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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궁예천명은 수당시대의 대가 구양순(歐陽詢․557~641)이 7태종(太宗)의 명을 받고 76세에 쓴 해서체이다. 구성궁이란 당의 제궁(帝宮)인 이궁(離宮)이다. 협서성(挾西省) 인유(麟遊)로 붕양 북산에 있다. 이궁은 수나라 문제(文帝)가 조영한 후 한동안 폐궁됐으나 당 태종이 개축해 구명인 인수궁(仁壽宮)이라 고쳐 불렀다. 그러나 지세가 높아 물이 귀한 게 흠이었다. 하루는 황제와 황후가 궁을 산책하는데 아지랑이가 피어오른 곳을 발견했다. 가서 보니 물이 솟아났다. 이에 그 상서로움을 비에 각(刻)하게 됐다.
황제는 정관(貞觀) 6년(636)에 글은 재상 위징(魏徵․580~643)에게 짓게 하고, 글씨는 구양순에게 쓰도록 해서 세웠다. 비서감(秘書監) 검교시중(檢校侍中)은 품계이며, 거록군공(鉅鹿郡公)은 봉작이다. 구양순의 글씨는 '그 결구가 전통서법을 타파하고 창조정신이 가장 강열하게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라고 평가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점획이 천변만화(千變萬化)하며 연결된 점도 모양이 서로 다르게 처리됐다. 또 가로 획과 세로 획도 이와 같다. 가장 큰 특징은 예술적인 과장법(誇張法)을 적용한 것이다. 예를 들면 필획이 많은 글자는 점을 작게 하고, 반대로 필획이 적은 글자는 조금 크게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구양순은 정반대로 글씨를 썼다'고 한다. 예천명에서는 위징(魏徵)의 성자인 윗나라 위자에 꼭지 점과 사사 (厶)자나 모방진 그릇 방(匚)를 반대로 붙인 것도 모두 생략하고 점만 찍어 놓았다. 중국의 서예가들은 글씨를 공부하는데 바로 구양순의 「구성궁예천명」을 교본(敎本)으로 삼고 있다. 이 글씨는 구양순 글씨의 대표작이자 서예교본인 것이다.
구성궁예천명을 보면 볼수록 정말 서예교본이구나 싶습니다.
어떻게 저런 글씨를 쓸 수 있을까 싶고, 절로 감탄만 나오네요!
湖山 위신복 님
맞습니다. 구성궁예천명이 해서에 완성형체가 아닌가 싶습니다. 획이 약간 가늘고 마무리를 정교하게 회봉하는 듯 했습니다. 실제로 기교를 절제하며 쓰기가 결코 쉽지는 않습니다.
장맹룡비는 남성적인 글씨체이지요.
http://naver.me/5A1U2MU8
각이 많이 져있는 육조체
위자에 대한 역사를 연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구성궁예천명의 위징의 위자중 점으로 표시한 것이 간결하고 좋아 보입니다. 지금까지 위자 중 가장 간결합니다.
잘보고 공부하고 갑니다.