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
한 겨울, 아직 먼동이 트지 않아 캄캄하다. 라이트를 켜고 차를 몰아야 하니 새벽이라고 해야 맞을거다
큰길로 나오니 벌써부터 차들이 줄을 지어 달린다.
'뭐가 저리 바쁜가 ? 주말부부가 일요일 밤까지 가족과 함께 보내고 먼 곳으로 출근하느라 저리도 서두르는가 보다. '
월요일 아침이면 나도 바쁘다. 한약 찌꺼기을 실어야 하고, 어머니 요양병원 들려서 정산까지 가야 한다.
벌써 16년째다. 매주 월요일 새벽에 한약방에 들려서 한약을 짜고 남은 찌꺼기를 싣고 정산까지 나른지가....
어지간하면 중간에 그만 두었을 텐데, 한약 거름의 효과가 너무 좋아 지금까지 계속 즐거운 고생을 하고 있다.
우선 매실에 좋았다. 우리 매실은 토종 매실이라 처음에는 강낭콩 크기밖에 되지 않았다.
너무 작아서 좋은 값을 받을 수 없었지. 실심하던 차에 한약거름이 농산물에 좋다는 소리를 듣고 눈에 불을 켜고 찾았다.
그러나, 한약 거름이 좋다는 소문이 난지 오래라 한약방마다 맡아놓고 가져가는 사람이 있어서 비집고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아는 사람의 소개로 겨우 한 한약방을 찾았는데 이미 다른 사람이 맡아서 가져가고 있기때문에 한 달에 한 주 분만 줄 수 있댄다.
첫술에 배부를 수 있나. 한 달에 한 주는 한약방에서, 다른 주는 여기저기 건강원 것까지 훑어서 날랐다.
가져오는대로 밭 여기 저기에 내려놓아두면 저절로 썪는다.
그러면 겨울에 나무 밑에다 부어주면 되는거지.
2년을 계속 한약거름을 주니까 매실 알이 거짓말보태 탁구공만해지더라. 눈이 번쩍 떠진다.
그뿐이 아니다. 우리 매실은 다른집 매실나무 잎이 다 떨어진 늦가을까지 파란 잎이 싱싱하게 매달려 있더라. 보약을 먹은 탓이겠지.
그래서 계속 한약방을 찾았고, 지금은 한약방의 전속 찌꺼기 처리사가 되었다.
매주 월요일 새벽이면 추우나 더우나 비가오나 눈이오나 한약방을 찾아 거름을 싣는게 내 일이 되었다.
오늘도 한 차 가득 실었다. 40 포대다. 한 나무에 두 포대씩 주면 스무나무 분이다.
이 한약방에서는 매주 한 트럭분의 한약 찌꺼기가 나온다. 대부분이 보약다린 찌꺼기다. 살기가 어렵다는데도 여기와보면 아니다.
은행수확으로 24년 농사를 마무리지었고, 25년 농사의 시작은 거름주기로 시작된다.
농사는 때가 있다. 그 때를 놓치면 한 해 농사가 피농이다.
내 농사는 할 일이 많아서 봄의 일을 끌어다 겨울부터 시작해야 한다.
농사 일은 언제나 힘이 든다. 그래도 한 가지 일을 끝내놓았을 때 그 후련함, 그 맛으로 위안을 받곤 한다
25년 한 해 농사를 시작하면서 줄거리를 훑어본다.
1월엔 한약 거름 펴기, 매실나무 전지,
2월과 3월엔 밤나무 전지 매실나무 황소독 깍지벌레 방제
4월엔 밤나무 접붙이기, 유박 비료,
5월 매실나무 소독, 비료주기
6월 매실수확,
7월 밤 나무 소독 비료주기
8월 매실나무 도장지 제거. 밤나무 풀깎기
9월 밤나무 풀깎기, 조생종 밤 수확
10월 밤 수확
11월 은행 수확
12월 은행탈피 및 수매, 매실나무 한약거름주기
죽 늘어놓으면 현기증이 나지만 막상 닥치면 해나갈만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