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땅
(마 13:18-23)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께서 왜 세상에 오셨을까요? 그리고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요? 너무 쉬운 질문입니까? 그러나 막상 대답을 하려면 막연하게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을 통해서 단순하게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처음 말씀하신 내용이 무엇입니까? 마가복음 1:15절입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복음을 믿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 먼저 할 일이 있는데, 회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죄인이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 죄를 용서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십니다.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 삶은 이 땅에서 ‘공동선’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친절을 베풀고, 더불어 함께 사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예수님은 나사렛 회당에서 첫 번째 설교를 하실 때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4:18-19절 말씀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여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은 이사야 예언서에 있는 말씀을 읽은 것입니다. 모든 억눌린 것으로부터 자유와 해방을 선포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자유와 해방의 복음을 전파하시고, 또 제자들을 부르셔서 이 일을 맡기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모든 억눌린 것에서 해방된 사람이며, 또한 주님의 명령을 따라 자유와 해방의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마태복음 25장에서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마 25:40)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 공동선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이 성취되는 나라입니다. 우리가 주기도문을 기도하면서 ‘아버지의 나라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는데, 그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곳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내가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입니다.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백성에게 하나님은 자유와 기쁨을 선사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자주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이해하기도 어렵습니다. 언제, 어디에 이루어지는 나라인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비유로 설명합니다. 비유는 경험하는 일에 빗대어 설명하는 것입니다. 13장에는 여러 가지로 하나님 나라의 비유를 들려주시는데 오늘은 첫 번째 비유인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1절부터 9절까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가 있고, 18절부터 23절까지는 그 비유의 해석입니다. 그런데 비유와 해석은 강조하는 것이 조금 다릅니다. 비유는 씨 뿌리는 사람을 강조하고, 해석은 씨가 떨어진 밭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비유는 예수님의 말씀이고, 해석은 마태 공동체가 예수님 말씀을 해석한 것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팔레스타인 지역의 농사법이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은 잘 이해하였을 것입니다. 농부는 봄에 씨를 뿌리고 그다음에 밭을 갈아 씨를 덮습니다. 그래서 씨가 여기저기 떨어지기도 하는데, 그래도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에서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기 때문에 쉬지 말고 씨를 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일꾼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어디에서나 전파하라는 말씀입니다.
반면에 해석은 씨가 떨어진 밭의 상태를 강조합니다. 씨앗은 복음입니다. 그리고 밭은 우리의 마음이겠지요. 농부는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명령을 따라 복음을 전하는 주님의 일꾼이기도 합니다. 씨앗이 떨어진 밭은 네 종류입니다. 길가에 떨어진 씨앗, 돌밭에 떨어진 씨앗,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앗, 그리고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입니다. 이 중에서 열매를 맺는 땅은 좋은 땅 뿐입니다. 나머지는 열매를 맺을 수 없는 땅입니다.
멀리 길가에 떨어진 씨앗은 땅이 굳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새들이 먹어버립니다. 이런 마음 밭은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아 사탄이 그 마음을 빼앗아가 버린다고 합니다. 자기 생각이 굳어 있으면 복음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혹은 좋은 대로 믿으려고 하기 때문에 유혹에 잘 넘어갑니다. 뱀이 아담과 하와를 유혹할 때, 하와의 생각은 ‘그 과일이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였다’(창 3:6)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에 옳게 여긴다고 옳은 것은 아닙니다. 자기 생각이 굳어 있으면 이렇게 유혹을 이기기 어렵습니다.
두 번째 밭은 돌밭입니다. 돌 틈새가 있어 씨가 흙에 떨어져 뿌리를 내리지만 깊게 내리지 못하고 뜨거운 햇볕에 타 죽고 맙니다. 싹이 나와도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말씀을 받되 깊이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믿기는 믿는데 온전히 말씀을 신뢰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이 닥치면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자기 생각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래서는 믿음의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세 번째 밭은 가시덤불입니다. 가시덤불이 자란다면 흙이 깊을 것입니다. 그래서 씨앗은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자라지만, 가시의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합니다. 헌신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박해 앞에서 돌아섭니다. 우리는 제자들에게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의 박해를 견디기는 쉽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의 이유가 축복 받아 편하게 잘 사는 것이라면 박해는 견딜 수 없습니다. 제자들이 박해 앞에서 돌아선 것은, 주님의 나라에서 한자리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제자라는 권위를 자랑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십자가를 마주할 때 그들의 믿음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열매 맺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합니다.
네 번째 밭은 좋은 땅입니다. 말 그대로 좋은 땅이기 때문에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맺습니다. 좋은 땅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믿음의 풍성한 열매를 맺어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사람들이 1/4씩 나누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전부 좋은 땅일 수도 있고, 전부 길가와 같은 굳은 땅일 수도 있습니다.
씨 뿌리는 사람은 땅을 가리지 않고, 쉬지 않고 씨를 뿌려야 합니다.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 농사법이 씨를 뿌리고 난 뒤 밭을 간다고 하였습니다. 비록 길가에 떨어졌을지라도 갈아엎으면 좋은 땅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은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 비유를 말씀하시며 주인에게 청하여 말합니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열매를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눅 13:8-9) 다시 말해 우리 마음밭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땅이라면 주님께서 우리 마음 밭을 갈아엎어 열매 맺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복음의 씨앗이 처음부터 좋은 땅에 떨어진 것은 없습니다. 아마 전부 열매 맺지 못하는 땅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굳은 우리의 마음밭을 갈아엎으시고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우리가 열매 맺을 수 있도록 때를 따라 은혜를 베푸셔서 축복하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좋지 않은 땅’이라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또 한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땅이었다고 해도 열심히 가꾸지 않으면 못 쓰는 땅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다짐했다면 믿음의 훈련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 밭을 가꾸시지만, 우리도 함께 일해야 합니다. 열매 맺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들, 굳은 마음, 마귀의 유혹, 근심, 걱정, 두려움을 주님께 맡기고, 오직 주님이 주시는 평화와 기쁨을 누리며 믿음 안에서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고 하지만, 이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걱정, 근심, 두려움, 시기, 질투, 욕심, 교만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때마다 우리 마음 밭이 황폐하게 되어가고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주님의 도움을 청해야 하겠습니다. 내가 혼자서 마음 밭을 갈아엎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열매가 없다고 낙심하지 말고, 주님께서 우리를 도우셔서 열매 맺게 하신다는 것을 믿고 열매 맺는 신앙이 되시기를 간절히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