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을 피해서 올랐던 향적봉(1,614m),
고사목 쉼터에서 목을 축이고, 간식을 들고 다시 설천봉 곤도라 승강장에 와서 곤도라를 타고 내려간다.
피서지의 복잡함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옛날의 구천동의 모습이 아니다.
차에 올라 구천동 계곡을 따라 내려온다. 계곡에 경치 좋고 물 좋은 곳을 찾아간다.
더운 여름에 하면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나누면서 옛 추억을 더듬으며 간다.
동면(冬眠)은 들었어도 '하면(夏眠)'이란 말은 사뭇 낯설다.
그렇지 여름이 견딜 수 없을 만큼이라면 차라리 잠을 자는 것이 생존방법의 한 전략이 되리라.
시원한 구천동 계곡을 따라가다가 파회 주차장에 들린다.
그런데 계곡으로 들어가는 가는 길은 전부 통제구역이다.
유일한 통로는 다리 뿐. 그것도 한 쪽 끝은 막아 놓았다.
다리 위에서 계곡 모습을 사진에 담아본다..
주차장에는 한 젊은 부부가 차를 그늘에 파킹하고는 야외용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물놀이 안전 사고에 대비해서 봉쇄한 것일까?
안전한 데크 길도 없고, 웬지 썰렁하기만 하다.
그늘진 계곡 물에 발을 담그고 싶은데.
-수심 깊은 곳에 위험 표지가 보인다.-
눈으로 구경만 하고 돌아선다.
파회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다시 차를 멈추고 들여다 본다.
역시 출입통제로 문이 막혀있다. 먼 발치로만 보는 계곡.
찾아 온 의미가 없다. ' 파회'의 한자 표기가 있다면 좀 낫지 않았을까?
출입이 금지된 파회가 구천동 33경 중에 3대 명소 중의 한 곳이라면서,
안내판은 읽기조차도 힘들게 되어 있다.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파회에는 위험표지줄만 처져 있고, 밖에서 구경조차 힘들게 되어있다.
이러고서야 무슨 관광객이 오기를 기다린다는 것인가.?
출입이 통제되고, 시야도 가린 곳에...
거미줄만 처져 있다.
'파회의 운명을 바꾼 소나무'라는 일화를 읽기가 힘들어서 그냥 사진으로 찍어가지고 온다.
나중에 집에 와서 사진을 확대해가지고 읽어 본다.
독자를 위해서 그냥 옮겨 놓는다.
( 힘들게 읽어본다.
<파회의 운명을 바꾼 소나무>
신라시대에 스님 일지대사가 물어물어 파회를 찾아 왔다. 고요한 물이 어느 순간에 이르러 급류로 변하여 아름답게 굽이치는 모습은 역시나 듣던 대로 장관이었다. 일지대사는 눈을 감고 잠시 명상에 잠기었다. 도를 깨우친 일지대사는 명상에 잠기면 오래전 과거의 일들을 볼 수 있었고 어느 순간에는 미래의 일을 볼 수 있었다.
눈을 감으니 맑디맑은 물속으로 천년 묵은 흰 구렁이가 들어오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흰 구렁이는 물살을 타고 수련하고 또 수련했다. 녀석은 보통 구렁이기 아니었다. 이제 막 미천한 뱀의 삶을 벗어나 열반에 이르러 하늘의 용으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은 녀석이었다. 하지만 수련에 정진하여 마음을 더 맑게 하지 않으면 만년을 살더라도 뱀은 그저 미물로 남을 뿐이었다. 뱀의 비늘은 찢기고 또 찢겨도 계속해서 물살을 타고 움직이고 또 움직였다. 욕심과 잡념을 털어내고 하늘이 내려준 맑은 마음 그대로의 존재로 돌아가려 애를 썼다. 그러던 어느 날엔가 하늘에서 요란한 천둥 번개가 치고 폭우가 쏟아졌다. 폭우는 소용돌이로 변하여 파회와 하늘을 이어주는 물기둥이 되었다. 기나긴 수련을 해온 흰 구렁이는 순식간에 하얀 용으로 변해 물기둥을 타고 하늘로 승천하였다. 일지대사는 감았던 눈을 뜨고 파회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소문대로 이곳은 땅 밑을 기는 뱀이 , 수련하고 또 수련하고, 용으로 변해 하늘로 승천한 축복받은 명소임이 틀림없구나."
일지대사는 그 명소에 축복의 시를 읊어주고 다시 발길을 돌리려 하였다. 바로 그때였다. 일지대사는 그만 사색이 된 얼굴로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의 눈앞에 파회의 물이 짙은 녹색으로 변해 가는 것이 보였다.
"독이다. 이 파회에 끔찍한 독이 퍼진다."
일지대사는 자신이 본 미래의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했다. 이토록 아름다운 곳이 죽음의 연못으로 변하는 것만은 막아내고 싶었다. 더구나 파회는 한낱 미물인 뱀이 수련하여 용으로 승천한 곳이었다. 사람 역시 이 파회의 물살을 보고 마음을 정진하고 정진하면 부처님의 뜻을 깨닫는 데 도움이 될 터였다.
"어떻게든 이 곳을 지킬 방법을 찾아야겠다."
일지대사는 파회 주변을 돌고 또 돌며 그 방법이 무엇일지 생각해보았다.
" 그래 이 풍경의 그림을 조금만 바꿀 수만 있다면"
하지만 어떻게 해야 파회의 모습이 달라 질 수 있을 지 좋은 방법이 쉬이 떠오르지 않았다.
일지대사는 파회를 보고 무주를 떠나려던 마음을 접고 하룻밤 머무르며 방법을 생각해 보기로 하였다.
일지대사는 그날 곡류하는 개울 건너편 기암 앞에 지어 놓은 파회정이란 정자에서 하룻밤 묵어가기로 했다.
부처님께 기도를 올린 일지대사는 깊은 밤 뒤척이다 살포시 잠이 들었다. 그가 잠을 자고 있는데 누군가 그를 깨웠다. 우직한 얼굴의 떠꺼머리 총각이었다 일지 대사는 늦은 밤 산적이라도
만난 줄 알고 화들짝 놀랐다.
"아이고, 스님 놀라셨군요. 저 역시 그냥 길가는 나그네입니다."
그의 몸에서는 체취가 강하게 풍겼는데 그리 불쾌한 냄새는 아니었다. 오히려 은은하고 향긋하였다.
스님은 어디선가 그 냄새를 맡은 것 같았지만 기억은 잘 나지 않았다.
"그럼, 그 쪽 역시 이 파회 경치를 보러온 유람객이오?."
"헤 헤, 저는 유람객이 아니라 일을 하러 왔습니다."
"아니, 여기서 무슨 일을 합니까?"
"누가 저를 문지기로 써 준다고 해서 말이지요."
"아, 다행입니다. 이 파회를 지켜줄 사람이군요."
떠꺼머리 총각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데 저쪽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저에게 일을 맡길 사람이 길을 잃었는지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오늘 새벽까지만 딱 기다리다 가렵니다."
총각은 손으로 길가에 커다란 바위를 가리켰다. 일지대사는 고개를 돌려 그 바위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일지대사는
꿈에서 깼다. 너무나도 생생한 꿈이었다.
어느새 시간은 새벽이었다. 암자에서 내려온 일지대사는 떠꺼머리 총각이 손으로 가리킨 곳을 향해 서둘러 달려갔다.
정말 꿈에서 본 바위가 그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이 바위에서 어떻게 파회를 지킬 사람을 만난다는 건지 일지대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을 정리할 겸 파회 주변 숲을 산책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떠꺼머리 총각에게 풍기던 그 체취가 느껴졌다. 일지대사는 서둘러 그쪽을 향해 다가갔다. 그 냄새가 풍기는 곳은 바로 커다란 소나무였다. 하지만 그 소나무를 뽑아서 바위 옆으로 옮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고민하던 일지대사는 소나무 가지 하나를 꺾어 품에 안고 바위로 왔다. 그리고 바위의 깊은 틈에 꽂아 넣었다.
흙이 전혀 없는 바위에서 자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지만 이 소나무 가지가 뿌리를 내린다면 어쩌면 파회는 무사할지 몰랐다.
일지대사는 그렇게 파회의 운명을 작은 소나무 가지에게 맡기고 길을 떠났다.
그 후, 소나무는 바위 위에서 기적적으로 자라났다. 소나무가 파회 위에 그늘을 드리울 수 있을 만큼 자랐을 때, 커다란 독사가 파회를 찾아왔다. 뱀모양으로 굽이쳐 흐르는 파회에서 독사가 자신도 승천하기 위해 수련하고자 찾아온 것이었다. 그러나 바위 위에서 자라는 소나무 때문에 그곳이 파회가 아니라고 생각한 독사는 다시 파회를 찾아 길을 떠났다. 만약 독사나 수련을 하면 파회에 머물렀다면 독사가 가진 독 때문에 파회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죽음의 연못으로 변했을 터였다.
그 후로도 소나무는 천 년 동안 파회를 굽어보며 자리를 지켰다. 언젠가부터 후세 사람들은 소나무와 그 밑의 바위를 천년송, 천년암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밤이 깊어지면 바위 위에 소나무가 부스스한 떠꺼머리 총각처럼 보일 때도 있다고 한다.)
파회의 이야기는 느긋한 암소의 되새김처럼 사진으로만 담았다가 이제야 읽어본다.
아 이런 사연이었이 전해져 오는 구나 그런데 그 바위는 어데 있나 찾아보다 길을 떠나면서야 보게 된다.
작은 소나무 한 그루가 바위위에 있는 것을.
그래서 파회는 파충류의 파(爬 긁을 파)자의 이름을 갖게된 것일까?
실제로는 파(巴꼬리 파)자로 쓴단다. 문화재청은 명승 자원 조사에서 무주 구천동 파회와 수심대 일원을 명승지대로 지정 예고했다고 한다. 동방일사라는 칭송을 받는 연재(淵齋) 송병선(宋병선)이 이름 지은 무이구곡중 마지막 명소이며 바위에 파(巴)회라고 새겨 놓은 데서 유래한 것이란다. 수회(水回)라고도 부르기도 한단다. 파회나, 수회나 둘다 물이 굽이쳐 돌아간다는 뜻이니 우리말 '무도리'가 더 나으려나.
어쨌거나 우리는 다음 명소를 찾아 간다.
예전의 일사대.
그러나 그곳도 현장까지 접근이 금지 된 곳.
푸른 물살만이 굽이치는 것을 나뭇 숲 사이로 보고는 돌아 설 수 밖에.
안전, 안전, 하다보니 사방이 출입 금지 구역이 되어 버렸다.
동방일사(東方一士) 연재 송병선과 관련된 이름에서 유래한 일사대다.
옆에 있는 연재 송병선 사당인지 건물도 출입금지 상태고.
사방이 출입금지로 된 곳을 그냥 돌아나올 수 밖에..
(전북 무주)설천면을 지나 충북 영동군 용화면 도마령(해발 800미터)으로 향한다.
구천동에서 내려오는 냇물을 따라 가다 보면 무풍으로 가는 길에 오른쪽으로 나제통문(羅濟通門)을 못본 체 하고 내쳐 내려가면
오른쪽 냇물 건너편으로 충북 용화면 경계가 나타난다. 냇물 하나 사이로 충북과 전북 도가 나뉘는 곳이다.
영동에서 용화를 오려면 편한 길은 무주읍내를 거쳐 돌아 들어 오는 방법이라니.
(전국에 그런 곳이 몇 군데 생각난다.
충남 당진의 난지도, 풍도는 인천 학구로, (충북) 어부동은( 충남,대전) 대덕학구로,, 충남 금산 방우리는 전북 무주 학구로 등..)
그곳 용화삼거리에서 오른쪽 조동리 방면으로 가면 도마령 고개로 이어진다. 해발고도 800미터의 높은 도마령 고개
그 고개가 한 군인 영동군내 물한계곡이 있는 상촌면과 (전북) 무주 쪽 용화면과의 경계란다.
도 경계도 아니고 면과 면 사이의 경계가 이렇게 높은 고개로 나뉘어져 있다니..
어쨌든 용화면은 충북 영동군의 오지같은 곳이요. 섬같이 외롭게 떨어진 곳이다.
2009년 12. 01 에 지나간 곳이다. 옛답사 자료를 보니 감회가 새로워진다.
(*산과 산성이야기 #139번 참고)
왜 도마령인지.
휴게를 위한 시설인지 꽤 큰 시설물 공사가 진행 중이고,
오른쪽 산등성이에는 공사 안내판에 그려진 전망대도 설치할 예정이라는데, 꽤 많은 예산을 들여서 하는 사업일터인데, 타당성이 있는 것인지 쓸데없는 걱정도 해본다. 아니 무더운 여름에 피서 겸, 등산을 위한 수요를 예상한 결과이겠지.
도마령 정상 부근에는 상촌면 쪽으로 주차할 공간이 있고, 그 옆으로는 전망대로 가는 등산로가 있다.
노점상 아주머니와 몇 마디 말을 나누고는 차를 세우고 도마령 고개를 돌아본다.
안내판에는 완공시의 전망대 모습도 보인다. (언제 또 와 볼 수 있으려나?)
도마령 높은 고개를 뒤로 하고 무주 구천동 쪽을 앞으로 바라보는 이 건물은 이 무더운 여름 더할 수 없이 좋은 피서지가 되겠지. 덕유산, 적상산도 보이고, 시원한 것이 대관령이나 설악산 한계령 모습을 떠 올려본다.
상촌면과 용화면 면 경계를 이루는 800미터 높이의 고갯길을 내려온다.
내려오는 길은 생각보다는 기본 해발 고도가 있어서인지 그다지 길지 않다.
가도가도 '고자리'라는 지명이 있을 만큼, 그 만큼 후미진 곳이라는 뜻의 물한리 계곡. 삼도봉, 민주지산, 각호산이 등줄기를 이루고 있는 곳, 등산팀 들이 이곳 도마령을 기점으로 삼아 산행하던 곳이다.
도마령을 넘어 괘방령 옛 이야기하며 상촌면을 지나 황간에서 때를 지난 어중간한 식사를 한다.
사방을 둘러보니 추억이 있는 곳들, 월류봉, 백화산성으로 이어지는 산새소리 길들.. 황간 읍성. 발길이 닿은 곳들이다..
1970년 7월 7일에 준공된 428km길이의 (추풍령휴게소 탑)
우리나라 최초의 대 역사인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대전으로 되돌아 온다.
우리나라 발전의 모습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우리끼리 ' 콰이강의 다리'라고 부르는 (대전) 비래동 옛고속도로 폐다리를 보면서, 덤으로 하면(夏眠)도 알게 된 하루, 피서 겸한 나들이 길이었다.
(*동면(冬眠;겨울잠)의 어원 찾아보기
: hibernate, hibernation , 라틴어 '겨울을 보내다' hibernate < L. hibernus (: winter),wintry
하면(夏眠:여름잠)은 : estivate, estivation , 라틴어 '여름 보내다. aestivare < L. aestivus ( : summer. )
하면하는 대표 동물로는 달팽이가 있군요. 더울 때는 꼼짝 않고 집에서 쉬는 것, )
(2023.08.09.자부리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