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간만에 커다란 거울 앞에서 제 얼굴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거울도 보지않고, 화장품도 거의 바르지않고, 매일 옷이야 갈아입지만 손에 집히는대로 대충 입고, 샤워도 며칠에 한번, 지난 두 달간의 치열한 시간다툼 속에 제 얼굴에는 기미와 깡마름이 차곡히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태균이랑 준이데리고 미용실에서 머리깎으며 커다란 거울 속에 제 얼굴이 낯설어서 고개를 자꾸 돌리게 됩니다. 연령상 충분히 다가오는 이순耳順을 훌쩍넘긴 늙은 형상은 어쩔 수 없지만 이번 여름 유난히 고단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살아온 세월의 흔적을 바탕으로 많은 것을 정리해야 하는 시기에 자신만은 예외이고 싶었던 자만을 돌이켜보게 되기도 합니다.
이발한 태균이의 인물이 훤해지니 보기좋습니다.
아마도 앞으로 더이상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되는 일이 올해 여름에 했던 일일지 모릅니다. 앞으로 써야할 에너지를 다 끌어다 쓴 양 거의 기진맥진 상태인데 외식을 극도로 꺼리는 태균아빠까지 합류해있으니 5명 아침 저녁식사 수발은 거의 종가집 수준입니다. 6월말 합류해서 9월 중순을 향해가는데 단 한번의 외식도 배달도 없었으니 온전히 손수 만든 집밥의 실체는 저의 노고였습니다. 그나마 공부가 취미인 태균아빠는 아이들 센터데려다주고 종일 도서관에 머무니 다행입니다.
잘먹는 성인 1인분을 먹어대는 수준으로 훌쩍 바뀌어버린 완이까지, 원래 종일 찔끔찔끔 먹어대는 습관이긴 하지만, 끼니 때마다 눈을 반짝이며 음식을 기다리는 분위기는 예전 아이의 모습이 아닙니다. 더우기 밥은 전혀 먹지않고 반찬위주나 면위주로만 먹으니 별도의 완이 식사준비까지 바쁨보탬은 더하기가 아니라 곱하기 수준이었습니다.
어제 수요일 비바람이 심해지는 통에 바다를 갈 수 없었지만 그 전조에 바다가 몸부림을 치던 화요일까지도 몇 시간을 완이지키기에 시간소요. 물 속에서 자꾸만 하의를 벗어대니 소리질러대기도 지칩니다. 화요일에는 '그래 지 팔자소관이려니'하는 경지에서 목청낮추기로 했습니다. 전두엽은 커녕 편도체 활성화도 아직 덜 되었으니 사람으로써의 잘잘못을 지적해도 우이독경牛耳讀經, 마이동풍馬耳東風 일 뿐입니다.
그나마 이번 여름, 많이 컸다는 증거는 과거같으면 옷이며 신발이며 벗으면 나몰라라 내팽겨쳤다면 그래도 올해는 열에 서너번은 자기물건 챙겨가지고 온다는 것. 과거에는 벗고나면 무작정 분실, 이번 여름 초기에도 그러더니 많이 좋아졌습니다. 보충제 덕인듯 싶습니다. 세로토닌도 그렇지만 콜린의 효과일겁니다. 콜린의 효과가 정신적인 것까지는 그렇지만 인지개선에는 확실히 도움이 됩니다.
며칠 전에는 태균형아 밤마다 쓰는 일기공책을 가지고와서 의미있게 들여다봅니다. 뭐만 손에 잡았다하면 돌려대는 자동습관에서 의미있게 관심갖는 모습을 보니 변화의 조짐들이 큽니다. 폭풍투입의 효과가 분명 있지만 그럼 뭐합니까? 곧 집으로 돌아갈텐데요. 저는 어쩔 수 없는 포기모드입니다.
화요일 휘몰아치는 파도 속에서도 멀리나가 수영을 해대는 태균이때문에 어찌나 가슴을 졸이며 돌아오라고 소리를 쳤는지 남의 자식 돌보다가 내자식 놓치는 건 아닌지 잠시 아득했습니다.
그러니 수요일 수영가자는 태균이를 겨우 진정시켰더니 마당에서 자전거라도 타야겠다고 부득불 빗 속에서도 마당을 돕니다. 한번 몸에 익히면 결코 빼먹지않는 습성은 비록 강박수준일지라도 요즘은 주로 긍정적인 부분에서 발휘되니 다행이다 싶습니다.
내일 금요일 이제 배타고 며칠 제주도를 떠나게 됩니다. 이제는 많은 것을 정리해야 될 시기이니 이번 육지행도 바쁨 그 자체이겠지만 24/7 (하루종일, 일주일 내내) 체제의 완이돌봄보다야 얼마나 수월하겠습니까?
그렇게 2024년 고단한 여름은 끝나가고 있지만, 지구의 기온변화로 한여름같은 9월날씨가 진저리쳐지긴 합니다. 그래도 완이에게는 고마운 땡뼡이었을지 모릅니다.
완이가 태균이만큼만 자라길 바랄 뿐이지만 지금은 그저 천덕꾸러기 신세만 면하길 바래야합니다. 엽기행동의 모든 요소가 이미 습관화되어 있는데 신체나이는 멈출 줄 모르고 고속질주해가니 11살 나이에 생후 6개월도 안된 뇌성장이니 이 갭을 누가 메꿔주리오! 완이의 많은 결과들 속에는 우리가 배워야 할 점들이 수두룩합니다.
뭔가를 제대로 성공하기 위해서 만 가지 실패를 포기하지않고 거듭해야 한다는 삶의 기본논리를... 우리는 새겨야 하는데, 몇 가지 노력도 하지않는 결과가 얼마나 큰 괴물로 덩치를 키우는지 이번 여름 그 현장에서, 그것도 최악의 기후 속에서, 그걸 지켜보며 참아냈다는 것이 참으로 위대한 생존입니다.
첫댓글 아고 엄청 걱정했습니다.
뭔 일이 생겼나 하고요,
지치고도 남죠.
이해 됩니다.
육지 일도 잘 정리되길 바라고요.
태균씨 운동 루틴 넘 부럽고 참 좋다 좋다 탄복합니다.
대표님 넘 자신을 혹사 시키지 마세요.
🥀🙏🏻🌻
수고했다!
거의 매일 카페에 글을 올리시는데 일주일 넘게 글이 올라오지 않아 좀 걱정했습니다ㅠ
완이가 집에 가면 대표님만의 쉼을 가지셨음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