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를 여행하다 보면 합스부르크 가문에 대해 많이 듣게 된다. 또 학창 시절 세계사를 공부하던 중에도 중세부터 근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 일어난 중대한 역사적 사건들마다 그 이름이 거명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가 가문의 유일 계승자였던 페르디난트 대공이 사라예보에서 암살당하면서 1차대전이 발발한 것이다. 이 가문에 대한 개략적인 사항들을 정리해 보기로 한다.
13C부터 20C 초까지 오스트리아를 거점으로 중부 유럽의 패권을 휘어잡았던 가문이다. 신성로마제국의 제위를 세습하면서 황제의 가문으로 최고의 권위와 영예를 누렸다. 그러다가 그들이 지배했던 오스트리아 - 헝가리 제국이 1차대전에서 동맹국으로 참전했다가 패전함으로써 제국이 해체되고 그들이 지배했던 모든 나라들이 군주제와 귀족제를 폐지하면서 가문이 쇠멸했다.
그러면 그들이 그렇게 오랜 역사를 거치며 번창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가문이 처음 시작된 곳은 스위스의 코뮤네 지역이었다. 그들은 동맹 세력을 강화하기 위해 결혼을 이용했다. 전쟁을 피하고 정략적 결혼을 통해 가문의 영향력을 키워왔다. 또 강력한 가문을 유지하기 위해 권력의 세습과 강화를 위해 삼촌과 조카가 결혼하는 등 근친혼이 빈번했다. 그 영향으로 후손들에게 주걱턱, 뇌전증, 언어 장애 등의 유전병이 생기기도 했다. 그것이 가문 몰락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 가문과 관련된 유명 여성으로는 루이 16세의 왕비였던 마리 앙투아네트, 그녀의 어머니인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 그리고 영국 천일의 앤과 비슷한 비운의 왕비인 엘리자베스 폰 비테스바흐(통칭 씨시)를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