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briele Münter, 1877~1962)
독일 표현주의 화가이자 ‘청기사’파의 중요한 여성작가. 맑고 상징적인 색채와 대담하고 단순한 형태, 굵고 검은 윤곽선으로 내면의 정서를 풍경과 인물, 정물에 담아 형상화하였다. 칸딘스키의 제자이며 예술적 동지이고 연인이었다.
Meditation. 1917.
Oil on canvas. 66 x 100 cm.
1877년 2월 19일 독일 베를린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1897년 뒤셀도르프에서 그림 개인교습을 받았으며 1901년 뮌헨 여성화가협회의 미술학교에 입학하였다. 같은 해 겨울 팔랑스 미술학교(Phalanx School)로 옮기게 되는데 그곳에서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를 만난다. 칸딘스키는 팔랑스 미술학교의 설립자이며 그곳에서 미술을 가르쳤다.
Staffelsee in Autumn (1923)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에서 연인이 된다. 1903년부터 1914년까지 그들의 연인관계는 지속되는데 이 시기 그녀는 가장 활발한 예술 활동을 펼친다. 1909년 뮌터는 바이에른 지방 무르나우에 집을 얻어 칸딘스키와 동거를 시작한다. 이 집은 뮌헨 아방가르드의 만남의 장소가 된다. 야블렌스키(Alexei von Jawlensky)와 그의 부인 베레프킨(Marianne von Werefkin)이 이곳에서 작업했고 마르크(Franz Marc), 마케(August Macke), 클레(Paul Klee), 쿠빈(Alfred Kubin) 등이 정기적인 모임을 갖기 위해 이곳을 드나들었다.
The Russians' House. 1931.
Oil on canvas.
1909년에는 뮌헨 신미술가협회(NKVM)을 결성한다. 하지만 미술적인 견해 차이로 뮌터는 칸딘스키, 마르크와 그곳을 탈퇴한다. 그리고 1911년 ‘청기사’를 창립한다. 1914년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청기사파는 자연 해산되고 러시아인 칸딘스키는 독일을 떠나야 했다. 결혼까지 약속했지만 칸딘스키는 끝내 약속을 저버리고 1917년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장군의 딸과 결혼한다. 뮌터는 깊은 상처로 무르나우의 작은 집에 혼자 기거하며 고독한 시간을 보낸다.
Gabriele Munter. 1905. Oil on canvas. 45 x 45 cm.
Stadtische Galerie im Lenbachhaus, Munich, Germany
뮌터는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재평가를 받기 시작했고 1949년 뮌헨의 ‘청기사’ 전시회에서 그 위상을 보여준다. 무르나우에 남겨진 칸딘스키의 초기 작품들을 나치 통치 기간 동안 지켜낸 뮌터는 그 작품들과 자신의 그림을 뮌헨 렌바흐하우스 시립미술관에 기증한다. 그녀는 1962년 85살의 나이로 무르나우에서 생을 마감한다.
Olympiastreet at Murnau (1936)
뮌터의 작품은 그녀 삶의 모든 풍경을 품고 있다. 그녀 자신과 칸딘스키, 무르나우 집의 친구들, 마을의 거리와 농가, 슈타펠 호수, 바이에른의 산악 풍경, 과일과 꽃, 도자기와 민속품이 있는 정물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에 내면의 정서를 담아 형상화하는 작업을 보여주었다. 맑고 상징적인 색채와 대담하고 단순한 형태, 뚜렷한 검은 윤곽선은 그녀 작품의 표현성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주요 작품에는 <자화상 Self-Portrait> (1909), <야블렌스키와 베레프킨 Jawlensky and Werefkin> (1908~1909), <장미꽃과 검정 가면 Black Mask amid Roses> (1912), <새들의 아침식사 Breakfast of the Birds> (1934) 등이 있다. /앤사이버백과사전
첫댓글 정물화 작품은 동화속 풍경같다.... 무엇인가 동화같은 스토리가 숨어 있을 듯한.....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작픔 속 집에는 가족들이 모여있는 훈감이 배여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