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29일 화 PM7:30 아산시청 4층 시민홀 3만원.
홍순관은 '나팔꽃'멤버여서인지 공연 스타일이 '나팔꽃'이랑 비슷한 거 같네요.
보실분 제게 연락 주시면 좋은 일이 잇을 겁니다요.
혹시 궁금하신 분들 아래글 참고하시고 검색하면 노래도 들을 수 있어요.
어린이도서연구회가 만난 사람
평화를 노래하는 노래꾼 홍순관
편집국
6월 즈음이면 평화와 전쟁에 대해서 한번쯤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편집국에서는 평화박물관건립모금공연 <춤추는 평화> 백 번째 공연을 앞두고 있는 가수 홍순관 님을 만났습니다. 더불어 평화박물관에 대한 소개와 평화를 주제로 한 책 목록도 함께 싣습니다. 홍순관 님은 정신대할머니돕기공연 <대지의 눈물〉을 1995년 시작해서 2000년 동경국제법정 공연 등 세계 각국에서 정신대 관련 공연을 해왔습니다. 또, 2005년 링컨센터 공연을 계기로 우리 가락과 정신을 세계에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지금은 평화박물관건립모금을 위한 <춤추는 평화>, 기후온난화를 막기 위한 <착한 노래 만들기>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오는 6월 7일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춤추는 평화> 100회 기념 공연을 합니다.
- 〈춤추는 평화〉라는 이름부터 심상치 않은데요. 이 공연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뭘까요?
소소한 개인적인 계기와 대의적 계기가 있어요. 개인적 계기는 제가 정신대 할머니 돕기 활동을 하면서 문득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무실 사람들 얼굴이 평화롭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됐어요. 워낙 박봉에 험한 일들을 하니까 속상하고 지친 게 얼굴에 드러나 있더라고요. NGO 하는 분들이 대부분 그러지 않을까 싶어요. 사람을 위해서, 착한 세상 만들기 위해서 일하는데 막상 본인은 행복하지 못하고 평화롭지 못한,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신명나게 해야지. 행복하게 해야지. 그래 평화박물관을 생각했는데……, 살다 보면 별 거 아닌 게 크게 작용할 때가 있어요.
- 그렇군요. 우리 회원들 얼굴 좀 잘 살펴봐야겠는데요. 대의적 계기도 말씀해 주세요.
평화박물관을 만들기 위한 모금운동의 하나로 공연을 하는 거죠. 한국이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데 전쟁기념관만 있고 평화박물관이 없어요. 제가 생각하는 평화는 단순히 전쟁하고 상치되는 개념이 아니에요. 결국 돈 때문에 전쟁을 하면서 평화 때문에 전쟁을 한다고 하잖아요. 말이 안 되죠.
- 이미 전쟁기념관이 있는데요, 평화박물관을 따로 굳이 만들 필요가 있을까요?
전쟁기념관은 이름부터 이상해요. 전쟁을 어떻게 기념하나요. 말 자체가 넌센스죠. 우리가 생신을 축하한다고 하지 장례식 가서 축하한다고 안하잖아요. 100번 양보해서 전쟁을 기억하고 평화를 상기하기 위해 전쟁기념관을 만들었다는 말을 인정한다고 쳐요. 그런데 만든 내용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아요. 장갑차, 전투기, 탱크 이런 걸 전시했어요. 한국 군인은 어른 크기고 인민군은 어린이 크기로 작게 만들어 놨어요. 전쟁기념관은 평화를 위한 게 아니에요. 일방적으로 북한을 무시하고 폄하하는 의도인거죠. 어떤 작전, 어떤 무기로 승리를 거두었다, 몇 사람을 죽였다, 그래서 승리를 했다, 분단과 휴전을 승리로 왜곡시켰어요. 이런 전쟁관, 역사관을 가지고는 평화를 만들 수 없어요. 전쟁의 참혹함을 기억하고 평화의 소중함을 상기시키기 위해 만든 전쟁기념관이 아니라 결국 ‘반공’을 이야기 하고 있는 거예요. 독립기념관도 마찬가지예요. 주차장에서 주차하고 본관까지 들어가는 길이 너무 멀어요. 그렇게 권위적일 수 없어요. 전체 건물이 7개 관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정신대에 관한 사료와 전시물이 조금밖에 안 돼요. 거대한 규모에 비하면 정신대 자료는 형식적이고 부족하죠. 독립기념관이나 전쟁기념관 모두 규모만 컸지 볼 게 없어요. 제가 생각하는 평화박물관은 그렇게 으리으리하고 권위적이며 화려한 공간이 아니에요.
- 그럼, 홍순관 님이 생각하는 평화박물관은 어떤 곳일까요?
평화박물관은 우선 정확하고 객관적인 사료가 풍부하게 많이 있는 곳이에요. 우리가(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가지고 있는 사료들이 많아요. 진짜배기 사료들, 막 뚜껑을 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올 수 있는 사료들이 풍부하죠. 또 무엇보다 기존의 박제된 박물관이 아니라 좋은 프로그램이 펄펄 살아 있는, 평화를 느끼고 만지고 보고 듣고 할 수 있는 곳이죠. 매일 프로그램이 있어서 외국 사람들에겐 한국의 명소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평화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해요. 전 세계 평화를 갈구하는 사람들이 와서 심포지엄, 세미나도 열고 수다도 떨 수 있는 곳. 음악, 미술, 연극, 영화 등 모든 것들이 전시되고 관련 정보를 들을 수 있는 공간을 꿈꾸죠. 또 하나 더해서 입양아나 외국 사람들, 한국을 전혀 경험하지 못한 해외 동포 3, 4세들이 한국을 밝고 긍정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으로 만들어 싶어요. 난 이런 걸 꿈꾸고 있는데, 그걸 사람들이 모두 다 같이 꿈꿔야 가능한데……, 힘들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아요.
- 평화박물관은 기존박물관과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군요.
그래요. 전시할 자료가 아무리 많아도 그 자료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 지에 따라, 동기와 목적에 따라, 명분이 뭐냐에 따라 내용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어요. 동기가 불순하면 아무리 좋은 사료를 갖다놔도 삐딱해지거든요. 우리는 기왓장 하나를 가지고 역사를 유추할 수가 있지요. 내가 가진 동기와 명분에 따라 엄청난 이야기 하나를 만들 수가 있는 거죠.
- 우리 사회의 보수 우익 쪽과 좀 거리가 있어요. 어떤 비판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평화에서 거리를 둔다는 건 있을 수 없어요. 그게 그거지. 진보, 보수 따로 하면 평화가 안 되잖아요.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고 따로 살면 평화로워지나요? 그 사람들도 평화를 바라겠죠. 자기 식구들이 죽는데 자기도 죽는데 전쟁을 하고 싶겠어요? 그런데 전쟁을 바라지 않으면서 전쟁을 하게 돼요. 왜? 더 잘 살려고. 그게 바로 제국주의죠. 자기 잘 살려고 전쟁을 일으키는 건데 결국은 자기가 죽는 거 알아야죠. 그래서 다 같이 평화박물관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돼요. 진보만 참여한다고 되지 않아요. 당연히 보수도 확 끌어당겨야죠. 그래야 평화박물관이죠. 그렇지 못하면 ‘어떤 단체’ 밖에 안 돼요. 그래서 훨씬 더 어려워요.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끄집어 와서 같이 평화를 만들어야 하니까요.
- 공연이야기 좀 할까요? 평화박물관 건립을 위한 첫 공연은 미국에서 하셨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지요?
네, 애틀랜타에서 했어요. 그곳은 남북전쟁 격전지고 또 인종차별이 가장 심했던 곳이에요. 그리고 그 땅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태어났어요. 이런 게 하늘의 유머, 역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1월 17일 공연 당일이 바로 킹데이, 공휴일이었는데 그때까지는 킹 목사의 부인 킹여사가 살아 있었어요. 킹여사가 킹데이를 만드셨거든요. 그날 아침에 같이 행진을 하고 저녁에 공연을 했습니다. 저에게 뭐 그런 의미가 있어요.
- 공연을 2005년부터 시작했으니 올해 7년째네요. 년 평균 15회 정도 공연을 하셨어요.
횟수가 너무 적어요. 정신대공연은 2년에 100번을 했거든요. 1년이 52주인데 한 주에 한 번씩 했는데. 정신대공연은 할머니라는 실체가 있고 사실 동정표라는 게 있어요. 평화, 평화박물관은 상당히 추상적으로 들리나 봐요. 그래서 공연을 많이 못했어요.
- 목표액이 100억으로 알고 있는데요.
첫 목표액이 100억인데, 한 30억 정도만 모여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뭐, 마늘밭에서도 나오는데. 땅만 잘 사면 되나요? (웃음) 그러면 안 되고, 여하튼 돈은 무섭지 않아요.
- 공연을 하실 때 맨발로 하는 이유가 있나요?
어떤 무장해제의 의미라고 할까요? 문명을 상징하는 것 중 하나가 옷이죠. 우리는 문명을 입고 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인간의 문명이 결국은 평화를 깨트려버렸단 말이죠. 반성과 각성의 의미에서 문명을, 그 상징을 해제하고 싶은데, 차마 옷을 벗을 수는 없고 양말과 신발을 벗는 겁니다. 예전에 발목지뢰 반대 단체가 노벨평화상을 탔는데 대표 조디 윌리엄스가 상 타러 갈 때 청바지 입고 맨발로 갔거든요. 저도 링컨센터 공연할 때 진 바지 입고 맨발로 했어요. 링컨센터는 서기 어려운 곳인데, 그런 무대에 맨발로 진 바지 입고 올라가는 건 쉽지 않아요. 적절하다 싶으면 전 맨발로 올라가요.
- 100회를 맞는 소감은 어떠세요?
100회 기념공연을 하는 게 생색내기용으로 보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지금 박물관 건립공연이 7년차인데 그 흐름을 아직 못 잡은 것 같아서 일종의 전환점으로 삼고자 100회란 이름을 걸고 하는 거죠. 그동안 사람들에게 평화라는 걸 인식시키는 게 참 어렵다는 걸 느꼈어요. 공연 자체는 쉬운데 평화를 이해시키는 게 너무 힘들어요. 우리가 그냥 평화란 말을 참 많이 사용해요. 평화의 댐, 평화양복점, 평화슈퍼마켓, 평화꽃집 등등 평화에 대해 말하면 진부함, 식상함을 먼저 느끼는 것 같아요. 과연 평화란 무엇인지, 왜 이걸 반드시 해야 하는지 늘 고민해요. 그러다보니, 100번의 공연은 결국 100번의 설득인 셈이죠. 인식 변화를 위한 100번의 설득 기념공연이 되나요?
- 왜 그렇게 어려울까요?
평화가 쉬우면 굳이 이런 공연을 할 필요도 없겠죠. 어떻게 보면 우리 인간은 평화를 절실히 원하면서도 평화를 잘 몰라요. 뭐가 평화인지. 내가 취직을 한다거나, 애들이 좋은 학교에 입학했다거나, 내가 직장생활을 잘 해서 승진했다거나 이런 걸 평화롭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진짜 본질과 멀거든요. 또 그런 걸로 평화를 얻을 수도 없고요. 결국 사람들은 평화를 원하는 게 아니고 자기가 편안한 걸 원하고 있어요. 그걸 평화라고 착각하면서. 그런데 자기가 편안하다는 것은 다르게 생각하면 극도의 이기주의일 수 있어요. 내가 편안하기 위해선 누군가가 희생을 해야 하고 누군가가 불편해도 된다는 방식은 잔인한 거죠. 제가 늘 하는 이야기지만 꽃 한 송이 피었다고 봄이 온 게 아니고, 다 함께 피어야 봄이지요. 세상천지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야만 봄이 확실하게 왔다는 거죠. 남한도 평화고, 북한도 평화고, 지구촌 전체가 평화라야 이게 평화인 건데 결코 쉽지 않아요. 귀찮으니까, 불편한 진실을 바라보기 불편하니까, 괜히 관여하기 싫으니까. 나만 편하면 된다는 가치관으로는 진짜 평화를 생각하고 실천한다는 게 어렵죠. 내가 지금 편안하다고 결코 평화로운 게 아니라는 진실을 이해하지 못해요.
- 그러니까 사람들은 나만 편하면 평화롭다고 생각하는데, 편안하지 않기 때문에 평화를 간절히 원한다는 건가요?
정말 문제는 사람들은 내가 편한지 안 편한지도 몰라요. 그게 어려운 거예요. 문제의 본질, 핵심은 이거예요. 내가 지금 편안한지 안 편안한지, 내가 지금 인간적 대우를 받고 있는지 안 받고 있는지 이런 거를 인식하지 못하는 거죠. 더 쉽게 말할까요? 내 밥상에 올라오는 음식들이 유전자 조작이 된 건지, 이게 FTA하고 어떻게 연결이 됐는지, 내가 먹는 것들이 진짜로 몸에 좋은 건지, 혹은 내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 혹은 식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어떤 구조로 나한테 온 건지 인식하지 않죠. 인식하지 않으니까 평화에 대한 개념이 없는 거예요. 이런 모든 것들이 다 평화이야기예요. 예를 들어 농촌이 무너지면, 땅이 죽으면 우리가 먹는 농산물들이 다 사라진단 말이죠. 먹을거리가 없는데도 과연 언제까지 편안할 수 있을까요. 이 모든 것들이 다 평화의 개념인데 이걸 인식하지 않아요. 지극히 개인적인 얘기인데, 전 고기를 안 먹어요. 제가 고기를 안 먹는 건 우리 인간이 동물들에게 쏟는 폭력성이 도를, 그것도 너무 그 한계치를 넘었기 때문이에요. 평화롭지 못하죠. 인간으로서 동물들에게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무슨 운동을 해서 안 먹는 게 아니라 그 평화롭지 못함이 부끄럽고, 정말 미안해서 못 먹는 거예요.
- 평화는 지구의 생태, 환경문제와도 연관되어 있군요.
그래요, 맞아요. 온난화는 단순한 날씨의 문제가 아니라 평화하고 직결된 문제죠. 온난화는 자본주의의 대량생산체제 때문에 발생한 문제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내 일이라고 생각 안한단 말예요. 공생공멸인데 다 죽고 다 사는 이야기인데 말이죠. 또 일본에 지진 일어났을 때 우리나라는 안전하네, 위험하네 얼마나 겁을 냈나요? 뉴스에만 안 나오면 금세 잊어버려요. 원전은 어떻고요. 눈에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없고, 형체도 없는 그 무서운 방사능한테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당할지 모르는 이 찜찜한 현실을 인식하지 않는단 말이에요. 원전 사고 터지고 첫 비 왔을 때 난리였어요. 우산에, 우비에 방사능 맞으면 안 된다고 온갖 호들갑을 다 떨어놓고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비 맞더라고요. 이렇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에요. 이게 다 평화인데, 이렇게 널려 있는 문제들이 평화와 직결되는데 평화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게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대중들의 가슴에 와 닿게 이야기하려면 매일 이야기해야 해요. 대중들이 알 때까지, 완전히 인식할 때까지 매일 아침 점심 저녁으로.
- 그동안 인상 깊었던 공연이 있나요?
다 고맙고 귀중한데 특히 인상 깊은 공연이라면, 첫 번째 공연을 얘기할게요. 첫 번째 공연을 하러 갔는데 초청하는 쪽에서는 첫 번째 공연인지 모르고 불렀어요. 제가 정신대공연 10년을 한 다음에 평화박물관 건립을 위해 또 10년 계획을 세우면서 시작한 첫 공연이었으니 저한테는 얼마나 중요했겠어요? 그런데 초청자는 그 공연의 의미를 전혀 모르고 부른 거죠. 끝난 다음에 초청자가 진짜 미안해하면서 50일 동안 책임을 졌어요. 아름다운 분이죠. 사람은 모를 수가 있어요. 언제나 그 다음이 문제죠. 애틀랜타에서 한 그 공연도 인상 깊어요. 만 명이 더 들어가는 공연장인데 9명이 왔어요. 재미있죠? 그래서 내가 거기는 또 한 번 가고 싶어요. 또, 링컨센터 공연이나 아르코 공연도 생각나네요. 두 공연 다 한국 가수 최초로 서는 무대였어요. 대중가수도 아닌 제가, 국악을 섞은 제 노래가 국제무대에서 어떻게 통할 수 있는지를 증명할 수 있던 무대였다고 자평해요. 아르코예술극장은 연극과 무용 전용극장이라 노래를 할 수 없는 극장인데다가, 공연자가 대관을 하는 게 아니라 극장 측에서 공연자를 선정하는 식인데, 제가 선정되어서 3일 동안 공연을 할 수 있었어요. 정말 고맙고 뿌듯한, 그런 공연들은 잊을 수 없어요. 이번 100회 기념공연도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 도와줬던 친구들이 게스트로 나오고, 개인적으로 알고 있던 여러 단체들과 후배들이 많이 후원해주고 도와주고 있어요. 형식적인 게 아니라 저 친구 애쓴다, 순관이 형 고생한다 하면서 우리도 한번 같이 하자고 진심으로 말하고 도와주는데…… 정말 기분이 좋더라고요.
- 사람들한테 위로만 주셨는데 이번엔 위로를 받으셨을 것 같은데요.
맞아요. 도스토예프스키가 민중은 수수께끼다 이랬는데 진짜예요. 어떨 땐 대중이 제일 싫어요. 제일 밉고요. 내 마음 안 알아주니까, 몰라주니까, 제일 적이 되고 분노의 대상이 되고, 어떨 때는 솔직히 그래요. 그런데 사실 제가 사람들 도움 없이 지금까지 이걸 어떻게 했겠어요? 도와줬기 때문에 할 수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사람이 고맙고, 대중이 고맙고. 그런 걸 배우고 있어요. 사람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 사람이 또 얼마나 야속한 존재인가. 그래서 섞여서 사는 거죠. 팬 카페든 시민단체든 회원은 많은데 활동하는 사람은 10%도 안 되잖아요? 나머지 90%가 야속해요. 안 하려면 왜 들어오나 생각도 들고. 그런데 그 90%의 사람들이 없다면 10%가 못 움직여요. 그러니 90%의 사람들이 매우 중요하다는 걸 알아야 해요.
- 이제 4년 남았는데 4년 안에 설립이 가능할까요?
아무도 모르죠. 설립이 중요하지만 어떻게 보면 더 크게 생각해 보면 설립을 못 하더라도, 내가 죽을 때까지 못 만들더라도 누군가는 하지 않을까요? 또 설령 끝까지 못하더라도 그 흔적이 남겠죠. 평화박물관을 만들려 한 노력들, 그 과정들, 그 시간들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노력하는 동안 우리는 마음의 평화를 지었으니까.
- 짓궂은 질문이지만, 만약 안 되면 어떻게 하죠?
그건 그때 고민할래요. 지금 할 필요가 전혀 없어요. 내가 죽을 때까지 하겠다고 할 수 있지만, 다른 어떤 놈이 하겠지 뭐 그러면서 그만둘 수도 있어요. 어떤 게 더 멋있을까요? 이렇게 10년 동안 해놓고 사라지는 게 훨씬 더 멋있을 수도 있을 것 같고. 내가 마무리를 지어야 될 것도 같고, 누가 또 이 고생을 하겠나 싶기도 하고. 반반이에요, 마음이.
- 춤추는 평화 공연이 끝나고 나서 따로 계획하신 일이 있나요?
아직 몰라요.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이나 춤추는 평화 공연이나 착한 노래 만들기 공연이나 결국 같은 이야기예요. 저는 계속 뭔가를 하고 있겠지만, 본질은 같은 활동일 거예요.
- 홍순관 님이 생각하는 평화란 무엇일까요?
내가 늘 하는 말인데. 제 숨을 쉬는 삶이 평화라고 생각해요. 제 숨을 쉬는 삶이 무너졌기 때문에 평화가 무너졌다고 보거든요. 제 숨을 못 쉬잖아요? 제가 대학생일 때 ‘숨’에 관한 묵상을 하고 있는데 우연히 솔제니친의 ‘숨’이라는 글1)을 읽게 됐죠. 솔제니친이 감옥에 갇혔다가 나와서 쓴 글이에요. 감옥에 갇혔다는 것은 정치에 갇혔다는 거거든요, 독재였으니까 얼마나 ‘숨’이라는 게 간절했겠어요? 그 글에서 ‘꽃과 물기와 싱그러움에 젖은 이 공기보다 더 맛스러울 수는 없으리라.’란 말이 있어요. 예를 들어, 여기 이 공간을 밀폐하고 화물차 뒤의 매연을 30초만 맡아볼까요. 숨을 못 쉬겠죠. 자기 숨을 못 쉰다는 게 그런 건데, 우리는 인식을 못해요. 어른 때문에 아이가, 학교 때문에 학생이, 정부 때문에 백성이, 과거 때문에 현재가, 강대국 때문에 약소국이, 인간 때문에 자연이, 남자 때문에 여자가, 여자 때문에 남자가 제 숨을 쉬지 못한다면 이건 평화가 아니죠. 평화가 깨진 건데 인식을 못해요. 그런데 인식하기 시작하면 숨 가빠져요. 숨이 탁탁 막혀요. 운동을 해서 그런 게 아니라 생각에 잠겨서 숨이 막혀오는 거예요. 뭔 세상이 이러냐! 이렇게 불공평할 수 있나! 이런 불의가 판칠 수 있나! 이건 평화가 아니죠. 제 숨을 쉬게 하는 것이 평화입니다. 아이는 아이답게, 자연은 자연스럽게, 어른은 어른대로, 종교는 종교로 다 각자 제 숨을 쉬게 하는 게 평화인 거죠. 나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게 평화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동네에 조그만 가게가 있었는데 대형마트가 생겨서 조그만 가게들이 다 사라진단 말이에요. 이런 건 평화가 아니에요. 엄청난 폭력이죠. 그런 게 같이 숨을 쉬어야 평화죠. 다 무너지는 세상이기 때문에 평화가 아니죠.
-아이를 키우는 엄마 또는 부모 입장에서 평화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회원이 많을 것 같아요.
질문이 어렵네요. 제가 교육전문가도 아니고요. 우리나라가 갖고 있는 문제 중에서 0순위는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가장 평화로워야 할 학교가 평화롭지 못해요. 학생들이 각자 자기 숨을 쉴 수 있게 해주는 것, 자기 생각을 하게 해줘야 하는데 우리 교육이 그런가요? 오히려 자기 생각을 못하게 하죠. 교과서 내용을 무조건 외워서 정답을 맞히라고 해요. “절대로 너는 훌륭한 사람 되면 안 된다”, “절대로 너는 아티스트가 되면 안 돼.”라고 말하고 있어요. 우리 교육현실은 비극 중의 비극이고 학교는 평화가 깨어질 대로 깨어졌어요. 아이들은 자기 숨을 쉬면 큰일 나는 줄 아는 것 같아요. 눈치를 보고, 괜히 움찔하고, 주눅이 들어요. 정말 인간다운 세상, 평화로운 세상이 아닙니다. 학부모들도 마찬가지예요. 네가 뭘 안다고부터 시작해서 시끄럽다, 공부해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등등.
-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평화를 지키는 걸 거창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일부러 춥게 산다고 하더라고요. 종이컵 안 쓰는 것도 쉬운 실천방법 중의 하나죠. 우리 회 사무실엔 종이컵이 없어요.
요즘 같은 고물가시대에 춥게 살고, 불 끄고, 물 아껴 쓰는 건 많이 해요. 서민들이라면.(웃음)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할까요? 남자 목욕탕에 가면 수건, 때 미는 타월, 일회용 면도기나 샴푸가 막 쌓여 있어요. 사람들은 때 미는 타월 한번 쓰고 버려요. 진짜 큰일이죠. 저는 수건 한 장 가져가요. 한번 사용하고 짜고 한번 사용하고 짜요. 너무너무 귀찮고 좀 쩨쩨해 보일 수 있어요. 나 혼자 이런다고 뭐가 바뀔까 싶지만 몇 년째 하고 있어요. 정말 이 악물고.
- 백창우 님하고 어린이 노래도 하셨지요?
공연을 해 온지 20년 됐어요. 북한이나 외국에서 자라나는 우리 어린이들이 우리말을 잘 몰라요. 우리 말, 우리 정서를 가르쳐주는 데는 우리 동요만 한 게 없다고 생각해요. 남한의 어린이와 북한의 어린이가 만나서 함께 부를 노래가 있으면 좋겠어요.
- 국악을 바탕으로 한 공연을 많이 하시죠?
오늘 날 국악의 대중화, 국악의 활성화, 저변확대 이런 얘기를 많이 하죠. 만약에 36년 민족말살 정책이 없었고 계속 우리가 그냥 살았다면 지금 우리 노래가 어땠을까? 굉장히 궁금해요. 음악적으로 볼 때 국악기는 탁월합니다. 기타도 훌륭하지만 가야금, 거문고가 가지고 있는 깊은 울림과 비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비교가 안 되게 깊어요. 클라리넷, 오보에, 플루트 같은 악기들, 대금 하나의 떨림에 비할 수 없어요. 그래서 내가 국악기를 쓰는 거예요. 그냥 내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어서 국악기를 쓰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이 운이 좋다고 말할 수 있어요. 외국 주류사회에 가서 공연을 할 때 나에게는 아주 큰 무기가 되거든요.
- 마지막으로 평화로운 세상을 한번 그려볼까요? 그런 세상이 되면 홍순관은, 우리 모두는 뭐하고 있을까요?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곧 길이다.’ 말이 있어요. 우리가 평화로 사는 것이 평화라고 말하고 싶어요. 설령 평화로운 세상이 왔다 해도 내가 평화로 안 살면 그건 평화가 아니죠. 내가 꽃을 봐야 꽃 피는 봄이 왔다는 걸 알고, 내가 별을 쳐다봐야 별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평화가 실제로 왔다 하더라도 정작 내가 평화롭지 않으면 내가 평화로 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가정도, 회사도, 어느 조직에서도 내 평화가 중요하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내가 평화로 살 때 내가 곧 평화일 때, 비로소 진짜 평화 세상이 오는 거예요.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달마다 내는 <동화읽는어른> 2011년 6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첫댓글 생각중이예요..
시험땜에? 멀지 않으니 애들이랑 움직이면 좋을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