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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영광] 13
#.1 씬. 종가 마당 전경. (밤)
#.2 씬. 만기의 방.(밤)
만기, 석호, 천갑, 촌로1,2,3 앉아있는.
천갑 : 결례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만기 : 아닙니다.
천갑 : 저는 다른 댁에서는 제사를 어떻게 모시나 궁금해서 찾아왔는데
이 댁에선 제삿날 문중 어르신들까지 다 오시나보죠?
촌로1 : 상 중에 제사를 안 모셔보셨습니까?
천갑 : 네?
촌로1 : 상중에는 상주가 죄인인지라 스스로 제사를 모실 수가 없으니
문중 사람들이 대신 제사를 모시는 게 법도 아니겠습니까?
천갑 : 아, 네. 그거야 그렇죠. 제가 오래 전에 부모님을 잃어서 깜박했습니다 그려.
촌로1 : 그때 본관이 어떻게 되신다고 하셨던가?
천갑 : 아이고 깜박하신 모양이십니다. 제가 그때도 말씀을 드렸지만
아직은 저 역시 가문을 일으켜 세워야 하는 입장이라 말씀드리기가 좀 그렇습니다.
촌로1 : 거 참. 성격도 유별나십니다.
천갑 : 집안 자랑 같아서 말이죠. 제가 원래 성격이 좀 내성적입니다.
촌로1 : 본관 좀 알려주시는 게 뭐 그리 집안 자랑이라고 이러시나.
천갑 : (말을 돌리려고, 만기에게) 오늘 돌아가신 어른이 어머님이시라구요?
만기, 촌로들 약간 어색한 느낌으로.
천갑 : (어리둥절해서 두리번거리는)
#.3 씬. 마루.(밤)
수영, 태영, 강석 앉아있으면, 단아, 조만, 주정 찻상 들고 나와 각자 앞에 놓아주는.
단아가 강석 앞에 찻상을 놓는.
강석 : (그런 단아를 올려다보며) 고맙습니다. 느닷없이 찾아와서 폐가 되지는 않나 모르겠습니다.
단아 : .....
동동, 하품하면서, 태영의 방에서 나오는.
태영 : 야, 임마. 넌 무슨 낮잠을 코가 삐뚤어지게 자냐?
동동 : 고모가 밤늦게 제사 지내야 하니까 자두라고 했단 말이야.
태영 : (손 잡아끌고) 손님한테 인사드려. 제 아들놈입니다.
강석 : (동동을 보면)
동동 : (꾸벅 인사하면서) 우리 아빠 아들놈입니다.
태영 : 이 자식은. 얘가 사춘기라 반항심이 좀 있거든요. 저 나름으론 지금 저 한방 먹인 겁니다.
임마, 이름을 말씀 드려야지.
동동 : 하동동입니다.
강석 : 어, 그래, 반갑다.
동동 : 아, 쉬마려. (화장실로 달려가는)
주정 : (빙글거리는 느낌으로, 태영에게) 근데, 어떻게 되시는 분인 거니?
태영 : 우리 회사하고 이번에 제휴를 하신 분 아드님이세요.
수영 : 이번에 우리 회사 경영 관리 실장님으로 오시게 되셨구요.
주정 : 아, 그러세요? 난 얘들 고모 할머니예요.
강석 : 아, 네. (일어서며, 인사를 하는) 인사가 늦었습니다.
주정 : 아이고, 됐어요. 앉아요. 앉아.
강석 : (엉거주춤 앉고)
주정 : 좀 헷갈리죠? 뭐 이런 젊은 여자가 고모 할머니라고 하나?
강석 : (어색하게 웃고)
주정 : 집안마다 왜 복잡한 사연 하나씩 있잖아요? 난 뭐 그렇게 복잡한 사연도 아니긴 하지만.....
단아 : (주정 팔 잡으며) 들어가세요, 할머니.
주정 : 왜? 난 부엌에 들어가 봐야 도움도 안 되는데, 여기 있지 뭐.
(강석 옆쪽으로 앉으며) 근데 인물 진짜 좋으시다. 탈렌트 시험 같은 거 본 적 없어요?
#.4 씬. 부엌.(밤)
삼월, 일하고 있으면, 단아, 조만 들어오는.
조만 : 우리 고모 할머니 신나셨네. 하긴 잘 생기긴 잘 생겼드라. 그때 문상 왔을 때도 확 눈에 띄더니.
삼월 : (조만에게 눈 흘기는데)
주정E : (마루에서 들려오는) 한번 봐 봐요. 사업 같은 거 재미없잖아요?
우리 동기애 중에 스타 P.D 많은데, 어때요?
삼월 : (마루 쪽 보면서) 네 고모 할머니 좀 끌고 들어와라. 왜 또 저리 손님을 괴롭히나.
조만 : 단아가 끌고 들어오려고 했는데, 막무가내세요. (단아에게) 너 고모 할머니 눈에서 불똥 튀는 거 봤지?
단아 : .....
#.5 씬. 마루.(밤)
수영, 태영, 강석, 주정 앉아있는.
주정 : (거의 침 흘리는 느낌으로 강석 옆에 붙어 앉아 떠들어대고 있다) 어머, 어머, 진짜 피부가 장난 아니다.
(손까지 올려서 만져볼 태세다)
강석 : (무안해서 뒤로 몸 빼면서 어색하게 웃는)
태영 : 할머니, 침 좀 닦으세요.
주정 : 뭐? 무슨 침?
수영 : 저흰 들어가서 옷 좀 갈아입고 나와야 하는데.
강석 : 네, 그러시죠.
주정 : 그래, 그래, 들어가 봐. 손님 말상대는 내가 해드리고 있을 테니까.
강석 : 마당을 잘 가꿔놓으셨던데 전 잠시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오겠습니다.
수영, 태영, 강석 일어서면, 주정 얼른 따라 일어서며.
주정 : 제가 안내해드릴게요.
태영 : 할머니, 할머니, 저 드릴 말씀 있는데.....
주정 : 무슨 말? 나중에 해, 나중에.
#.6 씬. 주정의 방.(밤)
태영, 주정 끌고 들어오는.
주정 : (강석을 따라 나가지 못해서 안달하는 느낌으로) 나중에 하라니까 정말 왜 그러니? 나 손님 집 구경 좀 시켜주고.
태영 : (얼른 문 닫고, 발 구르는 느낌으로) 고모 할머니?
주정 : 왜?
태영 : 정말 왜 그러세요? 창피하게.
주정 : 내가 뭘?
태영 : 저 자식이 얼마나 밥맛인지 알기나 하고 이러세요?
주정 : 왜? 애 산뜻하니 좋기만 하구만.
태영 : 우리 회사 말아먹을지도 모르는 놈이라구요.
주정 : (보는) 쟤가?
태영 : 그렇다니까요. 저 자식 속에 뭐가 들어앉아있는지 아무도 모른다구요.
주정 : 그런 애가 뭐 하러 남의 집 제삿날에까지 오고 그런다니?
태영 : 염탐하러 온 거 아니겠어요?
주정 : 야, 회사 말아먹자고 제사 염탐하는 건, 앞뒤가 좀 안 맞지 않니?
무슨 기밀 서류를 빼내는 거면 모를까. 제사로 무슨 염탐을 얼마나 하겠다구?
태영 : (듣고 보니 그렇긴 하지만) 아, 몰라요, 몰라.
주정 : 얘, 태영아, 그럼 더 잘됐다.
태영 : 뭐가요?
주정 : 내가 따라 나가서 무슨 생각으로 온 건지 염탐하고 올게. (나가려고 하면)
태영 : (잡으면서) 할머니, 제발요. 저 자식이 우리 집안 우습게 보면 좋으시겠어요?
#.7 씬. 부엌.(밤)
삼월, 조만, 단아 음식 하고 있는.
삼월 : (단아에게) 마당에 나가서 아까 그 젊은 손님, 저녁 드시러 들어오시라고 해라.
단아 : .....
삼월 : (보면)
단아 : 네. (돌아서 나가는)
삼월 : 근데.....내가 분명히 어디서 본 사람인데.
조만 : 누굴요?
삼월 : 그 젊은 손님 말이다. 눈에 익은데.....
#.8 씬. 마당.(밤)
마당을 둘러보며 서있는 강석. 단아, 나오는.
강석 : 집이 아주 훌륭하네요. 고풍스럽고, 정갈하니.
단아 : 저녁 드시게 들어오세요.
강석 : 그거 압니까?
단아 : (보면)
강석 : 나한테는 사람을 사람으로 본 적이 있냐고 하면서,
그쪽은 사람을 눈 아래로 보는 고약한 취미가 있다는 거?
단아 : 그런 적 없는데요.
강석 : 그럼, 나 혼자 자격지심인가. 나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열등감 같은 거 없는 놈인데.
단아 : 들어오세요. (들어가려고 하면)
강석 : (단아 앞으로 막아서면서, 놀리는 느낌으로) 그런 거 있어요. 그쪽. 사람 눈 아래로 깔고 보는 취미.
단아 : 그쪽이 매번 이렇게 무례하게 구시지 않으면 그런 이상한 생각 못 하실 텐데요.
강석 : 아, 네 놈이 그렇게 구니까 내가 그런 거다?
단아 : (피해 들어가려고 하면)
강석 : (다시 막아서면서 서늘한 느낌으로 보는)
단아 : (보는)
강석 : 당신 그런 눈빛 마음에 안 드는 건 사실인데. 재미는 있어.
단아 : ......
강석 : 아직까지 그런 눈빛으로 날 본 인간은 없었거든. 그래서 게임을 걸어보고 싶어진단 말이야.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정할 땐 어떤 눈빛일까 궁금해서 말이지.
단아 : (싸늘하게 미소를 지으며) 협박인가요?
강석 : ......
단아 : 네가 날 그런 식으로 보면 느네 회사 어떻게 될지 몰라, 하는?
강석 : (보다가 빙긋이 웃는) 당신이 이러니까 게임을 걸어보고 싶어지는 거라구.
못 알아듣는 척 하면 이건 상대가 안 되는군, 하고 무시해버릴 수도 있는데,
매번 진검 승부 한번 해볼래 하는 투잖아?
단아 : 전 댁하고 아무 것도 해보고 싶은 게 없어요. (들어가려고 하는데)
강석 : (단아의 뒤를 향해) 왜 사는 게 쉽지 않은 겁니까?
단아 : (멈칫 멈춰서는)
강석 : 그 어린놈이 그러던데. 사는 게 쉽지 않은 사람이니 귀찮게 굴지 말라구.
뭐 하나 아쉬울 거 없는 젊은 아가씨 같은데, 왜 사는 게 쉽지 않은 거냐구요?
단아 : (걸어 들어가는)
강석 : ......
#.9 씬. 마루.(밤)
만기, 석호, 수영, 태영, 주정, 단아, 상복으로 갈아입고(장례를 치룰 때 의상) 죽 늘어서 있으면.
뒤쪽에 천갑, 강석, 서있고. 한 켠에 삼월, 조만 서있고. 제사상 이미 진설이 되어 있는 상태.
촌로1,2,3 사당에서 위패를 모셔서 나오는.
천갑 : (귓속말로) 야, 저 방은 뭐냐?
강석 : (묻지 말라는 표정)
위패가 상 위에 모셔지고, 촌로1,2,3의 주제로 잔에 술이 따라지고, 뒤쪽에서 절을 하는 가족들 인서트.
#.10 씬. 만기의 방.(밤)
만기, 석호, 천갑, 촌로1,2,3 각자 상을 받고 앉아있는.
비빔밥과 국 한 그릇, 김치 그릇, 간소하다.
천갑 : 아, 이 댁에선 제사를 모시고 나서 비빔밥을 해 드시나 봅니다.
촌로1 : 세상 떠난 하회장 안댁께서 친정 풍습을 들여오신 겁니다.
천갑 : 아, 네. 특이하네요. (떠먹어보고) 아, 진밀세. 진미야.
만기 : 입에 맞으실는지 모르겠습니다.
천갑 : 근데, 아까 보니 지방을 다른 방에서 써가지고 나오시는 거 같던데.
촌로2 : 위패 말이신가?
천갑 : 네. 아, 네 그거요. 저희 집에선 제사 지내는 옆에서 써서 바로 붙이는 풍습이 있는데.
하긴 뭐 제사법이야, 지방마다 다르고 집안마다 다른 거 아니겠습니까?
촌로1 : 그럼, 매번 지방을 쓰시나?
천갑 : 네?
촌로1 : 종가시면 사당이 따로 있으실 텐데?
천갑 : (당황하고) 사, 사당. 아 있죠.
촌로1 : 사당은 어떻게 모시시나? 종택에 있으신가, 지금 거하시는 집에 모시고 계신가?
그럼 불천위 제사 때 망향 제사를 올리셔야 할 텐데.
천갑 : 저 그것도 집안 자랑 같아서 지금은 말씀드리기가 좀 그렇습니다.
촌로1 : 그 양반 참, 별나기도 하시구만. 사당 어디다 모셨냐는데, 집안 자랑이 왜 나오시나.
천갑 : (헛기침 하면서) 이 비빔밥에 나물은 몇 가지나 들어가나요?
단아E : 할아버님?
만기 : 들어 오거라.
단아, 조만, 숭늉 대접을 들고 들어오는.
단아 : 숭늉입니다.
만기 : 그래, 놔 드리거라.
단아, 조만 각자 앞에 놓아주는.
촌로1 : 단아야?
단아 : 네, 할아버님.
촌로1 : 박사 학위 받을 때 되지 않았느냐?
단아 : 아직 1년 더 남았습니다.
촌로1 : 그래. 네가 박사 학위를 받으면 이 집안에선 처음으로 나오는 여자 박사니, 열심히 하거라.
단아 : 네, 할아버님.
천갑 : 박사라면, 무슨 공부를 하시나?
만기 : 역사 공부를 하고 있는 아입니다.
천갑 : 아, 그러십니까? 역시 집안이 집안이다 보니 여식한테도 남다른 공부를 시키십니다 그려.
#.11 씬. 마루.(밤)
수영, 태영, 강석, 동동, 각자 상 받고 앉아서 밥을 먹고 있는. 비빔밥이 놓인 간소한 상이다.
주정, 숭늉 대접 담긴 쟁반을 들고 나오는.
주정 : (강석에게) 숭늉이에요.
강석 : 네, 고맙습니다.
태영 : (진짜 못마땅하다) 고모 할머니, 왜 안하시던 일을 하고 그러세요?
주정 : 얜, 내가 무슨 안하던 짓을 한다고 그러니.
(강석 앞에 숭늉 대접 놓아주다가 미끄러져서 물을 쏟는) 어머, 어머.
태영 : 그럼 그렇지.
주정 : 어머, 다 젖으셨나보네.
단아, 만기의 방에서 나오다 그 모습 보고, 삼월 놀라서 부엌에서 뛰쳐나오는.
삼월 : 왜? 무슨 일이야?
주정 : 다행이네, 그래도 웃옷만 젖어서....
삼월 : (주정 등 때리면서) 그래서 내가 가져나간다니까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이걸 어쩐대요.
강석 : 괜찮습니다.
삼월 : 벗어주세요. 수건으로 물기 빼내고 금방 다려 드릴 테니.
강석 : 아닙니다, 금방 마를 겁니다.
주정 : 아니에요, 벗으세요, 벗으세요. (하면서 억지로 강석의 웃 양복을 벗겨내는)
강석 : (난처하고) 이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주정 : 어머, 어머, 몸 진짜 좋으시다.
조만, 부엌에서 나오며.
조만 : 할머니? 손님들 음식 어떻게 담아요?
삼월 : 잠깐만. 이것부터 해드리고.
단아 : (하는 수 없이 다가서며) 주세요, 제가 할게요.
삼월 : 그럴래? (강석의 웃 양복을 단아에게 건네주는)
#.12 씬. 단아의 방.(밤)
단아, 양복을 다림질 담요 위에 놓고, 마른수건으로 눌러 물기를 빼내는.
#.13 씬. 마루.(밤)
수영, 태영, 강석, 동동, 주정 앉아있는.
주정 :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단아가 완벽하게 말려서 가지고 나올 거예요.
강석 : 괜히 찾아와서 번거롭게만 해드리는 거 같습니다.
주정 : 어머, 아니에요. 우리 단아한테 저런 일은 일도 아닌 걸요. 쟤 세탁소 차려도 성공 할 거야, 그지, 태영아?
태영 : 대학 교수 하는 애가 세탁소는 왜 차려요?
주정 : 요즘 젊은 여자애가 쟤처럼 바느질 잘 하기가 쉽니?
태영 : (삐딱하게) 요즘 세탁소에서 바느질해요? 다 재봉틀로 하지.
주정 : 얘가 왜 고모 할머니 말에 퉁퉁거리지?
단아, 강석의 양복 윗저고리를 들고 자신의 방에서 나오는.
주정 : 벌써 다 된 거야?
단아 : 네. (다가와 강석에서 옷을 내주는)
강석 : (단아를 보고, 천천히 웃옷을 받아 입으려고 하면)
단아 : 저, 조금 있다가 입으세요. 금방 다림질을 해서 좀 뜨거울 거예요.
강석 : ......(웃옷을 옆에 놓는)
단아 : (부엌으로 들어가는)
강석 : (그런 단아를 눈길로 쫓는)
#.14 씬. 강석의 집 거실.(밤)
천갑, 강석, 영자 앉아있는. 영자 보자기를 보고 있는.
영자 : (보자기 묶인 모양 이리 저리 살피면서. 꽃모양으로 묶인 보자기) 아니, 이걸 어떻게 쌌대, 신기하네.
천갑 : 신기한 게 그것만인 줄 알아. 풀어놔 봐.
영자 : 아까워서 이걸 어떻게 푼대. (하면서 풀면, 작은 찬합, 세 칸짜리. 너무 요란하지 않은 문양의 찬합.
각 칸을 펼쳐보면 부침, 떡, 약식과 전병 등이 정갈하게 담겨져 있다)
어머, 어머. 이쁘네, 이뻐. 역시 귀한 손님이라고 대우가 틀린 거지?
천갑 : 집에 온 손님들한테는 똑같은 거 하나씩 다 들려 주드만.
영자 : 다? 당신만 귀한 손님이라고 특별히 싸준 게 아니구?
천갑 : 똑같은 보자기 하나씩 다 들려줬다니까. 야, 그 사당이 뭐냐?
강석 : 네?
천갑 : 그 집구석엔 그것도 있는 모양이드라. 그것도 있어야 종가니 뭐니 행사하는 것 같드라구.
강석 : 알아보죠 뭐.
영자 : 이래서 내가 역사 모임에 들어가야 했던 건데.
내가 거기 다니면서 주워 들었어봐 사당인지 뭔지 금방 알지. 당신 설마?
천갑 : 설마 뭐?
영자 : 사당이 사당동 아니냐고 한 건 아니지?
천갑 : 열쳤냐, 난 모르는 건, 집안 자랑 같아서 말 안합니다, 그걸로 쭉 밀고 나가는 사람이야.
강석 : 올라가볼게요.
천갑 : 그래, 쉬어라.
강석 : (2층으로 움직이고)
천갑 : 진짜 폼은 나드라.
영자 : 뭐가 달라도 달라? 뭐가 그렇게 달라?
천갑 : 비빔밥부터가 다르더라, 됐냐?
#.15 씬. 강석의 방.(밤)
강석, 들어와서 웃옷을 벗는데.
강석 : (깊은 시선으로 자신이 벗은 웃옷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16 씬. 강석집 앞.(밤)
삼월, 단아, 태영 커다란 찬합 꾸러미 하나씩 들고 나오는.
태영 : (따라 나오기 싫은 분위기다) 형 오면 같이 가시라니까요?
삼월 : 평촌 어르신 모셔다 드리러 평촌 갔잖아? 언제 올 줄 알고, 기다렸다 가?
단아 : 오늘따라 왜 그래? 매번 갔었으면서?
태영 : 진짜 오늘은 관공서 가기 싫어서 그렇단 말이야.
단아 : 그럼 오빤 밖에 있으면 되잖아?
#.17 씬. 경찰서 앞.(밤)
태영, 삼월, 단아, 차에서 내리는.
태영 : (꾸러미 삼월과 단아에게 들려주는)
단아 : 할머니, 무거우셔. 오빠가 들고 들어가.
태영 : 난 정말 싫다니까. 그리고 할머니, 이런 거 정말 요즘 사람들은 싫어한다니까요.
누가 남의 집 제사 음식을 좋아라 해요.
삼월 : 아, 그 참, 왜 한 소리 또 하고 또 하고 그러나. 여기 서장님이랑 얼마나 고마워들 하시는데.
어떤 양반은 우리 집 제삿날만 기다린다고 하셔.
태영 : 그거야 예의상 하는 말이죠.
삼월 : 밤에 일하는데, 야식 겸 이것도 정일세.
삼월, 단아 들어가려고 하면.
단아 : 정말 여기 있을 거야?
태영 : 빨리 들어갔다 나와.
단아, 흘겨보고, 삼월과 같이 경찰서 안으로 들어가는.
태영, 에이 하는 느낌으로 서있는.
태영 : 내가 허구헌 날 벌금 내면서 야식까지 챙겨주게 생겼냐구. 그게 또 얼마나 비웃을 거야.
(말순 성대모사) 이렇게 대단한 집안에서 간통으로 잡혀 오셨었네요,
(몸서리치면서) 야, 야,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하는데, 순찰차 옆으로 다가오는.
장기 운전하고 있고, 그 옆에 말순 타고 있다.
태영 : (놀라서 얼른 차에 올라타고, 몸 옆으로 숙여 숨기고 있는)
말순 : (순찰차에서 내리면서) 누가 여기다 차를 댔어? (태영의 차 안을 들여다보면서 차창 두드리는)
태영 : (눈 감고 꿈쩍도 않는데)
말순 : (차창 두드리는)
태영 : (하는 수 없이, 몸 일으키고 차 문 열면서) 아, 왜요?
말순 : 또 이 양반일세. 여기 차 세우시면 안 되거든요.
태영 : 왜?
말순 : 순찰차 대야 하거든요.
태영 : 다른 데다 대면 되잖아요?
말순 : 급하게 출동할 때 대비해서 앞에 세우게 돼있습니다.
태영 : 하여간 융통성이라곤 약에 쓰려고 찾아도 없지?
말순 : 대체 여기다 왜 대고 계신 겁니까? 경찰서에 일 있으세요?
태영 : 내가 이 밤에 경찰서에 무슨 일이 있어? 뺀다, 빼. (시동 걸고 차 빼는)
말순 : 참, 저 인간도 연구 대상이야.
#.18 씬. 하옹의 방.(밤)
주정, 술병과 간단한 부침 안주 놓인 상 앞에 놓고 잔에 술 따라 마시는.
주정 : (하옹의 사진을 보며) 아버지? 오늘 울 엄마 제사예요. 만나셨어요? 울 엄마?
근데요, 아버지? 하늘나라 거기선 누구 하고 사시는 거예요?
오빠 엄마랑 사시는 거예요? 울 엄마랑 사시는 거예요?
오빠 엄마가 먼저시니까 기득권이 그 어른한테 계신 거겠죠? 그럼, 울 엄마는 뭔가?
어쨌든, 아버지? 울 엄마 괄시하지 마시고, 위해주세요.
수영, 문 여는.
주정 : 평촌 어르신 잘 모셔다 드리고 왔니?
수영 : (들어와 앞에 앉는) 잘 생긴 손님 앞에서 농담하고 그러셔서 오늘은 그냥 주무시려나 했어요.
주정 : (씩 웃고) 엄마 제삿날 잘 생긴 젊은 애 옆에서 주책 떠는 나도 희한한 인간이지?
수영 : 마음이 허하니 저러시는 거겠지 했어요.
주정 : 수영아?
수영 : 네, 할머니.
주정 : 저 양반 말이야. 우리 아버지. 니 증조 할아버지 말이야.
수영 : 네.
주정 : 사랑 같은 거 하시면서 사셨을까? 아닌 거 같지? 그지?
그저 어느 종가의 종손으로 태어나 문중에서 정해주면 정해주는 대로
내 짝이려니 하면서 사셨겠지? 너처럼 말이야.
수영 : .....
주정 : 그런데, 수영아. 오빠 어머니 말이야. 그 분은 아닐 거 같지 않니?
집안이 쫄딱 망해서 집안이니 뭐니 상관없을 때 결혼 하신 거잖아?
그러니까 그 분은 진짜 사랑해서 맺어진 건지도 몰라? 그지?
수영 : 글쎄요.
주정 : 근데 울 엄마는 아니잖니? 우리 아버지, 예전에 오빠한테 그러시드라. 울 엄마 불쌍한 사람이라구.
어린 너 아니었으면 새 사람 들일 엄두도 못 내고 살았을 거라구.
수영 : 증조 할아버님, 고모 낳아주신 증조 할머님께 정 깊으셨던 거 같아요.
제사 때마다 눈물 글썽해 하시는 거 여러 번 뵈었어요.
주정 : 미안해서 그런 거야. 미안해서. 에미 없는 아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얻어다 산 게 미안해서.
수영 : (술 따라 주는) 종손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그런가 봐요.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쩔 수 없이 상처 주게 되고, 그래서 늘 미안하게 되고.
#.19 씬. 길.(밤)
태영, 운전하고 있는, 삼월, 단아 뒷좌석에 타고 있는.
단아 : 고단하지? 삼월씨?
삼월 : 난 로버트 태권 브이다.
단아 : (웃고) 우리 삼월씨 유머 감각은 매일 매일이 일취월장이라니까.
삼월 : 유머만?
단아 : 그럼 뭐 또?
삼월 : 이 백옥 같은 피부 봐라? 나 회춘하는 거 같아.
단아 : (웃고)
태영 : 아 제가 40년만 젊었어도 삼월씨는 임자 제대로 만나는 거였는데.
삼월 : 아 됐어, 하과장은 내가 사양이야. 나도 남자 보는 눈 높아 왜 이래.
태영 : 할머니? 너무 막가시는 거 아니세요?
삼월 : 나도 아까 그 젊은 손님처럼 훤칠하니 잘 생긴 사람..... (그러다 퍼뜩) 아, 맞네. 어디서 봤나 했더니.
그 사람이구나. 네가 상 치룰 때 뺨 때린 젊은 청년? 맞지?
단아 : ....
태영 : 누, 누가요? 이강석이요. 단아가 그 놈 뺨을 때렸다구요? 그것도 상 치루면서? 에이 잘못 보셨겠죠.
삼월 : 그런데 대체 그날 왜 그런 거냐? 내가 물어본다 하면서도 경황이 없어서 그냥 넘어갔는데.
단아 : 그럴 일이 좀 있었어요.
태영 : 그 자식, 너한테 무슨 짓 한 거야?
단아 : (창 밖으로 고개 돌리는)
#.20 씬. 단아의 방.(밤)
단아, 들어오면, 태영 따라 들어오는.
태영 : 너 진짜 말 안할 거야?
단아 : 가서 좀 자, 아무 일도 아니니까.
태영 : 네가 괜히 뺨 때릴 애냐? 생전 누구 하고 쌈 한번 안하는 애가 뺨까지 때렸을 때는
보통 일이 아니었을 텐데? 뭐야? 그 자식이 너한테 찝쩍댄 거야? 그것도 상 중에 있는 사람한테?
단아 : 조금 오해가 있었어. 그 뿐이야.
태영 : 네가 오해 같은 걸로 뺨까지 때릴 애냐구? 뭔가 그 자식이 맞을 짓을 한 거잖아?
단아 : 아무 일도 아니니까 제발 좀 가서 자.
태영 : 그 자식, 내가 진작에 알아봤다. 룸싸롱 가서 여자 애 옆에 끼고 노래 부르는 거 보면서
저 자식 좀 노는 놈이구나 했어.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찝쩍거릴 상대가 따로 있지.
단아 : (단호하게) 그런 거 아니라니까. 제발 좀 가서 자.
태영 : (찔끔해서) 그 자식 한번 제대로 걸리기만 해봐. 그날이 그 놈 제삿날이니까.
(나가려다가 홱 돌아보면서) 단아, 너도 진짜 속없다. 뭐 하러 그런 놈 옷까지 다려 주냐?
단아 : 계속 할 거야? 그럼 나 진짜 화내는 수가 있어.
태영 : 잔다. 자. (나가는)
단아 : (혼잣말로) 그럼, 어떡해, 손님인데.....
#.21 씬. 만기의 방.(밤)
만기, 누워있고, 동동 옆에 앉아 만기의 다리 주무르고 있다.
만기 : 안 졸리냐?
동동 : 공짜예요.
만기 : (미소 지으며) 안 졸리냐구?
동동 : 낮잠 너무 많이 자서 아직은 안 졸려요.
만기 : 너도 오늘 애 많이 썼다.
동동 : 네. 전요, 할아버지.
만기 : 그래.
동동 : 우리 집이 매일 제사 지내고, 손님도 많이 오고 바빴으면 좋겠어요.
만기 : 매일?
동동 : 네, 그럼.....
만기 : 그럼 뭐냐?
동동 : 엄마 생각 안 나잖아요.
만기 : (측은하고) 이리 와보렴. (옆에 동동이를 눕히는) 어쩌냐? 제사는 한달에 한번 꼴로 밖에 없으니.
나머지 29일은 자꾸 생각이 날 텐데.
동동 : (만기의 어깨에 얼굴을 묻는)
만기 : 억지로 생각 안하려고 애쓰지 말거라. 차츰 차츰 덜 생각나는 날이 올 거다.
#.22 씬. 길.(아침)
단아, 동동 걸어가는.
단아 : 언제까지 아빠 차 안타고 학교 갈 거야?
동동 : 쭉 이요.
단아 : 아빠 많이 서운해 하셔.
동동 : 쌤통이에요.
단아 : 아빠가 많이 잘못하고 산 건 맞는데, 아빠도 많이 반성하고 있으니까 용서 좀 해주면 안 될까?
동동 : 안돼요.
단아 : 조금씩만 용서해주지 그래?
동동 : 아빤 인생 그렇게 편하게 살게 두면 안돼요.
단아 : (미소 짓고) 아빠, 정신 차리라고 벌주고 있는 거야?
동동 : 그래도 맨날 헤헤거리잖아요? 반성 안했어요, 우리 아빠.
단아 : 성격이 좋아서 그런 거야.
동동 : 여기서부턴 혼자 갈게요.
단아 : 왜? 학교 앞까지 가.
동동 : 애들이.....
단아 : 애들이 왜?
동동 : 새엄마냐구 해요, 고모.
단아 : .....(보다가, 가방에서 작은 보자기에 싼 도시락 내미는)
동동 : 점심 학교에서 주는데.
단아 : 현지 가져다 줘. 떡하고, 전병 예쁘게 넣어놨으니까.
동동 : 뭐가 이쁘다고 이런 걸 가져다 줘요?
단아 : 남자답잖아? 난 네가 때려도 이렇게 너그럽다, 그런 거.
동동 : (빤히 올려다보는)
#.23 씬. 강석의 집 식당.(아침)
단아의 집에서 가져온 제사 음식도 놓여 있는 아침 식탁.
천갑, 영자, 강석 식사하고 있고. 아줌마 뒤에서 물 따라 놔주고.
영자 : 그 집 여자들이 솜씨가 좋나봐? 음식 맛이 제법이야.
천갑 : 근데, 어제 그 집 며느리들이 안보이지 않든?
강석 : 그랬어요?
천갑 : 내가 그 노친네들한테 슬쩍 물어보니까 헛기침만 해 대드라. 뭔가 떳떳치 못한 구석이 있는 거 같기도 하구.
영자 : 그럼 제사상을 누가 차렸어?
천갑 : 그 집에서 일하는 할머니랑 젊은 애랑, 그 집 증손녀딸이 집안일은 다 하는 거 같드만.
야, 그 집 증손녀 애가 아주 참하고 좋더라.
강석 : .....
영자 : 그래? 몇 살인데?
천갑 : 그건 모르겠고, 대학 교수 한대지 아마.
영자 : 그래?
천갑 : 곧 박사 받는다고 하던데, 역사 공부를 한다든가.
영자 : (화들짝) 역사 공부?
#.24 씬. 천갑의 방.(아침)
영자, 천갑 웃옷 입혀주고 있는.
영자 : 내 생각 어때? 굿 아이디어지?
천갑 : 뭐 나쁘진 않은 거 같은데.
영자 : 그리고 내가 잘 살펴보고 괜찮으면 우리 강석이 짝으로.
천갑 : 그건 안돼.
영자 : 왜?
천갑 : 어쩌면 철천지 웬수가 될지도 모르는데 짝은 무슨 짝.
영자 : 그럼, 이번에도?
천갑 : 일 여기까지 만드느라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그깟 며느리 하나 맞아들이자고 일을 그르치나.
그냥 단물만 좀 빼먹고 말아.
영자 : (끄덕이고) 알았어. 당신이 시키면 그대로 하는 거지 뭐.
천갑 : 야, 야, 그리고 그 밥상 좀 여러 개 사봐.
#.25 씬. 강석의 사무실.(낮)
강석, 변호사 앉아있는.
강석 : 조용히 매입자를 찾아봐주시죠.
소문나면 시답지 않은 인간들까지 몰려들 테니 각별이 보안에 신경 쓰시구요.
변호사 : 알겠습니다만. 지금처럼 금융 쪽 경기가 좋지 않을 때 매각을 하시는 건
시기에 문제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강석 : 배를 갈아타야 할 땐 타야죠. 물살이 거세더라도.
변호사 : 직원들 인계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매각 협상에선 그게 중요한 관점으로 떠오를 텐데.
강석 : 그건 그쪽에 일임하겠다고 하십쇼.
변호사 : 직원들이 알면 반발이 클 텐데요.
강석 : 그러니까 보안에 각별이 신경 쓰시라는 거 아닙니까?
내린 배의 선원들은 새 주인이 알아서 하는 게 상도의 아닙니까?
변호사 : 알겠습니다. (일어나서 인사하고 나가는)
강석 : (차가운 시선으로 서류 넘기는)
#.26 씬. 방송국 일각. 야외.(낮)
옥상 정도의 공간. 복도 쪽에서 유리로 보이는.
병도, 약병 따서 주정에게 주는.
주정 : (꿀꺽 꿀꺽 마시다 구토하는)
병도 : (들 두들겨주면서) 괜찮겠어? 아니, 어떻게 제삿날 집에서 마셔도 떡이 되게 마시나.
간 좀 생각해라, 선배. 백두대간도 아니고, 선배 간이 정말 너무 불쌍하다.
주정 : 내가 요즘 스트레스가 많아서 그래.
니 집에 딸려가서 인사를 하질 않나. 국장님한테 결혼 날짜 잡았냐는 소릴 듣지 않나.
병도의 핸드폰 울리는.
병도 : 여보세요? 할머니? 응. 아냐, 아냐, 지금 일 안 해. 주정 선배가 구역질해서 약 사다 먹이고 있었어.
아냐, 할머니, 애는 무슨. 선배 술 먹어서 그래, 술 먹어서.
주정 : 미친다, 내가, 이러니 내가 제정신으로 살아지냐구.
병도 : 날? 무슨 날? 뭐? 다음 달? 무슨 결혼을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해?
할머니, 할머니? 내가 지금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겼거든. 내가 나중에 전화 할게. (전화 끊고)
우리 할머닌 왜 이렇게 성격이 급하실까. 이게 다 선배 탓이야.
주정 : 내가 뭘?
병도 : 선배가 우리 할머니랑 엄마 마음에 너무 들게 해서 당장 결혼하라고 이렇게 성화신 거잖아?
주정 : 진짜 느네 할머니 엄마 성격 이해 불가다. 아니, 인사 가서 앉자마자 술이 떡이 된 며느리감이
그렇게 마음에 드신다는 건 또 뭔데?
병도 : 화통하신 거지.
주정 : (일어나며)
병도 : 왜? 어디 가려구?
주정 : 술 푸러 간다. 정말 하루도 술 없인 살아낼 수 없는 인생의 이 고단함. (웩하고 주저앉는데)
병도 : (등 두들겨 주면서) 오늘은 맨 정신으로 벼텨 봐, 선배. 이러다 정말 선배 아주 간다.
국장, 앞에 턱하고 나타나는.
국장 : 몇 개월이냐?
주정 : (올려다보는)
병도 : (버럭) 국장님?
국장 : 날 빨리 잡아라. 나처럼 결혼해서 두 달 만에 애 나오면 쪽 무지 팔린다.
#.27 씬. 수영의 사무실.(낮)
수영, 일하고 있으면, 진아, 문 열고 들여다보는.
진아 : 나중에 오겠습니다.
수영 : 아니요, 지금 해도 됩니다.
진아 : (들어와 얼른 쓰레기통 비우면서) 이렇게 높으신 분인 줄 몰랐어요.
수영 : .....
진아 : 회장님이 할아버지 시라면서요? 아버님은 사장님이시구?
수영 : 가족 경영의 폐해죠.
진아 : 좋겠다. 할아버지랑 아버지랑 다 부자시니까.
수영 : 난 부자 아닌데.
진아 : 가증스럽거든요. (발밑을 걸레로 닦으면)
수영 : (일어나는) 힘들지 않아요?
진아 : 아니요. 이 정도는 일도 아닌 걸요. 어, 책상에 먼지 있네.
수영 : 아침에 다 닦았을 텐데. (미소 지으며) 내 비서가 눈이 좀 나빠요.
진아 : (얼른 걸레 꺼내서 닦아주는. 호호 입김까지 불어가며 마른 수건으로 바꿔서 정성껏 닦는)
수영 : 일 잘하네요.
진아 : 제가 뭐든 하면 제대로 하는 완벽주의자거든요.
수영 : 밥은? (그러다 본인도 웃고)
진아 : 제 밥 걱정해주시러 태어났다는 운명적인 예감 같은 거 있으신가 봐요?
수영 : 그러게요. 왜 자꾸 오진아씨를 보면 밥 먹었냐는 말부터 묻고 싶은지 모르겠어요.
진아 : 전 아저씨 보면....아니, 하실장님 뵈면, 춥지 않냐고 묻고 싶어져요.
수영 : .....
진아 : 그냥요. 그날 비 맞으면서 처음 만나서 그런가 봐요. 그날 아저, 아니 하실장님 많이 추워보였거든요.
(씩 웃으며) 첫인상이 이래서 중요한 건데. 하지만 제가 괜한 걱정한 거 같아요.
이렇게 부자시니 속옷도 좋은 거 입으실 거구, 그럼 추울 일도 없으실 텐데.
태영, 들어오는.
진아 : (인사하고 얼른 나가는)
태영 : 쟨 왜 근무 시간에 사무실 청소는 하고 그래?
수영 : 쟤라니?
태영 : 청소하는 어린 애를 그럼 뭐라고 불러?
수영 : 이름을 모르면 그냥 저 사람이라고 하든지, 얘, 쟤 하지 마라.
태영 : 또 또 모범생 티낸다.
수영 : 청소하는 사람이라고 함부로 대하지 말구.
태영 : 내가 아줌마들한테까지 그러는 거 봤어?
수영 : 젊은 사람한테도 예의를 갖추란 말이야. 본 데 없이 자란 것처럼 굴지 말고.
태영 : 그래, 난 본 데 없이 자란 거 티내지 못해서 안달 놈이야. 됐어? (나가려고 하면)
수영 : 왜 들어왔던 거냐?
태영 : (아차 싶고) 결재 해줘. (서류 앞에 턱 내려놓으면서)
수영 : 너도 참.
태영 : 형이 딴 말 시키니까 정신없어서 그런 거잖아.
#.28 씬. 석호의 사무실.(낮)
석호, 서류에 사인하고 있는. 옆에 서 있는 영인.
영인 : 오후에 홍보사 사람들하고 회식하기로 했는데, 참석해주시죠.
석호 : 이실장이 홍보실 직원들 데리고 가요. 난 선약이 있어서.
영인 : 무슨 선약이요?
석호 : .....
영인 : 핑계 아니에요?
석호 : 우리.....
영인 : (보면)
석호 : (서류 넘겨주면서 시선 마주치지 않은 채로) 회사에선 사적인 얘기 하지 않도록 하죠.
영인 : 그럼 언제 사적인 얘기 할 건데요?
석호 : 나가보세요.
영인 : 사적인 얘기 할 시간 전혀 안주고 있잖아? 선배?
석호 : 앞으론 그 호칭.
영인 : .....
석호 : 삼가주십쇼. 저도 이름 부르는 일 같은 거 없도록 할 테니까.
영인 : (화가 나서 나가버리는)
석호 : .....
#.29 씬. 회사 복도.(낮)
영인, 걸어오는데, 윽 하면서 비틀하는. 태영 걸어오다가 놀라서 다가오는.
태영 : 이실장님?
영인 : (보고, 바로 서는)
태영 : 많이 안 좋으세요?
영인 : 괜찮아요, 잠깐 어지러웠어요.
태영 : 저기요, 이실장님?
영인 : .....
태영 : 병가를 내고 어디 휴양이라도 가시는 게 어떨까요?
영인 : 병가는 무슨 병가예요. 나 멀쩡해요. (홱 하고 걸어가 버리는)
태영 : 내가 동정심이 생기다가도 저러는 거 보면 성질이 저러니 병에 걸리지 싶어진다니까.
#.30 씬. 강석의 사무실.(낮)
강석, 천갑 앉아있는.
강석 : 네?
천갑 : 역사학 박사, 좀 좋냐?
강석 : .....
천갑 : 한동안은 우리가 돈줄이고 생명의 은인이니 싫다고는 못할 거다.
방심하고 있을 때 우린 우리 실속 좀 챙기자 그거야.
강석 : .....
천갑 : 네 엄마, 그 놈의 역사 공부 모임인가 뭔가에 못 껴서 애가 타 하는데,
이 참에 네 엄마 기분도 풀어줄 겸. 또 독선생 놓고 하는 공부니
다른 여편네들 눈치 보면서 주눅 들 일도 없고, 좀 좋냐구?
강석 : 그렇긴 하지만.
천갑 : 내가 하사장은 구워삶을 테니까 넌 가만 보고만 있어.
강석 : .....
천갑 : 그리고 너, 조심해라.
강석 : 네?
천갑 : 그 여자 애 눈에 뭐 씌지 않게 조심하라구.
강석 : 무슨 말씀이세요?
천갑 : 다른 땐 머리 팍팍 돌아가는 애가 왜 갑자기 둔하게 구냐?
괜히 그 여자애가 너한테 홀려서 죽나 사네 하면 일 복잡해진다 그거야.
아무래도 집에 드나들다 보면 너하고 부딪치는 일도 많을 텐데
그럼 젊은 여자애가 너 같은 애한테 안 홀리겠냐?
강석 : 참 별 걱정을 다 하세요.
천갑 : 야, 야,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 특히 남녀 관계란 건, 아무도 몰라.
네 엄마하고 나만 봐도 그래. 그 동네에 넝마 주우러 다닌 젊은 놈이 나 하나였겠냐?
그 동네에 식모 사는 여자가 네 엄마 하나였겠냐구?
그런데도 로미오랑 줄리엣처럼 만난 거 보면 남녀 관곈 아무도 몰라.
#.31 씬. 강의실.(낮)
단아, 들어오는, 현규, 혜주 등 학생들 앉아있고.
단아 : (탁자 위에 출석부 놓고 학생들 보는) 거기, 학생.
현규 : (손으로 자기 가리키며) 저요?
단아 : 학생, 전자공학과 맞죠?
현규 : 네.
단아 : 오늘부터 학생 청강 안 됩니다.
현규 : .....
학생들 재미난 구경났다는 양 우우 하고.
현규 : 왜요? 공부하고 싶은 열정으로 다른 과에 청강온 갸륵한 학생을 이런 식으로 내치시는 건
선생님다운 처사가 아니신 거 같은데요?
단아 : 우리 과 학생들 수업하는데 방해되니까 학생은 청강 안돼요.
현규 : 다른 이유가 있으신 건 아니구요?
학생들, 우우, 박수 치고. 난리 났다.
단아 : 지금처럼 방해하기 때문에 학생은 안 됩니다. 나가주세요.
현규 : 싫은데요. 전 정말 역사 공부가 꼭 하고 싶거든요.
단아 : 이 시간에 학생 전공 수업 있잖아요?
현규 : .....
단아 : 다른 과 공부하기 전에 전공 공부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전공은 대리 출석 시키면서 다른 과에 청강 와 있는 거 전공 교수님께 알려드릴까요?
현규 : .....(책 들고 나가버리는)
학생들 박수치고, 안됐다, 동정도 하고. 소란스럽다.
단아 : 조용히들 하세요. 강의 시작합니다.
#.32 씬. 운동장.(낮)
현규, 화가 나서 혼자 농구하고 있는. 공이 계속 들어가지 않자 발로 차버리는.
멀리서 보고 있던 혜주의 어깨에 맞고.
친구1,2 걸어오다가 놀라고.
현규 : (달려가는, 미안해하면서) 다쳤어요?
혜주 : (몸 숙인채로) 아니요, 하나도 안 다쳤어요. 하나도 안 아파요. (얼른 뛰어가는)
친구1 : 뭐하냐? 대리 출석 시켜놓고 하교수님 수업도 안 들어가고 여기서?
현규 : (공들고 농구대 앞으로 가서 열심히 친구1,2와 실랑이 하는)
친구2 : 오늘도 한방 맞은 거지?
친구1 : 우리 친구 꿈 하난 제대로 이룰 거 같다. 매 맞고 사는 남편.
친구2 : 저러다 애 버리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친구1 : 청춘이 좋은 게 뭐겠나, 친구. 미친 사랑의 노래 없이, 어찌 청춘이라 할 수 있겠는가 말일세.
친구2 : 미친 사랑의 노래 부르다 애 정말 정신 병원으로 보내야 할 거 같으니 걱정 아닌가 말일세.
#.33 씬. 교정 일각.(낮)
혜주, 아프지만 참고 있는. 공을 맞은 어깨를 만져보는.
혜주 : (어깨를 만지면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멍 좀 들게 해주세요. 아주 오래 오래....
#.34 씬. 마루.(낮)
동동, 또 눈에 멍이 들어있다, 조만, 삼월 난감한 표정으로 보는.
조만 : 진짜 왜 그런다니 현지 걔는? 하루가 성할 날이 없네.
삼월 : 오늘은 왜 또 맞았어?
동동 : (걸어가서 하옹의 방문 벌컥 여는) 고조 할아버지? 정말 부탁인데요. 현지 전학 좀 보내주세요.
#.35 씬. 만기의 방.(낮)
만기, 동동 마주 앉아있는. 동동 자기 손으로 계란 문지르고 있다.
만기 : 할머니나 조만 누나한테 해달라고 하지.
동동 : 이젠 맞아 버릇해서 저도 잘 해요.
만기 : 그런데 오늘은 왜 또 맞았냐?
동동 : 고모 때문이에요.
만기 : 고모가 왜?
동동 : 아침에 현지 가져다주라고 떡하고 과자하고 싸줬거든요.
만기 : 그런 거 가져다 줬는데도 때리더냐?
동동 : 그냥 주기 창피해서 몰래 책상 위에다 놓아주려고 했는데요. 애들이 봤거든요.
만기 : 그래서?
동동 : 애들이 연애 한다고 얼레 꼴레 막 그러니까. 현지가 난 정말 너 싫어 하면서.....
만기 : 참 니들도 어지간히 뭐가 안 맞는구나.
동동 : 할아버지?
만기 : 그래?
동동 : 제가요. 정말 여자를 귀하게 생각하고 싶거든요.
만기 : 그런데?
동동 : 한번만 때려주면 안될까요?
만기 : 걘 태권도 한다면서, 그것도 검은 띠.
동동 : ....
만기 : 달려들었다가도 맞았잖냐?
동동 : (앙 울면서) 저요, 진짜 사는 거 너무 힘들어요.
#.36 씬. 석호의 사무실.(낮)
석호, 천갑 앉아있는.
천갑 : 어려우시겠습니까?
석호 : 그 애가 학교에 근무를 하고 있으니 시간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박사 논문 때문에 공부에 치여 사는 애라.
천갑 : 뭐 많은 시간이야 뺐겠습니까? 아, 그리고 공부라는 게 남을 가르쳐야 진짜 자기게 된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석호 : 우리 애를 어여쁘게 봐주신 건 고맙습니다만, 아직 어른을 가르칠 재량이 되는지도 알 수 없고.
천갑 : 그러신가요? 전, 이제 한 식구가 됐으니 이만 일쯤은 부탁드려도 되겠다 싶어서 말씀드린 건데,
조금 섭섭합니다, 그려.
석호 : .....
천갑 : 제가 뭐 어려울 때 도와드렸다고 생색을 내려는 건 절대 아니구요.
또 거저 시간을 내달라는 것도 아니고, 애들 과외 아르바이트 한다 치고 시간 좀 내달라고 한 건데.
제가 괜한 말을 꺼냈나봅니다. 저 혼자만 친해졌다 생각한거겠죠 뭐.
석호 : (난감하고) 정 그러시다면.....
천갑 : (화들짝 반색하는 분위기로) 그럼?
석호 핸드폰, 울리는.
석호 : 잠깐 실례 좀... (핸드폰 받는) 여보세요?
영인E : 오늘밤에 무조건 내 아파트로 좀 와요. 할 말 있어요.
석호 : 전화 잘못 거셨습니다. (끊는)
천갑 : 요즘은 웬 잘못 걸리는 전화가 그리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37 씬. 영인의 사무실.(낮)
영인 : (기가 막혀서 핸드폰 들고 있는) 이 남자, 왜 이래, 정말.
#.38 씬. 남교수 사무실.(낮)
단아, 책 보고 있는데, 화가 나서 들어오는 현규.
단아 : (눈길 들었다 무시하고 책으로 시선 떨구는)
현규 : (단아의 팔을 나꿔 채는)
단아 : 뭐하는 짓이야?
현규 : (끌고 나가려고 하면) 나가서 얘기해요.
단아 : (현규의 힘에 몸이 끌려 일어나지는) 이 손 못 놔.
현규 : 나가자구요.
단아 : 너 정말 왜 이래?
현규 : (날카롭게 보는) 왜 난 뺨 안 때려요?
단아 : .....
현규 : 그 자식은 자꾸 때리게 된다면서, 난 왜 이런 짓까지 하는데 안 때려요? 왜?
단아 : (팔 빼는) 나가.
현규 : 같이 나가요. 어디 가서 얘기 좀 하자구요.
단아 : 난 너하고 할 말 없어.
현규 : 그럼 들어요. 내가 무슨 말 하는지.
단아 : 들을 말도 없어.
현규 : (단아의 어깨 두 손으로 거칠게 잡는)
단아 : (매섭게 보는) 놔.
현규 : 이래도 안 때려요? 교수실에서 남학생이 여교수 어깨 잡고 이러는데도?
단아 : 놔.
남교수, 들어오다가 놀라는.
남교수 : 피해줄까?
단아 : 놓고, 나가.
현규 : (보다가, 화가 나서 나가는)
남교수 : (휴하고 숨 뱉으면서) 팽팽하다.
단아 : .....
남교수 : 정현규, 많이 발전 했네. 저러니까 남자 같지?
단아 : 저 앤 저한테 그저 학생일 뿐이에요.
남교수 : 문제는 저 애가 그게 아니란 거지.
단아 : (화가 나서 톤 높여) 대체 저한테 뭘 바라세요?
남교수 : (조금 당황하는) 단아야?
단아 : 그 사람이 아니잖아요? 평생 그 사람 이름으로 불러도 상관없다는 앨 제가 이용해야 속이 시원하시겠어요?
제가 그런 죄까지 지으면서 살면 좋으시겠냐구요? (나가버리는)
남교수 : (혼잣말로) 그래, 이용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나는. 지가 그래도 상관 없다잖아.
서로 가여워 하면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39 씬. 교정.(낮)
화가 나서 걸어오는 현규, 걸음을 멈추고 앞에 있는 나무로 주먹을 날리는.
고통스럽게 나무 밑으로 흘러내리듯 주저앉는.
한쪽 다리를 세우고, 그 위에 팔을 걸치고 고개를 숙인 채 앉아있는 현규를 멀리서 숨어 지켜보고 있는 혜주.
#.40 씬. 종가집 마당.(밤)
동동, 조만과 무술 연마에 한창이다. 조만, 만화 삼국지 손에 들고 있다.
조만 : 거기서 팔을 들고 몸을 옆으로 홱 돌리고....
동동 시키는 대로 하고 있는.
조만 : 그리고 옆에 있는 칼을 주워들고...
동동아, 이 만화론 무술 연마 못하겠다. 다 칼 아니면, 창을 들고 싸우잖니?
동동 : 누나, 뭐 무술 아는 거 없어요?
조만 : 내가 그런 걸 어떻게 알겠니?
들어오는 석호, 수영, 태영.
태영 : 왜들 나와 있냐? 어, 어. 너 눈탱이 왜 또 그래?
조만 : 왜는요. 현지한테 또 맞았죠.
태영 : 미치겠네. 걔는 왜 그런다니, 정말. (동동 팔 잡아끌며) 가자, 현지네 집에 가자구.
동동 : 나, 걔네 집 몰라.
태영 : 느네 반 애들 전화 번호 있지? 비상 연락망 있잖아?
동동 : 아빠, 걔네 아빠 못 이겨.
태영 : 네가 봤어? 봤냐구? 아빠도 한가락 하는 사람이야.
동동 : 걔네 아빠 특전사래.
태영 : 뭐?
동동 : 진짜 무서운 군인이래. 훈장도 받았대.
태영 : (약간 기가 죽고) 무슨 훈장?
동동 : 그건 모르는데. 대통령한테 상 받는 사진도 있어, 걔네 아빠는.
태영 : 야, 야, 그런 거 겁낼 거 없어. 군인하고 일반인하고 싸우면 일반인이 이겨.
왜냐? 군인은 배운 대로만 하지만 일반인은 막무가내로 덤벼들거든.
석호 : 넌 지금 애한테 뭘 가르치는 거냐?
태영 : 속이 터져서 그렇잖아요?
석호 : 많이 아프냐?
동동 : 이젠 좀 안 아파요. 자꾸 맞으니까 처음 맞을 때보다 덜 아파요.
태영 : 이 자식이, 맷집 생겼다고 자랑하냐? 지금? 형, 고등학교 때 검도부였지?
수영 : 그래서?
태영 : 그때 쓰던 검도 어딨어?
수영 : 그건 왜?
태영 : 형이 이 자식, 훈련 좀 시켜봐. 계속 얻어터지고 다니는 꼴 볼 순 없잖아? 그것도 여자애한테.
수영 : 검도 친구 때리라고 가르칠 생각 없다.
태영 : 한 치 건너 두 치라고 이럴 거야? 형 자식이면 가만있겠어?
수영 : 내 자식이라도 그런 건 안 가르칠 거다.
석호 : 들어가서 할아버님께 인사나 드리자.
태영 : 기다려. 아빠가 인사드리고 나와서 제대로 가르쳐 줄 테니까.
동동 : 뭘?
태영 : 뭐든.
#.41 씬. 만기의 방.(밤)
만기, 석호 앉아있는.
석호 : 워낙 집요하게 부탁을 해서 거절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만기 : .....
석호 : 단아를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구, 단아 시간 그렇게 뺐기는 것도 달갑지 않구요.
만기 : 단아한테 내가 말을 해보마.
석호 : 허락을 하실 생각이세요?
만기 : 우리 집안에서 단아만큼 제대로 자란 애가 없지 않느냐?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인지 단아만큼 잘 보여줄 수 있는 애가 없지 않느냐 그 말이다.
석호 : 하지만, 전 왠지 그 사람들이 너무 경망스럽고....
만기 : 우리가 그 사람들을 그런 눈으로 보면, 그들도 마찬가지일 게다.
집안이나 내세워 콧대나 높이고 사는 세상 물정 모르는 인간들로 보지 않겠냐?
석호 : 죄송합니다. 제가 말이 과했습니다.
만기 : 그렇게 해서라도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럼 고얀 마음을 먹었다가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구나, 나는.
#.42 씬. 강석의 집 거실. (밤)
강석, 들어오는, 아줌마 서있고.
강석 : 두 분은요?
아줌마 : 방에서 식사하시고 계세요.
강석 : 방에서요?
#.43 씬. 천갑의 방.(밤)
천갑, 영자, 각자 상 놓고 식사하고 있는. 하회장 집보다 상도 크고 음식도 푸짐하게 차려져 있다.
영자 : (몸 비틀면서) 여보, 다리 저려 죽겠어.
천갑 : 그냥 좀 먹어라. 이게 그래도 폼은 나잖아?
영자 : 폼 잡다가 골병 들겠다니까.
천갑 : 아, 거 좀 잠자코 먹어라. 종가는 아무나 하냐?
강석, 문 여는.
강석 : 뭐하세요?
영자 : 왔니?
강석 : (웃으며 들어와 앉는) 베껴 온 거 복습하세요?
천갑 : 아줌마더러 얘 상도 차려오라고 해.
영자 : 얘까지?
천갑 : 그럼 나 종가할 때 얘는 안하나?
강석 : 전, 좀 천천히 할게요. 두 분 방 침대 밑에서 이러고 앉아서 밥 드시는 거
저는 아직 웃겨서 못할 거 같은데요.
천갑 : (손가락에 침 묻혀서 코에 바르는)
영자 : 저 봐, 저 봐, 자기도 다리 저리면서. 여보, 우리 나가자. 나가서 식탁에서 먹자구.
천갑 : (아이고, 하면서 일어나는)
영자 : 아줌마, 상 내가요.
천갑 : 아냐, 아냐. 다리 좀 폈다가 다시 먹을 거야.
영자 : 그럼 계속 밥을 앉았다 섰다 하면서 먹을 거야?
천갑 : 연습 하다보면 나아지겠지.
강석 : (웃으며) 근데, 그대로 베끼진 않으셨네요? 하회장 집보단 상도 크고 반찬도 많은데요.
천갑 : 야, 반찬 세 가지 놓고 먹는 밥상, 내가 그것까진 못 하겠드라.
다 잘 먹고 잘 살자고 버는 돈인데, 왜 없이 사는 것도 아니면서 궁상을 떠냐 떨길.
#.44 씬. 말순의 집,(밤)
말순, 진아, 두유 먹고 있는.
말순 : 이건 궁상이야, 궁상.
진아 : 그래도 든든하잖아요? 저도 이게 밥이 될까 싶었는데, 진짜 신기하게 든든해요.
말순 : 니 덕분에 팔자에 없는 다이어트를 다 해본다 내가.
진아 : 이게 피부에도 좋대요. 여기, 여기 써있어요.
말순 : 나더러 피부 관리해서 뭐하라구?
진아 : 요리사 애인 하나 만들자면서요?
말순 : 만들면? 무슨 돈으로 시집을 갈 건데?
진아 : 해주기로 작정 하셨구나?
말순 : 아냐, 야. 나 안 해줘. 절대 안 해줄 거야.
진아 : (미소 짓고) 있죠, 언니?
말순 : 안 해준다니까.
진아 : 그게 아니구요.
말순 : 그럼 뭐?
진아 : 어떤 사람이 밥 먹었냐고 자꾸 물어보는데요.
말순 : 누가, 음식점 주인이?
진아 : 그 말이 참 따뜻하다 그렇게 느껴지면요.
말순 : 너 혹시 음식점 하는 사람하고 연애 하니?
진아 : 언니는. 그건 그냥 고마워서 그런 거겠죠?
말순 : (가만히 보다가) 누군데?
진아 : .....
말순 : 여자 아니지?
진아 : .....
말순 : 우리 밥 해먹자.
진아 : 네.
말순 : 네가 너무 오래 밥을 안 먹어서 그런 말에도 울컥 울컥 하는 모양인데
밥 먹고 다니면 그런 말이 별 거 아니라고 느껴질 거야.
진아 : 예전에 고아원에서요. 진짜 푸근하고 좋으신 보모 선생님이 한분 계셨거든요.
저 홍역 10살 넘어서 앓았었어요. 진짜 죽으라고 아프고 나았는데,
그 보모 선생님이 저한테 그러시는 거예요. 우리 진아, 이젠 밥 먹어야지.
그런데 그 말이 너무.....따뜻하고 좋아서.....울었어요. 아, 진짜 우리 엄마였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나서...
말순 : 너한테 밥 먹었냐고 자꾸 묻는 사람 여자니?
진아 : (미소 짓는)
#.45 씬. 마당.(밤)
동동, 태영, 무술 연마중이다. 조만, 랜턴 들고 종이 몇 장 들고 서서 들여다보는.
태영 : (조만이 들고 있는 종이 들여다보면서) 이렇게 팔꿈치로 막으면서 뒤로 돌아서면서 확 목을 비틀면서....
뭐가 이렇게 복잡하냐?
조만 : 치한 퇴치, 사이트에서 뽑은 거예요. 치한 상대하려면 좀 복잡하겠죠.
동동 : 치한이 뭐야?
조만 : 응. 그거. 여자들 괴롭히는 나쁜 놈들 있어.
동동 : 현지는 여잔데. 현지가 치한이야?
태영 : 치한이라고 생각하고 배워둬.
동동 : 누나, 남자 애 때리는 여자애 때려주는 법 가르쳐주는 사이트는 없어요?
조만 : 그런 건 없는 거 같든데.
태영 : 그냥 이거 배워둬. 봐, 이렇게 팔을 꺾으면서 뒤로 돌아서가지고 목을 확 비트는 거야.
동동 : 아빠. 현지 죽일 일 있어?
#.46 씬. 만기의 방.(밤)
만기, 단아 앉아있는.
만기 : 시간을 낼 수 있겠냐?
단아 : .....
만기 : 왜 내키지 않는 게냐?
단아 : .....죄송합니다, 할아버지.
만기 : 네가 싫다면 할 수 없는 거구. 난 네가 그 사람들한테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인지
보여줬으면 하는 게 있다. 어쩌면, 네 에비나 네 오래비들 생각대로 모진 맘을 먹고
우리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아닐까 걱정스러운 마음도 있고.
네가 그 집 여인네와 인연을 맺어두는 것이 어쩌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싶구나.
그 여인이 이천갑 회장 부인이고, 그 젊은 친구의 어머니 아니냐?
안에 있는 여인이 마음을 너그럽게 가지면 남자들도 그 영향을 받을 게 아닌가 싶어서.
단아 : .....
만기 : 그래. 네가 영 마음이 내키지 않는 모양이니, 없었던 일로 하자꾸나.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과 인연을 맺는다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겠지.
단아 : 할아버지?
만기 : 그래.
단아 : 해보겠습니다.
만기 : 내키지 않는데, 할애비의 기대 때문이라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
단아 : 제가 영향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해보겠습니다.
만기 : 그러겠느냐?
#.47 씬. 마루.(밤)
동동, 앞서 들어오고, 태영, 조만 따라 들어오는.
태영 : 연습 좀 해보자니까.
동동 : 됐어. 그냥 맞고 말래.
태영 : 이 자식은 남자 놈이 이렇게 오기가 없어서. 그러니까 네가 자꾸 맞는 거야.
단아, 만기의 방에서 나오는.
동동 : 그렇다고 목 비트는 걸 배워?
태영 : 맞는 것보단 났지.
동동 : 여잔 귀하단 말이야.
태영 : 그 말 했다가 맞았다면서? 이건 한마디로 말이 안 통한다고 봐야 하는 거다, 너.
너의 진심을 몰라주면, 힘으로 맞상대를 해서 제압을 하는 거라구.
동동 : 됐다니까.
태영 : 너, 또 덤벼들었다가 맞을까봐 겁나서 그러지?
동동 : (노려보고) 여자는 귀하다니까. 귀한 여자 목까지 비트는 거 난 안해.
단아 : 우리 동동이 진짜 훌륭하다. (태영 노려보면서) 어떻게 아빠가 되가지고 아들만도 못해.
동동 : 진짜 우리 아빤 전혀 반성 안하고 산다니까요. (만기의 방으로 들어가는)
태영 : 야, 야, 내가 무슨 반성을 안 한다는 거야?
#.48 씬. 만기의 방.(밤)
동동, 들어와서 이불 내리는.
만기 : (물끄러미 보고 있는) 동동아?
동동 : (이불 깔면서) 네?
만기 : 난 네가 근사한 놈이라고 생각한다.
동동 : (보고)
만기 : 에비랑 하는 말 들었다. 할애비는 네가 겁이 나서 현지한테 덤벼들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랬으면 애비한테 싸우는 걸 배웠겠지.
동동 : 제 마음 아시죠? 할아버지는?
만기 : 안다. 네가 진짜 사내놈이라고 생각한다.
동동 : 알아주시면 고맙구요. 아니, 고마우시구요.
만기 : 근데 어쩔 셈이냐? 또 맞을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동동 : 저도 작전이 있어요.
만기 : 작전? 뭐냐?
동동 : 안경 하나 맞춰주세요, 할아버지.
만기 : 뭐?
동동 : 그럼 눈에 멍은 안들 거 아니에요.
만기 : 참, 어려운 작전 짜느라 머리 많이 아팠겠다.
#.49 씬. 마당 정자.(밤)
깊은 생각에 잠겨 앉아있는 단아. 그 위로 떠오르는 강석.
강석 : 아직까지 그런 눈빛으로 날 본 인간은 없었거든. 그래서 게임을 걸어보고 싶어진단 말이야.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정 할 땐 어떤 눈빛일까 궁금해서 말이지.
단아 :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암담한 느낌이다)
#.50 씬. 교정.(낮)
걸어오는 단아, 차 옆에 서있는 강석.
강석 : 어렵게 초빙한 교수님이신데 차편은 제공해 드려야죠.
단아 : 주소 알아뒀으니 혼자 찾아갈 수 있어요.
강석 : (운전석 옆 차문 열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헛걸음 시키시겠습니까?
단아 : .....
강석 : 성의는 성의로 해석해주시면 어떻겠습니까? 그게 예의라는 거 아닌가요? 저보다 더 잘 아실 텐데요.
단아 : .....(하는 수 없이, 차에 오르는)
멀리서 걸어오다가 그 모습을 보는 현규.
강석 : (운전석에 앉고)
단아 : (안전벨트 매고)
강석 : (시동 걸고 차 출발 시키는)
현규, 달려오지만, 이미 차와는 거리가 있다.
현규 : (불안하고 화가 나서 입술을 깨무는)
#.51 씬. 차 안.(낮)
운전하는 강석, 그 옆에 앉은 단아. 울리는 단아의 핸드폰.
단아 : 여보세요?
현규E : 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 그 인간하고 어디 가는 거냐구요?
단아 : (핸드폰을 끄는)
강석 : (룸미러를 통해 멀리서 핸드폰 들고 서있는 현규를 본다)
핸드폰 땅에 던져버리는 현규.
강석, 차가운 미소를 짓는.
강석 : 싫다는 생각 안했어요?
단아 : ....(앞만 보고 있는)
강석 : 이런 인간하고 또 엮이는 거 정말 싫다.
단아 : 했어요.
강석 : 그런데도 링에 올라오신 이유는? 지기 싫다, 뭐 그런 투쟁본능인가요?
단아 : 왜 모든 게 게임이죠?
강석 : .....
단아 : 그런 자신이 좋은가요?
강석 : .....
단아 : 난 링에 올라온 게 아니라,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기 위해 이 차에 올라탄 거예요, 그 뿐이예요.
강석 : (잠시 고개 돌려 단아를 봤다가 앞으로 시선 돌리며 운전하는)
앞만 보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