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https://youtu.be/Hz3wFhDvL6w?si=uNxBx7zAbfA_M6XW
(2024.06.16. 주일 낮 예배)
본문 말씀 : 누가복음 5:12-26
주 제 : 나의 목표를 이루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목표를 이루려고 하자.
1. 나병을 고치심
누가복음을 강해 하는 중에 사순절, 부활절, 성령강림절이 와서 누가복음을 떠나 주로 사도행전을 강해하다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앞으로 대림절이 올 때까지는 계속해서 누가복음 위주로 말씀드리려 합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나병 걸린 사람의 병을 고쳐주신 것과 이어서 중풍병자를 고쳐주신 일을 전하고 있습니다. 두 사건 모두 특별한 일을 전하고 있습니다.
먼저 나병 걸린 사람을 고쳐주셨을 때는 예수님께서 그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조용히 제사장에게 가서 예물을 드려서 병이 나았다는 것을 증명받기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나병 즉 문둥병이라고 하기도 하고, 한센씨 병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옛날에는 도저히 고칠 수 없는 병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이 병에 걸리는 것을 굉장히 무서워 했기 때문에 그 병에 걸린 사람은 무조건 동네 가운데 살지 못하게 하고 동네에서 멀리 떨어져서 외곽에 그런 병이 걸린 사람들 끼리만 따로 떨어져 살아야 했습니다. 만약에 나병 걸린 사람이 동네 안으로 들어 오면 사람들이 돌을 던져서 동네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예수님께서 혼자 계셨을 때, 조용히 혼자서 찾아왔을 겁니다. 따라서 만약 이 사람만 잠잠히 있었으면 예수님께서 나병을 고쳐주셨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자기가 고침을 받았다는 사실이 너무 기뻐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 사실을 온 동네에 떠들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온 동네가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로 모여들었어요. 그래서 예수님은 한적한 곳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2. 중풍병자를 고치심
이어서 중풍병자를 고치신 일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신 일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찾아왔습니다. 특히 이 일이 예루살렘까지 알려져서 예루살렘으로부터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도 찾아왔습니다. 갈릴리는 시골인데 예루살렘으로부터 높은 사람 바리새인과 율법교사까지 찾아왔다는 것은 이제 예수님이 대단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사람들이 중풍병자 한 명을 데려왔습니다. 중풍병자는 혼자서 움직일 수 없었으니까 사람들이 그를 침상째 데리고 왔어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 있으니까 예수님 근처로 갈 수가 없어서 그를 침상째 메고 지붕으로 올라가서 지붕에서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째 예수님 앞으로 내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곳에 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이 사람이 신성모독하는 사람이구나. 하나님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겠느냐?’ 생각했어요.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말이 쉽겠느냐? 하시면서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가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셨고 그 사람이 곧 일어나서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는 일입니다.
3. 차이점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큰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선 나병 환자를 고친 사건은 마태복음과 마가 복음에도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어요. 마가복음 1:42-44에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곧 보내시며 엄히 경고하사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라.‘ 이렇게 합니다. 즉 다른 사람에게 퍼뜨리지 말고 조용하라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이 사람이 참지 못하여 이 사건을 동네방네 퍼뜨립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한적한 곳으로 피해 가셔야 했습니다.
이것을 보시면 분명히 예수님은 소문이 나는 것을 싫어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을 꺼려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사건을 보시면 사람들이 많이 모였을 때 중풍병자를 고쳤어요. 얼마나 사람들이 많이 모였느냐? 중풍병자를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갈 수 조차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모였어요. 이 정도라면 예수님은 분명히 그들을 피하여 다시 한적한 곳으로 피해서 도망을 갔어야 하는데 이번에는 예수님은 피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 사람을 고쳤습니다.
심지어 바로 고치지 않고 사람들에게 수수께끼 같은 질문까지 던지십니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말이 더 쉽겠느냐? 우리도 한 번 대답해봅시다. 어느 말이 쉽겠습니까?
저는 한 때 잘 모르겠더라고요. 둘 다 쉬울 것 같았어요. 이럴 때는 깊이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일어나 걸어가라고 하는 말이 쉽습니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면 바리새인들이 들고 일어납니다. 하나님 외에 누가 죄를 사해줄 수 있느냐? 하는 골치 아픈 문제가 생겨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몰라도 예수님으로서는 ’일어나 걸어가라‘는 말이 휠씬 쉽습니다.
그렇지만 왜 나병환자가 나았을 때는 소문내지 말고 조용히 가라고 하셨는데 중풍병자를 고치실 때는 많은 사람이 있어도 그를 고쳤을까? 하는 문제는 남아 있습니다.
4. 근본적인 목표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든지 근본적인 목표가 있습니다. 자기가 왜 이 일을 하는지 목표하는 바가 있다는 말입니다. 붕어빵을 구울 때도 목표가 있습니다. 붕어빵 장수가 붕어빵을 굽는 이유와 교회에서 붕어빵을 굽는 이유는 서로 달라요.
붕어빵 장수는 돈을 벌기 위해서 붕어빵을 굽지요. 아무리 빵을 잘 구워도 사람들이 사가지 않으면 그 사람은 장사를 잘 못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붕어빵을 굽습니다. 아무리 잘 굽고 많은 사람에게 인기를 얻어도 복음은 전하지 못하고 돈만 벌었다면 그것은 잘 못하는 것입니다.
집사람과 제가 베드민턴을 칩니다. 낮에는 해가 쬐고 더우니까 주로 밤에 칩니다. 그냥 치면 재미가 없으니까 경기를 합니다. 그런데 경기를 하면 그냥 슬슬 하지 않습니다. 세게 치지요. 세게 치면 상대방이 잘 받지를 못하니까 좋아요. 그런데 또 세게 치면 실수도 많이 나와요. 특히 넷트를 치고 있으면 실수가 명확하게 구분이 됩니다. 그러므로 넷트는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베드민턴을 치다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어요. 우리가 베드민턴을 치는 이유는 건강하기 위해서입니다. 일주일에 한 두번은 한 삼심분 정도라도 땀을 흘리는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그래서 베드민턴을 칩니다. 그런데 우리는 밤늦게 쳐요. 적어도 밤 9시는 지나야 운동을 할 수 있습니다. 그전에는 이런 저런 사정이 있어요. 그런데 너무 늦게 운동을 하니까 그 다음 날 혈당치가 오히려 올라가는 것 같아요. 땀을 흘리면서 운동을 하면 좋을 줄 알았는데 밤늦게 하니까 오히려 건강에 해로운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요즈음은 베드민턴을 하지 않습니다. 저녁 식사를 하고 슬슬 나가서 걷기를 하는 것으로 바꾸었어요. 베드민턴 건강을 위해서 하는 것인데 오히려 건강에 해롭다면 하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 무엇을 하든 목표에 맞추어서 해야 합니다.
5. 병을 고쳐주시려고 오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우리들의 병을 고쳐주시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해주시려고 오신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들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우리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시니까 사람들은 예수님을 병을 고쳐주시는 분으로 착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모여들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을 피해서 한적한 곳으로 가셔야 했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셨어요. 그러자 사람들이 당장 예수님 주위로 구름처럼 모여들어요. 요한복음 6:15 보세요.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이 때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붙들어 자기들의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피해서 산으로 떠나가버렸습니다.’ 그리고 26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1)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우리들도 이런 일을 많이 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올 때 여러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주로 병을 고치기 위해서 아니면 자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예수님도 그들을 받아주셔서 병도 고쳐주시고 문제도 해결해 주시지만 계속 그렇게 해주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믿음이 커 나가기를 원하십니다.
6. 영생으로 이끌기 원하십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자 예수님은 그들의 문제를 바로 해결해주지 않습니다. 중풍병자를 바로 고쳐주지 않습니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하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할 시간까지 주시면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것과 그것을 위해서 내가 이 세상에 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병을 고쳐주셨어요.
우리도 예수님을 내 병을 고쳐주시는 분으로 대접하시면 곤란합니다. 내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정도로 이해하면 곤란해요. 예수님은 나를 영생으로 인도해주시려고 이 세상에 오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 정도로 그쳐서도 곤란해요.
예수님을 믿고 내가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만 목표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나 혼자 천국에 들어가서는 안되지요. 예수님은 온 세상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오셨어요.
그것으로도 끝나지 않습니다. 온 인류가 복음을 받아드리면 그때서야 온 세상 천지 만물이 전부 제자리를 찾아갑니다. 그때까지 이 세상 모든 천지 만물이 저주를 받아서 신음하고 있었는데 온 인류가 복음을 받아드리니까 그때서야 온 세상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만드셨던 그 에덴 동산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완성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그로 인해서 온 세상이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시키려고 오셨어요.
그런데 내 병이나 고쳐주시는 것을 만족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런 분으로 알아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위치를 알아야 하고 우리의 일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개인의 구원을 넘어서 온 세상에 평화를 기쁨을 주는 사람임을 그런 사명이 있음을 알아야 하고 그것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그런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시는 채움교회 교인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