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통과 교류가 인류의 지식, 지혜를 발전시켜왔다고 자주 강조한다.
단지 소통하고 교류하는 것만으로도 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임진왜란 이후 굶어죽는 백성들이 늘어나자 조정에서 허가제인 시전허가제(점포개설및영업권)를 풀어 현이나 군 단위로 누구나 장시를 열도록 했더니, 그로부터 굶어죽는 사람이 없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의 10일장을 5일장으로 더 자주 열어주어 전란에 지친 백성들에게 숨통을 틔워주었다.
시장 원리란, 내가 갖고 있는 쓸모없는 물건이 누군가는 애타게 찾는 물건일 수 있고, 누군가가 너무 많이 갖고 있는 것이 내게는 꼭 필요한 물건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장시 물건은 다양할수록 좋고, 사람은 서로 다른 일에 종사할수록 좋고, 생각이 다르면 더 좋은 것이다.
자주적으로 일어나는 건 소통과 교류지만 어느 한쪽 마음대로 뺏어가려는 건 강탈이고, 뺏기지 않으려는 쪽과 부딪히면 충돌이라고 한다. 좋은 말로 <문명의 충돌>이라는 표현도 있지만 사실은 사람을 죽이고 재산과 가축과 식량을 빼앗고 성을 불태우는 전쟁을 가리킨다.
이런 면에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은 충돌이고, 호주나 뉴질랜드 발견도 역시 충돌이다. 아라비아의 이슬람과 중앙아시아의 불교 역시 머리 깨지도록 충돌했다.
12세기 칭기즈칸의 몽골군이 동유럽까지 쳐들어간 일도 일종의 충돌이다. 몽골고원에서 일어난 몽골군은 폴란드, 헝가리, 우크라이나, 러시아를 들이쳤다. 알타이산맥 동쪽에서 일어난 몽골군은 이 산맥 아래에서 천산산맥 위쪽으로 난 중가리아 분지를 통해 드넓은 초지를 밟고 서쪽으로 달렸다. 이 길은 유목민들에게는 고속도로나 다름없는 좋은 길이다.
그런 가운데 전쟁 없이 오로지 무역만으로 소통과 교류가 일어난 적도 있다. 그것이 비단길 실크로드다. 왜 이 실크로드가 순수한 소통과 교류의 통로가 되었느냐면, 이 길은 대규모 군대가 감히 지나갈 수 없을만큼 험준한 산맥, 고원, 그리고 생존이 위태로운 사막이기 때문이다. 그러자니 장사꾼들이나 목숨 걸고 가는 길이 되고, 인도땅으로 불교경전을 구하러 가는 젊고 미친 승려들이나 목숨 걸고 가는 길이 되었다. 아무리 험준하고 위험천만한 길이지만 누군가는 기어이 이 길을 통해 서쪽으로 가고 동쪽으로 왔다.
인류 역사상 실크로드만큼 극적인 소통과 교류를 펼친 길도 드물다. 그 거친 길을 안다면 실크로드야말로 지구의 동서 사람들이 서로 얼마나 소통과 교류를 원했는지 알 수 있다. 자동차와 비행기가 없던 시절, 로마와 신라가 서로 통하는 것, 그것이 소통과 교류다. 이 까마득하고 가느다란 길로 로마의 유리제품이 신라 경주까지 이르고, 종이 만드는 기술이 그 반대로 중국에서 유럽까지 건너갔다. 문명이나 문화 한 가지가 넘어가거나 넘어오는데 숱한 목숨이 사라지고, 엄청난 시련이 뒤따랐다. 그럼에도 인류는 지치지 않고 실크로드에 도전했다.
인도, 아라비아, 유럽의 문명과 문화가 중국, 한국 쪽으로 오려면, 또는 중국과 한국의 문명과 문화가 그쪽으로 가려면 너무나 길이 험했다. 인도유라시판의 충돌로 생긴 히말라야산맥, 카라코람산맥, 힌두쿠시산맥, 파미르고원, 곤륜산맥, 천산산맥이 불쑥 일어나 수천 미터의 산들이 길을 막고, 모래와 바람 뿐인 타클라마칸 사막이 장벽처럼 일어나 불모지를 만든다.
곤륜산맥과 히말라야산맥 사이의 티베트는 해발고도가 너무 높아 사람 살기도 힘들지만, 여행객이 지나려면 더 힘들어서 이곳은 문명과 문화의 통로가 되지 못한다.
그나마 있는 타클라마칸 사막과 파미르고원이 동서를 잇는 숨구멍 노릇을 하는데, 이 길을 지나다 죽은 사람은 헤아릴 수조차 없다. 혜초 스님이 불교를 배우러 이 길을 갔고, 현장 스님이 역시 불교를 배우러 이 길을 갔다. 길가다 죽은 사람들은 기록조차 없다.
기원전 2세기, 실크로드가 열리면서 동서 교역을 위해, 혹은 교역에 따르는 세금을 차지하기 위해 흉노, 투르크를 비롯한 유목민족들과 한나라가 충돌했다. 이 틈바구니에서 온갖 시련과 고통을 겪으며 흥망성쇠를 계속하는 중에도 동서의 소통과 교류의 장이 만들어졌다.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의 비단, 차, 도자기, 종이 같은 것이 서역으로 전해지고, 로마의 유리 공예품과 향료 등이 중국으로 들어왔다. 무기, 악기, 터키석, 라피스라줄리, 마노, 연옥 같은 보석을 취급하는 상인들도 이 길을 오갔다.
실크로드는 교역만을 전용으로 하던 길은 아니다. 불교를 비롯한 여러 동서문물이 이 길을 따라 이동하였기 때문이다. 불교를 전하기 위해 동으로 오는 서역승과 불법을 구하러 천축으로 가는 중국과 한국의 승려들이 종종 대상(隊商) 행렬에 끼어 파미르(葱嶺)를 넘었다. 결국, 타클라마칸의 험로(險路)와 파미르가 도사리고 있는 죽음의 길 실크로드를 개척한 사람들은 돈만을 목적으로 했던 것이 전부는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믿는 신앙에 대한 구법(求法)과 홍법(弘法)에 대한 열망이 함께 했기 때문이다.
실크로드의 장벽 중 타클라마칸사막에 버금가는 곳이, 중국인들이 葱嶺이라고 적는 파미르고원이다. 파미르고원은 설선(雪線) 이상의 암석 틈에서 야생파가 자라고 있는 것이 알려지며, 중국식 표기로는 파가 자라는 고개 즉 파마루, 곧 파미르라 이름 지어진 것이다. 파는 우리말의 그 파다.
현장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도 지명 유래에 대하여 “땅에서 파가 많이 나므로 파미르라 부른다.”고 되어 있다. 파미르에서 총(葱)은 파 총(蔥) 자고, 령은 마루 령(嶺) 자다.
파미르고원은 실크로드의 필수 경유지로써 힌두쿠시(Hindu Kush), 카라콜룬(Kara Koyunl), 히말라야(Himalaya), 쿤룬(kunlun, 곤륜산맥), 칸텡그리(Khan-Tengri, 천산산맥) 등을 품고 있는 아시아의 지붕이다. 지리학적으로 파미르고원은 8대 평원을 거느리고 있어서 아차 잘못 발을 디뎌 놓으면 목적지로 곧장 가지 못하고 설산을 헤매다가 체력이 떨어지거나 빙벽(氷壁)으로 추락하여 죽었다. 아니면 전혀 엉뚱한 평원으로 잘못 빠져서 천축(인도)을 가려다가 러시아 땅을 밟게 될 수도 있는, 얼키고 설켜있는 험로(險路) 중에 험로다.
인류는 이처럼 무서운 힘으로 자연과 맞서싸웠다.
더 나은 지식, 더 나은 기술을 찾아 인류는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모래폭풍에 맞섰다.
우리는 그들보다 더 먼 곳, 더 깊은 곳으로 지식을 찾으러, 지혜를 찾으러 나서야 한다.
아래 사진은 파미르고원을 지나는 현대 고속도로다. 길 없던 시절, 이 길을 통해 금강경이 오고, 반야심경이 오고, 화엄경이 오고, 법화경이 왔다. 진리 한 마디를 나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타클라마칸사막에서 죽고, 파미르고원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