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차령산맥을 휘돌아 공주에 이르다
(1) 아산에서 마곡사에 이르는 고갯길(아산 - 마곡사 40km)
4월 4일, 전날 비바람 부는 날씨에 힘들게 걸어서인지 자는동안 종아리와 허벅지가 뻐근하여 걱정이 되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한결 가벼워서 다행이다. 마침 청명일, 날씨도 쾌청하여 청명절기에 어울리는데 바람에 제법 많이 분다. 모자가 벗겨져 날아가기 여러번.
아침 8시에 숙소 근처에 있는 온양온천역을 출발하여 공주방향으로 접어들었다. 중학교 교장으로 있다가 정년퇴임하여 아산시 송악면 전원마을에 정착한 박상일 씨가 당일 코스에 합류하였다. 한 시간여 39번 국도를 따라 걸어가니 외암민속마을이 나타난다. 바쁜 길이라 안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입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걷기를 시작하니 약간 높은 고갯길이 나타난다. 이를 시작으로 더 높은 고갯길을 여러개 넘는 고달픈 행로다.
오전 11시에 13km 지점에 있는 점심장소에 도착하여 이른 점심을 들었다. 메뉴는 추어탕, 음식맛이 깔끔하고 일하는 이들이 친절하다. 인터넷에 소개해도 좋겠다는 어느 분의 말을 들은 주인이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태도가 진솔하다. 같이 사진 찍으며 잘 하면 일본에도 소개될 것이라고 말하니 기분이 좋은가보다. 참고롤 옥호는 남부추어탕, 업주는 미인형의 오현주다. 일본인들이 예쁘다고 칭찬한다. 같은 이름의 미스 코리아도 있었지. 산삼즙을 한잔씩 서비스로 돌렸다. 순박한 이들이여, 열심히 사시라.
12시 조금 넘어 오후 행로에 들어서서 아산시와 공주시의 경계에 있는 고개마루에 이르니 박상일 씨 부인이 쑥가래떡을 한 상자 선물한다. 일행 모두 감사의 뜻을 표하며 맛있게 먹는다. 틈틈이 제공하는 간식이 그렇게 반가울 줄이야, 더 높은 고개을 오르다 먹은 바나나 맛이 일품이다.
오후 1시 반쯤 공주시 유구면으로 가는 길에서 산길을 따라 오르는 마곡사방향으로 들어서니 좁은 비탈길이 한 시간쯤 이어진다. 전날 내린 비의 영향인가, 계곡물이 세차게 흐르고 어느 곳에는 미처 녹지않은 눈도 보인다. 까마득한 고개마루를 넘어서 꽤 길게 이어지는 내리막길을 걷는 발걸음이 가볍다. 마땅한 휴식처가 없어 세시간을 내쳐 걸었다. 여러 고개를 돌고 돌아 마곡사로 가는 지방도로에 접어들어서도 한참을 내려가니 세찬 바람에 기온이 떨어져 대부분 추위를 타는 모습이다.
1950년, 6.25 피란길에 아버지가 리어카에 짐을 싣고 가솔들과 함께 힘겹게 넘었던 차령산맥길을 2년 전의 회상의 피란길 행사에 이어 두 번이나 넘을 줄은 미처몰랐다. 아버지가 쓴 피란길의 기록은 이렇다.
'6.25 사변당시 서울서 견디다 못해 부득이 고창 고향으로 피난을 내려가기로 결정하여 후암동 집은 잠가두고 8월 30일에 손수레 한 대에 아이들과 취사도구만 싣고 먼길을 떠났다. 한강 다리가 파괴되어 서빙고에서 나룻배로 건너 그날밤은 겨우 과천 근처에서 헛간 한켠을 빌려 방석을 깔고 노숙하여 가면서 하루에 50리 또는 70리도 가다가 공주 정안면에 왔을때는 마침 음 7월 22일 아버님의 소상날이다. 그 다음날은 밤새도록 비가내려 남의 집 토방에서 가마니 한 장 깔고 덮고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다행히도 아이들과 가족들은 마을집 한칸 방을 얻어서 자게 되었다. 도중 공주 임00집에서 하룻밤, 이리 노00 집에서 하루를 쉬고 흥덕, 고창을 경유하여 고향인 고산에는 9월 16일에 도착하였다.' 그일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걸어가노라.
마곡사 인근에 이르니 제주도 국제걷기행사를 마치고 돌아온 가와다 시게루 씨와 재일동포 이혜미자 씨가 공항에서 렌트한 차량을 타고 달려와 반갑게 인사한다. 제주행사를 주관한 체육진흥회의 임원 류재천, 강상일 씨도 함께 왔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식당에 들어서니 산채비빔밥이 준비되어 있다. 식당이름이 '바람처럼, 구름처럼'이다. 마치 우리들을 위해 작명한 것 처럼. 모두들 고단한 표정이어서 일찍 파하고 숙소에 들었다. 피곤하여도 기록을 빠뜨릴 수 없는 일, 숙소 1층에 있다는 인터넷방에 가보니 한 대 있는 컴퓨터의 자판이 고장나서 수리를 맡겼단다. 덕분에 쉬고 다음날 적으리라.
(2) 마곡사에서 공주가는 길(28km)
4월 5일, 고단했던지 아침에 일어나니 6시 반이다. 서둘러 행장을 챙겨 로비로 내려가니 일행들은 벌써 전날 저녁을 든 식당으로 떠났다. 식사를 끝낸 후 곧바로 인근에 있는 마곡사 탐방길에 나섰다. 이름만 듣고 찾기는 이번이 처음인 꽤 유명한 사찰이다. 주변경관이 아름답고 사찰의 여러 보물들이 나름의 특성을 지녔다. 사찰 위로 백범산책길이라 쓴 표지가 보인다. 그러고 보니 백범전기를 읽던 중 전국을 떠돌때 이곳에서 머문 기록이 있던 것이 생각난다.
오전 8시 반에 마곡사 마을을 출발하여 공주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 바람은 잦아들고 날씨는 화창하다. 공주경찰이 에스코트에 나서고 한 시간 쯤 걸으니 사곡중학교가 나타난다. 교문입구에는 여러 방면의 특성화중학교로 지정되었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어제 지난 아산시 송악면에 있는 거산초등학교는 서울에서도 전학오는 학생들이 많을만큼 좋은 학교로 알려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시골에도 이처럼 알찬 교육역량을 갖춘 학교들이 있다니 흐뭇한 마음이다.
11시 조금 지나니 점심이 예약된 식당에 도착한다. 메뉴는 메기매운탕이다. 약간 매운 맛인데도 일본인들이 잘 든다. 일부 여성은 김을 곁들여 조절을 하고. 식탁이 여성들에 둘러싸여 꽃밭에 앉았다고 말하니 나이 지긋한 노정원 여사가 호박꽃도 꽃으로 봐주어서 기쁘다고 웃는다. 통역으로 알아들은 일본여성들도 적절한 표현이라고 맞장구를 친다.
마곡사에서 흐르는 물줄기는 마곡천, 점심을 먹은 식당인근 유성면을 흐르는 하천은 유성천, 모두들 지방하천으로 지정되어 있다. 조금 지나서는 국가하천인 금강이 나타나고. 처음 접하는 낯선 지방들의 강과 산, 들판을 언제 다시 걸을까?
공주에 들어서니 옛이름 '웅진'이라는 도로명이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임을 일깬다. 공산성입구에는 전국에서모여든 관광버스들이 가득하다. 초등학생들을 태운 버스 앞으로 다가서니 앞 차창에 목포의 초등학교에서 공주, 부여탐방 현장학습이라 적혀있다. 일본인들에게 공주가 백제의 도읍지인 것, 백제문화가 일본에 건너간 이야기들을 들려주며 공주시청에 도착하니 오후 3시가 조금 넘었다.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택시를 이용하여 숙소로 돌아오니 오후 4시다. 피곤한 몸을 씻고 잠시 누웠다가 저녁 식사를 위해 로비로 내려가니 문경에서 일행들을 찾아온 손님이 있다. 조선통신사걷기행사 때 문경에서 묵은 모텔의 주인부부가 떡과 곳감을 들고 먼곳에서 온 일본친구(일행 중 이나가키 유키씨와 특별히 가깝게 지낸다고 한다.)를 만나러 온 것이다. 작년에 문경에 묵을 때 떡을 해서 방마다 돌린 일을 기억하며 모두들 감사하는 마음이다. 저녁식탁에는 공주에 공장이 있는 고려화학엔지니어링의 이건희 사장(체육진흥회의 이사이기도 하다.)이 딸기를 듬뿍 사들고 찾아오고.
식사시간에는 내일 생일을 맞이하는 고바야시 마사히토(78세, 그는 내일 일본으로 떠난다)의 생일을 축하하는 이벤트도 곁들여져 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5일동안의 행로를 마치고 내일은 하루를 쉰다. 식사를 마치고 지금까지의 여정을 돌아보며 각자의소견을 발표하는 시간도 가졌다.모두들 힘들지만 보람된 여정인 것, 부산까지 완주하겠다고 다짐하는데 가정사정으로 이틀간 참여하고 내일 떠나는 가와다 시게루(그는 한국을 100여회 방문한 지한파인데 오빠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씨는 부산까지 함께하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울먹인다. 손에 손을 맞잡고 아리랑을 부르며 친교회를 마치고 나오니 휘영청 밝은 달이 일행을 반긴다. 몸은 고단하지만 마음은 행복한 걷기의 즐거움에 동감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