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교만한 황후는 이런 관례와 전통을 무시하고 버젓이 개선식에 참가하여 자신의 막강한 힘을 과시했다. 과도한 허영심 못지 않게 물욕에 대한 집착도 강해서 한번 눈독을 들인 재물은 갖가지 음모를 짜고 누명을 씌워서라도 가로채고 말았다. 게다가 넘치는 욕정을 주체하지 못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대담한 애정 행각까지 벌였다.
메살리나는 성욕이 무척 강했다. 늙은 남편이 자신의 욕구를 감당할 수 없음을 알아차린 후부터는 불륜을 통해서 성적인 굶주림을 해소했다. 처음에야 황제의 눈치를 살폈지만 무신경한 남편을 속이기가 식은 죽 먹기임을 알게 뒤부터는 마음껏 쾌락에 몸을 던졌다. 그녀는 궁정 안의 은밀한 방을 밀회 장소를 만들어 애인들과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육욕의 향연을 벌였다. 미친 듯이 향락에 탐닉하면서 동침을 거부한 남자는 가차없이 죽였다.
모든 로마인들이 화냥질을 일삼는 황후의 추잡한 행동에 치를 떨었지만 정작 황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척 아내의 행실을 문제삼지 않았다. 메살리나의 방탕한 행실은 훗날 타키투스, 카시우스 디오, 수에토니우스 같은 역사가들에 의해 낱낱이 밝혀졌다.
그녀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은 남자는 원로원 의원이며 집정관인 미남 가이우스 실리우스다. 그에게 홀딱 반한 메살리나는 실리우스와 정식으로 결혼하고자 마음먹었다. 열정에 눈이 뒤집힌 황후는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실행할 수 없는 일을 저질렀는데, 황제를 감쪽같이 속인 후 그가 궁전을 비운 틈을 타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지참금까지 버젓이 내며 성대한 결혼식을 거행하였다.
황제를 기만하고 법질서와 기강을 짓밟은 가증스런 황후의 행동에 진저리가 난 로마인들은 두 남녀를 엄벌에 처하도록 황제에게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나 유약한 황제는 실리우스에게는 사형 선고를 내렸지만 메살리나의 애원에 마음이 흔들렸던지 자꾸만 처벌을 미뤘다. 황제의 결단을 기다리다 지친 측근들은 클라우디우스와 몰래 공모하여 루쿨루스 별장에 숨어 있던 황후를 찾아내 칼로 찔러 죽였다. 이때 그녀의 나이 불과 스물세 살이었다.

Gustave Moreau,
Messalina,
1874, Oil on canvas, 95.28 x 53.94 inches / 242 x 137 cm
Gustave Moreau Museum, Paris, France
희대의 창부 메살리나의 문란한 남성 관계, 낮에는 고귀한 황후요, 밤에는 비천한 매춘부인 이중 생활, 불같은 사랑에 빠져 파멸을 자초한 드라마틱한 일생은 예술가들의 호기심을 한껏 자극했다. 악마나 요부의 이미지에 매료된 모로가 관능적인 메살리나를 그리면서 창작의 물꼬를 텄다. 그는 메살리나를 살로메와 쌍벽을 이루는 악독한 여인의 전형으로 보고 에로티시즘이 물씬 풍기는 새로운 요부를 창조했다.

오브리 비어즐리Aubrey Beardsley,
Messalina 메살리나,
1897, 종이에 펜과 잉크, 17.5*14cm
영국의 상징주의 화가 오브리 비어즐리도 모로처럼 잔인한 요부에 매혹당했다. 비어즐리는 모로보다 훨씬 대담하고 충격적인 방법으로 메살리나를 묘사했는데, 성욕의 화신인 메살리나가 손을 불끈 쥐고 가슴을 풀어 헤친 채 궁정의 계단을 오르는 장면을 그렸다. 질끈 다문 입술, 살벌한 기운이 감도는 매서운 눈길은 메살리나가 피에 굶주린 잔혹한 색마라는 사실을 금새 느끼게 한다. 비어즐리는 '조숙한 천재'라는 명성에 걸맞게 이처럼 간결한 아르누보 양식의 선만으로 욕정에 눈이 멀 메살리나의 섬뜩한 모습을 재현해냈다.

툴루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 ,
메살리나Messaline,
1900~01, 캔버스의 유채, 99.1*72.4cm
로트렉도 악명 높은 로마의 황후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그는 1900년 12월 14일 보르도의 그랑 테아트르에서 이지도르 드라라의 오페라 <메살리나> 초연을 본 후 영감을 얻어 메살리나를 그렸다. 주인공을 맡은 테레즈 간의 미모와 연기에 감명을 받아 곧바로 작업실에 틀어 박혀 밑그림을 그리며 메살리나 연작에 몰두했다. 총 6점인 메살리나 연작은 로트렉에게 더 없는 기쁨을 안겨주었다. 그는 죽마고우인 주아양에게 그림들을 보내며 "나는 매우 만족스럽네!"라고 흡족한 심정을 알리는 편지를 썼다.
연작 중의 한 작품을 살펴보자. 이 그림은 코로스가 도열한 가운데 메살리나가 오만한 표정으로 계단을 내려오는 장면이다. 병사들을 압도하고 있는 메살리나 황후의 붉은 옷은 지칠 줄 모르는 그녀의 성욕과 열정을 상징한다. 이 그림을 기릴 당시 로트렉은 죽음의 문턱에 서 있었다. 알코올 중독의 후유증과 지병의 악화로 산송장이 된 그는 삶의 마지막 정열을 쥐어짜 메살리나를 남자의 욕망에 불을 지르는 매혹적인 존재로 묘사했다.

Thomas Couture,
The Romans of the Decadence,
1847, Oil on canvas,
183.46 x 304.33 inches / 466 x 773 cm,
Muse orsay, Paris, Fr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