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자락이 감싸 안은 듯 평화로운 지리산 실상사 [한국의 명찰]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사적기(寺蹟記)에 따르면 창건은 통일신라시대인 828년(흥덕왕 3) 홍척(洪陟)이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로 자리를 잡은 데서 비롯된다. 선종(禪宗)이 처음 전래된 것은 신라 제36대 혜공왕(惠恭王) 때인데, 발전을 못하다가 도의(道義:道儀)와 함께 입당(入唐), 수학하고 귀국한 증각대사(證覺大師) 홍척이 흥덕왕의 초청으로 법을 강론함으로써 구산선문 중 으뜸 사찰로 발전하였다. 도의는 장흥(長興) 가지산(迦智山)에 들어가 보림사(寶林寺)를 세웠고, 홍척은 이곳에 실상사를 세워 많은 제자를 배출, 전국에 포교하였는데 이들을 실상사파(實相寺派)라 불렀다. 그의 제자로 수철(秀澈) ·편운(片雲) 두 대사가 나와 더욱 이 종산(宗山)을 크게 번창시켰다. 그 후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되어 약 200년 동안 승려들은 부속암자인 백장암(百丈庵)에서 기거하다가, 조선 제19대 숙종대에 이르러 300여 명의 수도승들이 조정에 절의 중창을 상소하여 1700년(숙종 26)에 36동의 건물을 세웠다. 그러나 1882년(고종 19) 사찰 건물이 소실되는 수난을 겪고, 다시 여러 승려들의 힘으로 중건되어 현재에 이른다. 중요문화재로는 국보 제10호인 백장암 3층석탑, 보물 제33호인 수철화상능가보월탑(秀澈和尙楞伽寶月塔), 보물 제34호인 수철화상능가보월탑비, 보물 제36호인 부도(浮屠), 보물 제37호인 3층석탑 2기(基), 보물 제38호인 증각대사응료탑(凝寥塔), 보물 제39호인 증각대사응료탑비, 보물 제40호인 백장암 석등, 보물 제41호인 철제여래좌상(鐵製如來坐像), 보물 제420호인 백장암 청동은입사향로(靑銅銀入絲香爐), 보물 제421호인 약수암목조탱화(藥水庵木彫幀畵)가 있다.)
반갑습니다. 잘 지내고 계신지요? 포근해진 날씨, 따뜻한 초봄입니다. 초목의 싹이 돋아나고 동면하던 벌레들도 땅속에서 나온다는 경칩이 지났습니다. 움츠렸던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오지요. 매서운 추위를 견디고 이렇게 아름답고 고고하게 은은한 향기를 내뿜으면서 활짝 핀 매화를 보면, 우리의 인생도 어렵고 힘든 고난과 역경을 잘 이겨내면 언젠가는 인생에서 꽃을 피울 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 경전 말씀에 “사람이 화를 내면 이전에 자신이 쌓아 온 선행을 모두 잃게 된다. 집과 나라를 망치고 종족을 멸망시키는 것은 모두 이 분노 때문이다. 분노의 맹렬함은 마치 타오르는 불과 같다. 그러니 빨리 불을 끄는 것부터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매우 큰 손실이 생길 것이다.” 출요경 화를 내면 백천 가지 번뇌가 생기고, 결국 자신도 태우게 되고 큰 손실이 생기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내면의 탐진치를 다스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이번에는 지리산 자락 들판 한가운데에 있는 천년사찰, 호국사찰인 실상사를 다녀왔습니다. 실상사는 신라 시대 홍척스님이 당나라에 유학 후, 구산선문 중에 최초로 절을 세웠습니다. 실상사에는 수많은 문화재가 있는데요. 보물로 지정된 동·서 삼층석탑, 석등은 무척 아름답습니다. 또한 주법당인 보광전, 명부전, 극락적, 보물로 지정된 철조 약사여래좌상이 모셔진 약사전이 있습니다. 저와 함께 아름다운 매화가 활짝 핀 천년고찰, 전북 남원에 있는 실상사를 가보실까요? 즐겁게 보시고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날마다 좋은 날 되세요~^^ *실상사 사찰 정보 주소: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길 94-129 연락처: 063-636-3031 홈페이지: www.silsangsa.or.kr
불교 스토리텔러 권중서 포교사가 전하는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사찰’ 이번에 찾아갈 곳은 남원 지리산 실상사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참다운 세계임을 눈으로 확인시켜 주는 사찰이 있으니 바로 남원 실상사입니다. 실상사는 동쪽으로 천왕봉, 남쪽엔 반야봉, 서쪽엔 바래봉, 북쪽으로 서룡산, 삼봉산이 첩첩 둘러싼 황금들판 가운데 보석처럼 자리 잡고 있습니다. 828년 구산선문 가운데 으뜸인 실상산문을 세운 홍척국사는 수철화상이 제자가 되기를 청하자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는 어디서 왔는가?” 수철화상이 대답하였습니다. “스님의 본성은 무엇입니까” 실상이 무엇인지를 묻자 실상을 답하였습니다. 이처럼 실상사는 중생의 실상을 묻고 답하는 곳입니다. 권중서 포교사가 남원 실상사를 친절하게 설명합니다.
[김유식의 펜화로 찾아가는 사찰기행] <12> 남원 실상사
신라 증각대사 개창한 유서깊은 구산선문 도량
지리산 정기를 받은 평지에 세워진
실상산문의 최초 가람
천년 전 모습 떠올리게 하는
석탑과 석등 부도답 인상적
실상사 전경. Pen drawing on korean paper, 74x45cm.
천년 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석탑과 석등이 인상적인 사찰. 지리산 정기를 받은 평지에 세워진 독특한 곳으로 철조약사불의 기도가 영험한 곳인 남원 실상사를 찾은 때는 여름이 한창인 7월이었다. 지리산 천왕봉과과 반야봉을 병풍처럼 배경으로 자리잡아 우리나라 구산선문 가운데 실상산문을 개창한 천년고찰 실상사를 찾았다.
다른 산사들과는 다른 넉넉함이 있었다. 가족과 함께 남도 여행을 계획하며 순창 강천사를 거쳐 남원 실상사를 둘러보기로 하였는데 춘향의 이야기가 전하는 광한루에서 점심을 하고 실상사로 향했다. 생각보다 멀어서 행정구역만 남원이지 거의 경상도 경계에 위치한 상당히 깊숙히 들어간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지리산 봉우리에서 흘러내린 물이 흐르는 만수천을 끼고 평지에 펼쳐진 오랜 건축의 향기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사찰로 진입하려니 만수천 위에 놓여진 해탈교를 차로 지나서 가야 했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세 구의 돌장승이 버티고 서 있어 잡귀들로부터 사찰을 지키는 듬직한 장정들 같다는 생각이 든다. 평지 사찰이다 보니 일주문은 안보이고 바로 천왕문이 사찰경내로 들어가는 입구의 역할을 하는 듯하다. 천왕문을 경계로 사찰 내부가 얕은 기와담장으로 길게 둘러져 있는 게 다른 산사와의 차이가 아닌가 싶다.
넓은 평지에 아담한 전각들이 띄엄띄엄 세워져 있어 예전의 화려함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럼에도 오히려 소박함과 고상함을 두루 갖춘 절집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경내에 들어서며 보는 첫 장면은 쌍탑으로 불리는 제법 웅장한 삼층석탑이 눈에 들어오고 뒤에 자리잡은 아담한 보광전의 고즈넉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보광전 앞에 거대한 높이의 석등이 눈길을 끈다.
높이는 한 5m쯤 되는데 이렇게 큰 석등을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저기에 어떻게 초를 켜나 하고 살펴보니 역시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실상사 삼층석탑은 아주 균형있게 동서로 마주하고 있는데 신라시대 창건 당시 양식을 보여주는 탑이라 한다. 대부분 현존하는 탑의 머리장식이 이후 시대 것인 경우가 많은데 온전히 잘 보존되어 있어서 석탑이 주는 감흥이 예사롭지 않았다.
주불당을 중심으로 쌍석탑과 석등이 보이는 구도야 말로 이 사찰을 잘 드러내는 구도라는 생각이 들었고 요리 보고 저리 봐도 최고의 시그니쳐 풍광이라서 바로 결정을 했다. 고고함을 갖춘 모습을 잘 재현하기 위해서 염색된 한지에 그리기로 정했고 펜 선으로 섬세하게 다듬는 작업에 모든 심혈을 기울였다. 왼편의 석탑 뒤로 잘 생긴 소나무와 뒷편의 전나무들이 어우러져 화면을 조화롭게 아름다운 풍광을 드러내어 운치를 더했다.
실상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금산사의 말사로 국보 1점과 보물 11점을 보유한 문화재 최다 보유 사찰이다. 그야말로 보이는 것 모두가 보존가치가 탁월한 유구한 문화유산의 보고(寶庫)인 셈이다. 실상사의 창건 유래를 살펴보면 신라 흥덕왕 때 증각대사 홍척스님이 당나라에 유학했다가 귀국해서 현 위치에 세운 절로 우리나라 구산선문 중의 한곳이다. 정유재란 때 왜구에 의한 화재로 전소된 이후 중건한 것이라 한다.
실상사 주법당 보광전도 고종 때 월송대사가 세운 전각이라 하는데 목조에 단청도 퇴색하여 고고한 멋을 자아낸다. 그런데 법당 내부를 살펴보니 아미타여래와 협시보살은 입상으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모셔져 있는 삼존불상이 있었다. 그런데 왜 현판이 보광전인가. 약사사여래불을 모신 전각의 이름인데 추측하건대 아마도 보광전에 모시던 약사여래불을 별도의 전각에 모신 이후에도 현판을 그대로 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보광전의 오른편에는 약사전이 자리잡고 있었고 전각 안에는 통일신라시대 조성된 철로 만든 철조 약사여래좌상이 위엄 있는 모습으로 모셔져 있었다. 철로 만든 약사불은 처음 만나서 인지 신비한 경험이었다. 약사불의 근엄한 상호를 바라보며 어머님과 가족들의 건강을 빌면서 약사전을 나섰다.
실상사는 넓은 절터에 전각이 많지 않은 것만 보아도 거대한 규모였던 예전의 모습을 다 찾지는 못했다는 걸 짐작케 한다. 그나마 다행히도 조선말 재건한 사찰이 한국 전쟁 중에도 피해를 입지는 않아 그나마 조선시대 재건된 모습을 감상할 수 있어 참으로 다행이다.
국립부여문화재 연구소의 노력으로 절터 인근을 발굴해 나온 기와로 인해 당시 사찰의 모습을 추정할 수 있을 뿐인데 출토된 기와로 탑을 쌓아놓아 예전의 영화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빠른 시간 내에 절의 옛 모습이 되살아나길 바라면서 문화재 당국의 지속적인 관심이 이어지질 기대해 본다.
모든 석물이 오래되어 옛 향기를 느낄 수 있어 특히 좋았는데 독특한 부도탑 형식의 석탑이 돌아보는 발길을 멈추게 했다. 고고한 세월을 견뎌온 8각 형태의 탑의 모습을 바라보며 매력에 흠뻑 빠졌다. 이 탑은 수철화상의 사리를 모셔 놓은 사리탑이라 한다.
수철화상 능가탑. Pen drawing on paper, 30x40cm.
수철화상은 신라 후기의 스님으로 본래 심원사에 머물다가 후에 실상사에 들어와 이 절의 두 번 째 창건주가 되었다 하는데 입적 후 진성여왕이 그의 시호를 ‘수철화상’이라 내리고, 탑 이름을 ‘능가보월’이라 하였다 한다. 세월의 흔적을 펜으로 담아 보려 애썼다. 인근 부속 암자인 백장암에는 또 하나의 국보인 삼층석탑이 있다.
시간상의 제약만 없다면 부속 암자도 두루 살펴볼 수 있을 텐데 아쉬움을 달래며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돌아 올 때는 함양이 더 가깝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도 동서 삼층석탑과 보광전의 조화로운 모습을 그림으로 담을 생각과 철조 약사여래불의 미소가 뇌리에서 가시질 않는다. uskim@naver.com
[불교신문 3724호/2022년 7월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