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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사랑중원경 ‥ 스크랩 지역축제 충주의 전성시대를 재 조명해보는 2018 충청감영문화제 열려
중원경/김광영 추천 0 조회 9 18.10.10 17:3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충주의 전성시대를 재 조명해보는 2018 충청감영문화제 열려

충청감영 관찰사 추모제 및 출력 행차, 옛 생활상 재연 및 놀이 한마당  


지난 7일(일요일) 충주 관아공원에서 2018 충청감영문화제를 열었다.

감영문화제는 충주의 찬란했던 옛 역사를 되돌아보며 재연해보는 문화제로

충주발전을 도모해보는 뜻깊은 문화행사이다. 


충주는 한반도의 중심지역으로 1,400여 년 전 정치, 문화, 경제 등 중요 요충지로

충청도 행정을 관할한 충청감영(현재의 충청남, 북도의 도청) 소재지이었으나

일제의 침략으로 나라의 중심 측이 서부로 옮겨가면서 발전소 외 지역으로 오늘에 이뤘는데 


근래에 와서 충주가 새로운 교통의 연결로 사통팔달 중심지역으로 연결됨에

옛 찬란했던 충주를 재조명해보는 충청감영문화제를 열어

옛 역사 속 당시의 충주를 재연하여 미래상을 구현해보는 문화제이다. 


행사로는 충청 관찰사 추모제가 관아공원에서 열리며,

관찰사 순력행차가 성내 충인 지역을 순회하며 관아공원에서는 

떡매치기, 민속놀이 등 옛 생활상을 재연해보는 놀이와

  시민노래자랑, 안산시립국악단 공연과 비보이 공연, 외줄 타기 등이 실시됐다.  

 

 

이 장면은 관찰사 추모제인데 오전 11시에 실시됐다.

추모제는 옛 관아인 청녕헌 앞에서 실시됐다.

 이어 충청감영문화제 개막식이 충주시장, 국회의원, 도의원, 시의회의원 및 시의원 등

지역 인사가 참여한 가운데 실시됐다.

이어 충청 관찰사 순력행차가 실시되는데

관찰사 순력행차는 성내충인동의 주요 지역을 한 바퀴 돌아

관아공원으로 돌아오는 행차이다. 

충청감영문화제의 하이라이트인 충청 관찰사 순력행차 장면인데요

순력행차의 관찰 사역에는 관활 동장이 대신한다. 

 충청감영문화제의 하이라이트인 충청 관찰사 순력행차 장면인데요

순력행차의 관찰 사역에는 관활 동장이 대신한다. 

 행렬을 압도하는 풍물 농악단인데요

이 풍물단은 중원민속보존회 회원들이다.

이번 행차에는 말도 함께하여 이를 더해주었으며 

충주의 명물 연 태극기님의 모습도 행렬을 돋보이게 한다.

엿 구르마와 선비들의 모습도 정취를 더해 준다.

 

 이곳은 관아공원인데 떡메치기 장면이 인기를 끄는데

이렇게 하여 만든 인절미는 관중에게 무료 제공된다.

이 장면은 행사장인 관아공원에서 실시된 공연 장면인데

공연을 하고 있는 연기자들은 안산시립국악단 연기자들이다. 

 

본 연출의 사회를 맡은 남해웅, 서정금님의 익살스러운 연기 장면이다.

이 연기는 충북예고의 쌍검 무등 화려한 춤의 무대이다. 

이 장면은 행사의 인기 종목인 초롭동이 외줄 타기인데

그림과 같은 이슬 아슬한 묘기 연출에 큰 박수가 나온다. 

 이 그림은 충주가 자랑하는 택견 비보이의 연기 장면이다.  

이 그림은 안산시립국악단의 풍물놀이인데 열두 발 상모놀이가 인기를 끌었다.

상모놀이를 마지막으로 안산시립국악단의 공연은 막을 내리고 

이 장면은 품바공연과 시민노래자랑이다.

이곳은 충청과 영문 화제가 열리고 있는 당시의 관찰사가 있는 현장이다.

역사는 흘러 많은 변화와 함께 당시의 화려했던 모습은 없지만

당시에 사용했던 청념헌등 관아는 그대로 남아 역사를 증명해 주고 있다.    

 

 

충주의 화려했던 그 시절 충청감영이 있던 이곳은

당시에 활용했던 관아와 당시에 관아와 함께했던 수명 5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당시의 세월을 말해주고 증명이라도 해주듯

관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어 보는 이로부터 감격을 주고 있다. 

 

충주는 1400여 년 전 삼국시대의 각광받던 지역으로

백제, 고구려, 신라가 중원지역인 충주를 찾이 하기 위해 각축전을 벌린 지역으로

당시 백제 근초고왕은 충주를 점령한 후 충주를 지키기 위해 장미산성을 쌓았고

고구려 장수왕은 배제로부터 충주를 점령한 후 이를 기념하는 고구려비를 세웠으며

이후 신라는 충주를 점령하여 중원경 시대로 꽃을 피웠으니

당시의 충주는 경주 다음으로 국내 제2 도시로 발전하여

중원경 시대를 꽃피웠다.  

 

이후 고려 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처 오며 충주는 충청감영으로

중원의 정성기를 누렸으나 일제의 침략 이후

국가의 발전 측이 서부로 이동되며 발전소 외 지역으로 오늘에 이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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