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남편은 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다. 좋은 음식을 먹고 운동을 꾸준히 하며 추운 데서 단련하는 연습을 평소에 부지런히 하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겨울을 지나면서 감기를 한 번도 안 걸리고 지난다. 좋은 음식이라 함은 신토불이 음식을 말한다. 그는 인스턴트 음식은 입에도 안 댄다. 인스턴트 음식의 재료는 대부분 외국 농산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외국 농산물은 수입하는 과정에서 방부제를 많이 섞는다고 생각하여 될 수 있는 한 수입농산물은 먹지 않는다. 우리 부부가 종종 티격태격 다투는 것은 음식문제 때문이다. 나는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고 살게 내버려두라는 것이고, 그는 몸에 안 좋은 음식을 먹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밥보다 빵을 더 좋아하고 집에서 먹는 식사보다 외식을 더 좋아한다.
그는 한 겨울에도 목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신고 차가운 물속에 들어가 고기를 잡는다. 또한 손이 아리는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산에 가서 나무를 한 짐 하곤 한다. 그래도 여간해서는 감기에 안 걸린다.그러던 그가 초겨울의 어느 날 강에서 고기를 잡다가 너무 깊은 곳에 들어갔다. 물이 키를 넘는 곳에 들어가 고기를 잡다가 장화 위로 물이 새어 들어갔다.
나 같으면 고기 잡던 일을 멈추고 집으로 돌아왔을 테지만 그는 고기를 많이 잡아 손님을 즐겁게 해주려는 마음으로 내색하지 않고 계속 고기를 잡았다. 그리하여 그토록 강단 있던 몸에 감기가 들었다. 그의 생애에 몇 번 안 되는 독감에 걸렸다. 며칠을 끙끙 앓으면서도 병원에 가기는커녕 집에 있는 감기약을 먹으라고 해도 안 먹고 버텼다. 아무리 아파도 약을 안 먹는 것은 그의 어머니를 닮은 점이다.
나의 시어머니는 여러 가지 면에서 고집이 세었다. 아무리 아파도 절대로 약을 안 먹는 것을 철칙으로 세우고 살았다. 55세 때 중병에 걸렸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여 고침을 받았는데 아마도 그때 앞으로 죽는 날까지 절대로 약을 먹지 않겠노라고 서원했었던 모양이었다. 전후사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너무도 고지식하고 순진한 사람으로 치부할 것이다. 그러나 본인에게 있어서는 병원에서 의사들이 포기한 자신의 병을 하나님께서 고쳐주셨다는 신앙고백이다.
어쨌든, 남편은 어머니를 닮아 약을 먹지 않으려 한다. 본인의 말로는 사람에게는 자연치유력이 있으니 약을 먹지 않아도 웬만한 병은 섭생을 잘하면 저절로 치유된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우리 교회 새신자인 K성도님의 딸의 결혼식이 있었다. 교회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청첩장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했다.
시골에서는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품앗이처럼 참석한다. 주고받기인 것이다. 목사님은 어찌어찌하여 그 성도네 결혼 날짜를 알아내어 우리 교회 성도들 몇 명과 함께 축하해주러 갔다. 그날은 여섯 쌍의 결혼식이 있었다. 결혼식장은 엄청 붐볐다. 이리 저리 그 성도의 결혼식을 거행하는 예식실을 찾아가던 중 웨딩드레스를 입은 어느 신부가 들러리들에 둘러싸여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한 성도가 말했다.
“저 신부가 〇〇〇 성도 딸이네.”
“그걸 어떻게 알아요? 그 집 딸 얼굴 알아요?”
“뭐, 전에 한 번도 안 봤어도 금방 알겠네.”
“어떻게요?”
“붕어빵이야. 엄마를 똑 닮았는걸.”
아니나 다를까, 좀 젊고 늙었다는 것만 다르지 얼굴 모습이며, 키며, 몸가짐 등이 엄마와 딸이 틀에 찍은 듯이 똑 닮아있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깔깔깔 웃으면서 그 신부 뒤를 따라갔다. 그랬더니 〇〇〇 예식실 앞에 곱게 분홍 한복을 차려입은, 신부를 닮은 중년 부인이 손님을 맞이하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깜짝 놀라면서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아니,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일부러 안 알리려고 했는데요.”
“이렇게 좋은 잔치를 왜 안 알려요? 그리고 우리는 이제 한 형제가 되었는데 당연히 와야죠.”
“근데, 어떻게 금세 찾아왔어요? 헤매지 않았어요? 오늘 결혼식이 많아서 엄청 북적대는데.”
“그 어머니에 그 딸이라고, 성도님을 똑 닮은 신부가 우릴 안내했지요.”
그렇다. 딸은 어머니를 닮고, 아들은 아버지를 닮고, 형제들은 서로 닮는다. 닮지 않으면 어딘가 모르게 이상하다. 친 부모자식이 아닌 경우가 허다하고, 친 형제자매가 아닌 것이 확실하다.어느 가족이 도시에서 이사를 왔다. 중학생 딸, 초등학생 아들이 있었고, 갓난아기가 있었다. 갓난아기는 엄마 얼굴 반절, 아빠 얼굴 반절을 닮아 있었다. 그런데 딸과 아들은 엄마만 닮아있었다. 참, 이상하구나, 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다. 딸과 아들을 데리고 살던 이혼녀와 노총각이 결혼한 부부였던 것이다.
사람의 외모와 성격은 부모를 많이 닮는다. 유전자 법칙이 있고, 늘 함께 살기 때문이다. 부부 또한 수십 년 함께 살면서 닮아간다. 공원에서 노부부가 다정하게 산책을 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 그들을 마주쳐 지나가다가 고개를 갸웃할 때가 많다. 부부는 남남인데 마치 남매이기나 한 것처럼 많이 닮아있는 것이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있어야 한다. 발가락만 예수님을 닮은 자가 되어서는 안 되고 온 마음이 닮아 있어야 한다. 예수님의 향기가 풀풀 날려야 한다. 사탄의 지독한 악취가 나는 그리스도인이 있을 수 있는가? 물론,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을 당하고 손가락질을 받는 것이다. 주님도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5:13)”고 하셨다.
김동인의 <발가락이 닮았다>라는 소설이 있다. 32세의 노총각 M이 친구들 몰래 결혼을 했다. 총각 때의 무절제한 방탕생활로 각종 성병을 앓아 생식능력이 없음을 의사인 ‘나’는 알고 있다. 그러한 M이 결혼 2년 후의 어느 날 갓난아기를 안고 ‘나’의 병원으로 찾아왔다. 아기가 기관지를 앓고 있었지만 M의 속셈은 그 애가 자기애라는 보장을 얻으려는 데 있었다. M은 그 애가 제 증조부를 닮았다고 말하고 자기를 닮은 데도 있다고 말했다. 즉, 가운데 발가락이 제일 긴 자기의 발가락을 닮았다는 것이다. 아내의 부정을 의심하면서도 애써 그것을 삭혀 보려는 M의 심정이 눈물겨워 ‘나’는 발가락뿐 아니라 얼굴도 닮은 데가 있다고 말하고는 의혹과 희망이 섞인 M의 시선을 피해 돌아앉는다.
요즘 현대교회 안에는 이러한 경우가 많다. 가운데 발가락의 길이만큼만 예수님을 닮은 그리스도인들이 흔하다. 겨우 외모의 한 끄트머리만 예수님을 닮은 듯한 그리스도인들이 득시글거리는 교회가 많다. 그러므로 <시민 K, 교회를 나가다>라는 책이 나와 불티나게 팔린다고 하던가.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