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 온 날도 국화꽃 들고 찾아… '그만 오라' 하시는데 더 그리워" 사는 곳에서 왕복80㎞ 거리… 묘비 먼지 닦으며 청소하고 꽃 시들지 않게 물 떠다 뿌려 지인들도 매일 찾는 것 몰라… '얼굴없는 사람으로 살라'는 김수환 추기경 말씀 실천
2004년 10월 9일 경기도 여주군 옹기동산 청학박물관에서 열린 초대전 작품 축복식 때 김수환 추기경(앞에서 두번째)과 최기복 신부(맨 앞)의 모습.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 10일 오전 7시 30분쯤, 경기도용인시 천주교 서울대교구 용인공원 성직자 묘역에 국화 꽃다발을 든 최기복(65) 신부가 비안개를 헤치고 나타났다. 김수환 추기경 묘소에 꽃다발을 놓고 10여분 기도를 올렸다.
최 신부는 작년 2월 20일 김 추기경이 이 묘역에 안장된 날부터 40여㎞ 떨어진 여주의 거처까지 왕복 80㎞를 오가며 하루도 거르지 않고 헌화를 하고 있다.
1971년 사제 서품을 받은 최 신부는 인천교구 사목국장과 수원가톨릭대 신학과 교수를 지냈다. 1995년부터 4년 동안 인천가톨릭대 초대 총장도 맡았다. 선친(先親)이 옹기(甕器) 장수였던 김 추기경은 최 신부의 큰형(최기영)이 인천에서 1950년대부터 옹기를 만들어 팔고 있다는 걸 알고 최 신부를 더 가까이했다. 김 추기경 호(號) '옹기'도 최 신부와 인연이 있다.
김 추기경이 팔순이 되자 주위에서 "추기경 이름을 부르는 게 예에 벗어나니 호를 만드는 게 좋겠다"고 했고, 추기경측에서 동양학을 공부한 최 신부에게 호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최 신부는 "추기경께서는 호를 옹기로 하고 싶어 하셨는데 주변에선 좀 어색하다는 의견도 있었다"며 "호 짓는 법을 살펴보고 '옹기도 좋습니다'고 했더니 그대로 결정하셨다"고 했다.
김 추기경은 2000년 성균관대를 설립한 심산(心山) 김창숙 선생의 호를 딴 심산상을 받을 때도 이 대학에서 동양철학 박사학위를 받은 최 신부에게 조언을 구했다. 상을 받으면 심산 선생 묘소에 절을 해야 했는데 추기경이 절을 하면 안 된다는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김 추기경은 "훌륭한 선조에게 예를 올리는 게 내 신앙과 배치되지 않는다"며 상을 받았다.
최 신부는 2002년 여주 산북면에 '옹기동산 청학박물관'을 세웠다. 옹기와 토기, 청자·백자 같은 전통문화 유산을 전시하고 구약·신약 성서를 나전칠화(螺鈿漆畵)로 만들어 천장에 붙인 박물관이다. 김 추기경은 2004년 10월 9일 이곳에 들러 기념미사를 주례했다. 김 추기경은 2007년 나전칠화 작품전 때 다시 들르려 했지만 몸이 쇠약해져 격려사만 보냈다. 최 신부는 "김 추기경께서 이 박물관이 기독교 토착화와 민족 예술문화 창달에 기여하고 있다며 기뻐하셨다"며 "병상에서도 박물관 일에 대한 보고는 꼭 받으셨다"고 했다. 최 신부는 지난해 2월 김 추기경 선종 일주일 전 중국에 출장 가면서 병상의 추기경에게 인사를 드렸다. 생전 마지막 인사였다.
아무도 모르게 하던 최 신부의 헌화는 용인공원 입구에 있는 '임마누엘 화원' 주인 신수학(51)씨가 처음 알게 됐다. 신씨는 "지난해 2월부터 신부님이 매일 아침 국화꽃 2~3다발을 사갔다"며 "한 달이 넘도록 계속 꽃을 사 가기에 어디에 헌화를 하나 궁금해 쫓아가 봤더니 김 추기경 묘소였다"고 했다.
신씨는 "봄·여름엔 추모객들이 놓고 간 꽃들이 시들자 신부님이 '추기경께서 생명을 존중하라고 하셨는데 꽃이 말라죽게 할 수 없다'며 매일 새벽 물을 떠다 뿌렸다"고 했다. 꽃병 대용으로 작은 옹기를 가져다 놓은 이도 최 신부다.
최 신부는 매일 묘비의 먼지와 얼룩을 닦으며 묘역을 청소하고 눈이 내리면 눈도 치운다. 용인공원 관계자는 "지난달 폭설이 내린 날 직원들과 눈을 치우는데 신부님이 사람들을 데리고 나타났다"며 "신부님이 이렇게 청소까지 하시면 우리 입장이 난처하다고 했더니 '이렇게 해야 마음 편하고 위안을 얻는다'고 하셨다"고 했다.
그런데도 꽃집 주인과 관리소 직원들은 최 신부의 이름도 몰랐다. 최 신부 지인들도 그가 매일 하는 일을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얼굴 없는 사람으로 살라'고 한 김 추기경 말에 따른 것이다.
최 신부는 "추기경께서는 가톨릭을 대표하고 시대의 목소리로 자주 앞에 나서야 했지만 옆에서 보니 한편으론 조용히 숨어 자신의 뜻을 이루고 싶었던 때도 많았던 것 같다"며 "그런데 이렇게 돌아가셔서까지 많은 사람들이 추기경께 찾아와 기도하고 상의하고 대답을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찾아올 때마다 김 추기경께서 저에게 '이제 그만 오라' 이러시는데 자꾸만 더 그립고 찾고 싶습니다."
첫댓글 최신부님의 <추기경님>에 대한 사랑은 <영원>한 사랑이라 생각 됩니다~!! -이시돌-
이시돌님! 늘 고맙고 감사합니다.
좋은 기사를 올려주셨습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저도 이 글을 읽고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