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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생기(終生記)
이 상
극유산호(郤遺珊瑚)*―요 다섯 자 동안에 나는 두 자 이상의 오자(誤字)를 범했는가 싶다. 이것은 나 스스로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워할 일이겠으나 인지(人智)가 발달해가는 면목이 실로 약여(躍如)하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산호 채찍을랑 꽉 쥐고 죽으리라. 네 폐포파립(廢袍破笠)* 위에 퇴색(褪色)한* 망해(亡骸)* 위에 봉황이 와 앉으리라.
나는 내 「종생기(終生記)」가 천하 눈 있는 선비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해놓기를 애틋이 바라는 일념 아래 이만큼 인색한 내 맵시의 절약법을 피력하여 보인다.
일발(一發) 포성(砲聲)에 부득이 영웅이 되고 만 희대의 군인 모(某)는 아흔에 귀를 단 황송한 일생을 끝막던 날 이렇다는 유언 한마디를 지껄이지 않고 그 임종의 장면을 곧잘(무사히 후― 한숨이 나올 만큼) 넘겼다.
그런데 우리들의 레우오치카― 애칭 톨스토이一는 괴나리봇짐을 짊어지고 나선 데까지는 기껏 그럴성싶게 꾸며가지고 마지막 5분에 가서 그만 잡았다.* 자지레한 유언 나부랭이로 말미암아 70년 공든 탑을 무너뜨렸고 허울 좋은 일생에 가실 수 없는 흠집을 하나 내어 놓고 말았다.
나는 일개 교활한 옵써버*의 자격으로 그런 우매한 성인(聖人)들의 생애를 방청하여 있으니 내가 그런 따위 실수를 알고도 재범(再犯)할 리가 없는 것이다.
거울을 향하여 면도질을 한다. 잘못해서 나는 생채기를 내인다. 나는 골을 벌컥 내인다.
그러나 와글와글 들끓는 여러 ‘나’와 나는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에 그들은 제각기 베스트를 다하여 제 자신만을 변호하는 때문에 나는 좀처럼 범인을 찾아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대저 어리석은 민중들은 ‘원숭이가 사람 흉내를 내네’ 하고 마음을 놓고 지내는 모양이지만 사실 사람이 원숭이 흉내를 내고 지내는 바 짜장* 지당한 전고(典故)*를 이해하지 못하는 탓이리라.
오호라 일거수일투족이 이미 아담 이브의 그런 충동적 습관에서는 탈각한 지 오래다. 반사운동과 반사운동 틈사구니*에 끼어서 잠시 실로 전광석화(電光石火)만큼 손가락이 자의식의 포로가 되었을 때 나는 모처럼 내 허무한 세월 가운데 한각(閑却)되어* 있는 기암(奇巖) 내 콧잔등이를 좀 만지작만지작했다거나, 고귀한 대화와 대화 늘어선 쇠사슬 사이에도 정히 간발(間髮)을 허용하는 들창이 있나니 그 서슬 퍼런 날〔刃〕이 자의식을 걷잡을 사이도 없이 양단하는 순간 나는 내 명경같이 맑아야 할 지보(至寶) 두 눈에 혹시 눈곱이 끼지나 않았나 하는 듯이 적절하게 주름살 잡힌 손수건을 꺼내어서는 그 두 눈을 만지작만지작했다거나 ㅡ
내 혼백과 사대(四大)*의 점잖은 태만성이 그런 사소한 연화(煙火)들을 일일이 따라다니면서 (보고 와서) 내 통괄되는 처소에다 일러바쳐야만 하는 그런 압도적 망쇄(忙殺)*를 나는 이루 감당해내는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내 지중한 산호편(珊瑚鞭)*을 자랑하고 싶다.
‘쓰레기.’ ‘우거지.’
이 구지레한* 단자(單子)의 분위기를 족하(足下)*는 족히 이해하십니까.
족하는 족하가 기독교식으로 결혼하던 날, 네이브 앤드 아일*에서 이 ‘쓰레기’ ‘우거지’에 근이(近邇)한* 감흥을 맛보았으리라고 생각이 되는데 과연 그렇지는 않으십니까.
나는 그런 ‘쓰레기’ 나 ‘우거지’ 같은 테이프를ㅡ내 종생기 처처에다 가련히 심어놓은 자지레한 치레를 위하여 ㅡ 뿌려보려는 것 인 데 ㅡ
다행히 박수하다. 이상(以上).
⁎
‘치사(侈奢)한* 소녀는’ ‘해동기의 시냇가에 서서’ ‘입술이 낙화지듯 좀 파래지면서’ ‘박빙 (薄水) 밑으로는 무엇이 저리도 움직이는 가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듯이 숙이고 있는데’ ‘봄 운기를 품은 훈풍이 불어와서’ ‘스커트’ 아니 아니, ‘너무나’ 아니 아니, ‘좀’ ‘슬퍼 보이는 홍발(紅髮)을 건드리면’ 그만. 더 아니다. 나는 한마디 가련한 어휘를 첨가할 성의를 보이자.
‘나붓나봇.’
이만하면 완비된 장치에 틀림없으리라. 나는 내 종생기의 서장을 꾸밀 그 소문 높은 산호편을 더 여실히* 하기 위하여 위와 같은 실로 나로서는 너무나 과람(過'監)히 치사스럽고 어마어마한 세간을 장만한 것 이다.
그런 데 ―
혹 지나치지나 않았나. 천하에 형안이 없지 않으니까 너무 금칠을 아니했다가는 서툴리* 들킬 염려가 있다. 허나―
그냥 어디 이 대로 써〔用 〕보기로 하자.
나는 지금 가을바람이 자못 소슬한 내 구중중한 방에 홀로 누워 종생하고 있다.
어머니 아버지의 충고에 의하면 나는 추호의 틀림도 없는 만 25세와 11개월의 ‘홍안(紅顔) * 미소년’ 이라는 것이다. 그렇건만 나는 확실히 노옹(老翁)이다. 그날 하루하루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랗다’ 하는 엄청난 평생이다.
나는 날마다 운명하였다. 나는 자던 잠―이 잠이야말로 언제 시작한 잠이더냐―을 깨이면 내 통절한 생애가 개시되는데 청춘이 여지없이 탕진되는 것은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누웠지만 역력히 목도한다.
나는 노래(老來)*에 빈한한 식사를 한다. 12시간 이내에 종생을 맞이하고 그리고 할 수 없이 이리 궁리 저리 궁리 유언다운 게* 어디 유실되어 있지 않나 하고 찾고, 찾아서는 그중 의젓스러운 놈으로 몇 추린다.
그러나 고독한 만년 가운데 한 구(句)의 ‘에피그램’ 을 얻지 못하고 그대로 처참히 나는 물고(物故)하고* 만다.
일생의 하루——
하루의 일생은 대체(위선) 이렇게 해서 끝나고 끝나고 하는 것이었다.
자 一 보아라.
이런 내 분장은 좀 과하게 치사스럽다는 느낌은 없을까. 없지 않다. 그러나 위풍당당 일세를 풍미할 만한 참신무비(朝新無比)한* 햄릿(망언다사(妄言多謝))*을 하나 출세시키기 위하여는 이만한 출자는 아끼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도 없지 않다.
나는 가을. 소녀는 해동기.
어느 제나 이 두 사람이 만나서 즐거운 소꿈장난을 한번 해보리까. 나는 그해 봄에도―
부질없는 세상이 스스러워서* 상설(霜雪)* 같은 위엄을 갖춘 몸으로 한심한 불우의 일월(日月)*을 맞고 보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미문(美文), 미문, 애아(曖矛)!* 미문.
미문이라는 것은 적이 조처하기 위험한 수작이니라.
나는 내 감상(感傷)의 꿀방구리* 속에 청산 가던 나비처럼 마취혼사(痲醉昏死)하기* 자칫 쉬운 것이다. 조심조심 나는 내 맵시를 고쳐야 할 것을 안다.
나는 그날 아침에 무슨 생각에서 그랬던지 이를 닦으면서 내 작성 중에 있는 유서 때문에 끙끙 앓았다.
열세 벌의 유서가 거의 완성해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어느 것을 집어내 보아도 다 같이 서른여섯 살에 자수(自殊)한* 어느 ‘천재’*가 머리맡에 놓고 간 개세(蓋世)*의 일품(逸晶)의 아류에서 일보를 나서지 못했다. 내게 요만 재주밖에는 없느냐는 것이 다시없이 분하고 억울한 사정이었고 또 초조의 근원이었다. 미간을 찌푸리되 가장 고매한 얼굴은 지속해야 할 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그리고 계속하여 끙끙 앓고 있노라니까(나는 일시 일각을 허송하지는 않는다. 나는 없는 자혜를 끊이지 않고 쥐어짠다) 속달 편지가 왔다. 소녀에게서다.
선생님! 어제저녁 꿈에도 저는 선생님을 만나 뵈었습니다. 꿈 가운데 선생님은 참 다정하십니다. 저를 어린애처럼 귀여워해 주십니다.
그러나 백일 아래 표표(飄飄)하신* 선생님은 저를 부르시지 않습니다.
비굴이라는 것이 무슨 빛으로 되어 있나 보시려거든 선생님은 거울을 한번 보아보십시오. 거기 비치는 선생님의 얼굴빛이 바로 비굴이라는 것의 빛입니다.
헤어진 부인과 삼 년을 동거하시는 동안에 너 가거라 소리를 한 마디도 하신 일이 없다는 것이 선생님의 유일의 자만이십디다그려 ! 그렇게까지 선생님은 인정에 구구(苟苟)하신가요.*
R과도 깨끗이 헤어졌습니다. S와도 절연한 지 벌써 다섯 달이나 된다는 것은 선생님께서도 믿어주시는 바지요? 다섯 달 동안 저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의 청절(淸節)을 인정 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의 최후까지 더럽히지 않은 것을 선생님께 드리겠습니다. 저의 희멀건 살의 매력이 이렇게 다섯 달 동안이나 놀고 있는* 것은 참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이 아깝습니다. 저의 잔털 나스르르한* 목 영한 온도가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선생님이여! 저를 부르십시오. 저더러 영영 오라는 말을 안하시는 것은 그것 역시 가신 적 경우와 똑같은 이론에서 나온 구구한 인생 변호의 치사스러운 수법이신가요?
영원히 선생님 ‘한 분’ 만을 사랑하지요. 어서어서 저를 전적으로 선생님만의 것으로* 만들어주십시오. 선생님의 ‘전용’이 되게 하십시오.
제가 아주 어수룩한 줄 오산하고 계신 모양인데 오산치고는 좀 어림없는 큰 오산이리다.
네 딴은 제법 든든한 줄만 믿고 있는 네 그 안전지대라는 것을 너는 아마 하나 가진 모양인데 그까짓 것쯤 내 말 한마디에 사태가 나고 말리라, 이렇게 일러드리고 싶습니다. 또―
예끼! 구역질 나는 인생 같으니, 이러고도 싶습니다.
월 3일날 오후 두시에 동소문 버스정류장 앞으로 꼭 와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큰일 나요. 내 징벌을 안 받지 못하리다.
만 19세 2개월을 맞이하는
정희(貞姬) 올림
이상(李箱) 선생님께
물론 이것은 죄다 거짓부렁이다. 그러나 그 일촉즉발의 아슬아슬한 용심 법 (用'心法)이 특히 그중에도 결미의 비견할 데 없는 청초함이 장히 질풍신뢰 (疾風迅雷) *를 품은 듯한 명문이다.
나는 까무러칠 뻔하면서 혀를 내어둘렀다. 나는 깜빡 속기로 한다. 속고 만다.
여기 이 이상(李箱) 선생님이라는 허수아비 같은 나는 지난밤 사이에 내 평생을 경력 (經歷)했다.* 나는 드디어 쭈글쭈글하게 노쇠해 버렸던 차에 아침(이 온 것)을 보고 이키! 남들이 보는 데서는 나는 가급적 어줍지 않게 (잠을) 자야 되는 것이거늘, 하고 늘 이를 닦고 그러고는 도로 얼른 자 버릇하는 것이었다. 오늘도 또 그럴 셈이었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짐짓 기이하기도 해서 그러는지 경천동지(驚天動地)의 육중한 경륜을 품은 사람인가보다고들 속는다. 그러니까 고렇게 하는 것이 내 시시한 자세나마 유지시킬 수 있는 유일무이의 비결이었다. 즉 나는 남들 좀 보라고 낮에 잔다.
그러나 그 편지를 받고 흔희작약(欣喜雀躍),* 나는 개세의 경륜과 유서의 고민을 깨끗이 씻어버리기 위하여 바로 이발소로 갔다. 나는 여간 아닌 호걸답게 입술에다 치분(齒紛)*을 허옇게 묻혀가지고는 그 현란한 거울 앞에 가 앉아 이제 호화장려(豪華壯麗)하게 개막하려 드는 내 종생을 유유히 즐기기로 거기 해당하게 내 맵시를 수습하는 것이었다.
위선 그 작소(鵲巢)*라는 뇌명 (雷名)*까지 있는 봉발(蓬髮)*을 썰어서 상고머리라는 것을 만들었다. 오각수(五角鬚)*는 깨끗이 도태해버렸다. 귀를 우비고 코털을 다듬었다. 안마도 했다. 그리고 비누 세수를 한 다음 문득 거울을 들여다보니 품 있는 데라고는 한 귀퉁이도 없어 보이는 듯하면서 또한 태생을 어찌 어기리오, 좋도록 말해서 라파엘전파(前派)* 일원같이 그렇게 청초한 백면서생 이라고도 보아줄 수 있지 하고 실없이 제 얼굴을 미남자거니 고집하고 싶어하는 구지레한 욕심을 내심 탄식 하였다.
아차! 나에게도 모자가 있다. 겨우내 꾸겨박질러두었던 것을 부득부득 끄집어내어다 15분간 세탁소로 가지고 가서 멀쩡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흰 바지저고리에 고동색 대님을 다 치고 차림차림이 제법 이색이 있다. 봉단*은 못되나마 능직 (綾織)* 두루마기에 이만하면 고왕금래(古往今來)* 모모(某某)한* 천재의 풍모에 비겨도 조금도 손색이 없으리라. 나는 내 그런 여간 이만저만하지 않은 풍모를 더욱더욱 이만저만하지 않게 모더파이어하기* 위하여 가늘지도 굵지도 않은 고다지* 알맞은 단장을 하나 내 손에 쥐어주어야 할 것도 때마침 잊어버리지는 않았다.
별수 없이 ―
오늘이 즉 3월 3일인 것이다.
나는 점잖게 한 30분쯤 지각해서 동소문 지정받은 자리에 도착하였다. 정희는 또 정희대로 아주 정희다웁게 한 30분쯤 일찍 와서 있다.
정희의 입상(立像)은 제정 노서아(露西亞)* 적 우표딱지처럼 적잖이 슬프다. 이것은 아직도 얼음을 품은 바람이 해토(解土)머리*답게 싸늘해서 말하자면 정희의 모양을 얼마간 침통하게 해보인 탓이렷다.
나는 이런 경우에 천만뜻밖에도 눈물이 핑 눈에 그뜩 돌아야 하는 것이 꼭 맞는 원칙으로서의 의표(意表)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저벅저벅 정희 앞으로 다가갔다.
우리 둘은 이 땅을 처음 찾아온 제비 한 쌍처럼 잘 앙증스럽게 만보(漫步)하기* 시작했다. 걸어가면서도 나는 내 두루마기에 잡히는 주름살 하나에도 단장을 한 번 휘젓는 곡절에도 세세히 조심한다. 나는 말하자면 내 우연한 종생을 감쪽스럽도록 찬란하게 허식(虛飾)하기 위하여 내 박빙(薄氷)을 밟는 듯한 포즈를 아차 실수로 무너뜨리거나 해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것을 굳게굳게 명(銘)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면 맨 처음 발언으로는 나는 어떤 기절참절(奇絶慘絶)한* 경구(警句)를 내어놓아야 할 것인가, 이것 때문에 또 잠깐 머뭇머뭇하지 않을 수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바로 대고 거 어쩌면 그렇게 똑 제정 노서아 적 우표딱지같이 초초(楚楚)하니* 어쩌니 하는 수는 차마없다.
나는 선뜻
“설마가 사람을 죽이느니.”
하논 소리를 저 뱃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듯한 그런 가라앉은 목소리에 꽤 명료한 발음을 얹어서 정희 귀 가까이다 대고 지껄여버렸다. 이만하면 아마 그 경우의 최초의 발성으로는 무던히 성공한 편이리다. 뜻인즉, 네가 오라고 그랬다고 그렇게 내가 불쑥 올 줄은 너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으리라는 꼼꼼한 의도다.
나는 아침 반찬으로 콩나물을 3전어치는 안 팔겠다는 것을 교묘히 무사히 3전어치만 살 수 있는 것과 같은 미끈한 쾌감을 맛본다. 내 딴은 다행이 노랑돈* 한 푼도 참 용하게 낭비하지는 않은 듯싶었다.
그러나 그런 내 청천에 벽력이 떨어진 것 같은 인사에 대하여 정희는 실로 대답이 없다. 이것은 참 큰일이다.
아이들이 고추 먹고 맴맴 담배 먹고 맴맴 하고 노는 그런 암팡진 수단으로 그냥 단번에 나를 어지러뜨려서는 넘어뜨려버릴 작정인 모양이다.
정말 그렇다면!
이 상쾌한 정희의 확호(確乎)* 부동자세야말로 엔간치 않은 출품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내어놓은 바 살인촌철(殺人寸鐵)*은 그만 즉석에서 분쇄되어 가엾은 부작(不作)으로 내려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하고 나는 느꼈다.
나는 나로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규모의 손짓 발짓을 한벌* 해 보이고 이윽고 낙담하였다는 것을 표시하였다. 일이 여기 이른 바에는 내 포즈 여부가 문제 아니다. 표정도 인제 더 써먹을 것이 남아 있을 성 싶지도 않고 해서 나는 겸연쩍게 안색을 좀 고쳐가지고 그리고 정희! 그럼 나는 가겠소, 하고 깍듯이 인사하고 그리고?
나는 발길을 돌쳐서*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내 파란만장의 생애가 자지레한 말 한마디로 하여 그만 회신(仄燼)*으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 나는 세상에도 참혹한 풍채 아래서 내 종생을 치른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렇다면 그럼 그럴 성싶기도 하게 단장도 한두 번 휘두르고 입도 좀 일기죽일기죽해보기도 하고 하면서 행차하는 체해 보인 다.
5초- 10초- 20초― 30초- 1 분―
결코 뒤를 돌아다보거나 해서는 못쓴다. 어디까지든지 사심 없이 패배한 체하고 걷는 체한다. 실심 (失心)한* 체한다.
나는 사실은 좀 어지럽다. 내 쇠약한 심장으로는 이런 자약(自若)한* 체초를 그렇게 장시간 계속하기가 썩 어려운 것이다.
묘지*명(墓誌銘)이라. 일세의 귀재 이상은 그 통생(通生)의 대작 「종생기」 일 편을 남기고 서력 기원후 일천구백삼십 칠년 정축(丁丑) 삼월 삼일 미시(未時) 여기 백일(白日) 아래서 그 파란만장(?)의 생애를 끝막고 문득 졸(卒)하다.* 향년 만 25세와 11개월. 오호라! 샹심커다. 허탈이야 잔존하는 또 하나의 이상(李箱), 구천을 우러러 호곡하고 이 한산(寒山) 일편석(一片石)을 세우노라. 애인 정희는 그대의 몰후(歿後)* 수삼 인의 비첩(秘妾)* 된 바 있고 오히려 장수하니 지하의 이상아! 바라건대 명목(暝目)하라.*
그리 칠칠치는 못하나마 이만큼 해가지고 이꼴저꼴 구지레한 흠집을 살짝 도회(韜晦)하기로* 하자. 고만 실수는 여상(如上)*의 묘기로 겸사겸사 메우고 다시 나는 내 반생의 진용(陳容) 후일에 관해 차근차근 고려하기로 한다. 이상(以上).
역대의 에피그램과 경국(傾國)*의 철칙이 다 내게 있어서는 내 위선을 암장(暗葬)하는* 한 스무드한*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실로 나는 내 낙명(落命)*의 자리에서도 임종의 합리화를 위하여 꼬로*처럼 도색(桃色)*의 빨레뜨를 볼 수도 없거니와 똘스또이처럼 탄식해주고 싶은 쥐꼬리만한 금언의 추억도 가지지 않고 그냥 난데없이 다리를 삐어 넘어지듯이 스르르 죽어가리라.
거룩하다는 칭호를 휴대하고 나를 찾아오는 ‘연애’ 라는 것을 응수하는 데 있어서도 어디서 어떤 노소간의 의뭉스러운 선인들이 발라먹고 내어버린 그런 유훈을 나는 헐값에 걷어 들여다가는 제련(製鍊) 재탕 다시 써먹는다.
는 줄로만 알았다가도 또 내게 혼나는 경우가 있으리라.
나는 찬밥 한 술 냉수 한 모금을 먹고도 넉넉히 일세를 위압할 만한 ‘고언(苦言)’ *을 적적(摘摘)할* 수 있는 그런 지혜의 실력을 가졌다.
그러나 자의식의 절정 위에 발돋움을 하고 올라선 단말마의 비결을 보통 야시(夜市) 국수버섯을 팔러 오신 시골 아주머니에게 서너 푼에 그냥 넘겨주고 그만두는, 그렇게까지 자신의 에티켓을 미화시키는 겸허의 방식도 또한 나는 무루(無漏)히* 터득하고 있는 것이다.
당목(瞠目) 할지어다. * 이상(以上).
난마와 같이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얼마간 비극적인 자기 탐구.
이런 흙발 같은 남루한 주제는 문벌이 버짓한 나로서 채택할 신세가 아니거니와 나는 태서(泰西)*의 에티켓으로 차 한 잔을 마실 적의 포즈에 대하여도 세심하고 세심 한 용의가 필요하다.
휘파람 한 번을 분다 치더라도 내 극비리에 정선(精選) 은특(隱慝)된* 절차를 온고(溫古)하여야만* 한다. 그런 다음이 아니고는 나는 희망 잃은 황혼에서도 휘파람 한마디를 마음대로 불 수는 없는 것이다.
동물에 대한 고결한 지식?
사슴, 물오리, 이 밖의 어떤 종류의 동물도 내 애니멀 킹덤*에서는 낙탈(落脫)되어 있어야 한다. 나는 이 수렵용으로 귀여이 가여이 되어먹어 있는 동물 외의 동물에 언제든지 무가내긁(無可奈何) *로 무지하다.
또―
그럼 풍경에 대한 오만한 처신법?
어떤 풍경을 묻지 않고 풍경의 근원, 중심, 초점이 말하자면 나 하나 ‘도련님’ 다운 소행 (素行)*에 있어야 할 것을 방약무인(傍若無人)*으로 강조한다. 나는 이 맹목적 신조를 두 눈을 그대로 딱 부르감고 믿어야 된다.
자진한 ‘우매(愚昧)’ ‘몰각(歿覺)’ 이 참 어렵다.
보아라. 이 자득(自得)하는 우매의 절기(絶技)를! 몰각의 절기를.
백구(白鷗)는 의백사(宜白沙)하니 막부춘초벽(莫赴春草碧)하라.*
이태백 (李太白). 이 전후만고(前後萬古)의 으리으리한 ‘화족(華族)’* 나는 이태백을 닮기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오언절구 한 줄에서도 한 자가량의 태연자약한 실수를 범해야만 한다. 현란한 문벌이 풍기는 가히 범할 수 없는 기품과 세도가 넉넉히 고시 한 절쯤 서슴지 않고 생채기를 내어놓아도 다들 어수룩한 체들 하고 속느니 하는 교만한 미신이다.
곱게 빨아서 곱게 다리미질을 해놓은 한 벌 슈미즈의 꼬빡* 속는 청절(淸節)처럼 그렇게 아담하게 나는 어떠한 질차(跌蹉)*에서도 거뜬하게 얄미운 미소와 함께 일어나야만 하는 것이니까―
오늘날 내 한 씨족이 분명치 못한 소녀에게 섣불리 딴죽을 걸려 넘어진다기로서니 이대로 내 숙망(宿望)*의 호화유려(豪華流麗)한 종생을 한 방울 하잘것없는 오점을 내이는 채 투시(投匙)해서야* 어찌 초지(初志)의 만일에 응답할 수 있는 면목이 족히 서겠는가, 하는 허울 좋은 구실이 영일(永日)* 밤보다도 오히려 한 뼘 짧은 내 전정(前程)*에 대두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완만 착실한 서술!
나는 과히 눈에 띌 성싶지 않은 한 지점을 재재바르게* 붙들어서 거기서 공중 담배를 한 갑 사 (주머니에 넣고) 피워 물고 정희의 뻔― 한 걸음을 다시 뒤따랐다.
나는 그저 일상의 다반사를 간과하듯이 범연하게 휘파람을 불고, 내 구두 뒤축이 아스팔트를 디디는 템포, 음향, 이런 것들의 귀찮은 조절에도 깔끔히 정신 차리면서 넉넉잡고 3분, 다시 돌친 걸음은 정희와 어깨를 나란히 걸을 수 있었다. 부질없는 세상에 제 심각하면 침통하면 또 어쩌겠느냐는 듯싶은 서운한 눈의 위치를 동소문 밖 신개지(新開地) 풍경 어디라고 정(定)치 않은 한 점에 두어두었으니 보라는 듯한 부득부득 지근거리는 자세면서도 또 그렇지도 않을 성싶은 내 묘기 중에도 묘기를 더한층 허겁지겁 연마하기에 골똘하는 것
이었다.
일모(日暮) 창산*―
날은 저물었다. 아차! 아직 저물지 않은 것으로 하는 것이 좋을까 보다.
날은 아직 저물지 않았다.
그러면 아까 장만해둔 세간 기구를 내세워 어디 차근차근 살림살이를 한번 치러볼 천우(天佑)의 호기(好機)가 내* 앞으로 다다랐나보다. 자―
태생은 어길 수 없어 비천한 ‘티’*를 감추지 못하는 딸―
(전기(前記)* 사치한 소녀 운운은 어디까지든지 이 바보 이상(李箱)의 호의에서 나온 곡해다. 모빠상의 「지방 덩어리」*를 생각하자. 가족은 미만(未滿) 14세의 딸에게 매음시켰다. 두번째는 미만 19세의 딸이 자진(自進) 했다. 아― 세번째는 그 나이 스물두 살이 되던 해 봄에 얹은 낭자*를 내리우고 게다 다흥댕기를 들여 늘어뜨려 편발* 처자(處子)를 위초하여서는 대거(大擧)하여* 강행으로 매끽 (賣喫) 하여버렸다.*)
비천한 뉘 집 딸이 해빙기의 시냇가에 서서 입술이 낙화 지듯 좀 파래지면서 박빙 밑으로는 무엇이 저리도 움직이는가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듯이 숙이고 있는데 봄 방향(芳香)*을 품은 훈풍이 불어와서 스커트, 아니 너무나, 슬퍼 보이는, 아니, 좀 슬퍼 보이는 홍발을 건드리면――
좀 슬퍼 보이는 홍발을 나븟나븟 건드리면―
여상(如上)이다. 이 개기름 두는 가소로운 무대를 앞에 두고 나는 나대로 나다웁게 가문이라는 자지레한 ‘투(套)’ 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잊어버리지 않고 채석장 희멀건 단층을 건너다보면셔 탄식 비슷이 ‘지구를 저며 내는 사람들은 역시* 자연 파괴자리라’ 는 둥 ‘개미집이야말로 과연 정연하구나’ 라는 둥 ‘비가 오면, 아― 천하에 비가 오면’
‘작년에 났던 초목이 올해에도 뚜 돋으려누, 귀불귀(歸不歸)*란 무엇인가’ 라는 둥―
치레 잘하면 제법 의젓스러워도 보일 만한 가장 한산한 과제로만 골라서 점잖게 방심해 보여놓는다.
정말일까? 거짓말일까. 정희가 불쑥 말을 한다. 한 소리가, “봄이 이렇게 왔군요” 하고 윗니는 좀 사이가 벌어져서 보기 흉한 듯하니까 살짝 가리고 곱다고 자처하는 아랫니를 보이지 않으려고 했지만 부지불식간에 그렇게 내어다 보인 것을 또 어쩝니까 하는 듯싶이 가증하게 내어 보이면서 또 여간해서 어림이 서지 않는 어중간 얼굴을 그 위에 얹어 내세우는 것이었다.
좋아, 좋아, 좋아, 그만하면 잘되었어.
나는 고개 대신에 단장을 끄덕끄덕해 보이면서 창졸간*에 그만 정희 어깨 위에다 손을 얹고 말았다.
그랬더니 정희는 적이 해괴해하노라는 듯이 잠시는 묵묵하더니ㅡ
정희도 문벌이라든가 혹은 간편히 말해 에티켓이라든가 제법 배워서 짐작하노라고 속삭이는 것이 아닌가.
꿀꺽 !
넘어가는 내 지지한 종생. 이렇게도 실수가 허(許)해서야 물화적(物貨的) 전 생애를 탕진해가면서 사수하여온 산호편*의 본의(本意)가 대체 어디 있느냐? 내내 울화가 복받쳐 혼도(昏倒)할* 것 같다.
흥천사(興天寺) 으슥한 구석방에 내 종생의 갈력(竭力)*이 정희를 이끌어들이기도 전에 나는 밤 쓸쓸히 거짓말깨나 해놓았나보다.
나는 내가 그윽이 음모한바 천고불역(千古不易)*의 탕아, 이상(李箱)이 자지레한 문학의 빈민굴을 교란시키고자 하던 가지가지 진기한 연장이 어느 겨를에 뼈무르기* 시작한 것을 여기서 깨단해야* 되나보다. 사회는 어떠쿵, 도덕이 어떠쿵, 내면적 성찰 추구 적발 징벌은 어떠쿵, 자의식 과잉이 어떠쿵, 제 깜냥*에 번지레한 칠을 해 내어걸은 치사스러운 간판들이 미상불* 우스꽝스럽 기가 그지없다.
‘독화(毒花).’
족하는 이 꼭두각시 같은 어휘 한마디를 잠시 맡아가지고 계셔보구려?
예술이라는 허망한 아궁이 근처에서 송장 근처에서보다도 한결 더 썰썰 기고 있는 그들 해반주룩한* 사도(死都)*의 혈족들 땟국내 나는 틈에가 낑기어서, 나는―
내 계집의 치마 단속곳*을 갈가리 찢어놓았고, 버선켤레를 걸레를 만들어놓았고, 검던 머리에 곱던 양자,* 영악(獰惡)한* 곰의 발자국이 질컥 디디고 지나간 것처럼 얼굴을 망가뜨려 놓았고, 지기(知己) 친척의 돈을 뭉청 떼어먹었고, 좌수터 유래 깊은 상호(商號)를 쑥밭을 만들어놓았고, 겁쟁이 취리자(取利者)*는 고랑때*를 먹여놓았고, 대금업자의 수금인을 졸도시켰고, 사장과 취체역(取締役)*과 사돈과 아범과 애비와 처남과 처제와 또 애비와 애비의 딸과 딸, 이 허다 중생으로 하여금 서로서로 이간을 붙이고 붙이게 하고 얼버무려져 싸움질을 하게 해놓았고 사글셋방 새 다다미에 잉크와 요강과 팥죽을 엎질렀고, 누구누구를 임포덴츠*를 만들어놓았고― '
‘독화(毒花)’라는 말의 콕 찌르는 맛을 그만하면 어렴풋이나마 어떻게 짐작이 서는가 싶소이까.
잘못 빚은 증편* 같은 시 몇 줄 소설 서너 편을 꿰어 차고 조촐하게 등장하는 것을 아 무엇인 줄 알고 깜빡 속고 섣불리 손뼉을 한두 번 쳤다는 죄로 제 계집 간음당한 것보다도 더 큰 망신을 일신에 짊어지고 그러고는 앙탈 비슷이 시치미를 떼지 않으면 안되는 어디까지든지 치사스러운 예의 절차―마귀 (터주*가)의 소행 (덧났다) 이라고 돌려버리자?
‘독화.’
물론 나는 내일 새벽에 내 길든 노상에서 무려 내게 필적하는 한숨은 탕아를 해후할는지도 마치 모르나, 나는 신바람이 난 무당처럼 어깨를 치켰다 젖혔다 하면서라도 풍마우세(風磨雨洗)*의 고행을 얼른 그렇게 쉽사리 그만두지는 않는다.
아― 어쩐지 전신이 몹시 가렵다. 나는 무연(無緣)한* 중생의 뭇 원한 탓으로 악역 (惡疫)*의 범함을 입나보다. 나는 은근히 속으로 앓으면서 토일릿* 정한 대야에다 양손을 정하게 씻은 다음 내 자리로 돌아와 앉아 차근차근 나 자신을 반성 회오(睡|吾)*―쉬운 말로 자지레한 셈을 좀 놓아보아야겠다.
에티켓? 문벌? 양식? 번신술(棚身術)?*
그렇다고 내가 찔끔 정희 어깨 위에 얹었던 손을 뚝 멘다든지 했다가는 큰 망발이다. 일을 잡치리라. 어디까지든지 내 뺨의 흥조만을 조심하면서 좋아, 좋아, 좋아, 그래만 주면 된다. 그러고 나서 피차 다 알아들었다는 듯이 어깨에 손은 얹은 채 어깨를 나란히 흥천사 경내로 들어갔다. 가서 길을 별안간 잃어버린 것처럼 잡은 참 산 위로 올라가버린다. 산 위에서 이번에는 정말 포즈를 하릴없이 무너뜨렸다는 것처럼 정교하게 머뭇머뭇해준다. 그러나 기실 말짱하다.
풍경(風磬) 소리가 똑 알맞다. 이런 경우에는 제법 번듯한 식자(識字)가 있는 사람이면―
이—― 나는 왜 늘 항례(恒例)*에서 비켜서려 드는 것일까? 잊었느냐? 비싼 월사(月謝)*를 바치고 얻은 고매한 학문과 예절을.
현역 육군 중좌에게서 받은 추상열일(秋霜烈日)*의 훈육을 왜 나는 이 경우에 버젓하게 내세우지를 못하느냐?
장연한 고찰(古刹) 유루(遺漏)* 없는 장치에서 나는 정신 차려야 한다. 나는 내 쟁쟁한 이력을 솔직하게 써먹어야 한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고 도장(屠場)*에 들어가는 소, 죽기보다 싫은 서투르고 근질근질한 포즈, 체모독주(體貌獨奏)에 어지간히 성공해야만 한다.
그랬더니 그만두잔다. 당신의 그 어림없는 몸치렐랑 그만두세요. 저는 어지간히 식상이 되었습니다 한다.
그렇다면?
내 꾸준한 노력도 일조일석(―朝―夕)에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대체 정희라는 가련한 ‘석녀(石女)’ 가 제 어떤 재간으로 그런 음흉한 내 간계를 요만큼까지 간파했다는 것이다.
일시에 기진한다. 맥은 탁 풀리고는 앞이 팽 돌다 아찔하는 것이 이러다가 까무러치려나보다고 극력(極力)* 단장을 의지하여 버텨보노라니까 희(噫)라!* 내 기사회생의 종생도 이번만은 회춘하기 장히 어려울 듯싶다.
이상(李箱)! 당신은 세상을 경영할 줄 모르는 말하자면 병신이오. 그다지도 ‘미혹(迷惑)’ 하단* 말씀이오? 건너다보니 절터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까라마조프의 형제』나 『’40년』*을 좀 구경 삼아 들러보시지요.
아니지! 정희! 그게 뭐냐 하면 나도 살고 있어야 하겠으니 너도 살자는 사기, 속임수, 일부러 만들어 내어놓은 미신, 중에도 가장 우수한 무서운 주문이오.
이상! 그러지 말고 시험 삼아 한 발만 한 발자국만 저 개흙밭에다 들여놓아보시지요.
이 악보같이 스무드한 담소 속에서 비칠비칠하노라면 나는 내게 필적하는 천의무봉(天衣無縫)*의 탕아가 목첩간(目睫間)*에 있는 것을 느낀다. 누구나 제 내어놓았던 헙수룩한 포즈를 걷어치우느라고 허겁지겁들 할 것이다. 나도 그때 내 슬하의 이렇게 유산(遺産)되는 자손을 느끼면서 만대(萬戴)에 드리우는 이 극흉극비(極시極秘) 종가(宗家)의 부작*을 앞에 놓고서 적이 불안하게 또 한편으로는 적이 안일하게 운명하는 마지막 낙백(落魄)*의 이내 종생을 애오라지 방불히 하는 것이었다.
나는 내 분묘 될 만한 조촐한 터전을 찾는 듯한 그런 서글픈 마음으로 정희를 재촉하여 그 언덕을 내려왔다. 등 뒤에 들리는 풍경 소리는 진실로 내 심통함을 돋우는 듯하다고 사자(寫字)하면* 정경을 한층 더 반듯하게 매만져놓는 한 도움이 되리라. 그럼 진실로 풍경 소리는 내 등 뒤에서 내 마지막 심통함을 한층 더 들볶아놓는 듯하더라.
미문에 견줄 만큼 위태위태한 것이 절승(絶勝)*에 혹사(酷似)한* 풍경이다. 절승에 혹사한 풍경을 미문으로 번안 모사해놓았다면 자칫 실족 익사하기 쉬운 웅덩이나 다름없는 것이니 첨위(僉位)*는 아예 가까이 다가서서는 안된다. 도스또예프스끼나 고르끼는 미문을 쓰는 버릇이 없는 체했고 또 황량, 아담한 경치를 ‘취급’ 하지 않았으되 이 의뭉스러운 어른들은 오직* 미문은 쓸 듯 쓸 듯, 절승경개(絶勝景槪)는 나올 듯 나올 듯해만 보이고 끝끝내 아주 활짝 꼬랑지를 내보이지는 않고 그만둔 구렁이 같은 분들이기 때문에 그 기만술(欺瞞術)은 한층 더 진보된 것이며, 그런 만큼 효과가 또 절대하여 천 년을 두고 만 년을 두고 내리내리 부질없는 위무(慰撫)를 바라는 중속(衆俗)들을 잘 속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왜 나는 미끈하게 솟아 있는 근대건축의 위용을 보면서 먼저 철근철골, 씨멘트와 세사(細砂), 이것부터 선뜩하니 감응하느냐는 말이다. 씻어버릴 수 없는 숙명의 호곡(號哭), 몽고레안푸렉게(蒙古癒)* 오뚝이처럼 쓰러져도 일어나고 쓰러져도 일어나고 하니 쓰러지나 섰으나 마찬가지 의지할 얄팍한 벽 한 조각 없는 고독, 고고(枯槁)* 독개(獨介) 초초(楚楚)* 나는 오늘 대오(大悟)한 바 있어 미문을 피하고 절승의 풍광을 격(隔)하여 소조(蕭條)하게* 왕생하는* 것이며 숙명의 슬픈 투시벽(透視癖)은 깨끗이 벗어놓고 온아종용(溫雅慫慂),* 외로우나마 따뜻한 그늘 안에서 실명(失命)하는 것이다.
의료(意料)하지* 못한 이 홀홀한* ‘종생’, 나는 요절인가보다. 아니 중세최절*(中世推折)인가보다. 이길 수 없는 육박(肉迫). 눈먼 떼까마귀의 매리(罵詈)* 속에서 탕아 중에도 탕아, 술객(術客)* 중에도 술객, 이 난공불락의 관문의 괴멸. 구세주의 최후연(最後然)히 방방곡곡이 여독(餘毒)은* 삼투하는 장식 중에도 허식의 표백(表白)*이다. 출색 (出色)*의 표백이다.
내부(乃夫)*가 있는 불의(不義). 내부가 없는 불의. 불의는 즐겁다. 불의의 주가낙락(酒價落落)한 풍미를 족하는 아시나이까. 윗니는 좀 잇새가 벌고 아랫니만이 고운 이 한경 (漢鏡)*같이 흠함(欠陷)*의 미를 갖춘 감쪽스럽게 시치미를 뗄 줄 아는 얼굴을 보라. 7세까지 옥잠화 속에 감춰두었던 장분(粉)만을 바르고 그 후 분을 바른 일도 세수를 한 일도 없는 것이 유일의 자랑거리. 정희는 사팔뜨기다. 이것은 무엇으로도 대항하기 어렵다. 정희는 근시(近視) 육도(六度)다. 이것은 무엇으로도 대항할 수 없는 선천적 훈장이다. 좌난시 (左亂視) 우색맹 (右色盲) 아― 이는 실로 완벽이 아니면 무엇이랴.
속은 후에 또 속았다. 또 속은 후에 또 속았다. 미만 14세에 정희를 그 가족이 강행으로 매춘시켰다. 나는 그런 줄만 알았다. 한 방울 눈물―
그러나 가족이 강행하였을 때쯤은 정희는 이미 자진하여 매춘한 후 오래오래 후다. 다홍 댕기가 늘 정희 등에서 나부꼈다. 가족들은 불의(不意)에 올 재앙을 막아줄 단 하나 값나가는 다홍 댕기를 기탄없이 믿었건만―
그러나 ―
불의는 귀인답고 참 즐겁다. 간음한 처녀― 이는 불의 중에도 가장 즐겁지 않을 수 없는 영원의 밀림이다.
그럼 정희는 게서 멈추나?
나는 자기소개를 한다. 나는 정희에게 분모(分毛)를 지기 싫기 때문에 잔인한 자기소개를 하는 것 이다.
나는 벼〔稻〕를 본 일이 얼다. 자전차를 탈 줄 모른다. 생년월일을 가끔 잊어버린다. 구십 노조모가 이팔 소부(少婦)로 어느 하늘에서 시집온 십 대조의 고성(古城)을 내 손으로 힐었고 녹엽천년(綠葉千年)의 호두나무 아름드리 근간을 내 손으로 베었다. 은행나무는 원통한 가문을 골수에 지니고 찍혀 넘어간 뒤 장장 4년 해마다 봄만 되면 독시(毒矢)* 같은 싹이 움돋는 것이었다.
나는 그러나 이 모든 것에 견뎠다. 한번 석류(栢榴)*나무를 휘어잡고 나는 폐허를 나섰다.
조숙 난숙 감〔枾〕 썩는 골머리 때리는 내. 생사의 기로에서 완이이소(莞爾而笑),* 표한무쌍(剽悍無雙)*의 척구(瘠軀)* 음지에 창백한 꽃이 피었다.
나는 미만 14세 적에 수채화를 그렸다. 수채화와 파과(破瓜).* 보아라 목저(本箸)*같이 야윈 팔목에서는 삼동에도 김이 무럭무럭 난다. 김 나는 팔목과 잔털 나스르르한, 매춘하면서 자라나는 회충같이 매혹적인 살결. 사팔뜨기와 네* 흰자위 없는 짝짝이 눈. 옥잠화 속에서 나오는 기술(奇術)* 같은 석일(昔 日)*의 화장과 화장 전폐(全廢), 이에 대항하는 내 자전차 탈 줄 모르는 아슬아슬한 천품. 다홍 댕기에 불의와 불의를 방임하는 속수무책의 내 나태.
심판이여! 정희에 비교하여 내게 부족함이 너무나 많지 않소이까? 비등비등? 나는 최후까지 싸워보리라.
흥천사 으슥한 구석 방 한 칸, 방석 두 개, 화로 한 개. 밥상 술상―
접전(接戰) 수십 합(合). 좌충우돌. 정희의 허전한 관문을 나는 노사(老死)의 힘으로 들이친다. 그러나 돌아오는 반발의 흉기는 갈 때보다도 몇 배나 더 큰 힘으로 나 자신의 손을 시켜 나 자신을 살상한다.
지느냐. 나는 그럼 지고 그만두느냐.
나는 내 마지막 무장(武裝)을 이 전장에 내어세우기로 하였다. 그것은 즉 주란(酒亂)*이다.
한 몸을 건사하기조차 어려웠다. 나는 게울 것만 같았다. 나는 게웠다. 정 희 스커트에다. 정희 스타킹에다.
그러고도 오히려 나는 부족했다. 나는 일어나 춤추었다. 그리고 그 방 뒤 쌍창 미닫이를 열어젖히고 나는 예서 떨어져 죽는다고 마지막 한 벌 힘만을 아껴 남기고는 나머지 있는 힘을 다하여 난간을 잡아 흔들었다. 정희는 나를 붙들고 말린다. 말리는데 안 말리는 것도 같았다. 나는 정희 스커트를 잡아 젖혔다. 무엇인가 철썩 떨어졌다. 편지다. 내가 집었다. 정희는 모른 체한다.
속달(S와도 절연한 지 벌써 다섯 달이나 된다는 것은 선생님께서도 믿어주시는 바지요? 하던 S에게서다).
정희! 노하였소? 어젯밤 태서관(泰西館) 별장의 일! 그것은 결코 내 본의는 아니었소. 나는 그 요구를 하려 정희를 그곳까지 데리고 갔던 것은 아니오. 내 불민(不憫)*을 용서하여주기 바라오. 그러나 정희가 뜻밖에도 그렇게까지 다수굿한 태도를 보여주었다는 것으로 적이 자위를 삼겠소.
정희를 하루라도 바삐 나 혼자만의 것으로 만들어달라는 정희의 열렬한 말을 물론 나는 잊어버리지는 않겠소. 그러나 지금 형편으로는 ‘아내’ 라는 저 추물을 처치하기가 정희가 생각하는 바와 같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오.
오늘(3월 3일) 오후 여덟시 정각에 금화장(金華莊) 주택지 그때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겠소. 어제 일을 사과도 하고 싶고 달이 밝을 듯하니 송림(松林)을 거닙시다. 거닐면서 우리 두 사람만의 생활에 대한 설계도 의논하여봅시다.
3월 3일 아침 s
내게 속달을 띄우고 나서 곧 뒤이어 받은 속달이다.
모든 것은 끝났다. 어젯밤에 정희는―
그 낯으로 오늘 정희는 내게 이상 선생님께 드리는 속달을 띄우고 그 낯으로 또 나를 만났다. 공포에 가까운 번신술(飜身術)이다. 이 황홀한 젼율을 즐기기 위하여 정희는 무고(無辜)*의 이상을 징발했다.
나는 속고 또 속고 또 또 속고 또 또 또 속았다.
나는 물론 그 자리에 혼도(昏倒)하여버렸다. 나는 죽었다. 나는 황천을 헤매었다. 명부(冥府)에는 달이 밝다. 나는 또다시 눈을 감았다. 태허(太虛)에 소리 있어 가로되, 너는 몇 살이뇨? 만 25세와 11개월이 올시다. 요사(夭死)*로구나. 아니올시다. 노사(老死)올시다.
눈을 다시 떴을 때에 거기 정희는 없다. 물론 여덟시가 지난 뒤였다. 정희는 그리 갔다. 이리하여 나의 종생(終生)은 끝났으되 나의 종생기(終生記)는 끝나지 않는다. 왜?
정희는 지금도 어느 빌딩 걸상 위에서 드로어즈*의 끈을 푸는 중이요, 지금도 어느 태서관 별장 방석을 베고 드로어즈의 끈을 푸는 중이요, 지금도 어느 송림 속 잔디 벗어놓은 외투 위에서 드로어즈의 끈을 성히* 푸는 중이니까다.
이것은 물론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재앙이다.
나는 이를 간다.
나는 걸핏하면 까무러친다.
나는 부글부글 끓는다.
그러나 지금 나는 이 철천(撤天)*의 원한에서 슬그머니 좀 비켜서고 싶다. 내 마음의 따뜻한 평화 따위가 다 그리워졌다.
즉 나는 시체다. 시체는 생존하여 계신 만물의 영장을 향하여 질투할 자격도 능력도 없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깨닫는다.
정희, 간혹 정희의 훗흣한 호흡이 내 묘비에 와 슬쩍 부딪는 수가 있다. 그런 때 내 시체는 홍당무처럼 화끈 달면서 구천을 꿰뚫어 슬피 호곡(號哭)한다.
그동안에 정희는 여러 번 제 (내 때꼽재기*도 묻은) 이부자리를 찬란한 일광 아래 널어 말렸을 것이다. 누누(累累)한* 이내 혼수(昏睡)* 덕으로 부디 이내 시체에서도 생전의 슬픈 기억이 창궁(蒼穹)* 높이 훨훨 날아가나 버렸으면―
나는 지금 이런 불쌍한 생각도 한다. 그럼―
―만 26세와 3개월을 맞이하는 이상(李箱) 선생님이여! 허수아비여!
자네는 노옹(老翁)일세. 무릎이 귀를 넘는 해골일세. 아니, 아니. 자네는 자네의 먼 조상일세. 이상(以上). (11월 20일 東京서)
『조광』 19호(193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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