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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만경강☆]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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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강]
김환생 시집 / 신아출판사(2015.08.31) / 값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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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강萬頃江 1
김환생
밤마다
만경강엔
눈물이 흐른다.
가난을
강물에 풀면
한 천년쯤
솔[松] 빛으로 흐를까?
평생을
빈손인 가을에도
숯불 다림질로
가난을 곱게 펴 오신
어머니
어머니의 굽은 등이
노령蘆嶺처럼 서러운데
기러기
시린 울음
만경강을 맴돌다
별빛으로 흐른다.
노래 1
김환생
내 영혼이 부르는
만남과
헤어짐의 노래는
어찌해서
항상 이리 슬픈가
이 마음
또 어디로 가게 될지
그건 모르나
아직 부르지 못한
부끄러운 노래
비 1
김환생
소리 없이
비가 내린다
늦게 핀 꽃잎이
뚝 떨어진다
한 줄기 비에
꽃잎이
떨어지고 만다
언젠간
떨어지고 말 꽃잎이지만
구름 너머 아득히
별나라에서
별 하나
막 사라진 게다
불꽃처럼…
내 영혼이 시리어질 때
뭉클, 꽃잎이 가슴에 진다
노을
김환생
세상살이 어려움이
누구에겐들 없으랴.
인정은
피투성이
영혼은
만신창이
너나 없이
하루하루
주름 한 골 더 새기고
허리 펴
바라보면
서산마루
피 빛 노을에
애간장이 녹는다
별
김환생
먼저 가신
넋들이
밤하늘에 남긴
눈물,
가지가지 사연들
어찌 없으리.
새벽
풀잎 끝
이슬 속 별빛은
그렁그렁
달빛
김환생
모질게 부는 삭풍은
귓불을도려낼 듯
봄시운은 아직도 먼데
파랗게 날을 세운 달빛 앞에
개나리 철쭉 갓 핀 꽃잎들을
차마 볼 수가 없다.
구름아
달빛 반이나마 가려주면
시퍼런 난도질도
한결 무디어지련만
금방 살 벨 것 같은 달빛에
늙은 솔도 두려워
보굿이 천 갈래로 솟는다.
그리고 스스로
달빛 속에 묻힌다.
산사山舍에서
김환생
누이의 탯줄은
지금도
거기 묻혀 을까?
장독대도
칠성七星님도
조왕신竈王神도
부엌살림에서
모두 잊히고
오직 달빛만
파랗게 부서지는 밤
뒤뜰 오래된 감나무 가지 끝
두어 개 남은 감이
서리 친 후
더 붉다.
그림자
김환생
가을밤 달빛이 밝다.
나를 따라 붙는
그림자
내가 움직이면 같은 동작으로 움직이고
내거 서면 같은 모습으로 선다.
가령, 손을 흔들면
그림자도 손을 흔들고
턱을 괴고 앉으면
그림자도 깊은 생각에 잠긴다.
그렇지만
그림자는
눈도 귀도 입술고 없다.
다만
골똘한 생각만
따로 하고 있을 뿐
밤비
김환생
밤비가온다
어둠은 산을 감추고
밤비는 눈을 가리고
건넛산
완산칠봉完山七峰을 볼 수가 없다
일곱 봉우리 중
한 봉우리도
볼 수가 없다
이 시각
완산칠봉을
모는 이가 없으므로
도라지
김환생
봄볕 고운 날
아내와 산에 오른다.
세월의 시샘 앞에
검은 귀밑머리
반백이 다 된 아내가
소녀처럼 좋아한다.
도라지 여남은 뿌리를
흙째로 캐어 왔더니
도라지를 품고 있던
산이
산 내음과 함께 따라와
집안 구석구석을 천천히 돌며
파릇한
생기를 준다.
어떤 손길
김환생
이름을 밝히지 말라며
오늘 아침
어느 졸업생이
장학금을 전달해왔다.
한 푼의 새로운
IMF 시대에
일천만 원씩이나……
도서관 모퉁이
곰팡내 나는 앨범 주소록에
누런 빛 글씨로
이름 석자는 보이는데
어찌된 일일까?
졸업생의 얼굴을 찾을 수가 없다.
생각해보면
베푸는 손길들은
풍성히 가진 자들의 고매한 인품이나
달변達辯으로 사랑을 말하는 자들보다도
괄시恝視 받는 자
적게 가진 자들의
이웃에 대한 연민의 몫이
대부분이던 것을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그렇게 배웠을
반백半白의 졸업생의 얼굴이
지천명知天命의 감동을 주는
오늘 아침
빚
김환생
세상을 살면서
빚없이 사는 사람 누가 있는가
부모 형제
친구들과 이웃들
가르쳐 주신 선생님
내가 사는 세상과 현재 앞에
빚 안진 사람이
정말 있는가
내가 네게 진 빚도 많지만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갚아야 될 빚이
너무도 많다
흥청망청
너도나도 잘 먹고 잘 쓸 때에는
그런 생각이 없었는데
어려운 시대를
너나없이 힘들게 살다보니
받아야 한 것들보다
갚아야 될 것들이 더 많음을 알고
나 스스로도 놀란다
어떤 사람이 실직되어
내 주변을 기웃거릴 때
또 어떤 사람이 노숙자 되어
내 잠자리에
불편한 꿈으로 찾아 왔을 때
내가 그들에게 진 빚을
어떻게 갚아야
내가 편히 잘 수 있을 터인데
나는 언제나
그들에게 빚을 갚을 수 있을까.
폐사廢寺에서
김환생
해가 기운다
산수유 꽃잎
흩어진
풀 무성한 절[寺] 터.
땅을 기는 뱀에
쫓기는 다람쥐
덩달아 급한 메추리도
시누대 바람 사이로 숨고
붉은 노을
개철쭉 핏빛으로
번지는 산마루에
아득한 목탁 소리
아아 파계승破戒僧
참선參禪하는 소리
이승
저승
갈리는 길이 어떻게 다른지
오늘밤
달빛이
하마 밝을까
박꽃
김환생
가난에도 정을 붙이니
살만하다
박꽃 한 송이
까마아득
먼 시공時空
어느 먼 별에서 밤새도록 달려와
지붕 위에 지쳐 누운
별빛이 운다
눈물방울
까닭이 없으리
새벽녘
꽃 빗장이 열리면
유현幽玄한 하늘에
가는 목을 길게 뻗은
박꽃
초가지붕 위
천녀天女 같은
하얀 박꽃이
누가
박색이라 하는데도
못 들은 척
무심히 웃고
별빛은
그 모습이 가여워
울고 있다
살풀이
김환생
깊어 가는 가을 밤
풀벌레 울음소리
솔잎에 달빛 스미는 소리
댜숲에서 솟은 바람
저희끼리l 부딪는 소리
무덤 곁 갈대들
고개 숙여 참회하는 소리
바람이 불면
산의 풀들 모두 엎드려 통곡하는 소리
골짜기로 흐르는
밤 물소리를 따라
온몸으로 길에게 우는 대금
아쟁 산조에 쓰러지는
무당의 그림자 저만치
살풀이로 풀리는 열두 박 느린 가락이
이승을 떠도는 혼불을 붙들고
흐느끼는 소리
달
김환생
팔월 한가위
달님에게
소원을 빈다.
오래오래 잘 살게 되기를 빈다.
내가 아니라
우리가 잘 살게 되기를 빈다.
달로 떠나는 우주선이
땅 위에 평화를 주는 것은 아니지.
나와 그대가 장수하고
자녀들이 무병無病하고
이웃들이의 생계가 위협받지 않기를
달님에게 기원해본다.
달빛을 따라
캄캄한 밤길 살펴간 사람이
달님에게 허리 굽혀 감사하는 일을
꼭 샤먼이라 해야 하는가?
어디서 달빛을 싸고도는
맑은 소리 들린다.
대금에 잔잔히 실려 오는
요천순일지곡堯天舜日之曲 한 소절
지금은 달님에게 복을 빌 시각,
하루하루 사는 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하여라.
슬픔
김환생
슬픔은 빛입니다.
길잡이입니다.
슬픔은
가난한 집
불편한 잠자리에서
영혼을 안내하는
스승입니다.
슬픔을 따라가노라면
슬픔은 항상
생명의 오묘한 소리를
눈물로 들려줍니다.
귀가歸家
김환생
심야
우등 보고속자버스를 타고
집으로 간다.
잘나지 못한 껍데기
벗어 던지고
주눅 든 숨
땅 꺼지게 쉬어도
누가 뭐라지 않는
내 집으로 간다.
창 밖
낯익은 얼굴
지쳐 있는데
서울
지긋지긋하다며
밤하늘
모든 별들이
필사적으로
따라붙는다.
꽃샘
김환생
목련꽃 핀 날
꽃샘바람 분다.
비도 종일 내린다.
왕후王后의 뺨 같던 꽃잎이
비바람에 시달리다
와르르 부서진다.
먼저 피어나는
용기가
어려움을 당한다.
앞서지 말라는 말
얼마나 슬기로운가.
서두른다는 것은
미련하다는 증거다.
일찍 핀 목련꽃이
측은하다.
먼저 핀 꽃이
먼저 진다.
아름다움은 부서져 버리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참새
김환생
오늘 아침은
참새 소리가 심상치 않다.
어제까지도
짹짹 짹짹
시끄럽고 방정맞고
변덕스럽고
그래도 생기 있었는데
오늘 아침 참새 소리에는
근심소리 들린다.
세상이 뒤숭숭하여
참새 소리만 이상히 들려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어젯밤
제 애비가
고압선에서 한눈팔고 있다가
감전사感電死를 했거나
아니면
능력 없다고
퇴출退出이라도 되었는지
오늘 아침
참새 울음이
참으로 심상치 않다.
햇님이
김환생
햇님이
서산으로 넘어갑니다.
하루하루의 오묘奧妙
그 불가해不可解
어느 날
느닷없는
소나기도 날벼락도
결코 갑작스러움이 아닌
자연의
순환입니다.
오고 가고
오고 가고
서산 넘어
햇님처럼
또 오고 가는
한 치의
착오도 없는 창조의 질서가
경이롭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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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예순 아홉 나이! 참 늦게도 시집을 낸다.
첫 시집이 이렇게 늦어 낯부끄럽고 쑥스러워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시집을 내놓으며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나를 내세우는 것이 스스러워 더욱 망설여지기도 했다. 말없이, 이름 없이, 욕심도 없이 그렇게 살고 싶었는데. 그런 바람이 또 다른 욕심 아니겠냐며 그 바람조차도 버리란다. 그래서 이제 늦게나마 용기를 내어 시집을 보여드려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여기에 내 놓는 글들은 상당히 오래 전에 쓴 시들이 대부분이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쓰고 고쳐보고, 그렇게 몇 년씩 묵혔다가 다시 읽어보고, 고치고, 시를 쓰는 일이 참 힘들다는 것을 조금씩 배워나가던 때의 어려움과 함께 그 작업이 또 다른 기쁨과 축복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시를 통해 나를 단련시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자란 곳은 기린봉 아랫마을 ‘마당재’이다. 초등학교 1-2학기 때 ‘남노송동’으로 이사와 6-1학기 때까지 거기에서 살았다. 지금은 옛 모습을 살펴볼 수 없이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선 마당제와 남노송동을 잊지 못한다. 그곳을 흐르던 도랑과 언덕과 골목길 등이 내 마음 깊은 곳에 새겨져 있다. 그것이 바로 백제 땅이고, 노령의 줄기고, 만경강을 이루는 물줄기였음을 알게 된 것은 먼 훗날의 일이었다. 그『만경강萬頃江』을 첫 시집의 표제로 삼는다.
언제나 준엄하셨던 아버지와 아버지를 잘 챙겨주셨던 내 어머니를 차마 잊을 수 없다. 하나 뿐인 남동생과 다섯이나 되는 여동생들이 첫 시집을 내면서 마음에 더욱 그립다. 아흔 넷에 편안히 돌아가신 할머니는 내게 항상 넉넉하고 포근한 사랑을 베풀어주셨다.
나의 아애 채순희蔡舜嬉는 항상 깊은 애정으로 나를 격려해주었다. 내가 외로워할 때, 내가 힘들어할 때, 내가 괴로워할 때, 나에게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아내가 정말 고맙고 사랑스럽다.
아들과 딸에게 자애로운 아버지, 며느리에게 좋은 시아버지지가 되어주었는지? 손녀와 손자에게도 이 시집을 통하여 깊은 사랑으로 연결될 수 있기를 바란다. 너무나 감동적인 발문을 써주신 ‘석정문학관’ 소재호蘇在浩 관장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전주고등학교 2년 선배가 되는 그는 참 큰 사람이다. 덕인德人이다. 어려운 여러 가지 일들이 그의 온화함 앞에서는 스스로 풀려 묘담妙答을 드러낸다. 내가 마침내 시집을 서둘러 낼 수 있게 된 것도 바로 그의 독려가 있었기 때문임을 밝힌다.
첫 시집을 내는 것을 계기로 더 좋은 시를 쓸 수 있기까지 겸손히, 열심히, 정성을 다해 공부할 것을 다짐한다. 모든 일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詩人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가는 길을 인도해주시기를 기도한다.
부족한 시를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2015년 7월 19일(일)
平和洞 陋屋에서 金桓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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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생 詩集 [※만경강萬頃江※]
[ 발문 ] -
강퍅剛愎한 시대의 그늘을 벗는
원형징原形質의 인간성 구원
- 김환생 시인의 시는 인간성 고양의 서정시다
소재호(시인, 석정문학관장)
김환생 시인은 시인이다. 필자가 그의 시집 말미에 시평설을 얹을까 하다가 몇 가지 이유로 발문을 쓰기로 작정했다. 그 이유인즉, 김 시인과 필자와의 여러 거지 관계성 때문이다.
시를 평한다는 점 한 가지에만 오로지 하기에는 많은 너스레(?)를 떨어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잡문을 쓰겠다는 어쭙잖은 선언인 셈이다.
김 시인을 처음 만난 것은 같은 중등 교직에 봉직한다는 연계성에서 비롯하였다. 그는 기전여고 교장으로서 필자와 교장단 협의회에서 만났고, 문단에서 같은 장르인 시를 쓴다는 동지로서 교류했고, 다시 고등학교 선후배 소위 학연이라는 연줄로 친숙해졌던 것이다. 그 후로도 수많은 만남에서 그의 인간성이나 성격이나 또는 그의 다양한 재주에 대해서 소상히 꿰뚫어 알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한편 교회 장로이다. 그것도 몇 십 명 넘는 큰 단위 장로협회 회장을 맡아 한껏 고도의 리더쉽을 발휘하고 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다. 도처에서 각양의 형태로 이웃 베풂을 실현하면서 신앙적 양심을 행동으로 구현하는 참된 지성인이라 일컬을 만하다. 그리고 그는 사람을 좋아한다. 어떤 사람이건 먼저 손을 내밀어 친교 맺는 일에 적극적이다. 그러니까 인간 존중의 모범을 보이며 스스로의 격을 아래에 두려하므로 만인의 존경을 받는다. 막무가내로 다른 사람에게 기독교를 선교하려 들지도 않고 가만히 소시민의 행적으로 생활을 펼치고 있는 겸양하는 시인이다.
석정문학관 사무국장으로 그를 모시려는 나의 시도는 저러한 그의 모든 성정이나 인품에서 유래했다. 사람 섬김은 문학관을 순례하는 수많은 계층의 인파를 맞이하기에 너무나 적정한 덕목이기 때문이다.
그는 맨 처음 대학의 약학과를 다녔다고 했다. 그러다가 순수 자연 과학을 공부하고 싶어 다시 화학과에 입학하였다고 했다. 그래서 그 후 그는 줄곧 화학 선생님이었다. 차츰 직위를 올려 딛고 중등 교장으로 퇴임했다. 그리고 문학에 전념했다. 화학에 몰두하던 과학인이 문학을 섭렵하려는 것은 너무나 오만한 무례(?)가 아닐 수 없다. 학문적 대칭 관계인 인문학과 자연과학과를 넘나드는 행적은 자못 무리인 듯싶었다. 그러니까 진정한 통섭通涉으로 나아가는 엄청난 과업을 실행한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중등 학창시절부터 암암리에 시단을 기웃거리며 자신의 잠재적 소양을 길러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느닷없는 생애의 변곡變曲을 자행한 것이 아니라 두 가닥행로를 병진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습작이라며 수 백편의 시를 깊은 서랍에 묻어둔 점으로 그리 유추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또한 그가 그렇게 무모할 정도로 이 일 저 일을 챙겨드는 성격은, 그는 무엇이든 어떤 종류의 사람이건, 일단 수용해내는 습성에서 출발한다고 보여진다. 기독교인인 그가 다른 종교인도 거침없이 받아들여 친교를 맺거나 가까이 다가선다. 여가가 있을 때는 사찰을 찾거나 향교를 찾아가 벽을 허물고 교섭한다. 그는 음악이거나 무슨 교양성 짙은 취미도 다양하게 받아들인다.
가히 전방위의 인성 갖춤으로 인하여, 가장 보통 사람으로서 매우 특별함의 전범典範이다. 이렇게 편식하지 않고 모든 사상事象을 수용함으로써, 인문학의 으뜸이라는 도저한 시문詩文을 거쳐듦에 걸림돌이 없었으리라는 추리는 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그의 인생관이나 깊은 사유思惟는 기독교적인 철리哲理에만 함몰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기독교 정신 외에도 유․불․선이 함께 융합되어 있음은 그의 시들 편편에 깃들여 있다.
불교 냄새의 시가 매우 많은 편수를 차지하고 있음에 필자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기독교 재단의 학교에서 근무했고, 종횡으로 아니면 수직 수평으로 기독교적인 성향의 사람들과 교화했던 김 시인이 이렇게도 엉뚱한 데가 따로 있는 것은 경이로운 사실일 터이다.
그는 또한 노 ․ 장 사상에도 연루되기도 한다. 임화유문林下儒門을 거침없이 넘나드는 것을 보면, 시의 길을 열어감에 있어서, 창도創道의 비상한 재질이 있는 바, 이는 전혀 기이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의 시 성향을 조망하면서, 서산대사가 주장했다는 유불도의 삼교 융화론이 상기된다. 삼교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시대의 흐름을 타고 발현되어야 한다는 주장인 것이다. 사실 한국인의 혈류에는 자의가 아닐지라도 이미 유불선이 유전인자화 되어있다. 변설에 아무리 능한 사람이라도 이를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무튼 그는 마냥 사람의 온기를 지닌 사람이다. 그를 화통和通하는 사람으로 보며, 그의 시를 화융和融하는 작품으로 감응하면서 이에 몇 편을 깊이 감상하려 한다.
그의 시들을 감상해보면, 시적 질료 선택에 탁월하다는 느낌을 갖는다. 대면하는 피사물에 선뜻 감정을 이입移入시켜가다가 퍼뜩 인간 정리로 변용해내는 재주가 현격하다. 문학이나 인간이나 간에 그 묘미나 향기는 전환점에서 유발된다는 정설에 매우 합당하다. 화두를 갑자기 뒤집는 그의 슬기가 시의 예질藝質을 고조시켜 낸다. 저 당나라 시인 두보가 말한 선경후정先景後情의 범례가 이에 흡사하게 접합된다.
그는 적당히 동양적 허무주의가 문맥의 내면에 잠재하면서 불교적 화두에 접목한다. 그의 시를 탐독해 들어가노라면 ‘이 뭐꼬’(「백양사 입구에 새겨놓은 글」)라는 화두가 연상된다. 화두란 불성의 오묘한 계시를 담은 선어禪語인바, 감히 필자의 우견을 우겨넣은 일은 아니지만, 그의 시와 이 화두가 교묘히 연계됨을 깨달을 수는 있는 것이다. ‘그래 인간사 한낱 티끌에 지나지 않아’ 등의 어의語意가 시구에서 투명하게 어리비침에 필자는 경탄한다.
그의 무아적無我的 대아적大我的 자연관은 그의 정신계를 무한히 확대한다. 설정하되 시의 구결점에는 대체로 무허無虛의 경지가 떠오른다. 불성의 언어와 도학의 훈도를 접목시키는 일은 아무도 해낼 수 없는 지고지난한 행위이지만, 감히 필자는 노자의 무위자연을 끌어다 붙일 수밖에 없다. 무아無我나 무위無爲는 서까래 한 차이라고 믿는 데서 기인한다. ‘스스로 그러한 대로’라는 엄숙한 선언은 저 무허의 광장에서 함께 어울려도 좋지 않겠는가. 말하자면 김 시인의 시들이 안개 속을 헤치면 가히 영산홍이요 철쭉의 상관성이란 말에 다름 아니다.
며칠
봄볕이 한창이더니
오늘 아침
영산홍이 피어났다
새빨갛게 피었다
핏빛보다
더 붉은 색
제 몸에서 꽃을 피우는 법을
영산홍은 어떻게 알았을까?
영산홍이 피면
꽃잎만 붉은 것이 아니다
꽃잎 가까이의
바람도
아지랑이도
햇볕도
온 천지가 모두 붉은 빛이다
영산홍은 온 세상을 모두
붉게 물들이는 법을 어찌 알았을까
-「영산홍映山紅」전문
이 시에서는 4연에서 시적 체질 갖춤이 매우 우수하다. 영산홍이 봄을 맞이하여 꽃 피우는 것은 평범한 자연의 순리이다. 그러나 죽은 듯이 동면하던 나무 가지가 저 현란한 색조를 빚어내는 신기함은 어떤 이적이랄 수밖에 없다. 작가는 이를 이적으로 보는 것이다. 이 예리한 통찰이 시를 구조하는 첩경인 것이다. 영산홍은 의인화되어 자신의 변환으로 시발하여, 온 천지를 그 이적으로 물들인다. 개별자가 대아大我에 전이한다. 꽃잎, 바람, 아지랑이, 햇빛, 그리고 온 세상을 붉은 물을 들이는 이 범상치 않는 환상적 발상은 참으로 경이롭다. 영산홍이 온 천지를 붉게 물들이는 일은 신비스런 형상이요, 범신론汎神論의 발안이다. 시인의 의도적인 환시幻視 환상幻想안 것이다. 흰두 사상에서, 개별의 영혼인 ‘아트만’이 온 세상의 모든 것 합일인 ‘브라흐마’에게로 전이되어 일체 만물이라고 일컫는 ‘옴’에 다가선다. 우주가 거대한 한 파동의 대양임을 이 영산홍에서 읽힌다. 교시敎示하는 바가 무궁무진하다. 이 시는 신비주의 영성을 띤다. 부활이며 영활靈活인 셈이다.
겨울
눈 내린 아침
흰 구름
하얀 산
구름과 산을
분별하기 힘든데
물 속
하얗게 언 삭풍朔風
아프게 흰
초승달의 등이
시리게 희다
-「초승달」전문
이 시는 자연과의 교감이 특출난다. 의인화된 초승달을 에워싼 모든 자연 정경이 흰 빛으로 통일된다. 흰 눈, 흰 구름, 흰 산, 흰 삭풍, 흰 달……
월백설백천지백月白雪白天地白이라는 당시 한 구절이 이 시에는 완벽하게 부합된다. 흰 색상은 모든 세상의 근원이며, 발원지이며 다시 귀의歸依해야 할 반환점이다. 오욕이나 오물로부터의 점염을 일체 거부하는 철저한 순수요, 무구요, 다시 무념무상의 경지이다. 그래서 또한 ‘스스로 그러한 대로’의 자연이다.
‘삭풍이 얼어서 물속에 잠긴 형용’은 시적 기교가 뛰어나다. 그리고 ‘달’은 고단한 인생의 삶을 상징하면서, 허리가 휘고, 아프고, 시린 흰 머리의 노인을 암시한다. ‘아프게 휜/초승달의 등이/시리게 희다’라는 종연은 시적 품격이 절상이다.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
달이
구름 뒤에 숨어 부르는 노래
전라도 여자들이
머리 풀고 부르는
구슬픈 노래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
구름은 구름대로
달은 달대로
노령 산마루에
깊은 수심愁心 춤으로 벗을 때
중평리 방죽에
몸을 던진 달님이
유명幽冥에 있는 몸
섧게 보여주는 푸른 물 속
거꾸로 선 산등성에 뿌리 두고
달빛으로 핀
연꽃잎
불심佛心이 스쳐 가는
꽃잎마다
백팔가지 번뇌가 씻겨
달무리로 떠오르는
내 영혼의 노래
강강수월래
강상수월래
-「달무리」전문
이 시는 5연이 절창이다. 생계生界와 명계冥界를 넘나드는 웅대하고 광활한 광장에 달, 산, 물, 연꽃이 등장하는데, 결국 절묘하게 한 떨기 연꽃에 초점을 찍는다. 이승 저승의 온갖 번뇌, 무한대의 환란이 연꽃으로 승화한다. 달무리는 연꽃에 얹혀 진여眞如를 맞는다.
이 시는 이동주의「강강수월래」를 연상시킨다. 민족의 애환이 민속놀이에 의탁되어 그 정한情恨이 유창하게 풀려가는 형상이다. 시적 형용이 춤추는 동작으로 묘사된다. 움직임과 정지됨이 연쇄되면서 선적禪的 사념思念이 유랑하면서 달밤의 서경을 펼치는 것이니 시적 품새가 자못 흥미롭다. 여기서는 서사적 동인動因이 부드럽게 운율적으로 굽이치는 형용이다. 더구나 불심으로 환치되는 연꽃이 등장하여 정중한 선정選定이 표상된다.
민속놀이→ 달빛이 서리는 호수의 서경→ 불심〔연꽃〕<오뇌의 심층, 가벼운 동적 이미지>, <정적이미지, 승화의 과정>, <선적이미지>→ 백팔번뇌의 정화〔달무리→ 민속놀이 <오성悟性의 잠재이미지>, <급박한 동적이미지, 해탈解脫, 법열法悅>
이런 구도를 떠올린다.
비에 젖는 것이
해묵은 적송赤松 뿐이랴
산 벚, 물푸레
마른 가지가 젖고
발 밑, 나뭇잎도 젖고
동해를 바라보는 해수관음海手觀音의
봉긋한 가슴도 젖고
젖은 가슴으로
호로병을 기울이는
관음觀音은
사바에 무엇을 부어주고 싶을까
설악을 찾아온 날
겨울비에 젖는다
빗물이 흐르는
몇 안 되는 머릿칼을 올리며
낙산사에 오르면
반쯤 젖은 몸으로
해수관음이 방긋 웃는다
나도 관음처럼
방긋 웃는다
‘사노라면 가끔씩 비에 젖을 때도 있는 법이여’
비에 젖지 않는 날은
달빛에 젖고
-「낙산사 해수관음」전문
불교에서 대승불교라 함은 중생구제의 적극적 대아大我확대로 이를 정의한다. 무한대아의 설정은 진여眞如한 마음의 우주화까지를 일컫는다고 한다. 원효는 온전히 하나 된 진여한 마음, 즉 일심은 원융회통圓融會通의 주체요, 화쟁의 주체인 까닭에 일체의 공덕의 근원이 되며 평화와 행복의 원천됨으로 보았다. 이 시에서 시인은 이러한 법리法理에 편승한 사유에 젖는다.
온 세상 비에 젖음은 사바세계의 현상태現像態이며 관음의 호로병에 차오른 물은 불성의 은혜로움일 것이다. 호로병을 기울여 사바세계를 구제하려는 저의를 시인은 그의 영성靈性어린 시각으로 통찰한 것이다. 빗물을 정화수로 변환시키는 이적은 시인이 연출한 선의이다. 또한 관음의 미소가 나의 미소를 유발시키므로 저 석가의 수단설법을 적시摘示한다. 그야말로 염화미소拈華微笑요 심심상인心心相印의 경지이다. 매우 선적禪的 이미지이다.
산을 오른다
갈대 숲에
버려진 어떤 동물의
하얀 뼈
산 바람에
계곡 물에
새벽마다 씻기어
저리 하얀가!
먼 훗날
내 뼈는
어떤 빛
어느 형상形象으로 발견될까
나는
그것이 두렵다
내 불순한 언어들이
마침내 무의미의 촉루로 들어남을……
-「두려움」의 전문
이 시는 작가의 통시통공通時通空의 역사관을 응축시켜 놓았다. 사소한 일상을 내 내부로 이끌어와 내 관념화하고 다시 이를 상징적으로 형상화하는 기법이 놀랍다. 서산대사가 자기 초상화를 보며 했다는 말이 상기된다. ‘지금은 저것이 나이지만, 내가 죽은 후엔 내가 저것이겠구나’라는 경구이다. 다 해탈하고 모든 형상을 지운 뒤, 그리고 인간의 본질을 거둔 뒤, 잔상의 한 톨쯤 되는 한 조각 촉루는 나의 존재 자체도 표백시킨다. 먼 미래를 내다보면 사려가 잔잔한 두려움을 이끈다. 동양적 허무주의가 내밀하게 도사린다. 이 시가 그냥 철학적 인문학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시적 구조로 돌올함이 감동을 준다.
심산深山 솔잎이라
정이 없으리
해질 녘 산마루
저녁놀이 기울면
무덤 위로 흐르는
기러기 울음
마음 한번
어긋 가면
불가佛家의 연緣도
급하게
식을 것을
늙은 솔 굽은 등
관세음觀世音 넉넉한 미소로
세워질 수 있을까
어수선한 밤 꿈에
땀이 흐른다
어둠을 벗고
그윽한 먼동이고 싶다
-「꿈」의 전문
‘꿈’의 단상으로도 우리는 시의 감수성에 흠뻑 젖는다. 역시 불교적 색채가 짙다. 김 시인이 의외로 많이 불교 색채의 시를 구상함은 짐작컨대, 불교가 기독교보다 그 교리나 지향하는 신앙심이 더 심오하다거나 가치 우위에 있다고 여겨서가 아니라 불교적 언어 구사가 더욱 비약적이라거나 괴변적(?)이어서, 시의 테크닉과 불교의 메타포가 유사함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선禪을 의미함에도 소위 無小說로 대입하는 모습이 이를 증명한다.
이 시도 공감각적共感覺的 기교가 빼어난다.
밤마다
만경강엔
눈물이 흐른다
가난을
강물에 풀면
한 천 년쯤
솔松빛으로 흐를까
평생을
빈손인 가을에도
숯불 다림질로
가난을 곱게 펴 오신
어머니
어머니의 굽은 등이
노령처럼 서러운데
기러기
시린 울음
만경강을 맴돈다
별빛으로 흐른다
-「만경강」전문
강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영상한다. 만경강은 서러운 민족의 역사 한 굽이이다. 형극의 가시밭길을 걸어온 민족의 수난사이다. 우리 전라도 사람들 가난의 흔적이며, 한 맺힘의 형모이며, 슬픔의 잔상이다. 만경강은 더구나 곡식을 거두지 못한 시린 겨울의 공허이다. 빈손의 허망이다. 만경강은 그러므로 여지없이 우리네 어머니 모습 그 자체이다. 이때 기러기는 시린 울음을 강으로 붓는다. 다만 결구에서 애절한 심경이 별빛으로 승화하는 반전을 맞는다.
‘어머니의 굽은 등이/노령처럼 서러운데’는 매우 높은 수준의 절창이다. ‘문을 열자 앞 산이 이마에 차다’고 한 정지용의 유사한 시구처럼 테크닉이 범상함을 벗는다. ‘형상의 감성화→ 굽은 등이 서러움’으로 치환되는 절묘한 수법은 촌철살인寸鐵殺人이다.
산수유, 진달래꽃, 복숭아꽃, 살구꽃
길가의 민들레꽃, 오랑캐꽃도
색색으로
함성들인가
산다는 일
그러니까 세상살이라는 거
어차피
몇 단씩 지워진 짐
제 분수만큼 부리다가
때가 되면 훌훌 털고 갈 것을
-「아우성」의 일부
봄이 되어 백화난만하는 정경을 재미있게 표현한다. 꽃들의 만개를 아우성으로 비유함은 절묘한 공감각적 표현이다. 소위 ‘소리 없는 아우성’쯤 되는 양이다. 만발한 꽃들은 즐겁게 봄맞이 하는 수많은 군중의 정서를 대신한다. 그러나 역시 낙화를 예비하는 흥망성쇠의 운영성과 자연의 섭리 그 순환의 법칙을 교훈적을 담는다. ‘때가 되면 훌훌 털고 가는 인생인 것을’ 또한 색즉시공色卽是空이란 변환을 암시하고 있다.
듣기만 하는 신앙은 눈물이 없습니다
보기만 하는 신앙은 아픔이 없습니다
입술로만 하는 신앙은 괴로움이 없습니다
더러 가슴으로만 하는 신앙도
슬픔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온 몸으로 부딪히는 신앙은
뼈를 도리는 고난입니다
구원은
바로 그때, 거기서부터만 시작되는 은혜입니다
-「구원」의 전문
신앙의 요체를 연쇄법으로 구현한다. 진정한 신앙은 눈물, 아픔, 괴로움, 슬픔, 뼈를 도려내는 고난 등을 함유해야 한다고 선언한다. 이때에야 비로소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며 은혜가 시작된다고 했다. 기독교적 색깔이 부요富饒한데 시로서도 매우 성공적이다. 이는 마치 시가 통렬한 심금울림에서 숙성된다는 의미와 그 궤를 같이한다.
이 모든 신앙의 본령들의 큰 가마는 ‘사랑’이라고 일컬어진다.「로마서」에 이르기를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확증해 준 것이라고 했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흔히 대속代贖이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그것은 죄인들을 용서하며 구원하기 위한 큰 사랑이요, 섬기는 사랑이며 희생하는 사랑이다.
진정한 신앙인은 사람들 고통 속으로 들어가 함께 이를 자기 것으로 체험하며 자타의 구원을 위해 열심히 기도함으로써 은혜의 빛이 내린다는 뜻에 다름 아니니, 그 고매한 성정이 바로 온전한 시심의 발로인 것이다.
이렇게 몇 편의 시를 감상하면서 시 전편에 흐르는 정신이나 사조나 심경을 약간은 이해할 수 있었다.
김 시인은 시를 누리면서 양질의 삶을 향유한다고 보아진다. 그의 단정한 외모 못지않게 단아한 인생관으로 무장하며, 사람을 존중하면서 아름다운 정서를 가꿔가는 인생운영이 칭송받을 만하다고 여겨진다.
그의 문학 정수리에 다가가지도 못한 채 졸렬한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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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사의 글 ◆
여기에 내 놓는 글들은 상당히 오래 전에 쓴 시들이 대부분이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쓰고 고쳐보고, 그렇게 몇 년씩 묵혔다가 다시 읽어보고, 고치고, 시를 쓰는 일이 참 힘들다는 것을 조금씩 배워나가던 때의 어려움과 함께 그 작업이 또 다른 기쁨과 축복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시를 통해 나를 단련시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자란 곳은 기린봉 아랫마을 ‘마당재’이다. 초등학교 1-2학기 때 ‘남노송동’으로 이사와 6-1학기 때까지 거기에서 살았다. 지금은 옛 모습을 살펴볼 수 없이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선 마당제와 남노송동을 잊지 못한다. 그곳을 흐르던 도랑과 언덕과 골목길 등이 내 마음 깊은 곳에 새겨져 있다. 그것이 바로 백제 땅이고, 노령의 줄기고, 만경강을 이루는 물줄기였음을 알게 된 것은 먼 훗날의 일이었다. 그『만경강萬頃江』을 첫 시집의 표제로 삼는다.
- <머릿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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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환생金桓生 시인∥
∙ 1947년 전북 전주에서 출생
∙ 월간 『순수문학』 시 부문으로 등단(1997)
∙ 흙동인 회장 역임, 갈대동인 등으로 활동했다.
∙ 전주풍남초등학교 / 전주북중학교 / 전주고등학교 / 전북대학교 문리대 화학과 졸업 / 원광대학교 대학원 화학과 졸업(이학석사)
∙ 순천매산여자고등학교장 / 전주기전중학교장 / 전주기전여자고등학교장
∙ 전북문인협회 / 전북시인협회 / 전주문인협회 / 국제펜클럽 전북위원회 회원
∙ 석정문학관 사무국장(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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