 전두환씨를 불러 김재규 체포 지시
이시점 까지도, 정 총장은 김재규의 궁정동 초대사실을 은폐.
11:50: 정승화는, 김진기 헌병감과 전두환 사령관께 김재규 체포지시 “안가에 잘 모셔라”는 언행을 함.
(27일)
새벽00:25: 최규하 총리는 김재규가 있는 국방장관실로 가서 김재규에게 귀띔해 주었다. “비상계엄은 27일4시에 실시하기로 했다”
01:30 시해사건 발생 6시간 후에야, 시해범 김재규를 보안사 수사분실로 압송
04:00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 선포, 위의 상황이 은폐된 가운데ㅡ 정 총장을 계엄 사령관으로 임명
<결론>
대다수 국민들은 위의 진실을 인지하고 있다
누구를 매도하려 억지를 부릴것이 아니라, 최규화 총리와 정승화 총장의 위기 관리능력과 처신을 "원리 원칙"에 입각, 있을수없는 비정상 임을
재조명해야만 한다.
박정희 전임이 제거 대상이었느냐는 별개의 문제로 보아야 하고, 당시
국가 통수권자의 유고시, 전 국민의 안위를 책임진 최고 지도자들의 기회주의적 처신에 주목해야 하고, 책임을 묻는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어서, 10.26의 기회주의자를 엄단한, 12.12 로 넘어갑니다ㅡ
첫댓글 좋은 자료 잘 봤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박정희 대통령과 전두환 대통령을 동격으로 봅니다. 박대통령을 태평성대의 시대를 만든 세종에 비교한다면, 전두환 대통령은 수양대군 즉, 세조에 비유 할랍니다. 문종이 단명하자 어리고 나약하기 그지 없고, 국운을 어둡게 만들고 간신배들이 설치게 만든 애송이 단종을 하야시키고 조선왕조를 다시 세운 비운의 왕 세조. 그냥 개인적 생각입니다.
운명의 그날...가장 큰 실수는 차지철 경호실장이다. 왜냐면, 경호의 기본도 모르는 놈이 큰 어른을 모시는 그것도 개인적인 사감정이 팽배하게 쌓인 중정부장 김재규도 참석하는 사적 술자리에서 아무리 신분이 확인된 사람들만이 앉는 자리라 하더라도 경호의 기본인 권총은 지녀야 한다. 간과할수 없는 실수임에 분명하다.
개인적인 주장을 너무해서 혹시나 회원님들께 결례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왕 댓글 올린거 몇가지 더하겠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에게로 최고권력이 이양된것은 법적이나 이치상으로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며칠전 별세하신 최규하 전대통령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끝끝내 함구되서 많은 국민들의 시원 섭섭함이 없지 않으나, 이 세상에 밝혀져서 이로울것과 그렇지 않을것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우리가 즐겨 사용하는 말중에 속세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말을 심도깊게 해석하면 俗은 世를 따른다 라는 표현도 됩니다. 결국 천심이나, 민심은 이미 전두환 장군이라는 시대적 사명을 띤 뉴파워집단에게 넘어간 상태죠. 거꾸로 당시 서울의 봄이니, 민주화의 물결이니 해서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게한 두 장본인 DJ YS에게 정권이 넘어갔었더라면 우리나라는 망해도 벌써 망했을 겁니다. 지난 몇년간 각종 선거를 치루면서 여당이나 야당이나, 뉴페이스를 찾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당시국민들도 이미 두 김씨에 대한 염증에 많이 지쳐있었고, 대망의 80년대를 향하는 마당에서는 그에 걸맞는 사람을 국민들은 요구했습니다.
그러면 반대론적인 얘기를 하겠습니다. 왕씨 고려에 충성을 맹세했던 이성계가 왕의 명을 거역하고 군사를 회군해서 어떻게 역성혁명에 성공했겠습니까...이게 바로 시대의 흐름이요, 역사의 흐름입니다. 그러면 지금 왕씨 종친하고 전주 이씨 가문이 철천지 웬수가 되어야 하질 않습니까. 물론 법이나 규범 등등이 미약했던 절대왕조시대와의 비교는 좀 그렇다 손 치더라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부분은 국민모두가 시대에 걸맞고 다시 국가를 하나로 통합시킬수 있는 강력한 지도자를 원했던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덧붙여서, 광주 5.18 민주화항쟁(?)인지 사태(?)인지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혹자들은 이렇게 반문할것이다. 당신 가족, 친척, 친구가 총에 맞아 그 자리에서 죽었는데도 전두환 전대통령에 대해서 그렇게 옹호식으로 발언할거냐...이렇게 한쪽에서 결과를 먼저 내놓고 반문하면 사실 할말이 없다. 아주 무식의 극치를 달리는 극단적인 예를 들어 비약성에 가까운 주장이다.물에빠진 엄마와 아내중 누굴 먼저구할것인가를 묻는것과 같다. 슬픈 역사의 산물임에는 틀림없다. 민주화(?)에는 그만한 댓가가 반드시 치러지는 법이다.격동의 그 소용돌이 속에서 무장 봉기한 그 자체가 비극을 초래한것이다.
10,26 시해사건 이후 12,12은 정승화,김재규 잔당제거에 필요한 후속초치이며 5.18은 노련한 정치가의 외벽을 때리는 술수에 의해 일어난 비극적 사건이다 그후 그 정치가는 아이러닉하게도 최고 권력통치자 그리고 노벨평화상을 거머쥐는 웃지못 할 역사적 비극이며 그 정치적 사상을이여 받은 노정권은 노골적 좌파의 정치로 민생은 갱판으로 민초들은 도탄에 허덕인지 오래이며 이제 국가의 존립마저도 강풍앞에 초롱불격이니 현실을 깊이 인식하여 침묵하는 보수여 이제 다함께 국민적 봉기로 노정권 축출만이 살길이다 ,국민들이여 깨여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