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들이 유튜브를 보더니 11월 11일이 무슨 날인지 아냐고 묻는다. 그래서 빼빼로 데이? 했더니 도리질하며 지구 멸망의 날이란다. 유튜브에서 천리안을 가졌다는 사람이 올해 빼빼로데이에 소행성 충돌로 지구가 사라질 거라고 했단다.
세기말 종말론과 휴거 등을 겪으며 살아온 남편과 나는 심드렁했다. 그렇구나 그럼 마지막날인데 우리 뭐할까? 남편은 사과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나는 내일 일정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아들이 지구가 멸망한다니까! 라고 성질을 내어 나는 그래도 다행이지 않니 우리 가족이 함께 있으니 손 꼭 붙잡고 있자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우리가 소행성 궤도를 바꿀 수는 없으니. 그래도 감사하다. 함께 손잡고 있을 수는 있구나. 그러고 보니 여러 영화에서도 마지막날에 할 수 있는 건 서로 껴안고 있거나 손잡아주거나 사랑한다 말하며 함께 있어주는 것 외엔 없었던 것 같다.
2. 버거킹에서 아저씨가 남편 말을 잘못 알아들어서 마이너스를 마요네즈로 잘못 인식했다. 그래서 내가 그들이 알아듣는 용어로 리무브 피클 하니 알아들었다. 근데 다른 사람들하고 이야기하는 걸 듣자하니 우리 버거에 마요네즈를 넣지 말란다. 아, 어떡해. 아저씨 저러는데 우리 햄버거에 마요네즈 안 넣겠는데. 하니 남편이 말하란다. 나는 우리 원래 주문이 뭐였는데 당신이 잘못 알아들었고 어쩌고 말하려니 몸이 굳어져서 말 못하겠다 하니 남편이 당장 나간다.
아이 원트 마요네즈.
아저씨는 우리 버거에 마요네즈를 뿌려서 주었다. 남편은 뭐가 어렵냐고 마요네즈 뿌리기만 하면 되는데 왜 말하지 않냐고 다 알아들으면서 하고 나에게 뭐라 했다.
그러게 말이야...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나에게 깊은 깨달음을 준 남편에게 감사. 서로 이해못할 언어로 설명하는 건 소용이 없다. 그냥원하는 것만 이야기하고 안 되면 마는 거고. 설명하려니까 힘든 거다.
3. 어쨌든 남편 덕에 스트레스 없이 잘 다녔다. 영국에서 혼자 있을 때는 말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는데 남편은 어찌나 쉬운지...
알 수 있는 언어로 떠들 수 있는 상대가 있는 것도 마음 편한 일이었다. 언어로 인한 자괴감을 느끼지 않고도...
남편은 내가 이제 영미쪽 여행은 그만 둘까 한다고 하니 고개를 저었다. 아들이 나중에 하고 싶은 게 있어 영어를 배우려면 너무 어렵다는 거였다.
그런가... 하지만 아빠처럼 영어를 쉽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캠프도 무사히 끝났고 여행도 마무리가 되어간다. 지구멸망이 언제 올 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한숨돌리고 한 가지 일이 무사히 끝났음에 감사드리고 싶다.
첫댓글 님의 글을 읽으면서, 많이 배웁니다.
그리고 알콩달콩 재밌게 살아가시는 모습에 감사하고 기쁩니다.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늘 충만하기를 기도드립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토니님께서도 행복한 하루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