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희(金秀姬, 1953년 3월 13일~) 가수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난 김수희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려운 생활을 했으며 숙명여자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18세 때인 1972년에 작곡가와 동시에 작사가로 데뷔하였다. 데뷔 무렵에 미8군 부대 여성밴드인 블랙캣츠로 활동하며 밤무대 가수로 활동하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김수희는 여러 노래들을 작곡이나 작사를 하였으나 그 중에서도 김훈이 부른〈나를 두고 아리랑〉이 유명하다. 약 4년 간 밤무대 가수와 동시에 작곡가로 지내다가 1976년에 정규 1집 음반을 발표하면서 가수로 데뷔하였다. 하지만 가수로 데뷔했으나 극심한 생활고 때문에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1978년, 자신의 데뷔 음반에 수록되었던 블루스〈너무합니다〉가 시대적 환경의 영향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자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갑자기 자신의 노래가 주목을 받게 되자 얼굴없는 가수가 되었지만 이 노래를 부른 가수를 대중들이 찾기 시작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음악제작자가 김수희를 찾게 되었다.
김수희는 가수로 활동을 시작할 무렵에 대한민국의 유명한 명창 박초월에게 남도 창법을 배우는 등 다양한 창법을 연구하였으며 1982년에〈멍에〉를 발표하였다. 김수희는 그동안 힘들었던 모든 것들을 이 노래에 감정을 털어놓고 또한 서럽게 꺾어부르는 창법을 도입해 대중들에게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많이 알려졌다.
〈멍에〉가 히트하면서 정상급 가수로 성장하게 된 김수희는 1983년 10월 4일, 대마초 사건 혐의를 받아 곤혹을 치렀다. 20일 만에 복직했으나 작가에도 소질을 보인바, 1983년에는 처음으로 가요계 현장소설《너무합니다》를 집필하여 출간하였다. 그리고 1984년에는 소설《설(雪)》을 집필하여 출간해 베스트셀러 2위를 차지하는 영광을 누렸다. 그 해에 〈잃어버린 정〉으로 10대 가수상을 수상하여 본격적으로 인기 가수 대열에 들어섰다. 김수희는 주로 자신만의 독특한 창법을 가미한 서정적이고 분위기 있는 노래만 부르다가 1986년에 기존의 노래들과 달리 빠른 템포의 트로트 〈남행열차〉가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였다. 이 때 기존의 창법 위주보다는 자신만의 폭발적인 가창력을 선보여 최고의 인기를 얻었으며 대학교 응원가, 야유회의 필수 노래로 자리잡았으며 대학로 성인팬을 몰고다녔으며 각종 시상식에서 상을 많이 받았다. 특히 이 노래는 한국인이라면 다 아는 국민 가요로 선정되었다. 또한 그 당시에 여자 조용필이라고 불릴 만큼 상당한 가창력을 인정받았다.
1989년에는 일본에 진출하였으며 당시 〈애모〉를 발표하면서 발라드로 전향하였다. 특히 이 곡은 발표 당시 처음에는 그리 주목을 받지 않다가 1993년에 갑자기 대중들의 많은 요청으로 1990년대 대한민국 가요계를 주름잡던 김건모, 신승훈과 신예 아이돌 댄스 가수 서태지와 아이들 등의 신인 가수들을 제치고 KBS 가요대상 대상과 MBC 10대 가수가요제 대상을 수상해 이색적인 결과를 낳았다. 1994년에는 영화계에도 진출하여 영화 《애수의 하모니카》의 시나리오를 직접 제작하고 영화감독까지 맡았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그리고 희프로덕션을 설립해 음반제작자로도 활동하면서 신신애를 가수로 스카우트하고 무명이었던 편승엽을 유명세를 타게 해주었다.
김수희는 다른 가수들과는 차별성이 있는 창법으로 노래를 불렀는데 허스키한 목소리와 풍푸한 가창력을 겸비한 자신만의 방식과 다양한 국악 창법이 어울러져 사람들이 따라할 수 없어 모창이 없는 가수로도 불리고 있다. 무명시절 블루스와 재즈를 모창하며 익힌 팝음악이 섞인 트롯 계열의 노래를 주로 불렀으며 트로트와 팝, 트로트와 국악의 크로스오버를 활발히 시도해오는 가수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으며 영화, 문학에도 진출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화장품 사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